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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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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6:19-23
강설날짜 2021-06-27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hELOy565eWw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마6:19-23)

 

 

교회는 바른 용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지팡이 교회는 예배당 이전 후 유리창에(간판용) 지팡이교회당이라고 했습니다. 지팡이교회당에서 신자들이 예배하는 장소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가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 사람들이 교회당이라고 하면 이단들이 사용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만이 아니라 신자들도 오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다 하더라고 기존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신자들도 오해하니 참으로 불쌍한 시대입니다.

 

 

지팡이교회당이 바른 용어입니다. 교회당과 교회를 구분하지 못하는 시대 누구의 책임입니까? 목사의 잘못 아니겠습니까? 교회는 바른 용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바른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므로 오히려 이단들이 더 사용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신천지(새 하늘과 새 땅), 하나님의 교회, 여호와의 증인, 파수꾼 등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든 교회가 교회당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면 좋겠습니다. 지팡이교회당 또는 지팡이교회 예배당이라고 사용하면 좋겠습니다. 한국 교회 초기는 교회당 또는 예배당이라고 사용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건물을 교회라고 사용하니,,,,, 건물이 어떻게 신앙 고백합니까? 교회가 신앙고백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성도입니다. 교회는 신부이기도 합니다.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해 보십시오. 신랑은 예수인데 신랑이 건물과 결혼합니까?

 

 

지팡이 교회는 바르게 믿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바른길을 가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교회 아닌지 고민해 보십시오. 이 세상의 건물을 사랑하지 마시고 하늘에 소망을 두며 지상명령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팡이 교회는 세상을 위하여 진리와 생명의 빛을 드러내며 신앙 생활할 때 참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입니다. 지상명령을 감당하는 우리는 지난주 말씀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금식에 관한 강설로 “외식으로 금식하지 말라”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의 연속 선상에서 구제와 기도 그리고 금식을 이야기하여 주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인 신자들이 바른 마음으로 주의 길을 가도록 하셨습니다. 특히 금식은 일정한 기간 일시적으로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합니다. 금식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중요합니다. 우리만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도 금식을 매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금식은 이방인과 같은 마음으로 하다 보니 구약의 말씀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특히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의를 사람들에게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금식을 해야 했지만, 바리새인들은 자신들만의 행복을 위해 외식으로 금식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구약에서 말씀하는 포괄적인 금식에 대해 바른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것을 잘 알고 있는 예수님께서는 금식에 대한 바른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예수님께서 금식에 관한 가르침을 주신 것을 기억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금식에 대한 바른 자세는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신앙생활 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마음이 있다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백성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타락한 사람의 마음입니다. 이런 자들은 이 세상에서 상을 이미 받은 자입니다. 하지만, 영원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는 바리새인과 같은 마음으로 금식하고 싶습니까? 반대로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금식하며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당연히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본분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의식과 행함은 그리스도인의 바른 자세입니다. 이런 교회야말로 행복한 교회입니다.

 

 

바른 마음으로 교회의 사명을 다하고자 하는 지팡이 교회는 오늘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는 강설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들으며 전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둘 수 있도록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보물을 많이 가지고자 안전한 곳에 쌓아두며 보관하고자 합니다. 그와 반대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인 성도는 이 세상에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쌓아두기를 소망하며 하나님만 믿으며 주의 사명을 감당하고자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보물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과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보물의 가치는 서로 다릅니다. 지팡이 교회는 하나님 나라만 믿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물을 쌓아두며 우리를 영원한 안식처로 인도하여 주실 것을 믿으며 지상명령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둘 수 있도록 잘못된 행위에 대해 경고하시며 올바른 행위가 무엇인가를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기억에 남을 만한 “어떤 사상이나 진리 따위를 예리하고 간결하게 표현”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잠언과 같습니다. 잠언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훈계가 되는 짧은 말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둘 수 있도록 기억에 남을 말한 말씀을 하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주의 길을 가도록 하셨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삶의 목표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아니겠습니까? 이 세상은 영원한 삶이 없습니다. 그와 반대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영원한 안식처에서 영원한 삶을 생활하며 하나님께 경배하는 삶입니다.

