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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교회

오전예배강설

2021.08.05 00:14

좁은 문과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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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7:13-23
강설날짜 2021-08-01

 

 

좁은 문과 열매(마7:13-23) 

 

 

패북에서 “복음주의에는 복음이 없다”라는 글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복음주의에는 복음이 없다는 말은 잉어빵에 잉어가 없다는 것과 붕어빵에 붕어가 없다는 말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으로 인해 기독교는 많이 변화기 시작했습니다. 교황 중심에서 교회 중심으로 그리고 성경 중심으로 변화되어 갔습니다. 그런데 18세기에 교회는 부흥 주의에 힘입어 영혼 구원에 과도하게 몰입했습니다. 성장주의로 변화게 된 것입니다. 어찌 보면 좋은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교회를 타락하도록 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복음주의입니다. 복음에 의해 성장해야 하는데 부흥 주의에 물들다 보니 “복음주의”의 본질을 흐리도록 했습니다. 부흥 주의는 신자들이 성경과 교리보다 개인구원에 열정을 쏟았습니다. 좋은 일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알곡보다 가라지라 교회 안에 많아짐으로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오늘날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매로 안다’고 하셨습니다.

 

 

부흥주의란 개인 영혼 구원을 위해 발생한 종교적 흐름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무조건 부흥주의가 나쁜 것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교회에 긍정적인 일을 한 것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교회를 힘들게 하는 종교적 흐름으로 보아야 합니다. 부흥주의는 교회의 교리와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지는 못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독교의 본질을 생각하지 못함으로 일의 성과 즉 결과만 좋으면 이런저런 것을 교회로 들어오도록 했습니다. 교회는 진실한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부흥주의는 성과 위주의 열매를 맺으므로 오히려 가라지가 많아지도록 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열매를 얻기 위해 땅에 화학비료를 사용하면 당장은 열매를 많이 거둘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됩니까? 저는 이런 모습이 부흥주의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주님 안에서 하나라고 말하지만 오히려 자신들 만의 즉 지교회만 성장하고자 함으로 오히려 하나의 교회를 힘들게 했습니다. 사도신경을 사용하여 우리는 “거룩한 공교회를 믿사오며”라고 고백하지만 현실은 개인주의에 물들도록 했습니다. 부흥주의는 거룩한 공교회 즉 성도의 교제를 힘들게 했습니다. 사람만 많이 모이도록 하는 성과 위주는 가라지가 많아지도록 했지만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 즉 알곡을 보호하시며 구원으로 인도하시며 보호하시고 계십니다.

 

 

부흥주의는 믿음의 선배님들이 물려주신 교회를 무너지도록 했습니다. 교리는 믿음의 선배님들이 성경을 지키기 위한 숭고한 순교의 대가였습니다. 하지만, 부흥주의는 교리를 상실해가며 신자들만 모이면 된다고 함으로 오히려 개인주의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교회는 주님 안에서 공동체라는 것을 상실하도록 했습니다. 사도신경을 고백하지만 사도신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지팡이 교회는 성경의 본질을 지키어야 합니다. 기업처럼 교회를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오늘 말씀을 들음으로 서로 은혜를 누리도록 하겠습니다.

 

 

