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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21:33-46
강설날짜 2017-07-23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아십니까?(마21:33-46)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께서 사역을 해 오시던 일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성전을 청결하게 하시고, 무화과나무의 사건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은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죽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했지만 백성이 두려웠습니다. 그러던 중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께서 성전 안에서 가르치던 중에 흠짐을 잡고자 질문을 합니다.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 자신들의 권위와 이권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것을 선택하든 종교지도자들이 원하는 것으로 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랍비들이 잘 사용하는 역질문 방식으로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로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답을 하면 나도 대답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을 강설해 오면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과 기적 그리고 가르침은 당신님의 신분과 권세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의 사역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임을 나타내는 증거였습니다. 그 증거로 지팡이교회는 길과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만 바라보면서 십자가의 길을 걷는 성도입니다. 우리도 아는 예수님을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이권과 권위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역질문을 받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진심을 드러내기 거부하고 서로 의논을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보다 백성을 더 무서워하는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아들보다 백성을 무서워하는 것은 참된 신앙인이 아닌 것입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예수님의 수 없는 이적과 기적 그리고 가르침으로 증거를 주어도 그들의 불신앙은 진리를 따르고자 하는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역질문을 받은 그들은 “우리는 알지 못하노라”하면서 자신들의 이권과 권위를 지키고자 했습니다. 바로 그 때 예수님은 “나도 너희에게 대답하지 않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 가지의 비유를 통해서 그들을 고발하셨습니다. 그 첫 번째가 “두 아들의 비유”입니다. 맏아들에게 아버지는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할 때 대답은 흔쾌히 가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불순종을 하였습니다. 둘째 아들에게도 아버지는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아들은 포도원에 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결국은 순종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똑같은 지시를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라고 질문하셨을 때 제자들은 “둘째 아들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비유를 하신 것은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불순종하면서 생활했던 둘 때 아들은 세례 요한의 증거를 듣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들에 대해서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고 하셨습니다. 순종한 세리와 창녀들이 바로 둘째 아들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믿음은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은 결국은 믿음은 말과 행동이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어려운 것임을 알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면서 기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첫 번째 두 아들의 비유에 이어서 두 번째 비유인 악한 포도원 비유를 통해서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불신앙 속에 감쳐진 죄악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필연적으로 어떤 무서운 결과를 가지고 오는지 비유로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은 33절에서 “다른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이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포도원을 소재로 사용하십니다. 그들이 스스로 훌륭한 지도자이자 통치자라는 환상에 젖어 있다는 것을 고발한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포도원은 하나님 나라이고, 농부들은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입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포도원은 농부들에게 세를 주어 맡기고 떠난다고 생각을 하면서 어딘가 멀리 떠나신 것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농부들에게 일을 맡기시고 한동안 지켜보신다는 의미로 보아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는 특별한 성격이 있는 것이고 일반 사람들이 사회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34-36절에서 “열매 거둘 때가 가까우매 그 열매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35.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36.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그들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37.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이르되 그들이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38.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 39.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님의 이적과 기적 그리고 가르침에 대해서 죽이고자 하는 것은 무서운 반역이고 자신들이 하나님 나라를 빼앗아 차지하고자하는 것임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좀 더 자세히 읽어 보십시오. 그러면 저와 같은 생각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열매 거둘 때가 가까이 되어 열매를 받으려고 종들을 보내는 것은 당연합니다. 유대땅은 포도원을 새로 만들면 그 해 수확을 할 수 없습니다. 대략 4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포도원에 종을 보내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주인이 종을 보냈지만 종을 때리고, 죽이기도 하고 돌로 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종은 선지자와 세례 요한을 말하는 것입니다. 포도원의 농부는 자신들과 주인이 맺은 계약을 지키지 않고 거부를 한 것입니다. 주인은 끊임없이 그들이 돌이킬 수 있는 기회로 선지자를 보냈지만 반역을 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은 자신의 친 아들을 농부들에게 보냈지만 결국은 죽입니다. 주인은 자신의 아들을 함부로 대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인내심으로 사랑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죽인 것입니다. 아들에 대한 학대에 대해서 예수님은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로 강조하십니다.

