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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행15:1-5
강설날짜 2019-06-02

예루살렘 교회 회의의 발의(행15:1-5)

 

루스드라에서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앉은뱅이를 고친 기적은 여러 지역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안디옥과 이고니온 유대인들은 루스드라 지역까지 원정을 왔습니다. 그들이 와서 “무리들을 선동”하여 바울을 죽이고자 한 것입니다. 실제로 무리를 충동하여 바울을 돌로 쳤습니다. 돌을 맞은 바울이 죽은 줄 알고 성밖에 내쳤지만,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보존하도록 하셨습니다. 바울의 제자들이 그가 죽은 줄 알고 둘러섰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울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 후 성안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곳에서 이틀 동안 있으면서 바울의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아니하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바나바와 같이 더베로 이동을 했습니다.

 

더베에서도 바울은 성실히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런 후 루스드라와 이고니온 그리고 안디옥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이방인의 교회와 제자들이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입니다.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지역으로 다시 되돌아오고자 한다는 것은 사실 많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교회를 세우고자 최선을 다한 사도였습니다. 이런 바울의 모습을 보면 저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그러하오니 목회자를 위해 기도 부탁드립니다. 바울은 교회를 되돌아보면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면서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가 배도 하고, 세상의 유혹에 넘어갑니다. 이런 시대에 바울이 전한 의미는 더 귀하게 들립니다. 지팡이 교회도 마음을 굳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하고 인도해 달라고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울이 말한 것처럼 “많은 환난”이 나를 무너지도록 합니다. 육체적인 고난과 물질에 대한 욕망이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도록 하는 시대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입니다. 세상은 나를 속일지언정 하나님은 나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니 믿음을 굳게 하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바울의 권면은 하나님 나라를 더욱 소망하도록 합니다. 힘을 내십시오. 주님의 날은 혼인 잔치와 같은 즐거운 날입니다. 그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방인 지역에서 교회가 든든히 세워져 갈 수 있도록 바울과 바나바는 장로들을 세웠습니다.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하나님께 그들을 위탁했습니다. 교회는 바울만 사역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로 협력하여 주님의 교회를 설립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든든히 세워져 갈 수 있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서로 선을 이룰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가지고 있는 힘입니다. 장로는 군림하는 권력자가 아니라 서로 협력하여 신자들을 바르게 인도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장로를 세운 후 바울은 비시디아를 지나서 밤빌리아, 버가, 앗달리아 지역으로 이동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앗달리아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을 파송한 안디옥으로 배를 타고 되돌아 왔습니다. 다시 돌아온 바울과 바나바는 그동안 있었던 선교에 대한 사역을 요약하여 보고했습니다. 자신들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행하신 일을 보고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의 마음의 문을 열도록 하심으로 구원을 이루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한 것처럼 지팡이 교회도 같아야 합니다. 그들이 믿는 하나님과 오늘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믿음에 굳게 설 수 있도록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수리아의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 대략 2년 정도의 제1차 선교 여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이 여행을 통해 바울은 힘을 얻어 2차 3차를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의 선교 여행은 세계사에서 이정표를 남기는 업적이었습니다. 하여튼, 바울과 바나바가 전한 복음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믿도록 하는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들이 보고한 사역의 결과를 알고 있던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와서 이방인 신자들이 모세의 율법을 준수해야 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것이 행15장입니다.

