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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행18:19-28
강설날짜 2019-09-22

에베소에서 일어난 일들.....(행18:19-28)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204865f3.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434pixel, 세로 485pixel 고 박윤선 목사님의 헌법주석을 보면, 장로교 정치의 정신은 한 마디로 “교회의 주권은 성도에게 있다”라는 교리입니다. 이런 교리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의 선배님들께서 종교개혁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들로 인하여 오늘날 참된 예배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배님들은 자신들을 희생하며 신자들을 위해 위대한 유산을 주셨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닙니까? 고 박윤선 목사님은 헌법주석을 통해 “헌법 본문과 함께 이 책을 상고함으로 교회 헌법을 이해함에 많은 도움을 얻게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를 보면 타락했다고 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기업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위의 사진을 보면 광화문 집회에서 사용된 헌금함입니다. 헌금에 대한 바른 이해 못 하면 이렇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헌금은 목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차라리 기부금 함이라고 하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헌금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것임을 아는 것입니다. 헌금에 대한 오해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죄를 씻어 주었으니 대가로 헌금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큰 오해입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자들에게 대가를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헌금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속받은 신자의 감사 표현입니다. 대가와 다른 것입니다. 헌금은 죄 씻음을 받은 신자들이 대가로 드릴 수 없습니다. 대가가 아닌 감사의 표현입니다. 신자들이 주님의 은혜에 대가로 값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헌금을 이용하여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우리가 지극정성으로 갚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어리석은 신자들이 되지 마십시오, 오직 주의 길을 참된 마음으로 순종의 길을 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역시 지난주 강설을 되새김질하면서 하나님께서 풍성한 은혜로 인도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고린도에 도착하여 복음을 전하고 있던 바울에게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로부터 고소를 당합니다. 전도 여행을 하며 고소를 당했지만, 이번에는 다른 상황입니다. 로마 총독 즉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이 되었을 때입니다. 새로 왔기 때문에 기회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고소의 내용은 바울이 로마법을 어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입니다. 로마 황제가 신인데 바울이 하나님을 전하면서 로마를 무너뜨리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애굽에서 어떻게 구출하셨습니까?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바울을 고소했습니다.

 

유대인들의 고소를 잘 알고 있는 바울은 자신을 변호하고자 할 때 총독은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라고 하면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알려준 것입니다. 총독은 로마법을 어기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인식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너희가 말하는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에 대한 종교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제 바울은 기회를 얻어 복음을 온누리에 전할 기회가 되었습니다. 총독으로부터 자유로움을 얻은 것입니다. 총독의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격분하여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총독의 법정에서 무엇을 하였는지 기억하십니까? ‘법정 앞에서 때렸습니다.’ 그러면서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말하고 협박했습니다. 자신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이러한 행동을 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을 모르면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은 복음의 증인 자로서 계속해서 어디로 이동하였습니까? 오늘 본문 18절을 보시면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갈릴오 아가야 총독의 판결 이후 고린도에서 여러 날(원문을 살리면 상당한 날) 즉 오랫동안 머문 후 배를 타고 수리아 즉 시리아로 향했습니다. 수리아는 바울이 세운 안디옥 교회가 있는 지역입니다. 그곳으로 바울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아 함께 갔습니다. 그들과 함께 간 것은 아마도 에베소 사역을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과 함께하면서 전초 기지를 준비하기 위한 것입니다. 바울은 안디옥 교회로 가기 위해 고린도에 위치한 겐그레아 항구에서 삭발합니다. 왜 이런 행동을 했는가를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본문에서는 서원이라고 합니다. 서원과 연결하여 보면 아마도 바울이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다 이행했다는 뜻으로 삭발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사역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하여튼, 바울은 주님의 부르심에 충실한 일꾼이었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복음의 사역을 전하고 있던 바울은 새로운 거점을 만들기 수리아 안디옥을 거쳐 에베소에 도착합니다. 19절을 보시면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에베소서는 아시아의 중심 도시이기도 합니다. 이곳은 고대 세계의 일곱 가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아데미의 신전으로 유명합니다. 바울은 그곳에서 닥칠 상황을 모르면서 오직 복음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자신의 사역을 마감에 이르고 이후 죄수로 잡힐 장소로 예루살렘으로 향하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바울만 함께한 것이 아니라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있었습니다. 그 부부는 경제적으로 넉넉했기 때문에 바울과 함께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여비를 부담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에베소에서 바울이 도착하여 복음을 전하면서 변론을 했다고 생각하며 쉽게 넘어 갈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우리에게 앞으로 진행될 에베소 사역의 예고에 있습니다. 19장을 보시면 에베소에 관한 것을 길게 기록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간략하게 변론만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회당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변론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통해 이미 실현되었으니 믿고 구원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언제나 어디를 가든 먼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후 이방인에게 갔습니다.

 

바울은 충실하게 에베소에서 전한 메시지는 아주 긍정적인 반응이었습니다. 20절을 보시면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메시지가 좋았기 때문에 더 머물기를 청한 것입니다. 고린도 지역과 다른 환경이기도 합니다. 바울의 변론에 깊은 인상을 받은 많은 에베소 사람들이 더 머물기를 간청하였지만 그는 허락하지 않고 자신의 전도 여행을 위해 재촉합니다. 그 이유는 21절을 보십시오.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성령의 인도함이 있다면 다시 올 수 있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 한구석에 바울은 그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하여튼, 그 길은 로마로 향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바울의 이야기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음으로 3차 전도 여행의 무대 준비를 하는 목적지가 되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지 모르지만, 나중에 그 일을 알게 됩니다. 앞으로 고난이 어떤 것이 모르면서 오직 복음에만 관심이었습니다. 나중에 자신이 어떠한 곤경에 처한 것을 알면서도 오직 부르심에 상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위대한 사역자였습니다.

