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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10:24-33
강설날짜 2021-11-28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dJCxpt07xWw

두려워해야 할 분을 두려워하라(마10:24-33)

 

한국 교회는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종교 시대처럼 타락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인 참된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많은 신자가 있지만, 알곡과 가라지가 있습니다. 참된 교회인 알곡을 하나님께서 구원으로 인도하시며 추수하는 일꾼이 되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는 희망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기업과 같다고 하지만, 참된 교회는 그런 소리를 듣더라도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삶이 예배가 되는 생활을 합니다. 참된 교회는 열매를 맺는 성도입니다. 믿음의 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열매가 없는 자들은 가라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알곡을 사랑하십니다. 알곡과 같은 교회는 예배당이 멋이 없어도 주님의 삶을 생활하며 추수하는 사명을 감당합니다.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사데 교회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사데 교회는 뜨거운 교회였습니다. 열정이 있는 교회 그러나 죽은 교회였습니다. 살아 있는 것 같으나 죽은 교회였습니다. 사데 교회와 같은 교회에 가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세상 사람들은 사데 교회에 모일 수 있습니다. 사데 교회와 같은 예배당에 모여야 구원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이 있어야 구원받습니다. 주님을 참되게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 안에서 성도의 교제를 하며 신앙 생활할 때 삼위 하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예배당이 화려하고 찬양이 열정적이라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외형보다 마음이 중요합니다. 사람의 겉모습보다 마음이 중요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십니다. 사람들을 많이 모이게 하려고 세상의 대형할인점처럼 예배당을 만들 수 없습니다. 마트처럼 상업하기 위해 예배당을 짓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예배당이 크면 안 되는 것입니까?라고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상처럼 장사하기 위해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기업과 다릅니다. 기업은 이윤을 창출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기관인 교회는 이윤 창출이 아닙니다.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애쓰는 신자들의 공동체입니다. 오히려 이웃을 섬겨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세상과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타협을 하면 오히려 교회는 타락합니다. 세상에 물든 기독교는 결국 죽어가는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는 복음이 없는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가 되지 않도록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잘 알아야 합니다.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두려워해야 할 분은 삼위 하나님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야 합니다. 구원받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전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몸과 영혼이 부활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도록 말씀을 잘 알아야 합니다. 말씀으로 세상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지난주 말씀을 되돌아보며 오늘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한 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말씀을 들음으로 진리의 자유를 누리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적 추수꾼으로 열두 제자를 파송하시면서 권능도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추수밭과 같은 세상에는 이리와 같다고 했습니다. 이리와 같은 세상이기에 예수님께서는 미움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삼가라”고 하셨습니다. 추수밭의 환경은 매우 열악합니다. 죄로 인해 타락한 자들은 복음을 거부합니다. 그들은 이리와 같은 자들로 복음을 전하는 교회를 공격합니다. 겉으로는 양과 같은 모습이지만 속은 이리와 같은 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려움을 당할 것을 알기에 미리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한번 기억을 떠올려 보십시오. 추수하는 일꾼을 공격하는 자들은 공회와 총독들과 임금입니다. 이것만이 아니라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공회로부터 채찍질 당하는 것도 억울한데 가족으로부터의 고통은 어떠하겠습니까? 실제로 이런 일들은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험악한 세상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믿음의 선배님들이 복음을 위해 순교함으로 오늘날 우리는 이렇게 신앙생활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믿음의 선배님들과 같은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리와 같은 세상이라도 예수님께서는 “할 말”을 하도록 도와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속에 계시는 성령께서 할 말을 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미움 그 이상의 고통을 당하더라도 ‘끝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복음을 값없이 전하는 자들의 발걸음에는 구원의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추수꾼은 믿음의 선배님들처럼 이리와 같은 자들을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아시기 때문에 “두려워해야 할 분을 두려워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이리와 같은 자들로부터 미움과 핍박을 받는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영광입니다. 단지 우리는 끝까지 인내하며 주의 길을 가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우리는 연약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말씀을 통해 배워야 합니다. 주님만을 믿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왜 주님만을 믿어야 합니까? 그것을 알기 위해 오늘 본문 24절을 보십시오.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선생처럼 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당시에 이런 가르침은 유대교만 아니라 로마에서도 확고한 신념이었습니다. 사실 선생보다 더 높아지고 같은 위치에 올라서기는 쉽지 않습니다. 단지 선생님과 같은 반열에 서는 것도 영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님과 같은 반열에 서며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나와 같은 처지가 될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두려워해야 할 분을 두려워하며 힘을 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의 현실을 아시기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도 당신님과 같은 운명에 처해 있음을 역설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25절을 보시면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바알세불을 귀신의 왕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정체를 알지 못하고 바알세불이라고 불렀습니다.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이요 사악한 언어의 공격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사탄의 왕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너희들은 어떠하겠느냐 나보다 더한 일을 당할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보다 더한 어려움을 당할 것이니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며 기도해야 하는 교회입니다.

