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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6:1-4
강설날짜 2021-05-02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하는 이유?(마6:1-4)

 

 

그리스도인에게 믿음은 구원을 위해서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교회인 성도는 구원을 위해서 믿음으로 활동합니다. 나의 마음대로 삶의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생활합니다. 내 마음대로 인생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삶이 아닙니다. 내 마음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생활하고자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타종교는 자신의 선행을 통해 복을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선행을 통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교회는 신자들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성경을 온전하게 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빠르게 전하는 시대라도 바르게 전하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과거보다 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마음과 정신으로 점점 힘들어지는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마음이 지치고 힘들어지기도 합니다. 돈이 많으면 마음이 편해지리라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돈이 있다고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이런 시대에 어떤 분들은 종교에서 위로와 평안을 얻고자 합니다. 이것을 이용하여 일부 목회자는 성경의 말씀을 이용하여 위로와 평안을 주고자 합니다. 위로와 평안을 받고자 하는 사람에게 말씀을 이용하여 전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입니까?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위로와 평안만 주고자 하는 것은 세상의 종교와 같습니다. 기독교는 세상의 종교와 다릅니다. 기독교는 성경의 말씀을 이용하여 참된 복음의 진리만을 전해야 합니다. 사람이 듣기 싫어도 회개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회개는 누구나 듣기 싫어하는 메시지이지만 교회는 전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는 당신님의 백성에게 구원을 주시며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인도하십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공동체로서 교제하는 거룩한 성전입니다. 사귐의 공동체를 위해 위로와 평안만 전하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감정적 흥분을 이용하여 교회를 성장시키고자 하는 것은 교회가 해야 할 일을 모르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배님들은 교회를 회복하기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선배님들께서 남기어 주신 유산을 교회는 기억하며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교회는 늘 진리의 말씀에 대해 고민을 하며 사귐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마다 성품과 능력이 다릅니다. 그것을 통해 서로 섬겨야 하는 사귐의 공동체입니다. 사귐의 공동체는 주님으로 인해 구원받은 백성이기에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성도는 아직 참된 복음을 모르는 신자을 위해 믿음의 본질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섬김은 믿음의 본질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갈망하는 백성들에게 한 없는 은혜를 주심으로 주 안에서 성장하도록 하십니다. 그럴 때 신자는 회심을 통해 하나님만 바라보며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며 지상명령을 감당하는 성도로 성장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믿고 신앙생활 하는 지팡이 교회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 배부름을 얻는 나라를 믿습니다. 그러기에 심령이 가난하며 애통하며 신앙생활 하고 있습니다. 팬데믹 시대에 우리는 더욱 주님의 은혜를 갈망하며 지상명령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상명령을 감당하기 위해 예배당에 모여 말씀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긍휼히 여기어 주시며 은혜로 인도하여 주실 것을 믿습니다. 지난주 강설은 “이웃과 원수를 사랑하라”입니다. 자신을 희생하며 이웃과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천국이 무엇인가를 알려주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께서는 우선 당신님이 율법과 선지자의 가르침을 부인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잘못 알고 있는 율법을 통해 참뜻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과 선지자를 부인하거나 상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같은 뜻을 드러내며 온전하게 하기 위한 것임을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대조해 가며 참된 의미를 알려주셨습니다. 우리도 말씀을 통해 참된 복음이 무엇인지를 전해야 합니다. 사람을 즐겁게 하려고 말씀을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복음을 전하며 예수님을 믿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악을 미워하시지만, 원수를 미워하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선으로 악을 이기며 원수를 사랑하시라고 하셨습니다. 악한 자를 미워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 아니며, 원수를 원수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거기에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아가페였던 것처럼 우리도 이웃과 원수를 아가페와 같이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율법의 참뜻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에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는 영광의 성도입니다. 우리는 이웃과 원수를 사랑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방인도 세리도 사랑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는 교회는 더욱 사랑해야 하는 것이 기본자세입니다. 악한 자는 악으로 이기고자 하는 시대에 교회는 선으로 악을 이기며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은 산상수훈의 연속선상에서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하는 이유”를 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른손도 모르게 왼손으로 구제하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인만 아니라 세상 사람도 알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만큼 복음의 메시지가 세상에 많이 알려져 있다는 간접증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교회는 쇠퇴하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입니다.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는 말씀을 잘 알고 있어도 차분한 마음으로 강설을 듣는 성도이기를 바랍니다. 먼저 오늘 본문 1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이 말씀은 마6:2-18절까지의 도입부 역할을 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사람 앞에서 의를 행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게 되는 주제를 확립하도록 하는 구절입니다. 유대인들은 종교적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첫째는 의입니다.(2-4절) 둘째는 기도이며(5-15) 셋째는 금식입니다.(16-18) 이것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1절을 통해 주제를 확립하도록 하는 것이며 도입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 앞에서 선을 행한다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상을 얻지 못하도록 한다니 놀랍지 않습니까? 동기와 목적이 중요하는 것을 마5장을 통해 알았을 것입니다. 외식하며 이웃을 섬기며 선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자가 할 일이 아닙니다. 사람을 의식하며 눈속임이나 눈가림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상속받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종교지도자들보다 더 높은 의에 수준을 요구하십니다.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섬기는 것은 외식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보다 더 높은 의를 요구하는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이 있을 정도인데 주님께서는 너무하시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1절을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여기서 우리는 합리적인 사고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적과 동기가 중요하십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즉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그리고 인정받으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입니다.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하는 행동들은 위선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이 연약하다는 것을 아시기에 위선 하지 못하도록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의란 형식적인 의를 말합니다. 진실된 의가 아니라 위선적인 의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의 위선적인 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목적과 동기가 선한 의를 드러내야 합니다. 지팡이 교회는 사람들로부터 칭찬받기 위해 선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합당한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목적과 동기가 위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을 해야 합니다. 위선적인 의는 불신앙에서 나오는 것임을 인식하며 신앙생활 하기를 소망합니다.

