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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행20:32-38
강설날짜 2019-12-08

사도 바울의 개인적인 모범 그것은 하나님 말씀(행20:32-38)

 

초대교회는 오직 성경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전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위해 자신의 목숨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초대교회를 생각하면 어떠한 마음이 드십니까?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중에 순교라는 하고 싶습니다. 위대한 순교자들에 의해 먼 훗날 한국 교회에 복음이 전달되었기 때문입니다. 전달된 복음에 의해 한국 교회는 급성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세상 사람들 중에는 ”개독교’, 세상과 같은 “기업”, “타락한 종교” 등으로 생각합니다. 이처럼 성경의 순수함을 유지하지 못 하면 어떻게 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신앙의 본질을 상실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 교회는 오직 하나님만 섬기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무속신앙과 접목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한국 개신교의 이미지는 최악이다”라고 할 정도입니다. 이런 시대에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포로 생활하다가 돌아와서 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읽고 가르친 것입니다. 그럴 때 자신들의 잘못을 알고 회개한 것입니다. 선지자들이 회개하라고 하며 유일하신 하나님을 섬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듣지 않고 자신들을 위한 삶으로 타락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진노로 포로가 되어 생활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도록 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 은혜로 돌아온 이스라엘은 성경을 읽음으로 회개한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안다는 것은 놀라운 신비가 있습니다. 그 신비는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아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의 현실은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종교 개혁가들이 외친 “오직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경으로 복음을 전할 때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백성에게 주신 성경 말씀을 통해 강설을 듣습니다. 목사이든 신자이든 다 같은 성도로서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럴 때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은혜는 나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근원입니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지팡이 교회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목사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입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강설하는 봉사자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충실하게 전해야 합니다. 또한, 말씀을 듣는 성도요 교회는 충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억해야 합니다. 서로 하나님 말씀을 사모함으로 주의 길을 가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난주에 이어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별 강설”한 것을 다시 기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의 강설을 생각하면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말씀을 전해야 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을 왜곡하지 않고 전하는 것은 사도 바울이든, 선지자이든, 종교개혁가이든, 목사이든 같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말씀을 이용하여 신자들만 늘이고자 하는 것은 거짓 말씀 봉사자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를 향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서로 있기를 소망합니다.

 

에베소 장로들에게 강설하는 바울은 겸손과 눈물의 마음이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바울의 모습을 보면 부끄럽기도 합니다. 오늘날 현실이 사도 바울과 같은 시대는 아니지만, 성경 말씀은 같습니다. 같은 말씀을 전하오니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기를 부탁드립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으로 가면 다시 에베소 교회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 성령으로부터 알았습니다. 그래서 진실한 마음으로 장로들에게 강설과 권면을 했던 것입니다. 자신의 사역은 겸손과 눈물이었습니다. 또한, 장로님들은 바울이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질문해 보겠습니다. 목사만 바울처럼 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교회의 지도자인 장로님들도 같아야 하고, 신자들도 같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는 것입니다. 왜, 입니까? 하나님께나 나를 구원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결국, 영원한 형벌을 당하는 지름길입니다. 그런데도 교회의 현실은 세상과 타협을 하는 모습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교회는 더욱 복음의 강설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람을 구원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피가 모든 사람의 피보다 깨끗하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피가 다른 사람보다 깨끗할 수 있겠습니까? 한국인의 생각이 아닌 유대인의 표현 방식을 생각해야 합니다. 유대인이 생각하는 피는 생명을 의미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 피이기 때문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보다 깨끗하며 구원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피가 깨끗해질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처럼 자신도 겸손과 눈물로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구원을 받은 것을 숨기지 않았던 것처럼 교회는 지상명령을 감당해야 하는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복음은 빛과 같은 것으로 사람을 살리는 영원한 생명의 힘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깨끗한 피를 가지고 있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권면을 통해 “양 떼를 위해 삼가라”고 합니다. 장로들은 주의하며 유의하며 신자들을 돌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자신들이 순결해야 합니다. 그 순결은 양 떼를 살리는 것입니다. 또한,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양 떼 즉 신자들이 다른 길을 가지 않도록 치리하고 돌보고 권면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희생적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한 것처럼 장로는 양 떼를 위해 조심해야 하며 희생적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왜 바울은 희생적 사랑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까? 바울이 떠난 후에 이리가 여러분에게 올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이리는 양 떼를 아끼지 않고 사망의 길로 데리고 간다는 것입니다. 이리는 유혹하는 자들로 양 떼를 죽인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지막 사역의 길을 아는 바울은 고별 강설을 통해 부탁하는 것입니다. 이리는 어그러진 말을 사용하여 양 떼를 죽음의 길로 인도합니다. 참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신앙 고백하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큰 교회, 작은 교회, 유명한 목사, 유명하지 아니한 목사에게 속해 있어도 참되게 믿지 아니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목사이든, 장로이든, 신자이든 누구나 ‘깨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위해 삼 년 동안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했던 것처럼, 에베소 장로들이나 지팡이교회나 오늘날 다 같은 교회는 기억해야 합니다. 마치 경비병과 같은 파수꾼처럼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를 살리는 것입니다. 교회를 살리는 길은 말씀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다른 주일보다 좀 더 길게 정리를 해 보았습니다. 오늘날 이리와 같은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장로들에게 마지막 고별 강설을 한 후 “개인적인 보범”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제목이 “사도 바울의 개인적인 모범 그것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교회는 성도의 교제를 위해 서로 봉사하며 섬기는 신자들입니다. 서로 돌보며 권면하며 하나의 공동체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입니다. 이런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백성으로 세우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입니다. 말씀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세워져 갈 수 있도록 봉사해야 합니다. 말씀은 성도를 든든히 세울 수 있습니다. 말씀은 구원의 은혜가 성도에게 있습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성도는 서로 봉사의 섬김을 통해 주의 길을 갑니다.

