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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23:1-1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꾸짖다1(마23:1-12)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는 말씀을 들은 율법사는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은 “네가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다”라고 하신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런 후 바리새인들이 모여 있을 때 먼저 질문을 하십니다. 참으로 예외적인 것입니다. 그 질문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바리새인들은 “다윗의 자손이니이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구약의 말씀 특히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잘 알고 있는 그들이 오해하고 있는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을 바로 잡고자 다시 질문을 하셨습니다.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이 말씀은 시110:1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왜 인용하신 것입니까? 예수님은 다윗이 왜 이런 고백을 하게 된 것인가를 확인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장차 메시야로 오신 그 분에 대해서 어떻게 ‘나의 주’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인가를 알려 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다윗의 자손’이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당신님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드러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하는데 어떻게 그의 자손일수 있겠는가? 메시야는 다윗의 혈통을 따라 난 다윗의 자손이지만 동시에 다윗 이전에 존재했던 다윗의 주가 되신다는 당신님의 정체성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주가 되신 그리스도는 정치적인 메시야가 아니라 영적인 하나님 나라를 알려주기 위해 오신 영적인 메시야을 지팡이교회는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님의 정체성을 선언하신 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대한 엄중한 비판과 책망 그리고 심판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엄중하게 꾸짖는 것은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상의 사역을 하면서 그들의 잘못을 이야기하시기도 했지만 이제부터는 직접적이고 강하게 하시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24장부터 나오는 심판을 준비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도 돌이킬 수 있는 기회이고 예수님을 더 잘 알 수 있는 은혜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유대종교지도자들 중에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스스로 유대인의 지도자로, 안내자로 생각을 하면서 우월주의가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 1절을 보시면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라고 하는 것은 22장에서 바리새인들에게 당신님의 정체성을 드러내신 후에 계속하여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내용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일깨워주시기 위해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그들의 가르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가르치시기 위해서 말씀하여 이르시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에 대해서 어느 자리에 앉았다고 하십니까? 2절을 보시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라고 하시면서 그들의 직분이나 직책을 무조건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뜻은 회당에 놓여있던 율법을 가르치는 그들의 의자를 이야기 하는 것으로 율법 선생으로서의 역할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던 모세였지만 지금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3절을 보시면 예수님은 그들의 가르침에 대해서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그들이 가르치는 율법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음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말에 따르지만 정착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에서 바르게 가르치는 것은 믿고 따르지만 잘못된 행위에 대해서는 따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일 율법을 바르게 해석하지 않고 장로들의 전통을 앞세워 바르게 가르치지 아니하면 듣고 지킬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늘 성경의 말씀에 근거하여 믿고 의지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것이 성경 위에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들의 가르침과 행동에 대해서 잘못된 것을 말씀하신 후 4절을 보시면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그들은 구전으로 내려오는 장로들의 전통을 가치고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을 부과하여 옭아매는 것을 꼬집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장로들의 전통은 마15:1-20절의 말씀을 홈페이지에서 확인해 주십시오. 그들은 자신들을 따르는 백성에게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지도록 하면서 정착 자신들은 사람의 몸 가운데 가장 언약한 곳이라고 할 있는 손가락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는 자들이라고 것입니다. 자신들은 무거운 짐을 지지 아니하는 것으로 외식하는 자들입니다. 자신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이용하여 그리고 율법을 잘못 해석하면서 백성에게 무거운 짐을 주면서 정작 그들은 손가락도 사용하지 않고자 하는 위선자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말은 하나 행하지는 않는다”라고 말을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있는 그대로 지키고 행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율법을 613개로 정의를 했습니다. 율법을 사모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지만 타락한 나 자신을 발견하면 도저히 행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를 알게 되면서 오직 예수님만 의지하고자 하는 몸부림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지식적으로만 알고 몸부림치지 아니하는 외식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왜 인간에게 율법을 주시고 지키도록 것을 참으로 알지 못한 것입니다. 율법의 목적은 죄를 드러내게 진정한 회개를 하도록 하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모세에게 그리고 구약의 선지자들이든 누구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신 것입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을 의지 하도록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5-7절을 보십시오.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6.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라고 하면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모든 행위는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는 위선자라는 것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적인 모습을 보이고자 이웃에게 위선적인 행동을 한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경문은 양피지에 적은 성경구절이 담긴 작은 정육면체로 만들어진 상자로 왼팔과 이마에 찼습니다. 옷술은 백성에게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며 거룩해질 것을 상시시키는 의미로 옷의 네 가장 자리에 붙이 청색 실로 된 술입니다. 얼마나 사람들에게 잘 보이겠습니다. 백성과 다르다는 것이 잘 드러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의 선행은 오직 칭찬을 받고자 한 것이지만 참으로 교만한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통하여 자신들의 권력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고, 율법을 통하여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을 좋아한 것입니다. 당시에는 신분에 따라서 자리에 민감하여 상석이 있었다고 합니다. 대체적으로 회당에서는 율법을 낭독하는 바로 옆자리가 높은 자리라고 합니다. 그 자리에 앉을수록 영성과 경건이 높다고 선전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시장에서 문안을 받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이웃으로부터 명예와 존대를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미를 잘 알 수 있는 단어가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랍비의 의미는 ‘나의 주’라는 뜻으로 자신들을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절망적인 죄인을 인정하면서 오직 주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처럼 존경을 받고자 위선적인 것은 결국 사망의 죄에 이르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열심히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예수님은 당신님의 백성에게 8절을 보시면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지팡이교회는 다같은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랍비라 칭함을 좋아하면서 하나의 형제로 구별은 했습니다. 그것을 지적하신 예수님은 9-10절에서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10.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우리의 지도자는 오직 한 분이신 그리스도로 나는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잘못을 꾸짖으심으로 사람의 인정과 칭찬을 바라는 욕망 그리고 인간 중심적인 경건을 지적하심으로 되돌아 볼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전씨네, 김씨네, 최씨네를 다 불러 놓은 것 같지만 모두 다같이 단 한 분이신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 동일한 본질과 동일한 신분을 가진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아버지라는 호칭을 받을 수 있는 분은 하늘에 계신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자식에게 있어서 존재의 근원을 생각하면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어떤 존재로 아시고 있습니까?

 

참 아버지는 하나님 아버지 한 분 뿐입니다. 참 지도자도 그리스도 한 분 뿐입니다. 우리 제자들은 모두 한 형제들일 뿐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경고는 특별히 호칭을 통해 사람들에게 존경받기 좋아하는 오늘날 한국 교회 상황에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큰 줄 믿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이 주님의 말씀을 깊이 경청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11-12절에서 예수님은 이제 제자들이 어떤 자들이 되어야 하는지를 결론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위선자들의 목표는 언제나 남들 앞에 자신을 높이는 것과 남들에게 높임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의 목표는 언제나 ‘섬기는 자’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자들에게 요청되는 자세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큰 분으로서 가장 낮아져 섬기는 삶을 사셨습니다. 주님은 항상 때를 분별하면서, 하나님의 때에 따라 어김없이 순종하여 하나님을 바르게 계시하셨습니다. 제자들이 하나님 백성답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삶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하시려고, 제자들의 인간적인 기대를 철저히 외면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다 배반하고 떠났어도, 그들을 위해서 용서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에는 그들을 심방하여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큰 자이시지만 섬기는 자로 사셨습니다. 가장 높으신 분이시지만 가장 낮은 자로 사셨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가장 높은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살지 않게 하시고 자기를 낮추며 섬기는 자로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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