 

 

보물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가장 귀중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는 것은 ‘당연하지’라고 할 것입니다. 어떤 분에게는 돈이 될 수 있고, 금이 될 수 있고, 집 등이 될 수 있습니다. 각자 좋아하는 것을 위해 평생을 바쳐 힘쓰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은 결국 죽음이라는 것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사망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들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 많이 모으고자 합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위해 모으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하늘에 쌓아둘 수 있도록 잠언과 같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을 알 수 있도록 우리는 오늘 본문 19절을 보십시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입니다. 보물은 세상 사람이든 그리스도인이든 누구나 삶을 추구하는 목적과 목표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생활하고 있는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생활하다 보면 이 세상의 보물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보물이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면 이 세상을 하나님보다 더 좋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사람입니까? 이 세상에 보물을 쌓아두는 신자입니까? 그와 반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는 신자입니까?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보물을 쌓아두며 질 좋은 삶을 것인지 아니면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며 영원한 안식처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것인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지팡이 교회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당연합니다. 그것은 하늘에 보물을 쌓아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그와 반대로 세상 사람들은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 또는 세상 즉 마귀가 좋아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을 믿기로 한 사람은 이 세상의 보물에서 하늘에 보물을 쌓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오해하지 마십시오. 나의 공로와 행위 등으로 하늘에 보화를 쌓아두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대로 나의 삶의 생활을 자연스럽게 신앙 생활할 때 하나님께서 보물을 쌓아두십니다. 사람은 행위와 공로 등으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니 나 자신을 자랑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며 주의 길을 가야 합니다.

 

 

