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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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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6:12
강설날짜 2021-06-06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YbID-1wCN0U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6:12)

 

 

 

지팡이 교회는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를 아실 것이라 믿습니다.(눅18:1-8) 과부의 기도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낙심하지 아니하며 끈질기게 기도하는 믿음입니다. 1절에서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비유로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이렇게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가 있었습니다. 마지막 시대를 생활하는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가 중요하니 언제나 깨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생활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생활은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낙심하다 보면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지 않고 다시 세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항상 기도할 때 낙심하지 않으며 하나님 나라의 삶을 감당하는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명심할 수 있도록 하나님과 교제하는 신뢰의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과부처럼 끈질기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과부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끈질기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과부의 기도에서 중요한 메시지는 하나님 나라에 있습니다. 과부는 억울하게 당한 것을 재판장에게 풀어달라고 끈질기게 구했습니다. 과부는 재판장에게 원한을 풀어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했습니다. 재판장은 계속된 과부의 요구는 정당한 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과부는 3절에서 “나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했습니다. 그것에 대한 응답으로 재판장은 5절에서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고 했습니다. 재판장이 말한 원어의 의미를 좀 더 자세히 생각하면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의 정당한 권리를 옹호한다”입니다. 과부가 빼앗긴 것은 하나님 나라였기 때문에 끊임없이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지팡이 교회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과부처럼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현실의 삶에서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간구해야 합니다. 과부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과부는 하나님 나라를 아는 백성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알기에 끊임없이 기도했습니다.

 

 

과부가 기도한 것처럼 지팡이 교회도 같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하나님 나라가 중요하기에 당신님께서는 기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주기도문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주기도문보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가 더 좋은 의미입니다. 과부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신자들에게 주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할 수 있도록 가르쳐주셨습니다.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주님께서는 매일매일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는 지난주 강설이었습니다. 과부의 기도처럼 지팡이 교회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생각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매일 기억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일용할 양식을 구함으로 늘 하나님께서 임마누엘로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알도록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서 가장 먼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구한 후 우리가 영육 간의 생존을 위해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일용할 양식은 나를 위한 간구이면서도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을 알도록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생존에 필요한 양식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수고하여 양식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심으로 생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주심으로 당신님께서 우리를 먹여 살리신다는 뜻이 주기도문에 나타나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매일 구하도록 하심으로 날마다 주님의 은혜로 새롭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지팡이 교회는 알아야 합니다. 죄로 타락한 연약한 백성을 위해 주신 일용할 양식은 하나님의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기에 일용할 양식을 간구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일용할 양식을 구하도록 했습니다. 일용할 양식은 삶의 생활에서 살아갈 힘과 은혜를 알도록 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나와 임마누엘로 동행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아는 지팡이 교회는 오늘 강설을 통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를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주기도문을 통해 죄 용서를 구하는 기도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죄로 타락한 사람이 날마다 살아가는 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죄 용서의 은혜라는 것을 알도록 하셨습니다. 죄는 사람에게 가장 치명적인 독과 같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독입니다. 독과 같은 죄는 하나님과 교제하지 못하도록 하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멀어지도록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죄 용서를 구하도록 하심으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시고 계십니다. 이것을 잘 알 수 있도록 주님께서는 12절에서 “그리고”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말 번역에는 없지만, 원문에는 “그리고”가 있습니다. 그리고의 의미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말에 번역되어 있지 않아 아쉽습니다. 그리고는 사람이 음식으로만 생활할 힘의 근원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만이 아니라 우리는 죄의 용서 그리고 시험에서 건짐 받는 것까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죄로부터 타락되지 않도록 하나님께 간구함으로 신앙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을 알도록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서 “우리 죄”라는 것은 “채무”를 의미합니다. 채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단지 경제적인 채무를 의미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채무는 우리가 하나님께 갚을 수 없는 엄청난 빚이나 의무를 말합니다. 하나님께 죄 즉 채무를 탕감해 주신 그 상태로 유지해 달라는 것입니다. 죄로부터 구원함을 받은 우리를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 않도록 해 달라는 간구입니다. 이것을 알 수 있도록 성경의 난하주를 보시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난하주 2번을 보시면 “빚진 자를 탕감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빚도 탕감하여 주시옵고”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채무 즉 빚을 졌습니다. 이것을 아는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채무를 탕감하여 주신 것처럼 이웃의 죄도 탕감하여 주실 것을 기도해야 합니다. 이웃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는 간구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나도 죄로 물들지 않도록 간구하는 것이며, 이웃의 채무도 탕감하여 주심으로 구원해 달라는 간구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것을 마무리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기도를 하다 보면 우리는 양심의 가책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나의 죄는 하나님께 조건 없는 사랑으로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정작 이웃에게는 어떠합니까? 하나님께 한없는 죄의 용서를 받았지만, 나에게 채무가 있는 사람의 죄는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처럼 용서할 수 있습니까? 이것이 사람의 한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한계를 아시는 주님께서는 주기도문을 통해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일용할 양식까지는 기도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죄 지은 자” 즉 우리가 우리에게 채무를 지은 자를 사하여달라고 할 때 기도가 막힐 것 같습니다. 내가 스스로 나에게 죄 즉 채무를 지은 자를 용서해 줄 수 있는가?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하여 준 것과 나에게 죄를 지은 자와 서로 어떠한 연결이 있는가? 그리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는 우리가 이웃의 죄를 용서하는 조건으로 사하여 주는 것인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게 알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일반 은총으로 생각하면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이웃에 나에게 진실한 마음으로 죄를 고백하면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어려운 일이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신뢰의 고백을 하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무제한으로 용서하라는 의미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상상할 수 없는 채무를 하나님으로부터 탕감받은 백성입니다. 이것을 알고 있다면 용서의 의미를 알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는 회개의 회심을 한 것처럼 우리의 이웃도 이와 같은 마음으로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른 마음이요 자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죄를 용서받았지만, 계속해서 용서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그런 것처럼 나와 이웃의 관계도 같습니다. 장성한 신앙으로 성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죄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종교와 다른 것이 기독교입니다. 주기도문은 이방 종교처럼 중언부언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기도문은 나의 행복을 위한 주문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은 구원의 감격이 있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의 가치관이 있습니다. 주기도문을 사용하여 기도한다는 것은 무거운 심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주기도문을 할 때 어떠한 마음입니까? 무거운 심정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외우는 것이 현실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같은 마음이 아닙니다. 사람과 하나님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알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교회입니다.