 

사도 바울은 개인적인 모범을 이야기하면서 에베소 교회를 장로들에게 부탁합니다. 오늘 본문 32절을 보시면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저는 여러분을 주와 은혜의 말씀에 부탁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신 것처럼 주님과 하나님 은혜의 말씀에 부탁합니다. 바울의 이 말은 바울 서신에서도 자주 등장합니다. 에베소 교회를 위해 장로들에게 강설과 권면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후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합니다. 하나님께서 인도와 보호하여 주지 않으면 이리로부터 안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사역을 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어떻게 사역을 한 것을 알고 있는 장로들에게 하나님 말씀만 의지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신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말씀에 의지해야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은 하나님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마태복음에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바울은 3년 동안 에베소 교회 사역은 겸손과 눈물이었습니다. 바울이 겸손과 눈물로 전한 것은 ‘은혜의 말씀’이었습니다. 은혜가 중심이 되고 은혜가 핵심이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이 교회를 살리는 것입니다. 바울이 전한 은혜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영접한 장로들은 뭉클했을 것입니다. 마지막 작별의 인사는 이처럼 뭉클하면서도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예배당은 화려하고 말씀은 카리스마적으로 잘 전하지만 현실은 어떠합니까? 예배당이 화려하지 않고, 빈틈이 있더라도 순전한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교회당은 세상의 화려함과 달라야 합니다. 세상을 따라가는 것은 결국 사망의 길로 가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이 장로들에게 부탁한 것은 자신의 모범은 오직 하나님 말씀으로 목회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위한 충성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지도자들의 모든 수고를 사용하셔서 당신님의 교회를 세워 가시기 때입니다. 지도자들의 수고는 하나님 말씀으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주님 이 시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하늘 보좌에서 교회를 통치하시고 있습니다. 이리로부터 이길 힘은 주님 안에서 하나님 말씀을 아는 것입니다. 말씀을 사모하지 않은 교회는 성장하는 것 같지만 결국 패망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성경을 안다는 것은 기업을 상속받는 것입니다. 성경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말씀을 온전히 믿지 아니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특별한 계시가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인을 든든히 세우며 구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심으로 구원하십니다. 구원받은 성도를 기업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라고 합니다. 우리가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값없이 주신 예수님의 구원입니다. 주님의 은총으로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기업이 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 말씀 외에 다른 것을 바라지 않았다는 것을 33절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에베소 장로들에게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신앙인으로 생활하는 우리에게도 하는 말입니다. 주님을 믿는 신자들은 물질적인 것을 탐내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언약의 열 가지 말씀”(십계명)을 떠 오르게 하기도 합니다. 바울의 이런 말은 에베소 장로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 있게 바울은 개인적인 모범을 말한 것입니다. 자신 있게 말함으로 교회가 어떠한 행동을 해야 하는가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일에도 욕심과 유혹으로부터 자족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베드로가 성전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에게 주었던 것은 금과 은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멀리해야 하는 것이 물질의 욕망이 아닌가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바울의 시대나 오늘날 시대에 은과 금 그리고 의복은 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것을 좋아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패망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은과 금을 통해 참된 믿음으로 이웃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증거 하는 힘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사랑하고 부를 축적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은과 금이 없어도 어떻게 했습니까? 34절을 보십시오.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바울 자신이 일해 감당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바울은 천막을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에베소에서도 직접 노동을 하여 자신의 생계 문제를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통행들의 필요까지 채워 주었습니다. 또한, 여러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 바울은 진정한 섬김이 있는 일꾼이었습니다. 계속해서 바울은 35절에서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고 하십니다. 마치 가요의 노래처럼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면서”를 더 오르게 하기도 합니다. 바울이 개인적인 모범을 보여준 것처럼 에베소 교회 장로들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십일조의 정신처럼 고아와 과부 등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 주어야 합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는 것처럼 교회는 그것을 통해 진정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야 합니다. 교회는 물질적인 탐욕으로 성장하고자 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주어야 합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은 복음서에 대한 요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모든 것을 주심으로 구원하신 것처럼 교회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눅6:38a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장로들에게 모든 것을 말한 후 어떻게 합니까? 36절을 보시면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 무엇을 했습니까? 무릎을 끊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힘이 있습니다. 도움을 간절히 바라는 기도의 힘도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 문이 열리도록 하는 힘도 있습니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간절한 마음의 기도입니다. 바울은 기도를 통해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섬김으로 에베소 교회를 사역한 것에 대한 간절함과 동시에 이별의 감정이 드러나 있습니다. 이리로부터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 것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바울의 모습은 애절했을 것입니다. 바울의 기도는 우리가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장로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37절을 보시면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입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면 다시 되돌아올 수 없는 것을 알고 있는 장로들은 바울과 함께 울며 마지막 작별의 입을 맞추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상해도 애절한 표현입니다. 형식적이 입맞춤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의 모든 이야기를 들은 후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내면의 마음을 드러낸 것입니다.