고대 사회에서 신전은 소중한 물품을 보관해 두는 장소였습니다. 왜 이런 의미가 있었던 것입니까? 그 이유는 사람들은 신전에 보물 창고로 건축하여 그곳에 세금으로 받은 물건과 돈을 저장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소중한 물품을 보관하는 의미로 생각했습니다. 일반 시민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안전한 곳에 보물을 보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포괄적인 의미에서 땅에 즉 이 세상에 보물을 쌓아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귀중한 보물을 땅에 쌓아두기를 그만두라는 것은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보물을 축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행복을 위해 보물을 쌓아두는 것은 무서운 해로움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주의 길을 가는 성도는 해로운 것이 될 수 있는 것을 멀리해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결국 사망의 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는 보물을 쌓아두지 않고 그것을 잘 사용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쌓아두지 않고 사람들에게 베풀며 주의 길을 가는 성도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주님의 제자입니다. 주님의 제자라면 이 세상의 보물을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베풀어야 합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질문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어떻게 해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가였습니다. 우리는 부자 청년의 이야기를 알기 때문에 보물을 이 세상에 쌓아두지 아니하며 복음을 위해 사용하는 성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고 하시며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 한다고 하셨습니다. 좀은 구약성경에서 파괴를 상징하며(사50:9, 욥4:19) 동록은 구약성경에서 먹어 없애 버리거나 부식시키는 행위와 연관되어 있습니다.(욥13:28, 호5:12) 그리고 해하며는 파괴에 대한 매우 강한 표현입니다. 마지막으로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는 것은 알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집은 진흙으로 만들어져서 도둑이 구멍을 뚫고 귀중한 것을 도적질해가는 때도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말씀을 하셨지만, 땅에 쌓아둔 보물은 순식간에 없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이 세상의 보물은 안전하지 않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보물은 안전하며 썩어 없어질 수 없는 귀중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보물을 쌓아두지 말라는 예수님께서는 20절에서 어디에 쌓아두라고 하셨습니까? 20절을 보시면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입니다. 어디입니까? 하늘입니다. 하늘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늘에 쌓아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과 필요한 것을 주시니 너희들은 그것을 가지고 섬기라는 것입니다. 보물을 모을 때는 이웃을 위해 위한 것이지 자기를 위해서 쌓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주의 길을 가야 합니다. 이웃을 섬기는 우리는 하늘에 보물을 쌓으며 승리하는 성도입니다. 의로운 일을 행하는 것, 주님의 제자로서 고난받는 것, 이웃을 위해 용서하는 것 등은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는 것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삶을 생활하는 자체가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삶의 생활로 보물을 쌓는 것이지, 내가 이런 의를 드러내면 하늘에 보물이 쌓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께서 섬기신 것을 기억하며 사람을 섬겨야 합니다. 바울은 히13:16절에서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서로 나누어 섬기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웃을 위해 섬기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하늘에 보물입니까? 이 세상의 보물입니까? 예수님께서는 21절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음은 사람의 내적 중심이며, 감정과 목적 그리고 의지를 의미합니다. 사람의 마음 내적 중심과 감정 등에 따라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종교개혁가인 칼빈은 “명예를 가장 귀하게 여기는 자는 분명 야망의 포로가 될 수밖에 없고,돈을 최고로 여기는 자는 돈의 노예가 되며,쾌락을 제일 좋아하는 자는 필연코 방탕에 빠지게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 관심이 있습니까?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마십시오. 세상을 좋아한다면 주님께 기도하며 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말씀하신 후 22절에서는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을 생각하면 앞의 내용과 상관이 없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하신 후 눈을 이야기하신 이유는 눈이 행동을 결정하는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눈은 등불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눈은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기관입니다. 등불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합니다. 눈은 어두움을 밝혀 모든 것을 환히 보게 하는 등불과 같다는 것입니다. 눈이 성하면 등불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마음이 어두움으로 인해 눈도 어두워짐으로 등불과 같은 역할을 하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는 마음이 행복한 자녀입니다. 마음이 행복하며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기 때문에 마음과 눈 즉 온몸이 밝습니다.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성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신뢰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진신하게 믿기 때문에 선한 마음으로 섬기는 삶을 생활할 수 있습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으며 주의 길을 가는 성도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진리를 진리 그대로 분별하며 주의 길을 가야 합니다. 진리를 그대로 믿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주신 성경입니다. 성경의 말씀에 따라 믿으며 순종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어떻게 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까? 23절을 보시면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악한 눈을 가지면 도덕적인 부패를 가져온다는 의미입니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이 어두울 수밖에 없습니다. 어두움 속에 있다면 그곳을 떠나야 합니다. 밝은 곳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세상의 삶에서 하나님 나라의 삶으로 돌이켜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네 안에 있는 빛은 영적인 눈 즉 영적인 일들을 밝히 보고 살피는 눈이 되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눈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삶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성한 눈을 통해 진리의 세계를 분별해야 합니다. 죄악의 길에서 영원한 삶의 나라로 돌이켜야 합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므로 구원받아야 합니다. 우리 영혼을 인도해야 할 영적 눈이 어둡고 잘못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두운 눈은 위험하고 비참한 결과를 맞이하도록 합니다. 그런 길을 가고 싶습니까? 지팡이 교회는 어두운 눈에서 멀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눈으로 이웃을 섬기며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는 말처럼 지팡이 교회는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는 삶의 목표가 하늘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 땅에 가치관을 두고 자신만을 위한 보물을 쌓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땅의 것을 추구하며 생활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속해 있기 때문에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땅의 보물을 위해 세상을 택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모는 것을 창조하셨는데도 타락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것을 좋아하며 영원한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을 모르니 참 비참한 인생입니다. 이런 시대에 지팡이 교회는 보물에 대해 바른 이해를 하고 있으면서 이웃을 섬겨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심으로 구원하여 주실 것입니다. 우리처럼 같은 신앙 고백하며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썩지 아니할 영광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 길은 좁은 길이지만 행복한 길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목표를 분명히 하며 주의 길을 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안에 어둠의 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밝은 눈으로 등불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우리를 통해 세상 사람도 밝은 눈으로 생활하도록 해야 합니다. 영적인 눈이 될 수 있도록 성경의 가르침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성경을 바르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팡이 교회는 몽학선생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보물에 대해 바른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눈은 보이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우리의 눈은 늘 보물에 마음이 끌리기 때문에 하나님께 은혜룰 간구하며 주의 길을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 무엇인지 알며 주의 길을 가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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