 

 

죄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십시오. 매우 불쾌합니다. 죄라는 단어만 생각해도 싫습니다. 죄는 불법을 의미하며 사람의 관계를 멀어지도록 합니다. 사람과 사람만이 아니라 하나님과도 멀어지게 합니다. 죄는 이처럼 무섭습니다. 사람이 온전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죄입니다. 죄는 불순종입니다. 죄로 물든 자들은 하나님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죄로 물든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심으로 새로운 삶의 생활을 통해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삶을 생활하도록 하셨습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를 통해 나 자신의 속에 있는 악의 성격과 부패 등을 어떻게 해 달라는 말보다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채무를 진 상태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 자신이 어떠한 존재를 아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과 진리”로 감사의 삶을 생활할 힘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의 죄 즉 채무를 사하여 주시며 양자로 삼았습니다. 돌아온 탕자처럼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며 자녀로 삼은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끊임없이 용서하시며 바른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기도문을 통해 죄에 대해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없는 무한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십니다. 양자로 삼은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보호하여 주십니다.

 

 

지팡이 교회는 늘 언제나 하나님께 대하여 지은 죄가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백성입니다. 이것을 아는 우리는 진정한 성화의 과정을 통해 철저한 자기 부정과 겸손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영광이 있어야 합니다. 감사의 영광이 있는 교회는 하나님께 삶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생활을 합니다. 이런 삶을 생활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면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신앙생활 하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 뜻대로 생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생활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습니다. 의지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생활합니다. 매일매일 일용할 양식을 구하면서 하나님만이 나의 구원자요 필요한 것을 주시는 신으로 인정합니다. 세상의 신과 구별된 유일신이신 하나님을 믿고 인정하며 삶으로 지상명령을 감당합니다.

 

 

지팡이 교회는 하나님을 아는 지혜 있는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죄 즉 채무를 탕감하여 주신 것을 알기 때문에 청지기의 삶으로 영광을 올려드리는 교회입니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하려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며 주의 길을 가는 교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고 기도하며 나의 마음으로 탄식합니다. 탄식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십시오. 하나님 앞에 누가 자유로운 영혼이겠습니까? 우리는 무결점의 삶이 될 수 없습니다. 흠 없는 자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우리는 주기도문을 통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탕감하여 주신 것처럼 우리도 이웃의 죄를 탕감하여 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아는 사람은 이웃과의 관계도 아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오늘 말씀을 각자 정리해 보십시오. 저는 이렇게 정리하고자 합니다. 하나님께 용서와 은혜를 구하라 하시면서 동시에 우리가 이웃의 죄 즉 채무를 용서한 것을 우리 입으로 시인하도록 주기도문을 통해 알도록 하십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문은 우리가 누구인가를 알도록 하십니다. 주기도문 안에는 하나님의 용서 즉 사랑과 고귀한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그리고 우리와 이웃과의 관계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없는 용서를 통해 우리가 누구인가를 알도록 하셨습니다. 무한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교회는 지상명령을 감당하며 무한 사랑을 전파하는 사명자입니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일용할 양식인 것처럼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받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를 아뢰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엄청난 채무를 탕감받은 존재입니다.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채무를 하나님으로부터 탕감받았습니다. 무한한 사랑으로 탕감받은 존재이기에 주기도문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무한한 탕감을 받은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내 안에 있습니다. 그 은혜를 알기에 이웃을 용서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기 때문에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긍휼을 입은 백성이 긍휼을 베푸는 백성으로 살아가는 힘이 있습니다. 늘 하나님께 기도하며 교제하는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우리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에서 내가 과연 죄지은 자를 다 용서하였는가?를 통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도록 하십니다.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심으로 주의 길을 가도록 하십니다. 이것을 아는 우리는 행복한 교회라는 것을 인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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