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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예배강설

2016.09.28 14:54

씨 뿌리는 자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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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13:1-9
강설날짜 2016-09-25

씨 뿌리는 자의 비유(마13:1-7)

 

우리는 마12장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서 복음을 전해도 특히 종교지도자들은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거절하고 죽이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을 아시기 때문에 12:34절에서는 “독사의 자시들아”라고 하시면서 32절에서는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바리새인들은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달라고 요구합니다. 표적을 요구하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39절서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책망을 하심으로 당시의 분위기를 잘 드러내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아도 표적은 수없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표적을 요구하는 것은 불신앙을 잘 드러내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강설을 듣는 마태복음 13장은 왜 이스라엘 백성이 예수님을 거절했는가를 알려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복음이 이스라엘 지역에서 이방인 지역으로 점차 확대하여 전하여 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13장에서 여뎗 개의 비유와 한 개의 사건을 기록을 합니다. 여덟 개의 비유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밀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우선 우리는 비유가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비유라고 하면 대체적으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질문을 던져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 66권은 많은 비유들이 있습니다. 특히 비유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 구약의 책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솔로몬이 기록한 책 중에서 잠언이 바로 비유들을 모아 놓은 책입니다. 그래서 제목 자체가 본래 비유라는 말입니다. 솔로몬은 평범하게 보이는 것 속에 감춰진 깊은 내용과 뜻을 드러내어 표현한 것들이 널리 알려져서 모든 사람의 입에서 말하여짐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데 훈계가 되는 짧은 말’이 되는 것을 잠언이나 격언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위대하고 탁월한 교사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종교지도자들과 매우 권위가 있었고, 독특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그 중에서 비유는 예수님께서 공관복음에서 삼분의 일 이상으로 가르쳤습니다. 그 내용은 핵심은 하나님 나라의 선포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생각하면 “하나님 나라의 의미를 지닌 지상의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마13:11절을 보시면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라고 하면서 비밀이라고 하십니다. 그 비밀을 35절에서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창세부터 감추인 비밀을 비유로 말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다메섹에서 경험을 한 후 복음을 전하면서 골1:26절에서 비밀을 말씀하십니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고 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성도에게 알게 하심으로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가르쳐 주심으로 더 확실하게 당신님이 메시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막4:10-12절에서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 한 사람들이 열두 제자와 더불어 그 비유들에 대하여 물으니 11.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12.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시면서 비유로 설명하신 의도와 목적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외인에게는 감추고자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서 직접적으로 메시야나 그리스도로 말하지 않고 감추어진 의도 문맥을 따라서 이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마태복음에서는 ‘인자’라는 호칭을 사용하심으로 오해를 불식시키고 당신님을 보호하시기 위하여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들었고 해석된 말씀을 통해서 문맥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청중들에게 전할 모두가 들었지만, 해석은 제자들에게만 주어진 것입니다. 외인이 아닌 제자들과 하나님 나라의 백성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것입니다. 마11-12장에서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 특히 종교지도자들이 죽이고자 했을 때 비유로 사용하심으로 적대감과 마음의 완악함을 누그러뜨리려고 하신 것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생각하면 우리가 일생생활에서 경험하고 눈에 쉽게 보이는 것으로 예화를 얻어 비유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렛에서의 어린 시절과 소년 시절 그리고 청년 시절에 가지셨던 일상적인 삶의 경험을 만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여러 가지의 경험을 한 후에 나중에 공생애 사역을 하시면서 비유로 사용하셨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일상 생활에서 경험한 것을 사용하여 경주하는 자, 선한 싸움을 하는 자, 경기장, 하나님 나라의 전신갑주 등에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비유를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좋은가? 예수님께서는 강설을 하시면서 전달하고자 하는 본래적인 의미를 생각해야 합니다. 본래적인 의미를 넘어선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오해한 것입니다. 올바른 해석을 위해서는 언제나 늘 문맥을 잘 드려다 보아야 합니다. 문맥의 흐름의 연구도 없이 무조건 잘 아는 비유이기 때문에 강설을 한다는 것은 위험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망령되이 하는 것입니다. 문맥을 연구한 후에는 예수님 당시의 환경과 성경이 기록된 시대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의도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 시대의 상황을 무시하고 오늘날의 환경과 상황에 비유로 이해를 한다면 잘 못된 생각이 아닐까요. 이런 연구를 마무리 한 후에는 예수님은 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감추어진 비밀로 비유를 사용하셨다는 것을 아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비유를 생각하면서 하나님 나라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후 각 복음서마다 같은 내용으로 다루어진 이야기를 마태와 누가 그리고 마가는 어떻게 사용되어지는 지도 연구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비유는 단순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읽은 마13:1-9절에서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가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을 생각하면 가장 기초가 되기도 합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관한 비밀을 밝혀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가 제시하는 질문의 내용은 왜 어떤 사람은 메시야를 믿음으로 믿고, 외인은 그렇지 않은가? 아마도 제자들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을 것입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왜 사람들은 거부를 하는가? 우리가 모시고 있는 예수님에게서 문제가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전달하시는 방식의 문제인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씨를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서 씨를 뿌리는 농부의 문제가 아니라, 땅이 문제로 듣는 사람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은 믿음이 있는 자와 믿음이 없는 자의 두 부류 이상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는 자들이 믿기를 회피하거나 믿음에서 떨어지는 다양한 이유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씨 뿌리는 비유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속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신령한 영역의 일의 신비이고, 비밀을 깨달을 수 있도록 알려 주시지 아니하시면 알수 없는 신비 중의 신비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이 비밀을 깨달아 아는 은혜를 받은 성도만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은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아마도 12장에서 배척을 당하신을 연결해 주시기 위해서 ‘그날에’을 사용하심으로 연결고리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장소는 갈리리 바닷가에서 예수님께서 ‘앉으시매’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가르치기 위한 표현입니다. 우리는 휴식을 취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지만 유대인에게 있어서는 앉는다는 것은 가르치기 위한 행동입니다. 예수님께서 앉는다는 것을 유심히 본 사람들은 2절에서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더니”라고 기록합니다. 오늘날처럼 음향이 잘 되어진 것이 아니라, 음성으로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갈릴리 바닷가는 지형적으로 유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발굽 모양의 원형 극장의 모형으로 90미터 정도까지 음성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육성으로 전달하기 적합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12장에서는 배척을 당하시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호의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보여 들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좀 더 잘 보일 수 있고, 말을 잘 전달할 수 있는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씨 뿌리는 비유는 별다른 주석과 해석이 필요하지 않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10-23절에서 해석을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그 시대에서는 제자들만 알 수 있지만 오늘날에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 수 있도록 성경을 주셨기 때문에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알 수 없는 것은 ‘들을 수 있는 귀’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복음은 들음으로 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3절에서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여러 가지 비유는 여덟 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선별하여 기록한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씨 뿌리는 비유만 듣고, 다음 주에는 씨 뿌리는 비유의 해석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다같이 4-9절의 말씀을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5.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9.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아멘