 

마지막 이별은 더욱 애절했습니다. 38절을 보시면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다시는 바울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는 말에 깊이 슬퍼하며, 괴로워하는 마음으로 근심하며 출항하는 것을 보며 전송합니다. 바울을 진심으로 사랑한 에베소 교회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에베소 교회에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에베소 교회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에베소는 오늘날 터키에 속해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 국가가 아니라 이슬람이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먼저 목회자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바울의 말처럼 목회하고 있는가입니다. 또한, 성도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목회자에게만 의지하고 있는가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안전보다 오직 복음을 위해 사역한 일꾼이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서 3년 동안 사역한 힘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힘이었습니다. 사람을 의지하는 바울이 아니었습니다. 개인적인 모범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는 사도였습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만 전함으로 세상 사람을 구원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은과 금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오직 성도가 기업을 상속받을 수 있도록 은혜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오늘날 교회는 어떠합니까? 명예와 권리 그리고 권력을 누리고자 합니다. 바울의 마지막 모범은 오늘날 교회의 모습과 나를 돌아보게 합니다. 이런 시대에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가장 기초적인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왜 예수님을 믿는가입니다. 그것은 나를 살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풍요로운 은과 금을 사모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믿음은 나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쉬운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참되게 믿지 않는다면 에베소 교회처럼 즉 먼 훗날의 모습처럼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바울이 마지막 개인적인 모범과 하나님의 말씀은 나를 살리는 것이며, 세상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교회는 자신의 입장에서 섬김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교통을 하며 주의 재림을 고대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랑을 받는 것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복을 나누어 주는 하나님 나라의 기관 즉 교회가 돼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를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바울은 개인적인 모범을 에베소 교회에서 보여준 것입니다. 바울의 사역을 잘 알고 있는 장로들은 마지막 이별을 함께 기도하며 울었습니다. 그러면서 애절한 마음으로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런 후 예루살렘으로 가는 배를 보며 전송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서로가 존중하며 섬기며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날을 소망하며 겸손과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시험으로부터 승리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재림하는 날 우리에게 승리의 면류관을 주십니다. 그 날을 소망하며 믿음이 길을 가고자 하는 지팡이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는 교회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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