 

 

사람에게 보이려는 위선적인 의를 행할 때 하나님께서는 상을 얻지 못하도록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상이라는 의미를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위선적인 일을 하면서도 대가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마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의미와 가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위선자에게 오히려 멸망의 문 즉 지옥으로 가라고 하실 것입니다. 대가를 바라는 상이 아니라 오히려 심판을 당하는 자가 됩니다. 그래서 의미와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동기와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대가로 가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가는 나라입니다. 값없이 주어지는 나라의 상이 구원입니다.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주님께서는 의를 행하는 목적과 동기 즉 기본자세를 말씀하신 후 2절부터 구제라는 예를 들어 가르쳐주셨습니다. 2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입니다. 구제는 기독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구제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아무런 조건 없이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대가를 바라고 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구제하면서 나를 자랑하는 것은 외식하는 행동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을 베풀어주신 것처럼 우리도 값없이 조건 없이 주 안에서 구제해야 하는 교회 즉 성도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예수님께서 외식하는 자들처럼 구제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늘 기억해야 합니다. 사실 유대인들도 구제를 중요시 생각했습니다. 구제를 중요시하는 유대인들을 예수님께서는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외식하는 자들은 고대 사회에서 이런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다양한 역할을 하기 위해 다양한 가면을 쓴 배우들을 가리키는 단어였습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는 종교지도자들 특히 바리새인들에게 적용하셨습니다. 위선적인 행동을 하는 자들을 조심하라는 경고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인 자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가면을 쓰고 연극을 하는 자들과 같았습니다. 구제의 동기와 목적이 자신들의 신분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난한 자들의 마음을 생각하며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며 의인이라는 소리를 듣고자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며 외식하는 자입니다.