 

농부들 즉 종교지도자들의 행동은 결국 진정한 소유주이신 하나님과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이 나라를 상속받아 다스리실 메시야의 나라를 빼앗아 자신들의 것으로 삼고자 하여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이는’ 반역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것은 고난과 죽음이라고 가르쳐 주신 것과 같이 종교지도자들이 흉악한 악행을 할 것을 미리 예언하신 것이기도 합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이권과 권위를 위해서 메시야를 죽이는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드러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는 불순종은 종교지도자들과 다르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배당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기도하면서 성도를 속이는 것은 결국은 사람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말씀하신 후 40절에서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하심으로 악한 농부들의 행위에 대한 주인의 반응을 생각해 보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비유를 들은 제자들과 종교지도자들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41절을 보시면 “그들이 말하되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의 대답을 들으심은 자신들의 입으로 자기 죄를 시인하고 스스로 정죄하기 위한 배려입니다. 그러면서도 포도원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이방인들에게 하나님 나라(포도원)를 주신다는 사실을 내포한 것입니다. 진리를 따르라는 자세와는 거리가 먼 종교지도자들에게 죄의 실상을 그대로 알리면 틀림없이 자신들의 변명을 하면서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고자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사용하십니다.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이 말씀하심으로 죄악을 정직하게 볼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도 자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라면 참과 거짓을 분별하기 쉬울 것입니다. 심히 부패하고 악한 인간의 눈으로 보고 들어도 악한 포도원 농부에 대해서는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주어야 한다고 답을 한 것입니다.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은 42절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고 하심으로 너희들의 무지를 비난하십니다.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이 41절에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라고 대답한 것이 스스로에게 내린 판결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잘 알고 있는 시118;22-23절을 인용하심으로 자신들의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신 것입니다. 건축자들은 종교지도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유대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건축자들이 버린 돌은 버려진 예수님이십니다. 버려진 돌은 모퉁이의 머릿돌로 가장 귀한 역할을 하는 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전체를 떠받치고 지탱할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배척할 것에 대하여 성경이 미리 예언한 일을 상기시킴으로써 그들의 죄악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더 구체적으로 비유에 대한 해석을 해 주십니다. 43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고 하심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을 모두 포함한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나라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는 백성이라고 하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은 ‘열매들’을 맺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들에게 있어서도 방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음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처음 백성이 그들에게 기대되던 열매를 맺지 못하여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형벌을 받게 된다면, 새로운 백성도 그들에게 기대되는 열매를 맺지 않는 한 그와 동일한 운명에 처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바울도 이러한 원리를 롬11:20-22절에서 잘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21.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22.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다시 말씀 드리지만 열매를 맺는 백성이 하나님 나라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특정한 민족과 혈통이 아닌 오직 당신님의 백성에게 주어지는 특권인 것입니다.

 

특권에 대해서 예수님은 44절에서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로 하십니다. 아마도 사8:14-15절을 근거로 하는 것 같습니다. “그가 성소가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시리니 15.많은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덫에 걸려 잡힐 것이니라”로 하심으로 벌린 모퉁이돌에 의해서 심판을 당한다는 심판의 예고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주후70년 로마 군대에 의해서 성전이 완전히 파괴되어 유대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특권을 상실하는 것으로 성취 하십니다. 자신들의 이권과 권위를 위해서 비참한 모든 일에 대해서 불행을 당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우리도 같은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이권과 권위를 위해서 이용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 나라를 얻을 수 없고 영원한 심판을 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잘 들었던 그들은 45-46절에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46.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그들이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오히려 자신들의 죄를 깨닫지도 못하는 것은 마치 바벨론의 완악하고 강퍅한 왕의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완악하고 강퍅한 모습으로 예수님을 잡고자 하지만 예수님을 선지자로 생각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무서워하는 것은 참으로 비통한 일입니다.

 

지팡이교회는 하나님의 전신갑주인 말씀으로 무장하여 진리를 사수해야 합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보다 백성을 무서워했지만 우리는 오직 모퉁이 돌이 되어주신 예수님만 붙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인이 됨으로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는 특권을 누릴 수 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처럼 이권과 권위를 누리고자 하는 자들이 되지 마시고, 오직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성도가 됨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된 자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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