 

에베소를 떠난 바울은 22절을 보시면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바로 가이사랴에 도착합니다.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의 종착지이기도 합니다. 가이샤랴에 도착한 바울은 교회의 안부를 묻습니다. 23절을 보시면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그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에 올라가 전도 여행에 대한 보고와 교회의 형편을 알았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한 바울은 다시 안디옥으로 내려왔습니다. 이곳에서 전도 여행의 종착지인 로마로 성령의 인도함을 받은 것입니다. 학자들은 안디옥에서 1년 정도 머물면서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를 생각한 후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다녔습니다. 학자들은 2차 전도 여행을 했던 비시디아 안디옥,이고니온,루스드라,더베 주변 지역으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했던 이유는 바울이 복음을 전했던 장소입니다. 순회하며 교회가 더 제자들이 더 굳건하게 성장하도록 하기 위한 배려입니다.

 

앞 단락에서 바울이 에베소를 잠시 다녀갔다고 소개합니다, 그런데 바울의 3차 전도 여행을 위해 24절에서 아볼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볼로가 어떻게 예수님을 믿었는지 알 수 없지만, 성령은 그를 통해 바울의 가야 할 길을 준비한 것입니다. 24절을 보시면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알렉산드리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서관이 있는 이집트입니다. 그곳에서 자란 아볼로가 에베소에 온 것입니다. 아볼로는 학문도 뛰어났지만, 언변도 좋고, 성경에 능통했습니다. 고전1:12절과 3:4절을 참고하면, 해박한 학문과 성경 지식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베소를 통해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아볼로를 준비하신 것입니다.

 

아볼로를 준비 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예수님을 전하도록 했습니다. 25절을 보시면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아볼로는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주님의 도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관한 것을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볼로는 요한의 세례만 알 뿐이었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아마도 예수님이 메시야로 오기 전까지 제한된 부분만 알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볼로는 예수님에 대한 생애는 어느 정도 알았지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볼로느 예수님에 관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전했습니다.

 

아볼로가 전한 메시지를 위해 성령은 누구를 준비했습니까? 26절을 보시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입니다.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아볼로는 완전하게 예수님에 대한 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고린도에서 이곳으로 이주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아볼로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그 부부를 통해 이해하도록 한 것입니다. 두 부부는 아볼로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 즉 성경을 풀어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들 부부는 아볼로에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서 이루어진 모든 일들 가르쳤을 것입니다.

 

아볼로는 두 부부로부터 배움으로 더 장성한 신앙인으로 성장했습니다. 복음의 사역을 하던 아볼로는 이제 어디로 향하고자 합니까? 27절을 보시면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즉 아가야 즉 고린도로 가고자 한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백성인 형제들은 추천서를 써 주었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도 고린도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리고 아볼로를 통해 예수님을 안 형제들은 그가 사역을 잘 할 수 있도록 추천서를 써준 것입니다. 결국 고린도에서 아볼로는 큰 결실을 맺습니다.(고전1-4장) 고린도에서 바울이 전한 메시지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아볼로는 바울의 빈자리를 채우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3:6절에서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아볼로를 평가하기를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볼로를 이집트에서 에베소를 인도하셨습니다. 그곳에서 두 부부를 통해 성경의 말씀을 이해한 후 고린도에 가서 큰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했기 때문입니다. 28절을 보시면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늘 명심해야 할입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해야 할 사명입니다. 에베소보다 고린도는 복음을 전하기에 어려운 지역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볼로는 늘 복음만을 전했습니다. 얼마나 학문적으로나 성경적으로나 능통을 했으면 유대인들의 말을 이겼겠습니까? 이 또한 하나님께서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아굴라, 브리스길라, 아볼로도 다 같이 메시지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아볼로는 복음의 핵심을 깨닫자 공중 앞에서 그가 알고 있던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메시야이심을 더욱더 설득력 있고 확신 있게 전한 대가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에베소, 가이사랴, 예루살렘, 안디옥에 이르는 여정을 합니다. 이 여정에서 많은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누가는 이 여행에 대한 기록을 매우 간략하게 요약합니다. 2차 전도 여행의 긴 여정을 맺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역해 오던 일들은 예루살렘 교회에 올라가 보고를 합니다. 그러면서 3차 전도 여행을 준비합니다. 복음을 위해 자기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로마로 향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휴식을 누리고 있던 시기에 하나님께서는 에베소에 아볼로를 통해 복음의 문이 더 열리도록 하셨습니다. 당연히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도 있었습니다. 그 부부를 통해 아볼로는 예수님에 대한 사역을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두 부부는 학문과 성경에 능하였기 때문에 아볼로를 위대한 전도자로 인도한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것을 잘 이해한 아볼로는 고린도 지역으로 이동하여 큰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에게는 순서가 있습니다. 그때를 위해 지금 자신을 준비해야 합니다.

 

현대인들은 지식을 높은 것을 좋아합니다. 예수님을 믿은 분들도 성경을 아는 것으로 좋아합니다. 성경은 지식을 쌓는 도구가 아닙니다. 위대한 신앙인들은 지식을 넘어 예수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도 이런 일에 힘을 써야 합니다. 아볼로는 더 많은 지식을 쌓았지만, 자신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바울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도 같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도 같아야 합니다. 믿음의 선배님들이 왜 주의 길을 걸었는지 이해하기를 소망하면서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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