 

복음이 전해짐으로 너희들이 고통을 당하지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26절을 보시면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지금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밝히 드러나니 너희들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는 당신님이 걸어왔던 길을 따르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들이 전하는 복음의 가치를 알고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 나라의 구원이 있으니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밝히 드러남으로 참된 것인지 아닌지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진리는 결국 겉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드러난 참된 말씀으로 인해 신앙인의 길을 걸으며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창립 구성원인 제자들은 결국 이리와 같은 자들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습니다. 이리들이 핍박해도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것을 알기에 힘을 내어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이처럼 두려움도 이길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리와 같은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27절 보시면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유대인의 환경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 학자들은 통역자를 두었습니다. 그들은 통역자를 통해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율법 학자가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말을 통역가에게 귓속말로 전했습니다. 귓속말로 전해 들은 통역가는 큰 소리로 전했습니다. 왜 이렇게 통역가를 둔 것입니까? 율법 학자는 히브리어로 통역가에게 전하면 통역가는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바꾸어 전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마치 통역가와 같은 존재로서 당당하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전해야 합니다. 전해지는 복음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세상의 총독과 임금들 그리고 공회라 할지라도 막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이리와 같은 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을 미워하고 핍박할 뿐입니다. 그러니 너희는 끝까지 인내하며 승리하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너희들을 핍박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핍박을 받더라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 때문인지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28절을 보시면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라는 것입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보내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리와 같은 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몸을 죽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리와 같은 세상은 사람의 영혼을 죽일 수 없습니다.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보낼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너희들의 복음을 듣고 사람들은 구원받을 수 있으니 주의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 외의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많이 가질 수 있을까?에 관심이 많습니다. 돈과 권력이 있다고 영생할 수 없습니다. 진시황제라 할지라도 결국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주님을 믿지 아니함으로 최후의 심판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자입니다. 이처럼 복음을 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안심할 수 있는 즉 격려의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놀라운 것이며 세심한 것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29절과 30절을 보시면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희망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밀한 것까지 관심을 가지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참새도 팔리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참새를 이용한 이유가 있습니다. 참새는 가장 작은 피조물이라고 유대인들은 생각했습니다. 참새 두 마리는 한 앗사리온으로 대단히 저렴했습니다. 앗사리온은 로마에서 가치가 가장 작은 동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작은 참새도 돌보시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은 어떠하겠느냐입니다. 특히 복음을 전하는 너희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겠느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며 형상인 우리를 임마누엘로 함께 하심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다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자녀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시고 계십니다. 끊임없이 미움과 핍박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측은히 여기시면서 끝까지 인내하도록 합니다. 하나님께서 끝까지 우리를 임마누엘로 보호하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고 믿음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사람은 하루에 머리털이 빠지는 숫자를 알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연구에 의하면 대략 50개 정도라고 합니다. 언제 빠지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머리털의 숫자를 모두 아십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머리털을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으며 신앙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세심한 보호 하심과 보살핌 속에서 주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31절을 보시면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삼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녀처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귀한 우리는 이리와 같은 자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를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를 지켜 보호하여 주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은혜요 영광입니다. 세상의 참새를 다 모아도 한 영혼보다 더 중하겠습니까? “머리털”까지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하물며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돌아가시도록 하셨습니다.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바로 우리 아니겠습니까? 바로 나를 위한 구원 때문입니다.

