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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행20:25-31
강설날짜 2019-12-01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7yk8iYu7fGg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별 강설한 사도 바울(행20:25-31)

 

초대교회이든 오늘날 신앙생활 하는 교회이든 하나님께서는 ‘거룩하라’고 하십니다. 교회는 순수성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교회를 신부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신부가 순결성을 상실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신부가 순결성을 상실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는 교회인 신자들에게 ‘거룩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전에 내가 얼마나 악한 것에 상관없이 하나님은 내가 지금 당장 거룩해지라고 요구하십니다.

 

하나님 나라 때문에 세워진 교회는 복음 전도가 될 수 있도록 순결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 나라는 교회를 통해 빵을 부풀게 하는 누룩처럼 퍼져나갈 수 있습니다. 참된 신자는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보며 애통합니다. 그 애통은 회개가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유일하신 구원자로 고백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신앙 고백한 신자들은 성도의 교제를 하며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 역할을 감당합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며 교회의 순수성을 유지하고자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오늘도 이런 마음으로 특별한 계시인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지팡이 교회는 귀한 성도입니다.

 

지난주 강설을 요약하여 생각하면서 오늘 말씀을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드로아에서 이동한 바울은 배를 타고 앗소로 이동하였습니다. 먼저 도착한 일행은 앗소에서 바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후 바울과 함께 미둘레네를 거쳐 기오, 사모, 밀레도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오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갈 수 있었지만, 예루살렘 교회로 가는 것을 지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것을 누가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장로들을 밀레도로 초청하여 강론 즉 특별한 교훈의 강설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바울) 에베소에서 어떻게 행하였는지 장로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짧은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에베소에서 3년 동안 사역을 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에 대해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장로들은 엄숙해졌을 것이고, 자신들이 어떻게 신앙생활 해야 하는지 생각했을 것입니다.

 

바울의 사역은 겸손과 눈물이었습니다. 또한, 시험을 참고 견디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결국 교회의 순결성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하나만 바라보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바울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온 누리에 확장되도록 하셨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바울처럼 겸손과 눈물 그리고 시험을 감당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런 모습은 교회를 타락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교회가 성장하지 않도록 하는 힘이 되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교회가 순결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목회에 관해 설명합니다.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늘 하나님 나라를 가르쳤고,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믿음으로 증언했습니다. 실제로 바울은 다메섹에서 주님을 통해 영접했기 때문입니다.

 

바을은 계속해서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하는 계획과 각오를 말했습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바울은 자신이 왜 가야 하는가를 이야기 한 것입니다. 감당하기 힘든 일이 기다리고 있지만, 바울은 담대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성령께 의지한 것입니다. 인생의 죽음도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 믿음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섭리를 완전하게 알 수 없지만, 의지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성령을 의지하고 있는 바울은 알고 있었습니다. “결박과 환난”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있다면 사람은 대체로 예루살렘 반대 방향으로 도망칠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에수님처럼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입니다. 이런 바울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도 같은 마음으로 신앙생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명 곧 하나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서 사도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에게 강설한 것을 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강설 제목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별 강설한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은 겸손과 눈물 그리고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기었습니다. 이것은 주를 향한 마음이었습니다. 자신의 목숨도 돌아보지 않고 가는 모습을 보면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일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다시 에베소 교회로 돌아올 수 없을 것을 생각하며 전심으로 강설한 것 같습니다. 본문 25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사도 바울은 고전15:31절에서 “나는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마음은 순교 신앙을 가지고 복음을 전했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고전15장은 부활장이라고 부릅니다. 바울은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날마다 죽노라 하며 전도 여행을 감당한 것입니다. 오늘날 복음을 무시하고 프로그램 등을 이용해 성장하고자 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바울의 모습을 통해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아야 합니다. 오직 복음으로 나아가는 바울은 25절에서 무엇이라고 한 것입니까? 마치 자신의 미래를 예견하며 작별을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고별의 인사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을 전하다가 영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십자가의 길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결심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비장한 마음으로 이렇게 말을 합니다. 26-2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의 심판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에 대해 어떠한 사람보다 깨끗하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더 확실하게 자신의 피는 모든 사람보다 깨끗하다고 했습니다. 피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말했던 이유는 유대인들의 표현 방식입니다. 왜냐하면, 피는 생명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해 왔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바울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구원함을 받은 바울처럼 우리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선지자이든, 사도이든, 누구든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듣든지 안 듣든지 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명을 감당한 사도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9:16절에서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군사와 같습니다. 복음은 사람을 살리는 힘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교회의 일부는 세상의 프로그램을 사용함으로 자기 교인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교인으로 만들 수는 있어도 참된 복음이 없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은 마음으로 복음을 전해야 성령께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일꾼이기 때문에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겸손과 눈물로 사명을 감당하는 사도였습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은 마음으로 복음을 전해야 하는 성도입니다.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상명령은 신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자 하는 섭리에 따라 순종하며 주의 길을 가리를 소망합니다.

