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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22:15-22
성경본문내용 마22:15-22
강설날짜 2017-08-20

예수님께서 당신님의 사역을 감당하시면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은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님의 때를 아시고 드디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대한 반응은 두 부류로 나눠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들과 많은 무리는 “주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면서 자신들을 구원해 달라고 하는 영광으로 맞이했습니다. 다른 부류는 유대의 정치와 종교적 힘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들 특히 대제사장과 서기관 그리고 바리새인 등은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 항의하면서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곤경에 처하게 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아시는 예수님은 두 아들의 비유(포도원에 가서 일 하도록),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 혼인 잔치의 비유를 통해서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들의 악한 행위에 대한 심각성의 경고였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지팡이교회는 세 가지의 비유를 잘 들었으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왜 비유를 사용하셨는지를 알고 참된 신앙의 길을 잘 가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은 오늘 말씀을 위해서 잠시 혼인잔치의 비유를 정리해 보면서 은혜의 방도인 말씀을 통해서 믿음이 강건해 지기를 소망합니다. 임금이신 하나님은 당신님의 아들을 위해서 혼인잔치를 준비하셨습니다. 국가적인 잔치요 하나님 나라의 잔치 중에 잔치였습니다. 종들을 보내어 택함을 받은 백성을 초청 했지만 그들은 초대에 응하지 아니했습니다. 비통한 일입니다. 임금의 초대장은 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명령이고 강제력이 있는 것입니다. 거절은 반역이고 모욕을 주는 행동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임금은 잔치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초청을 받은 그들은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는 것입니다. 양심도 없는 자들이고 더욱 극악한 자들이었습니다. 만약 내가 초청을 받은 백성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만약 내가 임금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잠시 눈을 감고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임금은 자신이 보낸 종들을 모욕하고 죽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군대를 보내어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동네도 불사르게 함으로 땅을 황폐하게 하신 후 다시 종들을 보내서 온누리에 다니면서 만나는 대로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맨 처음 초청을 받은 백성은 이스라엘이였지만 이제는 모든 나라 즉 이방인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유대종교지도자들에게 알린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혼인잔치의 비유를 말씀하시기전 악한 포도원 일꾼의 비유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21:43)고 하셨던 말씀을 더욱 의미심장하게 들으셔야 합니다.

 

임금의 명령대로 종들은 자신이 맡은 임무를 다함으로 손님들을 가득 채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혼인잔치에서 일어난 것이 무엇입니까?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를 보고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어떻게 답하고 싶습니까?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예복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입지 않고 참석을 했다는 것은 임금에 대한 모욕인 것입니다. 결국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버려진 그는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고 하심으로 임금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가 있습니다. 많은 사랃들이 초정을 받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예복을 준비하지 아니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고 하신 의미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혼인잔치의 비유를 들은 귀 있는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깊이 묵상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오늘 본문 15절을 보시면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그들은 다른 방법으로 예수님을 잡고자 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가이사를 통해 조세 즉 세금 제도가 무엇인지, 그 다음은 부활에 대한 질문(23-33절), 마지막으로는 가장 큰 계명(34-40절)을 사용하여 예수님을 잡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가이사의 세금이라는 올무를 이용해서 예수님을 잡고자 하는 내용을 통해 주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귀한 은혜를 알기를 소망합니다.

 

