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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5:38-42
강설날짜 2021-04-25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98d_xZB4ezg

악한 자를 대적해야 하는가?(마5:38-42)

 

 

 

지팡이 교회는 개혁 교회를 지향하는 교회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신앙고백 하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무오한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면서 영원히 삼위일체로 존재하시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사람이시다는 것을 믿는 교회입니다. 지팡이 교회만 이런 것을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교회는 우리처럼 같은 고백을 하며 신앙생활 합니다. 교회는 순수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일부 교회는 미끼 전도를 하는 것 같습니다. 전도를 위해 목적 대상물을 정하고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 복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사람만 모이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물량으로 전도하고자 합니다. 순수한 복음만 전하면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인해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전도방법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세상 사람들은 사람을 모으기 위한 미끼 전도법이라는 것을 인식한 것 같습니다. 이단들도 이런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계획적으로 접근하여 전도합니다. 사전에 연습해보며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포섭할 수 있는가를 연구합니다. 이런 시대에 교회는 순수한 복음으로 전해야 하며 삶의 신앙생활에서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 있어서 전도는 예수님께서 지상명령으로 주셨습니다. 전도는 그만큼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을 교회로 불러 모으시기 위해 지상명령 즉 전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무조건 이상한 방법으로 전도만 하면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방법이 중요합니다. 세상에서도 돈을 벌기 위해 이상한 방법을 이용하면 안 됩니다. 그런 것처럼 교회도 같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방법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이상한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교회를 무너지도록 합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 교회는 성경의 말씀을 바르게 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께서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실 것입니다. 복음을 전할 때 어떤 마음으로 전해야 하는가? 즉 동기가 중요합니다. 오늘날 일부 교회에서 하는 전도 방법을 생각할 때 동기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런저런 전도 방법을 배우며 사람만 모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질 공세로 사람을 교회로 데리고 오는 행위들은 동기의 문제이면서도 복음의 본질을 상실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동기가 좋아도 이런 방법은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배당에 모인 사람들을 위해 쇼를 하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오직 주인공은 예수님이십니다. 주인공을 무시하는 행위들은 예배당에서 사라져야 합니다. 어떻게 하든 사람만 모으고자 하는 것은 교회를 무너지도록 합니다. 이런 시대에 교회는 참된 복음만을 전하기 위해 기도하며 성경만을 전해야 합니다. 지팡이 교회는 복음의 능력을 믿으며 생활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복음의 능력을 믿으며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난주 우리는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라는 말씀을 통해 맹세나 서원 같은 것을 함부로 하지 말 것을 강설로 들었습니다. 구약에서 맹세나 서원을 반드시 지켜야 했습니다. 해로일지라도 해야 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맹세를 이용하여 다른 해석으로 전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바른 생각입니다. 하지만, 하늘과 땅과 예루살렘과 머리로 한 것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이런 생각은 사회질서를 무너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를 힘들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무엇이 바른 율법의 정신인가를 알려주셨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전하는 맹세의 해석을 이용하여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거짓과 부패함을 위장하고 속이기 위해 하늘과 예루살렘과 머리 등으로 맹세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속이며 자신의 위기를 모면하고자 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맹세에 대한 실행 능력에 근본적인 문제를 이야기하셨습니다. 과연 우리는 맹세는 온전하게 지킬 수 있습니까? 부패한 사람은 온전하게 지킨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맹세했다면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맹세하기 전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맹세를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의 무능함을 알며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존재를 알라는 것입니다. 율법은 인간을 철저한 회개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산상수훈을 계속 강설해 가고 있습니다. 그중에 오늘은 “악한 자를 대적해야 하는가?”를 강설로 듣고자 합니다. 인생에서 이런 문제는 많이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경의 참뜻을 모르지만, 일부 말씀을 잘 알기도 합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등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는 것은 교회의 본문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율법을 왜곡하여 가르치신 것을 아실 것입니다.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는 말씀을 이용하여 예수님께서는 종교지도자들이 잘못 가르치고 있는 것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하셨습니다. 율법을 완전케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종교지도자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가르쳤는가를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종교지도자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가르쳤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38절을 보시면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입니다. 이러한 “보복의 법”은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백성 가운데 정의를 유지하고 악을 제거하기 위해 세우신 것입니다. 눈에는 눈으로 주신 이유는 부적절한 형벌을 방지하기 위한 의도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보복의 수단으로 만들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비슷한 방법을 이용하는 나라도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 당시 종교지도자들도 보복의 수단으로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당한 만큼 다른 사람도 당해야 한다고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율법의 정신과 바른 해석을 주신 것입니다. 사실 38절 말씀은 문자적으로 본다면 구약의 말씀입니다.(출21:24, 레24:20, 신19:21) 그러다 보니 유대인들은 율법에 따라 눈에는 눈으로 갚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약의 말씀처럼 해야 하는 것이 바른 생각 아닙니까? 과연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정신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 법은 원래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백성 가운데 악을 제거하시고 정의를 세우시며 재판관들이 공정하게 판결하게 하시기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법을 통해 죄를 지은 자가 죄질에 따라 적당한 형벌을 당하도록 하셨습니다. 지나친 벌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습니다. 공정한 재판을 하게 하려고 주신 것이었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지 못한 유대인들은 보복법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정신이었습니다.

