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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23:33-39
강설날짜 2017-10-29

예루살렘을 향한 예수님의 탄식(마23:33-39)

 

지팡이교회는 3주 동안 예수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일곱 번 “화 있을진저”라고 하신 강설을 들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복음의 메시지를 거부하는 자들에 대한 것으로 특히 종교지도자들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거부하고 자신들을 위한 말과 행동의 위선자들은 “지옥 자식”으로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가를 산상수훈을 통해서 알려주신 예수님은 “복이 있나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복이 무엇입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천국), 애통하는 자(위로), 온유한 자(땅을 기업),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배부를 것), 긍휼히 여기는 자(긍휼히 여김), 마음이 청결한 자(하나님을 볼 것), 화평하게 하는 자(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자들은 당신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알려 주셨지만, 위선자들에게는 영원히 심판을 받는 지옥 자식이라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지팡이교회는 일곱 번 ‘화’를 무엇인지 다시 떠 올려 보았으면 합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통해서 돌이킬 수 있는 회개를 말씀하여 주신 것으로 믿습니다. 이 말씀은 세상의 사람이든, 교회 안에서 신앙 생활하는 성도이든 누구든지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말씀의 강설을 통하여 “믿음과 소망 그리고 사랑”의 기쁨의 은혜가 넘치기를 소망합니다. 저번 주 말씀에서 “화 있을진저”를 생각하면 종교지도자들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열심과 열정이 있었습니다. 외적으로는 깨끗한 잔과 대접이었지만 속으로는 ‘탐욕과 방탕“이 가득했습니다. 외적으로 보이는 것은 깨끗하게 하지만 속 안의 마음은 물질 등에 강한 욕심과 절제할 줄 모르는 욕심이 많은 것을 예수님께서는 탐욕과 방탕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참된 그리스도인이십니까? 산상수훈은 겉과 속이 모두 하나님을 향한 것이라면, ”화 있을진저“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자신을 위한 위선자인 것입니다. 산상수훈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방탕과 탐욕이 가득한 자들에게 “화 있을진저”라고 하시면서 종교지도자들에게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하심으로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민19:11절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라는 말씀을 생각하게 하심으로 죽은 시체와 접촉을 하면 정결 규례에 의해 일주일 동안 부정하다는 것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 후 그 사람은 부정함에서 온전히 회복하려면 그에 합당한 희생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은 회칠한 무덤을 접촉하는 것 자체도 혐오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잘 아시는 예수님은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라고 하심으로 위선자라는 것을 잘 알게 하십니다.

 