교회의 본질을 지키며 나아가는 성도는 형제와 자매를 비판하고 판단하지 아니하며 자신의 들보를 보아야 합니다. 상대방을 인신공격하지 않으며 사랑과 자비로움으로 섬겨야 한다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웃을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늘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하는 교회입니다. 왜 그러면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인생에 있어서 사람은 “희노애락”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삶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삶대로 생활하고자 하지만 마귀는 우리를 사자와 같이 공격합니다. 이것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하시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그것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하게 함으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삶을 생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생활하는 교회는 자신의 들보를 보며 이웃을 섬길 수 있습니다. 기도는 희노애락의 삶에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생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성도에게 하나님께서는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 세상의 부모도 좋은 것으로 주고자 합니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어떠하시겠습니까?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넓은 문이 아니라 좁은 문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희노애락의 삶도 힘든데 넓은 문의 삶이 아니라 좁은 문의 삶 즉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으며 기도하는 교회입니다. 넓은 문은 멸망으로 가는 것이지만, 좁은 문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구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13절을 보시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좁은 문으로 간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교회는 넓은 문과 좁은 문 즉 두 문을 같이 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반드시 주님을 믿는 백성이기에 좁은 문으로 가야 합니다. 넓은 문으로 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큰 집, 큰 문, 큰 건물 등을 부러워하며 좋아합니다. 자신의 권세를 과시하고자 장엄한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자신의 권세를 과시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예수님처럼 섬기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좁은 문으로 세상으로부터 박해와 반대를 받으며 신앙인의 길을 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문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많은 환난을 받으며 승리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초림으로 오심으로 종말은 시작되었습니다. 종말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좁은 문으로 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제자들과 믿음이 선배님들은 넓은 문으로 가지 않고 좁은 문으로 순교하며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멸망의 길이 아니라 생명이 있는 좁은 문을 선택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넓은 문을 좋아하더라도 교회는 좁은 문으로 가야 하는 사명 자입니다. 넓은 길로 인도하고자 하는 가짜 선지자들과 목회자 그리고 세상의 권력자들을 조심하며 지팡이 교회는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잘 아시기 때문에 14절에서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좁은 문을 찾고자 하는 자들은 적다고 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가는 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계시의 말씀인 성경의 말씀대로 가는 것이 절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것을 좋아하며 넓은 길을 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좁은 길을 가는 교회이기에 포기하거나 낙심하지 아니하며 구하고 찾고 두드리며 주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래야 영원한 삶의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교회가 크고 작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으며 좁은 문으로 가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지팡이 교회는 왜 예수님을 믿습니까? 참 생명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좁은 문으로 가야 합니다.

 

 

좁은 문으로 가라고 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15절에서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오늘날 많은 이리가 있습니다. 이리는 양의 옷을 입고 노략질 합니다. 누구를 노략질합니까? 하나님 나라의 문으로 가지 못하도록 우리를 공격합니다. 양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가짜 목회자요 신자로서 자신만이 올바른 지도자인 것처럼 가장하며 부를 축적하는 자입니다. 이리와 같은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헤치는 사악한 자들입니다. 이리와 양은 서로 같이 우리 안에 있을 수 없습니다. 이리는 양을 잡아먹기 때문에 양과 같이 있을 수 없습니다. 좋은 선지자가 많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세상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구별한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알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열매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말씀을 따라 좁은 길로 가고 있는가?입니다. 순수한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그것은 가짜 선지자입니다.

 

 

