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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행18:1-11
강설날짜 2019-09-08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린도에 도착한 바울(행18:1-11)

 

오늘도 변함없이 예배당에 모여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예배하고 있습니다. 예배당에서만 예배할 때 기쁨이 넘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생활에서도 오늘과 같은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헌신 된 성도입니다. 헌신 된 성도는 이 세상에서 지상명령을 감당하며 모든 날이 예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칭호를 들으면 어떠한 마음이 드십니까? 마음이 뜨겁습니까? 차갑습니까? 미지근하십니까?

 

만왕의 왕 하면 어떠한 마음이 드십니까? 광개토대왕, 징기스칸, 진시 왕 등이 떠 오르십니까? 이러한 생각은 세상 사람들 즉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만왕의 왕이라는 칭호를 들으면 겸손해야 합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감당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왕의 왕 앞에 겸손하게 지팡이 교회는 예배할 수 있습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린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배를 통해 말씀을 듣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위해 지난주 강설을 요약하여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바울이 전한 메시지를 더 알고 싶어 하던 아덴 사람들은 아레오바고로 초청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레오바에서 연설을 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지난주 강설은 “아레오바고에서 연설한 후 상황”이었습니다. 아덴은 학문과 예술 그리고 철학으로 유명한 도시였지만, 바울의 연설은 하나님의 복음이 심어지는 씨앗이 되었습니다. 알지도 못하는 신을 위해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그들에게 바울은 “범사에 종교심”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누구신가를 전했습니다. 학문과 철학 그리고 우상의 신들을 좋아하는 아덴 사람들에게는 놀랬을 것입니다. 거기에 회개를 촉구하는 말을 합니다.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살길은 있다고 합니다.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것” 즉 예수님께서 있으니 ‘믿으라’입니다. 헬라 문화의 중심지에도 회개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것이 살길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연설함으로 회개의 기회를 준 것입니다. 회개의 기회가 왔을 때 돌이켜야 합니다. 오늘날 강설을 듣는 우리에게도 같습니다.

 