‘회칠한 무덤’을 통하여 정결한 규례를 잘 지키도록 하면서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외적으로는 화려하게 보이려고 하지만 내면의 마음은 늑대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결한 규례를 주신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비본질적인 외적인 것과 부수적인 것에만 관심 있는 것은 성경을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일곱 번째로 “화 있을진저”라고 하셨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무엇을 만들기 좋아했습니까?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무덤을 잘 만들어서 자신들이 선지자와 의인의 계승자라는 것을 인정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부와 권력을 누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을 아시는 예수님은 32절에서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선지자들과 의인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유익을 취하는 것은 위선자입니다. 열심과 열정으로 신앙생활을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문을 닫는 것이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라고 하심으로 더욱 고난과 죽음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은 제자들의 신앙고백을 확인하신 후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것은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라고 하셨던 것을 이루시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종교지도자들의 영적인 실상을 명백히 드러내시기 위해서 33절을 보시면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뱀’을 사용하여 하시는 것은 가장 혐오스러운 짐승이었고 특히 상대방을 향해서 뱀이라고 부르는 것은 가장 험악한 말이었습니다. 뱀도 혐오스럽지만 예수님은 여기에 ‘독사의 새끼들아’라고 하심으로 더욱 심판을 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일곱 번의 “화 있을진저”라고 하심으로 그들의 말과 행동 그리고 그들을 따르고 있는 자들에 대한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라는 탄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배교와 타락을 하는 가운데에서도 34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고 하심으로 하나님의 메시지가 어느 시대든지 전해졌다는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시대에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대변자 또는 특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었고, 지혜 있는 자들은 잠언을 가르치는 선생이었고,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해석하여 가르치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하고 가르치고 해석을 해야 하지만 그 중에서 하나님의 대변자들을 채찍질하고 박해하기도 하고 죽이기고 했습니다. 자신들의 조상들이 했던 것처럼 앞으로 있을 당신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것을 예고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도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를 위해서 일을 하지만 채찍을 당하고 박해를 받는다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지팡이교회는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제자들은 스승님의 마씀에 순종하는 자들로 채찍질과 박해를 두려워하지 마시고 인내하시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더욱 예수님은 “화 있을진저”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35절에서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저지를 죄를 잘 알 수 있도록 구약의 범죄와 연결하여 가르치신 것입니다. ‘아벨’로부터 ‘사가랴’로 구약 시대의 역사 전체를 이야기하십니다. 아벨은 구약에서 최초로 살해를 당한 사람이었고, 사가랴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나중에 살해를 당한 사람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시대에 죽임을 당한 모든 사람의 신원을 호소하는 것으로 결국 죄를 범한 자들에 대해서 ‘너희에게 돌아가리라’고 하심으로 심판이 있을 것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인인 아벨과 사가랴 등은 하나님 나라에서 복을 누리는 자들입니다. 지팡이교회도 아벨과 사가랴처럼 영원한 심판을 당하지 않고 주님이 계시는 곳에서 영원히 복을 누리며 살 것을 믿으면 신앙생활을 충실히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위선자라는 것을 지적하고 책망하시면서 심판을 말씀을 합니다. 그런데 36절을 보시면 미묘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고 하심으로 처음에는 종교지도자들로 시작을 했지만 점점 더 이스라엘 전체로 더 나아가 온누리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엄숙한 언어를 사용하여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하심으로 제자들과 무리들은 말씀을 들으면서 당신님의 예언이 타당하고 진실하다고 확신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세대’라는 말씀은 들은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하게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책망하시고 더욱 ‘이 세대’로 확대하심으로 결국 범죄로 인하여 심판을 당할 것을 예루살렘을 향하여 탄식을 하십니다. 37절을 보시면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하시면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라고 부리시면서 탄식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탄식을 하시는 것입니까?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를 잘 드러내는 것으로 ‘선지자들을 죽이고, 파송된 자들도 돌로 죽이고’라고 하심으로 과거, 현재, 미래에도 똑같이 박해를 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죄악을 드러낸 것처럼 당시의 사람들도 죄를 물려받은 것으로 영적 무감각의 역사를 말씀하신 것이고 미래에도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고 하심으로 어미 닭이 자신의 새끼를 날개로 보호하듯이 하나님은 늘 언제나 선지자 등을 보내어 안전하게 보호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죄를 범한 자들은 돌아오기를 거부하고 선지자 등을 채찍질하고 박해를 했다는 것입니다. 너희를 안전하게 자녀들을 모으려고 한 일이 많았지만 너희는 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그들의 역사 가운데서 당신님의 뜻을 세우시며 하나님의 백성과 나라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했지만 죄를 범하여 타락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다시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특별히 당신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기까지 한 끝없는 사랑이었습니다. 이런 특별한 축복과 은혜의 사랑을 받았음에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부인하고 배척하고 결국 죽였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지팡이교회 성도님, 하나님께서 나를 그리고 가족을 부르시는 기회는 많은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입니다. 지금의 기회를 놓치면 결국 심판을 받습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은혜의 방도인 말씀의 강설과 보이는 은혜의 방도인 세례와 성찬으로 주시는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이런 기회가 언제까지 있겠습니까? 부르심에 응답해야 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마음에는 응답을 하고, 권력을 누리기 위해서는 열심과 열정이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는 어떤 응답을 하시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38절에서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고 하심으로 이스라엘이 받을 심판을 아주 간략하게 묘사하셨지만 무서운 일입니다. 아주 간략하지만 의미심장한 말씀이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의미는 가옥의 의미를 넘어선 것으로 이스라엘의 성전으로 하나님의 마음이 떠나심으로 황폐하여 버려진 것을 예고한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주후 70년에 성전이 파괴되고, 이스라엘의 종교체제는 무너지게 되었고, 결국 죄를 범한 자들은 영원히 멸망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미 예수님은 마21:12-17절에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면서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라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성전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강도의 소굴이 되어 버린 그 곳에서 떠나심으로 보이는 성전의 의미는 황폐되어 짐으로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전의 실체이신 예수님의 오심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건물이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오늘날의 예배당이 아니라 성전의 실체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재림에 대한 예언으로 39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고 하심으로 당신님의 고난과 죽음으로 부활의 영광을 이야기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영원한 심판을 위해서 재림의 주로 오실 때까지 당신님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메시야이신 당신님을 지금 너희가 눈으로는 보고 있지만 영접할 기회를 놓친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날인 재림의 때에는 당신님의 백성들이 끝까지 인내하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본 성도에게는 복 있는 자가 되는 영광을 누리는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 소망은 마지막 날에 구원함을 얻음으로 찬송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영광의 면류관을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자여!”하며, 자신을 주의 이름으로 오실 자라고 부를 자들이 있음을 소망 가운데 바라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저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당신님의 백성을 위해서 목회자로 삼으시고 말씀을 가르치게 하셨습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목회자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존경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는 전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웅장한 예배당이, 화려한 언변술이, 남자다운 모습이 구원하여 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종교지도자처럼 위선자는 심판을 당할 것이고, 위선자와 같이 되고자 하는 형제와 자매도 심판을 당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고 죄를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언제 오실지 아무도 모르지만 당신님은 반드시 오십니다. 바로 그 때에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고 당신님의 백성을 통해서 찬송을 받으심으로 진정한 승리를 이루십니다. 자 힘을 내십시오. 주님이 계시는 것이 형통이요 축복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복이 있나니”라는 의미를 아는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한 자들입니다. 오늘 말씀을 생각하면서 기도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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