 

 

주님께서는 외식하는 자들을 향해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자기의 상’을 이미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외식하는 자들 특히 종교지도자들은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얻으려고 하는 자였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구제했습니다. 예를 들면 회당과 거리였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보여줘야 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너희들은 이미 상을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으니 이미 상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로부터는 종교지도자들은 인정을 받으며 상을 받지만,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의 상을 받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구원을 얻지 못하면 상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의를 행하지만, 유익이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이해하고 있다면 어떤 일을 하든지 목적과 동기가 누구를 위해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종교지도자들처럼 하는 외식은 비극적인 결말을 당하는 일이요 덧없는 삶의 생활을 한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구제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기 위해 나팔을 불었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자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신분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가짜 하나님 나라를 믿는 것입니다. 참된 하나님 나라를 모르는 자들이 오히려 종교지도자들이라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입니다.

 

 

주님께서는 외식하는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을 이야기하신 후 3절에서는 어떻게 구제하라고 하셨습니까? 3절을 보시면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즉 오른손이 한 것을 왼손도 모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간략하게 말하는 은밀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도 모르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만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은밀하게 구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누구나 구제를 할 때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상을 바라지 않고 해야 합니다. 목적과 동기가 선한 마음으로 해야 하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입니다. 또한, 동기와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자연스럽게 알고자 할 것입니다. 그런데 원어에는 손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너의 오른쪽이 하는 것을 너의 왼쪽이 알지 못하게 하라”입니다. 우리말 번역에서 손이 첨가된 것입니다. 그래도 문맥으로 이해가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3절 말씀을 통해 구제만이 아니라 구제를 계획하거나 동정심을 갖는 것조차 은밀하게 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사람들은 외식하는 자들보다 겸손한 사람을 더 좋아하는 것이 마음입니다. 그러니 교회는 늘 은밀하면서도 겸손한 마음으로 선한 일을 해야 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은밀하게 구제를 해도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 다 아시기 때문에 구원으로 상을 주십니다. 구원받기 위해 그리스도인은 선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자연스럽게 마땅히 해야 하는 신분입니다.

 

 

마지막 4절을 통해 우리는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4절을 보시면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입니다.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하실 것 같습니다. 구제를 은밀하게 어떻게 합니까? 착한 마음으로 왼손도 모르게 구제를 해도 사람들은 언제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은밀하게 하라는 말씀은 사람들로부터 상을 바라며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외식하는 종교지도자들과 같은 것입니다. 선한 마음으로 할 때 사람들은 교회를 향해 외식하는 자들이 아니요 착한 마음으로 선행하는 성도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아는 것입니다. 은밀하게 하라는 것은 구제할 때에 남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선한 마음으로 은밀하게 하는 구제는 의로운 열매를 맺는 것이요 하나님 나라가 증거되는 것입니다. 구제하는 성도를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지 않으시고 구원의 상으로 영원한 안식을 누리도록 하십니다. 구원의 상은 이 세상에서 느낄 수 없는 극치의 기쁨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기쁨과 비교할 수 없는 극치의 기쁨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스스로 의를 세우려고 했지만, 주님께서는 참된 마음으로 구제하는 자들에게 당신님께서 함께 하시며 구원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지팡이 교회는 사람에게 보이게 하려고 종교지도자들처럼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과 동기가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해 왼손이 모르게 은밀한 중에 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비록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믿으며 신앙생활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의 교회를 세워가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성도는 삶의 생활에서 하나님만이 나의 자랑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주의 길을 가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를 행하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선한 마음으로 은밀한 중에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 하는 우리는 종교지도자들처럼 나팔을 불며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할 수 없습니다. 성도는 자기 자신의 영광을 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자연스럽게 가난한 자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상을 주십니다. 대가로 주시는 상은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나를 자랑하는 것은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받으며 상을 받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영원한 안식처가 아니라 영원한 형벌이 있는 지옥으로 간다면 지금 나의 삶은 헛된 것입니다. 연기와 같이 사라지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을 위해 지상명령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종교지도자들처럼 외식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길은 구제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구제했다는 사실을 우리 자신도 거의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은밀히 해야 합니다. 은밀한 중에 왼손도 모르게 해야 하는 이유를 아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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