 

 

사람이 생각할 때 눈에는 눈은 타당한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예수님의 생각은 이상적이고 율법의 정신과 거리가 먼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과연 그런가를 오늘 본문을 통해 바르게 이해하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내 생각을 내려놓고 따라야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 참된 해석을 가르쳐주신 이유와 의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주신 이유는 사사로운 보복법이나 내가 당한 것을 갚아주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출21:22절을 보시면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임신한 여인을 쳐서 낙태하게 하였으나 다른 해가 없으면 그 남편의 청구대로 반드시 벌금을 내되 재판장의 판결을 따라 낼 것이니라” 즉 내가 직접 눈에는 눈이 아니라 법정에서 재판장의 판결을 따르도록 하셨습니다. 공의를 바르게 재판장이 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재판장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공의로 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다운 자질입니다. 교회도 이와 같습니다. 교회에 주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권징입니다. 권징은 하나님의 백성을 바르게 세우도록 하는 것입니다. 무조건 벌만 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온전한 백성으로 바르게 생활할 수 있게 하려고 주신 것입니다. 교회라고 부를 때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말씀의 강설과 성례 그리고 기도 즉 권징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홈페이지 교회론 강설에 올러져 있습니다.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눈에는 눈, 이는 이에 대해서 39절을 보시면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라고 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 보복법을 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보복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악한 자로 인해 억울한 일을 당해도 악으로 갚지 말라는 것입니다. 공적인 기관을 통해서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에서는 가족이 피살되었을 경우는 예외로 하고 있습니다.(민35:18-21) 하여튼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야 하는 백성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구약의 말씀과 배치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레19:18절을 보시면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율법을 주신 배경은 복수 행위가 결정적으로 끝을 맺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와 공의에 입각한 사법 제도를 만들기 위해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결국,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보복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악을 악으로 개인적으로 갚지 말라는 것입니다. 악한 자에서 대적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의도는 더 깊은 배려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나도 보복법으로 보복당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법정에서 하라는 것입니다. 악한 자가 돌이킬 수 있도록 하며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하시기 위해 네 가지의 예를 드시면 가르쳐 주셨습니다. 첫째는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대로 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손짓을 하면 나도 손짓을 하는 것이 사람은 습성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신이 아니기에 손짓을 하기가 더 쉽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까? 정당방위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까? 악에서 악을 피하라는 것입니까? 많은 질문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하신 의도는 공격하는 자를 향한 사랑의 행동입니다. 공격을 당한 자가 추가적인 공격을 시도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의도입니다. 법정에서 재판장의 결과를 통해 공의가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은 참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 이상의 행동입니다. 악을 선으로 갚으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계속 당하고만 있으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관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사법이 있고 교회에는 권징이 있습니다. 결국 사랑입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제자들은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 제자의 삶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산상수훈은 세상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과 달라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권세와 타협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악한 자를 품는 것이 교회입니다. 40절을 보시면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네 가지 예 중에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악한 자에서 절대적으로 양보하고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사랑으로 배려하라는 메시지입니다. 도울 일이 있으면 힘닿는 대로 서로 사랑으로 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세상 사람을 불쌍히 여기며 긍휼함으로 도우라는 것입니다. 악을 선으로 이기며 교회를 세우라는 것입니다. 억울하게 당하는 나에게 악한 자가 속옷을 달라고 하면 줄 수 있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겉옷까지도 주라고 하십니다. 황당한 말씀입니다. 그러면 왜 겉옷을 주라고 하신 것입니까?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속옷보다 겉옷이 더 중요했습니다. 겉옷은 비싸기도 하지만, 여행을 다닐 때 텐트로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잠을 잘 때 덮고 자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겉옷은 유대인들에게 중요한 물품이었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겉옷을 준다는 것은 희생이며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도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5:43-48절 말씀에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겉옷을 내어주라는 것은 불쌍한 사람을 긍휼히 여기라는 메시지이며 너희는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신뢰하며 신앙생활 하는 교회이기를 소망합니다.