아레오바고에 울려 퍼진 바울의 연설을 들은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조롱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의 말을 다시 듣겠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메시지는 이처럼 듣는 자들은 부활을 소망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연설이었을 것입니다. 늘 어느 곳이든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최선을 다한 바울은 아레오바로에서 떠나기로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인 돌이키는 자를 구원하십니다. 많은 사람이 믿지 않았지만,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이 믿었습니다. 오늘날 복음을 전해도 믿지 아니한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심판과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아레오바고에서 연설한 후 에덴을 떠나 고린도에 도착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우리도 잘 알고 있는 그리고 매력적인 한 부부를 발견합니다. 아덴과 고린도는 80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장소로 당시 그리스에서 가장 큰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고린도전후서가 다른 서신보다 길게 기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고린도는 교역이 활발했고 그것 때문에 부와 사치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특히 고리도는 “아프로디테”라는 미와 사랑의 여신을 숭배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환락에 대해서 많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로마가 통지하기 전까지는 천 명 이상의 종교 창녀들이 아프로다테 신전에서 봉사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입니다. 고린도는 아가야의 수도이자 지방 총독의 행정 소재지 역할을 했습니다. 인구의 수는 남양주시와 거의 같습니다. 학자들은 76만으로 보고 있습니다. 고린도는 항구의 도시이면서 그리스 운동 경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스의 4대 경기장 중 하나가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아덴을 떠나 이곳에 도착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시면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라고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고린도는 육상 및 해상 무역로가 집중되어 상업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었고 따라서 크게 번영했습니다. 복음의 씨앗이 잘 심어지면 많은 지역으로 퍼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 당시 헬라 작가는 고린도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나는 얼마 되지 않아 구역질나는 부자들의 형태와 가난한 사람들에의 비참한 모습을 한꺼번에 감지할 수 있었다.” 고린도 도시의 부와 가난이 공존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같은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은 빈부의 격차가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도착했을 때는 실라와 디모데는 데살로니가에 있었기 때문에 동역자가 절실했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지역에 가면 새로운 사람을 사귀고자 하는 본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준비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2절을 보시면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자세하게 기록을 합니다. 아주 중요한 사람이기에 그런 것입니다. 이 부부는 로마에서 떠나 고린도에 왔습니다. 그 이유는 글라우디오 칙령에 따른 것입니다. 아마도 주후 49년에 유대인 회당에서 기독교의 메시지로 인해 일어난 사건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로마에서 추방했습니다. 아굴라는 유대인출신이지만, 아내인 브리스길라는 로마 출신입니다.(하지만, 모두 유대인이라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도착하여 부부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3절을 보시면 바울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에게 찾아간 것입니다. 아마도 이미 기독교 신자였고, 믿음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또한 천막을 만드는 같은 직업이었습니다. 바울은 이곳에 도착하여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보다 스스로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도움을 받기 위해 무작정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크고 번창한 도시에서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이 새로이 전도사역을 위해 생계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바울은 장사해서 스스로 생계를 해결하고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의 기술과 고린도에 대한 상황을 알고자 찾아간 것입니다. 하여튼, 그들과 동업을 한 것입니다. 천막은 군인과 경기 관람객 그리고 해변 등에서 사용했기 때문에 좋은 생계 직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아버지도 천막 일을 통해 로마 시민권을 사기도 했습니다. 천막을 만드는 일은 그리 쉬운 직업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직업을 병행한다는 것을 더 어려운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복음이 중요했습니다. 4절을 보시면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바울은 아마도 주중에는 일하면서, 안식일에도 회당에서 복음을 전한 것 같습니다. 고린도에도 유대교를 믿는 사람도 이었지만, 기독교로 개종한 신자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회당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생업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있는 가운데 누가 왔습니까? 5절을 보시면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실라와 디모데가 온 것입니다. 이때부터 바울은 복음에 집중하여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오늘날 목회도 이런 모습으로 가야 할 방향입니다. 바울은 동역자인 실라와 디모데가 합류함으로 고린도에서 예수님은 그리스도 즉 메시야라는 것을 증언했습니다. 동역자인 실라와 디모데는 빌립보 신자들로부터 선교헌금을 가지고 왔습니다.(빌4:14-15) 그리고 데살로니가 교회 소식은 더욱 복음을 증언하는 데 힘이 되었습니다.(살전3:7-10) 후원금도 중요하지만 디모데로부터 데살로니가 교회가 고난 가운데 주님의 부활을 믿고 기쁨으로 신앙생활을 한다는 소식은 전도 여행에 힘이 되었습니다. 기쁨의 소식을 들은 바울은 이곳에서 데살로니가 서신을 기록하여 보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통해 기쁨을 누렸기 때문에 행복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을 듣고 참된 주의 길을 걷는 소식은 더욱 고린도 지역에서도 예수님은 그리스도라는 증언을 하도록 하는 힘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린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과 달랐습니다. 불행하기도 고린도 지역에서 생활하는 유대인들은 바울의 복음을 거절하면서 비방하였습니다. 6절을 보시면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바울은 조롱과 비방을 당해도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듣고자 거절을 하면 바울의 책임이 아니라 들은 사람의 책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바울이 책임이 아니라 듣는 자입니다. 오늘날 말씀을 들어도 돌이키지 아니하면 누구의 책입니까? 바울은 그 모습을 잘 알려 주듯이 자신의 옷을 털면서 비방을 하는 너희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을 통해 배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신발의 먼지를 털어 버린 사건이 있습니다. 그 외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바울은 유대인의 전통적으로 해 오던 신발을 털지 않고 옷을 턴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과거 총독 느혜미야는 지도자들이 중한 변리로 가난한 백성을 착취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 후 자신의 옷자락을 흔들었습니다.(느5:13) 이런 행동을 한 이유는 범죄한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에서 떨어져 나갈 수 있다는 상징이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바울은 옷을 털어버린 것은 같은 상징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에스겔 선지자의 말을 반영합니다.(겔33:1-7) 그리고 바울이 이렇게 옷에서 먼지를 떠는 행동은 예수님께서 12제자와 70인의 전도대를 파송하면서 그들을 영접지 않는 자들을 향해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리라고 명령하신 것과 유사하기도 합니다.(녹9:5,10:11) 바울은 옷을 털어버린 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방인에로 갔습니다.