임금의 혼인잔치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이웃보다 가장 먼저 받았다는 것은 명예이고 특권입니다. 그런데도 혼인잔치를 거부하는 그들에게 다시 임금은 종들을 보내고 특별히 당신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이런 특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복음을 전하였지만 종교지도자들은 극렬하게 배척하였습니다. 그들은 바리새인들을 예수님께 보내서 올무에 걸리도록 하고자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의 실수를 하면 잡아 죽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바리새인이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문제로 시비를 걸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사건 이전에도 체포를 하고자 했지만 무리들이 예수님을 선지자로 생각함으로 두려워서 실행을 못했습니다. 더욱 완악하고 강퍅한 마음으로 눅20:20절을 보시면 “이에 그들이 엿보다가 예수를 총독의 다스림과 권세 아래에 넘기려 하여 정탐들을 보내어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잡게 하니” 백성이 두려워서 로마를 이용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은 더 가까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늘 본문 15절에서 사용된 “올무에 걸리게 하다”라는 동사는 유일하게 여기서만 사용되었습니다. 이전과 다른 상황으로 잘 짜진 계획으로 되었다는 의미로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도록 찾아 간 자들은 바리새인만 아니라 헤롯 당원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물과 기름처럼 서로 합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헤롯 당원은 헤롯 가문의 정치적, 경제적 영향을 증진시키려는 집단이었고 헤롯의 정책에 찬성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종교지도자들과는 다른 사상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들의 야망과 권세을 위해서는 합하여 행동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출생하신 후 두 살 아이 밑으로 살인을 한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헤롯입니다. 헤롯은 로마로부터 유대지역의 분봉왕으로 임명을 받은 자였습니다. 그가 죽은 후 로마는 세 아들이 나누어 통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지금의 황제는 그의 아들 ‘티베리우스 가이사’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유대인에게 있어서는 원수 중에 원수입니다. 16절을 보시면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올무를 놓고자 하는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은 아첨하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선생님이라고 호칭을 합니다. 그들은 무리로부터 호감을 얻고자 하는 것도 있으면서 예수님의 경계심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속임수를 쓰는 것입니다. 속으로는 예수께 올무를 놓고자 하면서도 겉으로는 아첨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예수님은 부자이든 가난한 자이든, 권세자이든 약한 자이든 누구에게나 거리낌 없이 소신을 숨기지 않고 하나님의 도(진리)를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외모를 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우리가 질문하는 것에 대해서 당신은(예수님) 솔직하고 분명하게 의견을 답하라는 의도입니다.

 

예수님의 호감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은 17절에서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라고 올무의 질문으로 공격을 합니다. 예수님은 어느 쪽이든 선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질문에는 예스와 노가 분명하게 있는 것입니다. 로마 황제인 가이사에게 내는 세금은 유대인 성인이라면 누구나 내야합니다. 우리도 여러 가지 명목으로 세금을 냅니다. 이유와 뜻을 알고 싶어도 그냥 국가가 내라고 하니 낼 때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처럼 황제는 유대인들도 로마로부터 보호를 받는 명목으로 세금을 내도록 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묘한 올무를 놓은 것입니다. “우리가 로마 황제 가이사의 권세를 인정하고 그의 통치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까?”라는 의미에는 예수님 당신도 “로마의 권세를 인정하며 그 통치에 순종합니까?” 아니면 반대의 입장입니까?

 

질문을 한 자신들도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헤롯 당원은 세금을 로마에 내야 자신들이 누리는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고, 반대로 바리새인들은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은 우상숭배로 생각을 했습니다. 서로 다른 입장으로 가는 것은 아마도 서로 죽일 수 있는 명분을 얻고자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스라고 하면 무리들이 지지하는 백성으로부터 배척을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노라고 하면 바리새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은 로마를 이용하여 예수님을 손쉽게 죽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나라면 어느 쪽을 택하겠습니까? 18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대답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오직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올무에 넘어지도록 하는 것에만 신경 쓰고 있음을 드러내십니다. 예수님은 동기가 무엇인지 아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당신님에게 시험은 불필요하며 부당한 것임을 ‘어찌하여 시험하느냐’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이미 많은 이적과 기적 그리고 말씀으로 충분한 증거를 보여 주셨습니다. 이런 증거가 있는데도 서로 올무를 놓아 죽이고자 하는 것은 사악한 자들입니다.