 

특히 사도행전 15장은 구조적으로나 줄거리 전개에 있어서나 중심부에 있습니다. 행1장부터 14장, 15장부터 28장까지의 단어 수가 거의 비슷합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1장부터의 내용은 15장의 쟁점 즉 이방인의 구원과 할례로 나아가고 있고, 15장 이후의 내용은 예루살렘 회의에서 내려진 결정의 결과를 반영합니다. 결국, 사도행전에서 행15장의 위치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은 구약 시대에서 신약 시대로 넘어가는 시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메시야를 기다리던 유대교에서, 오신 메시야를 따르는 기독교로 발전하는 과정에 인종과 나라와 관계없이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확증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1:8절에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이 확장될 수 있도록 인도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이 전파되면서 자연스럽게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기 위한 섭리였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라고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한 안디옥 교회에서 휴식과 쉼을 누리고 있는 가운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전부터 고넬료의 회심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일로부터 많은 일이 발생했을 것입니다. 그 중에 가장 큰 역할은 스데반의 순교였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는 이방인 지역에 복음이 확장되도록 하는 결과를 가지고 왔습니다. 복음을 전한 대가는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입니다. 이방인 지역에 복음이 확장될 수 있도록 파송한 교회가 안디옥 교회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놀랍게도 이방인 최초의 교회이기도 합니다. 두 사람을 파송함으로 이방인들이 많이 믿었던 것입니다. 이런 일을 유대 지역에서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유대인들이 온 것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온 그리스도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유대교적 전통을 고수하고자 하는 사람들로 보입니다. 그것을 잘 알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할례를 통한 구원을 주장한 것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과거에 고넬료의 가정에서 함께 식사한 베드로에게 분개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전통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과거에도 이방인이 유대교를 믿도록 할 때도 할례를 중요시했던 것처럼, 유대교에서 개종한 그들에게 있어서 이방인이 예수님을 믿는다 할지라도 할례가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유대로부터 사람들이 온 것입니다. 그들은 이방인 신자들이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유대 율법은 기본적인 도덕적 규정을 중요시하면서도 의식적인, 즉 눈에 보이는 방식을 더 중요시했습니다. 이방인이 유대교로 개종을 해도 그들의 방식대로 따르지 아니하면 생활하기 힘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이유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는 마22장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올무를 놓아 죽이고자 했지만, 이 말을 들은 바리새인과 율법사는 율법을 주신 이유를 알았습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백성을 위해 주신 것입니다.

 

어떤 유대인들이 와서 율법을 주신 참된 의미를 모르면서 외적인 할례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형제들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런 가르침은 바울과 바나바가 가르치던 것과 다른 사상이었고, 일종의 도전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것을 유대인들이 할례를 가지고 무너뜨리고자 하는 것은 참으로 성경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두 사람 만의 도전이 아니라 안디옥 교회에게도 혼돈을 주었을 것이고, 도전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할례만을 이야기하지만, 그들은 아마도 율법의 모든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율법은 모두 613개였고, 가장 중요한 계명은 243개였고, 중요하지 않은 계명은 365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정신을 모르고 오히려 행위와 선행 즉 인간의 의지로 구원을 얻고자 했던 것입니다.

 

어떤 유대인들로부터 안디옥 교회는 최초의 위기를 맞이한 것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바울과 바나바의 가르침이 더 커져서 어려움을 당하기 전 바로 잡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참뜻을 몰랐던 것입니다. 이런 현실 가운데 바울과 바나바는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지 않도록 그들의 가르침을 바로 잡고자 합니다. 할례의 의미를 잠시 이야기하면,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 이전에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소속되는 유일한 언약 의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할례는 이러한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할례는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기까지의 언약입니다. 이제는 인종과 차별 없이 누구나 예수님을 믿기로 신앙 고백하는 신자들에게는 세례를 통해 새 언약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를 아직 유대인들은 몰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 회의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의 신분을 할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어떤 유대인들의 가르침과 바울과 바나바와의 심각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 것입니다. 2절을 보시면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이 사역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안 복음의 증인 자였습니다. 사도행전을 통해 지금까지 강설로 들은 우리에게도 이러한 논쟁은 조금도 놀랍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의 사역을 하면서 그 모든 일을 겪고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신지를 본 지금, 유대주의자들이 안디옥이나 다른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방인들을 설득하여 할례와 율법을 지키도록 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두 사람만이 해결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안디옥에서 해결하는 것도 좋았지만, 그들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와 다른 지도자들을 예루살렘으로 보내기로 합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예루살렘 교회가 이방 교회의 모체와 같은 역할을 감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구원론과 관계되어 있어서 중대한 문제로 생각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에는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들이 있었습니다. 중대한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잘 해결할 수 있도록 대변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각한 문제로 인식한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교회에 속한 몇 사람의 성도를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했습니다. 여기서 장로가 나오는 것을 보면 교회는 성장함으로 장로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회의를 이끈 의장이 바로 야고보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당회장이라고 하지만 국회의장처럼 당회의장이 바른 용어입니다.