 

바울은 회당을 떠나 그 즉시 회당 옆에 있는 디도 유스도라는 이방인의 집으로 들어갑니다. 7절을 보시면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이런 모습을 보고 있는 유대인들은 놀랬을 것입니다. 하연튼 디도 유스도는 하나님을 믿은 백성이었습니다.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아마도 디도 유스도는 회당에서 예배하는 이방인으로 추측됩니다. 회당 옆에 있던 유스도의 집은 고린도 전도 사역의 기초가 되었을 것이고, 고린도 교회의 씨앗을 되었을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8절을 보시면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고린도 지역 특히 회당을 중심으로 신앙생활하는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충격적인 사건은 회당장 그리스보가 바울의 복음을 듣고 회개한 후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그 일을 알고 있던 수많은 고린도인이 믿고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만 잘해서 그들이 변한 것입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실라와 디모데가 있었고, 후원금을 보내준 빌립보와 사역의 힘을 실어준 데살로니가 교회가 있었습니다. 목회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동역자들의 후원이 필요한 것입니다.

 

회당에서 하나님을 경외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어디에서 모이기 시작합니까? 9-10절을 보시면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환상을 통해 권고와 위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복음의 사역을 거절하는 고린도 사람들의 비방과 조롱은 오히려 바울에게 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더 확신한 길을 갈 수 있도록 권고와 위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침묵하지 말고, 복음을 전해라 너를 대적하지 못하게 하실 것이며, 해롭게 할 자도 없으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백성으로 돌이키는 신자들이 많을 것을 알려준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도 상심하지 않고 바울처럼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더 힘을 내어 전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은 마치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지상명령을 준 것과 같은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예정은 당신님의 절대 주권적인 선택과 사랑과 기쁘신 뜻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백성을 예정하시는 궁극적인 하나님께서 예정하셔서 구원하신 자들로부터 영광을 받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중요한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신을 위한 삶보다 지상명령이 중요했습니다. 11절을 보시면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조롱을 당해도 하나님으로부터 권고와 위로의 말을 들은 바울은 고린도에서 일 년 육 개월 동안 가르쳤습니다. 무려 18개월 동안 복음을 가르친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당신님의 백성을 돌이키게 하려고 최선을 다해 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학자들은 일 년 육 개월에 대한 이견이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처음 도착해서 그곳을 떠날 때까지의 전체 기간을 말한다는 의견과 환상을 경험한 후 고런도에 머문 기간만을 의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오늘날 신자에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사역한 내용이 중요합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가르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바울이 전한 핵심은 항상 예수님은 누구신가입니다. 복음을 전함으로 고린도는 회개하고 죄 사함과 구원 그리고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신 예수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가르친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같아야 합니다. 다른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바울과 같은 심정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바울은 전도 여행을 하면서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 관습과 역사도 달랐지만 늘 적응을 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라는 것을 증거 하였습니다.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구걸하며 증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증거할 수 있도록 고린도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준비하셨습니다. 그들과 같이 천막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게 함으로 신자들의 삶을 더 알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지만, 바울의 동역자인 실라와 디모데가 도착함으로 바울은 더 힘을 얻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가지고 온 소식을 통해 왜 복음을 증거 해야 하는가를 알았습니다. 더욱 힘을 얻어 복음을 증거 했지만, 고린도 지역에서 생활하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로부터 비방과 조롱을 당하였습니다. 바울은 그런데도 실망하지 않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유대인들의 관습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었습니다. 옷의 먼지를 털어 보이면서 발의 먼지를 털어 보이는 상징을 기억하도록 한 것입니다. 나는 분명 너희에게 참된 복음을 전했다. 그러나 너희는 믿지 아니하고 오히려 비방했다. 이제 하나님께서 너희를 심판해도 나와는 상관이 없고 무죄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놀라운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회당장 그리스보가 바울의 복음을 듣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 일은 빨리 울려 퍼졌을 것입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복음을 믿고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바울은 오직 하나님의 일에 열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환상을 통해 권고와 위로하여 주셨습니다. 너가 하는 일은 당연함을 알려준 것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유대인들로부터 어려움을 당하는 가운데 복음을 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여러 가지 환경을 통해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위로를 받았으면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임마누엘로 늘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바울과 함께하신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십니다. 그것이 교회요 헌신 된 신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과 함께 하셨던 것처럼 나와 함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롤 보호하여 주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로함을 받은 바울은 고린도에서 일 년 육 개월 동안 머물먼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고린도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세워짐으로 나중에 바울은 그들에게 또한 우리도 읽을 수 있도록 고린도전후서를 남기어 주었습니다. 교회를 위한 교리와 윤리가 될 고린도 전후서입니다. 힘든 가운데 교회가 든든히 세워져 가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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