 

그들의 질문은 영리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예수님의 답변은 심오합니다. 세금을 내라, 내지 마라는 뜻이 조금도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9-22절을 보십시오.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20.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21.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2.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 예수님은 곤경에 처했지만 오히려 기회를 통해서 그들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노동자 하루의 품삯인 1데나리온 동전을 사용하십니다. 그 당시의 앞면은 가이사의 형상으로(신 아우구스투스의 아들 티베리우스 가이사르 아우구스투스) 뒷면에는 가이사의 어머니 리비아의 형상과 위대한 대 신관)이 그려져 있습니다. 당연히 앞/뒷면이 모두 가이사의 동전입니다. 어떻게 보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에서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십니다. 여기에 예수님의 해답이 있습니다. 원어적인 측면으로 보면 좀더 이해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원어로 좀 더 풀이하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그러나(카이, 그러면)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아마도 로마 정부가 주는 혜택을 누리기 위한 마음과 누리고 있도록 하는 세금을 납부해라 ‘그러나’ 가이사 위에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알라는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은 동전을 사용하여 로마 정부가 합당한 것을 바치도록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입니다. 합당한 세금을 내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무에 대해서도 충실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롬13:1절에서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면 제자들에게 주어진 권세를 함부로 하면 됩니까? 아닙니다. 딤전2:1-2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2.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권세자들은 백성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 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쓰고 있는 사도인 바울의 시대는 네로의 시대입니다.. 가장 폭군이라고 할 수 있는 시대에 제자인 디모데에게 쓴 글입니다. 왜 이런 글을 쓰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고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신앙생활의 장성한 분량이 이를 수 있도록 세상 정부의 안녕과 질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백성을 배려하는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연히 어떤 나라 즉 애굽을 세우기도 하시고 망하게도 하시는 분이시만 당신님의 백성을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한 배려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헤롯 당원들과 협력하여 최종적으로 로마의 힘을 사용하여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지만 어떻게 되었습니까? 22절을 보시면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 바리새인들은 지금까지 예수님의 사역을 정리하면서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시는 것을 알고 이런 예수님께서 가이사의 권세를 인정함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권세를 부인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가이사의 것을 부정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성경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그들은 가장 교묘한 올무를 놓았지만 결국 예수님의 답변에 스스로 놀라서 떠나 간 것입니다. 그리고 헤롯 당원도 예수님의 답변에 허점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떠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진리를 전하신 것입니다. 가이사보다 하나님이 높다는 진리는 우리에게 회개의 경종을 울리는 종소리와 같은 것입니다.

 

올무에 걸리도록 질문한 시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기 며칠 전 화요일이었습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눅23:1-2절을 보시면 “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2.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종교지도자들이든 그 당시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지 말라고 한다고 거짓 증언하는 것입니다. 또한 자칭 왕 그리스도라고 함으로 정치적인 문제로 끌고 가서 반역죄로 죽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빌라도에게 있어서 종교적인 문제로 이야기하면 무죄를 내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정치적인 문제로 빌라도도 어쩔 수 없도록 하는 올무인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올무의 질문을 하고 답변을 들은 후 며칠이 지났다고 극악한 죄를 범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죄 즉 본성인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강설을 듣고 있는 말씀은 예수님 지상사역의 남은 일주일 중 화요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주간에 고난을 거절하지 않고 감당하여 주심으로 나를 사랑으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중국은 과거 황제를 천자라고 하고, 일본은 천황을 스스로 살아 있는 신이라고 지금도 말합니다. 로마의 신의 황제라고 하지만 모두 어리석은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인에게는 유일하신 하나님이 신이고 나의 참 구원자이십니다. 가이사의 시대든 네로의 시대는 참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유혹과 권세에 굴복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었습니다. 그러면서 온세상에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드러냄으로 복음의 증인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지팡이교회는 어떻게 신앙 생활해야 하는 것입니까? 지팡이교회는 늘 주님만 사랑하는 거룩한 공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종교는 지성이면 감천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만든 종교는 자신을 위한 것으로 만들어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지만 참 신이신 하나님은 당신님의 독자이신 예수님을 보내어 주셔서 대신 모든 죄를 감당하여 주신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이 바로 중보의 왕이신 것입니다. 다른 그 누구도 중보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가이사 보다 높으신 예수님을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삶의 기쁨을 누리기를 소망하면서 기도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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