 

 

네 가지 예 중에 세 번째는 무엇인지 아십니까? 41절을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오늘날에도 으슥한 길을 혼자 걷는다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보다 과거의 길은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짐승도 만날 수 있고, 강도도 만날 수 있습니다. 길을 걸을 때 혼자보다 동행하는 것이 더 안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 리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오리였습니다. 오 리는 로마 군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 리는 대체로 7.5킬로미터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당시 로마 군인은 식민지 사람들에게 강제로 할 수 있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짐을 지우고 오리를 가게 할 힘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로마 군인은 구레네 시몬에게 억지로 십자가를 지도록 했습니다. 법적으로 이상할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거리는 법적으로 금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오 리만 가도록 하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십 리를 동행하라고 하십니다. 악한 자라 할지라도 도움을 요구하면 도움을 주라는 것입니다. 악한 자에게 앙심과 분노가 있더라도 도움을 줌으로 제자 삼으라는 메시지입니다. 선을 행함으로 복음이 심어지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아야 하는 네 가지 예 중 마지막은 42절입니다.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입니다. 이 말씀 안에 지금까지의 가르침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구하는 자와 꾸고자 하는 자는 가난하여서 물질을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약자를 위해 보호해 주어야 할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구하는 자와 꾸고자 하는 자를 이용하여 예수님께서는 악한 자와 연결하셨습니다. 여기에는 의도가 있습니다. 나에게 악한 자가 핍박하면서 도움을 요구할 때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악한 자에게 원한을 품지 말고 도울 일이 있으면 하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는 악한 자를 도울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며 힘을 달라고 해야 합니다. 악한 자에게 보복법으로 대항하지 말고 긍휼과 사랑으로 복음을 심으라는 것입니다. 악은 악으로 이길 수 없습니다. 오히려 악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선 즉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실 것을 믿으며 악을 선으로 이겨야 합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을 할 것 같습니다. 이웃이 나에게 무엇을 구하든지 주어야 하는가? 악한 자에게도 주어야 하는가? 이 말씀을 무조건 문자로만 이해해도 안 됩니다. 만약 강도가 살인하기 위해 칼을 달라고 하면 주시겠습니까? 돈을 이용해 악한 것을 하고자 한다면 주시겠습니까? 문자적으로 볼 때는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런 의도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은 상대방에게 해로운 것이 될 것을 주라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에게 해가 되지 않는 것을 주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성도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사랑으로 악한 자가 돌이킬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생각하며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말씀은 모세의 율법과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늘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온전하게 이루기 위한 것이며 바르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종교지도자들은 보복법을 이용하여 원수를 사랑하지 않고, 복수하라고 했습니다. 복수를 장려하는 것은 성경이 말씀하시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를 어기는 것입니다. 눈에는 눈, 이는 이를 오해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이 요구하는 정신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도록 가르쳐 주셨습니다. 산상수훈은 우리가 누구인가를 알도록 하시고 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백성이니 세상에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악한 자를 대적해야 하는가? 그것은 개인이 보복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악한 자가 변화될 수 있도록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계속 악한 자를 두어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법정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자들의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공의를 넘어서는 은혜의 원리에 따라서 생활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웃과의 삶 속에서 가져야 할 태도를 말씀하여 주심으로 복음이 심어지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지상명령을 감당할 수 있도록 더욱 성숙한 신자들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악한 세상 속에 신자들이 생활하다 보면 핍박과 억울함을 당할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내하며 선한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악을 갚아 줄 것을 믿으면 하나님만 신뢰해야 합니다. 산상수훈에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의를 위해 핍박받는 자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복되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복음으로 꽃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실천하기에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럴수록 하나님만 바라보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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