 

이제 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권면을 28절에서 합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바울은 장로들에게 여러분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삼가라’고 합니다. 이 말은 “주의하라, 유의하라”입니다. 장로들은 자기와 온 양 떼를 위하여 늘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자들을 섬기는 장로 즉 감독자는 도덕적으로 순결하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근면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특별한 사람만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직분이 있는 사람은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그 모습을 바울이 보여주었기 때문에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17절에서 장로들이라고 하고 여기서는 감독자라고 칭합니다. 결국, 같은 말입니다. 서로 같은 의미를 지닌 “돌아보는 자”입니다. 장로는 권세를 부리는 사람이 아니라 교회를 돌아보고, 보살피는 섬김이 있는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장로는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장로교 정치에서 장로는 치리만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이것은 교육을 잘 하지 못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알고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 역할을 감당하지 않아서 생긴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잘 말하고 장로는 권면하고 지도하는 섬김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굮교회에서 장로는 치리로만 생각하는 것 같지만, 개혁교회는 구역장을 맡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장로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왜 장로들에게 이렇게 권면한 것입니까?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속죄의 죽음을 돌아가시면서 쏟으신 피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피로 교회를 사셨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는 매우 묘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피로써 자기의 것으로 만드신 교회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오히려 예수님의 대속 행위가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거룩한 희생적 사랑에 대한 확증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당신님의 피 값으로 사신 교회를 장로는 양 떼를 위하여 조심해야 합니다. 조심한다는 것은 교회의 순결성을 지키는 것입니다. 장로는 교회의 고귀함을 위해 막중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장로를 아무렇게 선출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장로들에게 권면한 후 앞으로 닥칠 일들을 미리 주의하라고 경고합니다. 그것을 29절에서 31절에서 말합니다. 먼저 29절을 보시면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교회를 미혹하는 이리와 같은 자가 있다고 합니다. 흉악한 이리는 양 떼를 죽입니다. 사탄은 자신과 함께 영원한 형벌로 같이 가고자 물귀신과 같은 존재입니다. 사탄은 교회의 약한 틈을 이용하여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무너지도록 하는 존재입니다. 약한 틈은 댐도 무너지게 하는 힘이 있는 것처럼, 거짓 선지자는 교회의 순결성을 무너지도록 합니다. 바울이 없는 에베소 교회는 약한 틈과 같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사탄은 어떻게 침투를 해야 하는지 알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교회가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힘이 있습니다. 틈이 보이지 않도록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장로는 그 일을 감당하는 청지기입니다. 이리와 같은 존재로부터 양 떼를 보호해야 하는 임무가 장로에게 있습니다. 목사도 장로이기에 말씀을 잘 가르쳐야 하는 일꾼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선배님들은 목사를 “말씀 봉사자”라고 했습니다.

 

계속해서 바울은 30절에서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말은 딤전1:3절과 딤후1:15절에서 문자 그대로 실현되었습니다. 이리와 같은 존재는 자신을 따르도록 하기 위해 교묘한 방법으로 양 떼를 속입니다. 그것도 모르는 양 떼는 이리를 따름으로 사탄이 기다리고 있는 형별을 당합니다. 이리와 같은 존재는 ‘어그러진 말’을 사용하여 그릇된 죽음의 길로 인도합니다. 주여! 주여!라고 하는데 사망의 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자신의 신념을 믿는 것입니다. 나 자신의 신념을 믿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종교 즉 예수교가 돼야 합니다. 그래서 대한예수교 장로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31절에서 ‘깨어 있으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깨어 있으라고 하는 것은 “깨어 있다”는 것으로 영적으로 하나님만 바라보며 각성해 있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경비병과 같은 성도를 말하기도 합니다. 경비병은 방종하거나 방심하지 않고 경계를 하며 교회의 순결성을 지키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파수꾼으로 설명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파수꾼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여호와 증인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장로요 감독자에게 권면함으로 서로 힘을 내자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3년 동안 밤낮으로 쉬지 않고 사역한 눈물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훈계하던 것도 기억함으로 이제는 장로들이 해야 한다는 명령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교회는 성도의 교통을 하는 존재입니다. 서로 양 떼를 지키며, 양 떼를 양육해야 하는 교회입니다. 세상에서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하는 말처럼 성경을 아는 것이 힘입니다. 성경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거짓 선지자에게서 벗어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밀레도로 오게 하여 강설했습니다. 에베소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바울은 최선을 다하는 권면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순결성을 지키기 위해 바울은 이리를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는 성도는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성도가 흔들리지 않도록 장로와 목회자는 특히 경비병 즉 파수꾼과 같은 존재가 돼야 합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 때문에 교회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교회는 종말론적 구원 공동체로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순결한 백성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지상명령을 감당하는 군사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알기에 전도 여행을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의 결말을 성령으로부터 알았기 때문에 장로들에게 강설한 것입니다.

 

바울이 눈물로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가장 먼저 부탁한 것은 교회였습니다. 풍전등화와 같은 전도 여행이었지만, 이제는 순교를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위해 권면의 강설을 한 것입니다. 교회를 위해 바울은 지신의 피가 모든 사람보다 깨끗하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말한 이유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온전하게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 최선을 다해 생명을 구원했습니다. 바울이 했던 사역처럼 이제 장로들도 같은 일을 감당해야 한다는 부탁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어떤 자들은 이리와 같은 존재로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지 않고, 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든지 말든지 관심이 없습니다. 단지 관심이 있는 것은 자신을 위한 존재로 보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교회는 하나님 말씀을 온전하게 전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리로부터 승리할 수 있는 것은 결국 하나님 말씀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교회도 같아야 합니다. 오늘 시대는 초대교회보다 더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하는 자와 예수라고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수 있도록 계시 의존 사색을 해야 합니다. 즉 성경을 의지하고 배우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작고 부족하고 문제가 있다고 할지라도 성도의 교통에서 떠나거나 해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피로 사신 교회를 사랑하며 거룩하게 세워가야 하는 것이 바로 교회의 순결성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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