 

씨 뿌리는 자는 나가서 씨를 뿌림으로 네 가지의 유형의 땅을 생각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처음 세가지 유형은 ‘길 가, 흙이 얕은 돌밭, 가시 떨기’에 씨까 뿌려지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합니다. 하지만 마지막의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좋은 결실을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맺는다는 것입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의 초점은, 씨 뿌리는 자나 다양한 종류의 밭에 있지 않고, 씨의 운명에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좀 더 생각하면, 씨를 뿌릴 때의 자세나 말씀의 씨를 받아들이는 자세를 교훈하려고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드신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하면 열매 맺는 밭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길가 밭과 돌밭과 가시떨기 밭을 옥토로 개간할 수 있을까?를 가르치는 것이 씨 뿌리는 비유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많이 오해하는 부분이 ‘돌 밭’에 떨어진 경우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돌 밭하면 땅에 돌이 많은 것을 생각합니다. 옥수수는 땅이 비옥하지 아니해도, 돌 밭이라도 잘 성장을 합니다. 그러면 돌 밭은 무엇인가? 땅 바로 밑에 암반이 있는 경우입니다. 땅이 얕은 곳에 씨가 뿌려진 것입니다. 얕은 땅 밑의 암반이 따뜻하기 때문에 씨에서 싹이 빨리 나오지만 땅이 수분을 잃어버리면서 말라죽는 다는 것입니다. 다른 경우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다음 주에 좀 더 자세한 해석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비유로 설명하신 내용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9절의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14절의 말씀과 연결하여 보아야 합니다.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말씀을 생각하면 11-12장의 사역을 보면서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고자 한 것을 보면 귀있는 자들만 들을 수 있는 것이 복음의 진수인 것입니다. 들을 귀가 없는 사람은 자기에게 들려오는 말씀을 들으려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 참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사랑하는 지팡이교회 성도님, 씨 뿌리는 자이 비유에서 사분의 삼은 결실을 맺지 못합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 나라는 실패할 것 같지만, 사분의 일인 밭에 뿌려진 곳에서 백배, 육십배, 삼십배의 결실을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나를 부르시고, 나를 통해서 우리의 이웃에게 복음을 전달하게 하심으로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을 믿으면서 좋은 신앙의 본을 보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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