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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28:1-10
강설날짜 2018-04-08

지난주에는 “예수님의 장례식의 의미”라는 강설을 들었고 성찬식도 했습니다. 예수님의 장례식에는 아리마대 요셉과 요한복음에서는 니고데모도 함께 있었다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두 인물은 산헤드린 공회원이기도 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이 담대하게 빌라도에게 찾아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함으로 예수님의 장례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세마포와 무덤을 준비했고, 니고데모는 ‘몰약과 침향’을 준비함으로 예수님의 마지막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예수님의 장례식이 무덤 안에서 진행되고 마무리 되는 동안 밖에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여자들에 대해서 마태는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록함으로 예수님의 죽음이 확실한 것임을 이야기함으로 부활의 서곡을 알리는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빌라도에게 무덤을 지키어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그럴 때 빌라도는 “너희에게 경비대가 있으니 가서 너희 소견대로 굳게 지키라”고 합니다. 종교지도자들은 부활을 믿지 아니하는 것이고, 자신들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부활이 두려워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돌로 인봉하고, 굳게 지킴으로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임을 입증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보아야 합니다.

 

오늘 강설의 제목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님”입니다. 은혜의 방도인 말씀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사랑을 받으시기를 소망합니다. 마태는 오늘 분문 1절에서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원문을 좀 더 번역하면 “그러나 안식일이 저물고 안식 후 첫날이 밝아 오는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는 사복음서인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은 다같이 상세하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임을 알리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각 복음서 저자마다 기록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로인하여 자유주의자들과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의문을 가지게 만들기도 합니다. 마태는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로 기록을 하고, 마가는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로 기록하고, 누가는 “그 여자들”로 기록하고, 요한은 요20:1절에서는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라고 기록함으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 마가, 누가는 여자들이 무덤에 왔다가 빈 무덤에서 천사로부터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소식을 듣는다고 기록합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은 마리아가 빈 무덤을 발견하고, 두 제자인 베드로와 요한에게 알리고 같이 와서 확인하게 됩니다. 두 제자들은 빈 무덤을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가지만 마리아는 밖에서 울면서 안을 보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에 요20:13절은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록을 함으로 의문이 더 들게 하기도합니다.

 