 

바울과 바나바 중심으로 안디옥 교회로부터 예루살렘 교회로 보낸 것은 그들의 가르침과 같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 사람을 전송함으로 예루살렘 교회에 가서 이방인도 할례 없는 기독교인으로 인정받고, 그들도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확증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또한 유대주의자들로부터 승리하기를 바라는 행동으로 볼 수 있습니다. 3절을 보시면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전송을 받은 사람들은 여행을 하면서도 ’베니게와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방인의 구원에 대한 소식을 전함으로 신자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큰 문제를 가져다주었을 것입니다. 베니게와 사미리아는 유대인들로부터 소외를 당하는 지역이었습니다. 그것을 잘 알 수 있는 것이 사마리아에서 강도를 만난 사건이기도 합니다. 그런 지역에서 두 사람이 전한 복음은 큰 희망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소식을 예루살렘 형제들에게 말함으로 기뻐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올라오면서 복음을 전한 결과를 알고 있는 형제들 즉 사도들과 장도들에게 환영을 받은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한 것을 전한 것입니다. 4절을 보시면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처음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교제를 하고 싶었지만, 바울에 대한 의심과 냉대가 있었습니다. 스데반을 죽인 사람이 바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의심과 냉대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1차 선교 여행은 이전의 바울과는 다른 평가를 얻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이 일을 기록함으로 하나님께서 하시고 있는 것임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이방인 선교의 결실은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임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할례를 강조하는 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도전임을 부각함으로 구원은 예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확인하여 주는 것입니다.

 

할례를 중요시하는 유대주의자들 중에 신자들은 5절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을 합니까?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누가는 우리에게 그 논쟁의 대전제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회의가 열릴 수 있도록 하는 공식적인 발의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 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신자들이 있었지만, 할례와 율법을 중요시했습니다. 그들은 할례를 율법을 준수하겠다는 표현의 상징으로 본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방인을 교회로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못마땅했습니다. 이것을 회의한 내용은 다음 주에 강설로 듣도록 하겠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과 다른 결정이 난다면 그들이(바울과 바나바) 전한 사역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이방인들이 많이 믿게 될 때 할례는 큰 문제가 되었을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1차 선교 여행을 하면서 율법과 할례를 넘어서 자유롭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겠다고 한 신자들은 세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지, 할례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어떤 유대주의자들에 의해 할례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는다면 바울이 전한 복음은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예루살렘 회의를 통해 바른길로 인도를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섭리를 통해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 문제를 교회가 해결해야 하는 중대한 문제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그 시대의 시대적 사명으로 여기고 있는 그들은 예루살렘 회의에서 이 문제를 처리하고자 했습니다. 이미 세운 원칙을 고수하면 될 것이지만 이것은 단순히 한 교회의 문제만이 아니었습니다. 장차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데 있어서 그 시대의 모든 교회에 중요한 문제로 본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회의는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백성과 함께하고 있다는 최초의 공의회였습니다. 이런 결과는 오늘날 우리에게는 자유함을 주었습니다. 신약 시대에 이방인들의 개종 조건으로 할례와 율법 등을 요구했더라면 그것은 이방인들을 개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대교로 개종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공의회는 문자적 준수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결의한 것입니다. 이러한 결정은 온누리에 구원의 복음을 확장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유함을 누리면서 영과 진리로 예배할 수 있는 것이 행복임을 누리면서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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