 

교회인 성도는 이리와 같은 자들에게서 오는 미움과 박해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것을 주저하면 안 됩니다. 이리와 같은 세상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3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참된 신앙인은 평화로울 때보다 핍박을 당할 때 믿음이 잘 드러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믿음의 선배님들은 대체로 어려움을 당할 때 참된 신앙인의 본분을 드러내셨습니다. 박해가 있을 때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기 쉬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32절 말씀을 통해 긍정과 부정을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또한, 엄중한 경고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참된 고백을 하는 교회는 예수님께서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앞에서 나를 시인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뜻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복음을 전하는 성도는 최후의 심판에서 구원하여 주신다는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시인하는 성도는 구원의 영광을 받는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변호하여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도 중보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중보자이십니다. 중보자이신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변호하여 주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영광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우리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주님 안에서 신앙생활 하는 성도입니다. 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그런데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33절을 보시면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입니다. 성도라고 하면서 미움과 핍박을 당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면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을 부정한 자들에게 나도 너를 모른다고 하십니다. 이 말은 무서운 말씀입니다. 영원한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박해를 받는 것보다 마지막 날에 심판은 박해를 넘어선 상상 이상의 형벌입니다. 지금의 고통은 마지막 날에 심판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주의 길을 잘 가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을 부인한다는 것은 구원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하는 생활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부활과 영생을 믿기에 미움과 박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참된 신앙인의 길과 본분을 지키고자 하는 제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시인합니다. 그러니 주님을 늘 시인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시인하지 아니하면 최후의 심판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잘 알고 있는 베드로와 사도들은 이렇게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행5:29절을 보시면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입니다. 예수님의 참 사랑을 안 제자들은 순종하는 삶을 생활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자신들부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자들이 이제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끝까지 인내하며 복음의 증인자로 섬겼습니다. 자신의 몸도 아끼지 아니하며 주님과 같은 길을 걷고자 했습니다. 제자들은 “두려워해야 할 분을 두려워하라”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것을 아는 교회이기를 소망합니다.

 

세상 속에서 신앙인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면 예수님을 시인하지 않는 삶이 더 좋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가족으로부터도 따돌림을 당해야 하는 왕따와 같은 삶일 수도 있습니다. 추수하는 삶을 생활하는 교회가 미움과 박해를 당하는 것은 필연입니다. 우리만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제자들도 몸소 겪으셨습니다. 세상의 핍박은 우리의 몸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혼은 죽일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해야 할 분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말한 것처럼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고난은 나를 점검할 기회라고 생각하십시오. 그럴 때 기뻐하며 주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삶은 길지 않습니다. 인생 이후의 삶은 영원합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습니다. 천국은 하나님 나라이고 지옥은 영원한 형벌을 받는 감옥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참새도 돌보시며 머리털까지도 다 세십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시인해야 합니다. 오늘날 성도는 제자들처럼 파송 받은 복음 전도자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귀한 일꾼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자녀요 귀한 일꾼인 우리는 세상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몸과 영혼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이것을 아는 교회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참된 길을 걷습니다. 이리와 같은 자들의 미움과 박해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우리를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지팡이 교회는 늘 주님을 시인해야 합니다. 우리는 미움과 박해를 당하는 중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시인함으로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하며 합니다. 구원의 기쁨과 영광이 있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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