왜 이런 의문을 들도록 하는 것입니까? 역사적인 사실을 하나로 기록하지 못한 것입니까? 여러 가지 의문과 질문을 하도록 만들고 있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자신들이 ‘옳다’라고 생각하도록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각 복음서의 저자마다 자신들이 강조하고자 하는 내용의 차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기록하기보다는 저자들이 기록하는 방식에 따라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만 기록을 한 것입니다. 저자의 스타일에 따른 서술의 관점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는 서로 서술의 차이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여자들이 안식 후 첫 날 즉 주일에 부활을 알게 됩니다. 그런 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갈릴리에 먼저 가서 기다겠다고 한 약속을 기억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중심으로 기록을 하고 있다면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와 같은 흐림이면서도 마리아, 베드로와 요한, 도마 등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들로 예수님의 부활을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경험을 중심으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하고 있는 각 사람마다 어떻게 경험하고 믿게 되는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각 저자는 부활에 대한 의미를 전하고자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이야기는 사복음서를 읽어보면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같은 것입니다. 각각의 악기로 개인별로 연주하는 것보다 여러 가지 악기로 함께 연주할 때 곡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각 복음서 저자마다 차이가 있는 것이고, 서술의 관점에 따라 기록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해야 합니다. 이것이 또한 우리에게 주어지는 은혜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장례식이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에 의해서 마무리되고, 안식일의 참 주인이신 예수님을 마태는 마태복음 28장을 통해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경비병으로 하여금 무덤을 인봉하고 지키도록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번역되어 있지 아니하지만 원문에는 ‘그러나’가 있습니다. ‘그러나’를 사용함으로 사건의 전환을 알리는 것으로 부활은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긴장감을 높이고 있으면서 무덤에서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안식일이 지나고’라는 새벽 즉 날이 밝아 오는 때라는 것을 생각하면 토요일 저녁부터 주일(일요일) 새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구원 아닙니까? 그리고 학자들은 대체적으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시간을 토요일 저녁 6-9시로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마태는 부활의 첫 증인인 막달라와 다른 막달라 마리아를 통해서 동포인 유대인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마태는 부활을 안식일과 대조적으로 기록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부활의 첫 열매가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당신님께서 주일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안식일은 애굽으로부터 종 되었던 자신들을 구원하여 주신 날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죄의 저주와 형벌에서 죽어야 하는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위해서 참된 안식을 하게 하도록 하는 깊은 뜻을 알리는 것입니다.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는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 왔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2절을 보시면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마태복음에서 천사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때는 요셉에게 예수님이 태어나신다는 소식을 알릴 때입니다. 그런 후 동방박사들에게 마지막으로는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알릴 때입니다. 큰 지진이 일어날 때 주의 천사에 대해서 단수로 기록 합니다. 그 천사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것입니다. 천사는 예수님의 무덤을 굳게 닫아놓았던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않아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다시 보려고 온 여인들이 부활의 중대한 사건을 처음으로 목격하는 증인자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이심으로 무덤 밖으로 나오시기 위해서 돌을 굴릴 필요가 없습니다. 주의 천사를 통해서 돌을 굴리는 것은 여인들이 그 안을 들여다보고 빈 무덤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입니다. 오랫동안 함께 동고동락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을 하였지만 그와 반대로 여인들은 끝까지 믿음을 소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지팡이교회도 이런 믿음을 소유하는 위대한 복음의 증인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태는 계속해서 천사의 모습에 대해서 3-4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고 기록합니다. 천사는 하늘의 영광과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로서 번개 같고 그 옷은 눈같이 희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누가 보고 있었습니까?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은 천사의 모습을 보면서 무서워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된 것입니다. 이들은(경비병) 어느 때에 일어났는지 모르지만 11절을 보시면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서 대제사장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경비병은 예수님의 시신이 도둑맞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알리어 주셨습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은 아주 자유로운 영광스러운 몸입니다. 예수님께서 닫혀 있는 문을 열지 않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기 때문입니다. 요20:19절을 보시면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어떤 것으로 차단하고 막고 있으면 못 가고 하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몸처럼 자유로운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입어야 할 신령한 몸으로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 주신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온 주의 천사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두 여인 앞에 앉아 있던 주의 천사는 예수님의 부활을 알리기 위해서 5-6절을 보시면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두 여인은 두려워했습니다. 어느 누구나 이런 상황이라면 같을 것입니다. 주의 천사가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예수님을 너희가 찾는 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이 여인들에게는 놀라운 복음이 될 것이고 주의 제자들에게 알리는 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의 천사가 무서워하지 말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무덤 속에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늘 제자들에게 당신님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말씀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태는 부활은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성취된 것임을 신학적 주제로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고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독생자를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구원 계획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알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가 말씀 하신대로 살아나셨느니라’고 함으로 부활은 하나님께서 살아나게 하셨다는 것을 강조하시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을 7절에서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고 전하라는 것입니다. 주의 천사는 여인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의 천사는 ‘살아나셨다’는 신적 수동태로 사용함으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로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님을 살리셨다는 부활의 말씀은 초대 교회 강설의 핵심이 되었습니다.(행1:30) 오늘날에도 예수님의 부활은 복음의 핵심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활은 주의 천사가 여인들에게 거듭 전한 메시지의 핵심으로 제자들에게 알리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일찍이 예언하셨던 부활의 예언을 망각하고 있거나 불신하고 있었던 것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는 부활의 목격자로서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여인의 증인은 법정인 효력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여인이 부활의 증인자가 되도록 하심으로 역설적으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복음의 메시지를 위해서 꾸밈없이 전함으로 사실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주의 천사가 말한대로 두 여인은 8-10절을 보시면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는 것입니다. 주의 천사라 말한 대로 전하기 위해서 두 여인은 무덤을 떠나 달음질하면서 제자들에게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을 합니다. 우리말 번역에는 없지만 원문으로는 “갑자기”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달리던 중에 ‘갑자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여인에게 ‘평안하냐’고 하심으로 마치 인사를 것과 같습니다. 조금 전만해도 예수님께서 사망했다는 슬픔에서 이제는 큰 기쁨과 두려움으로 제자들에게 부활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 달리던 중이였습니다. 그 때에 상상할 수 없던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여인은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환상이 아니라 실제 육체적인 것임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주의 천사도 두 여인에게 제자들에게 알리라고 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내 형제들’이라고 하심으로 가족 공동체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요20:17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고 하심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우리를 가족 공동체로 생각하십니다. 가족 공동체로서 한 분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우리는 모두 형제요 자매라는 것입니다. 비록 제자들은 위기의 순간에 예수님을 배신하고 모두 도망갔지만 당신님께서는 여전히 그들을 가족공동체로 부르며 하나님 나라로 초대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가족공동체로서 부르시고 있습니다.

 

마태는 계속해서 갈릴리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갈릴리로 가라고 하면서 이야기를 기록하지 않는 것은 오류처럼 보입니다. 마태가 사건 자체의 중요한 핵심을 중심으로 기록했다면 다른 복음서 특히 요한복음은 각 개인에게 갖는 구체적이고 특별한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릴리에서 일어난 일들을 구체적으로 기록하는 것입니다. 마태는 부활에 강조를 두는 것이고, 다른 복음서는 이방인을 위한 기록을 하는 것으로 볼 때 주의 제자들이 다시 무한한 용기와 위로 그리고 기쁨을 받음으로 복음의 증인자가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실패한 제자들을 다시 세우심으로 이방인에게도 구원이 동일하게 있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할하신 예수님’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죄로 말미암아 죽은 자로 하여금 다시 새로운 생명을 주심으로 주의 재림과 더불어 장차 당신님의 영광과 영생에 참여하게 될 것을 바라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마지막 날에 완성될 날에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죄와 죽음에서 벗어나 거룩과 새로운 생명으로 경험하면서 생활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죽어야 하는 우리를 위해서 사망의 족쇄를 깨뜨려 자유함을 주셨습니다. 사람의 영원한 두려움인 사망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구원하심으로 부활의 소망을 바라보도록 하셨습니다. 지팡이교회도 부활의 믿음을 소유한 성도로서 믿음의 생활을 잘 하면서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기를 소망하면서 기도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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