그러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교회는 많은 데 넓은 길로 인도하는 교회와 좁은 문으로 인도하는 교회를 어떻게 분별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넓은 길로 가고 있는 신자들과 좁은 길로 가고 있는 신자들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매로 안다고 하셨습니다. 16절을 보시면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양의 옷을 입고 있는 이리와 같은 가짜 선지자를 구별할 방법은 바로 ‘열매’입니다. 열매는 행실의 결과입니다. 농부는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식물과 나무의 본질에 따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가짜 선지자들은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가시나무요 엉겅퀴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놀랐을 것입니다. 비유를 통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를 알았을 것입니다. 부정적인 이미지를 통해 열매가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거짓 선지자가 누구인지 아는 방법은 열매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판단할 때 유창한 언어와 외적인 화려함으로 마음을 안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입니다. 사람의 속마음을 안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무엇으로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까? 바로 열매입니다. 가시나무는 넝쿨로 이뤄진 모습이기에 장미와 같은 식물을 구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꽃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엉겅퀴는 연한 가지로 둘러싸인 키 작은 식물이며 꽃은 무화과처럼 보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구별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것을 구별할 방법은 열매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사람들이라고 하며 자신들의 신분을 속이며 가시나무와 엉겅퀴로 교회 안에 함께 있지만, 이것을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열매입니다. 열매를 맺는 계절이 오면 가시나무와 엉겅퀴를 구별하는 것처럼 마지막 날에는 열매를 구별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있지만, 마지막 심판 때에는 하나님께서 구별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17절에서 쉽고 빠르게 상대를 판단할 수 없다고 해도 결국에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보편적인 진리를 제시하십니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자연의 진리를 이용해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열매를 통해 알곡과 가라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교회라면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며 지상명령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을 믿는 하나님 나라의 교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18절을 보시면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입니다. 진실한 교회만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며 성전으로 지어져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다운 모습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나무는 체질에 따라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 것처럼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이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지 않는다는 것은 가시나무요 엉겅퀴와 같습니다. 그리고 양의 옷을 입은 이리와 같은 모습으로 양을 잡아 먹는 사악한 자들입니다. 이런 것을 알고도 좁은 문으로 가고자 하는 성도는 참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요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열매로 알곡이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것을 알려주신 예수님께서는 19절에서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거짓 선지자들에 관한 최후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선지자 노릇을 하는 자들을 심판하겠다는 예수님의 경고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주님의 메시지를 경홀히 들어서는 안 됩니다. 찍어버리겠다는 것은 비참한 운명의 진리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즐거워하며 양의 옷을 입은 이리와 같이 양을 공격하지만 결국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심판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가라지의 신분으로 생활하지만, 심판의 날에는 찍어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라고 하며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신자들을 심판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쉽게 읽고 있지만, 이 말씀은 두렵고 떨림이 있는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20절에서 다시 강조하십니다. 좁은 문으로 가는 교회에는 힘이 되는 말씀이지만, 넓은 길로 가는 자들에게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20절을 보시면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가고 있는 교회는 열매를 보며 주의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힘들더라고 끝까지 인내하며 좁은 문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해오신 말씀에 대해 결론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참된 교회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교훈하심으로 당신님의 백성을 지키고자 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자신의 들보를 보며 남은 자를 구원하기 위해 힘쓰는 교회로 성장해야 합니다.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는 말씀을 하신 후 예수님께서는 거짓 제자들을 향해 경고하셨습니다. 21절을 보시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셨습니다. 15절부터 20절에서 경고하신 것과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주님의 이름’으로 사역을 한 자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이 이리와 같은 자들에게 당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여 주여’라고 하며 좁은 문이 아니라 넓은 문으로 가도록 했습니다. 넓은 길은 멸망의 길인데도 사람들은 알지 못하며 그 길을 같습니다. 이것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입으로 ‘주여 주여’라고 고백하는 것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실된 마음으로 ‘주여 주여’라고 해야 합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고백하는 교회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입니다.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며 열심히 열매를 맺는 자라도 가짜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사역을 하지만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양의 옷을 입고 이리의 마음으로 열매를 맺는 자들입니다. 이리와 같은 마음이라도 그들은 선지자 노릇 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권능을 행합니다. 이런 것에 속는 자들은 그들이 열매를 맺는 것으로 속은 것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열매를 맺으며 주여 주여해도 주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심판하십니다. 그들을 경고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대로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돌이키지 아니하면 심판을 당한다는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이리와 같이 사역을 하는 자들을 구별하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즉 성경의 말씀대로 주의 길을 가는지 기도하며 주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지팡이 교회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순종하며 열매를 맺는 행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주여 주여’라고 하며 신자들만 모으고자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다 보면 오해하기 쉽습니다. 누가 감히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는가?하며 속아 넘어가기 쉽습니다. 이런 시대에 주님을 믿는 백성은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에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지막 심판의 날에 누구나 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22절에서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초자연적인 일을 해도 교회는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초자연적인 일을 해도 그들이 하는 일은 기적이 아닌 속임수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을 위한 사역입니다. 그들은 좁은 문이 아니라 넓은 것을 좋아하며 가는 사악한 자들입니다. 교묘한 열매를 맺으며 신자들은 좁은 문에서 넓은 문으로 이끌어가는 사악한 자입니다. 이런 자들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런 시대에 교회는 말씀을 잘 가르침으로 믿음이 흔들리지 아니하도록 해야 합니다. 참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성도가 될 수 있도록 섬겨야 합니다. 교회는 주님 안에서 하나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서로 섬기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하면 23절에서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 때에는 심판의 날입니다. 심판의 날에 주여 주여해도 예수님께서는 모르는 자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모른다고 하는 자들은 넓은 문으로 생활한 자입니다. 심판의 때에 참된 제자라고 우길지라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다고 해서 겉으로 보이는 행적들로 참된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겉과 속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역을 감당해야 참된 제자입니다. 이처럼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거룩하고 성결한 삶이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라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은 이처럼 놀라운 비밀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알고 있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교회가 아름다운 거룩한 공교회의 공동체입니다.

 

 

오늘 말씀은 거짓 선지자 즉 주님의 이름으로 사역을 하는 자들을 주의해야 한다는 경고의 메시지로 볼 수 있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좁은 문으로 가고자 하는 성도이기에 좋은 열매를 맺고자 하는 공동체라 믿습니다. 좁은 길을 걷고자 하지만, 마귀는 그렇게 두지 않습니다. 시험과 유혹으로 넓은 길로 인도하고자 합니다. 마귀의 시험으로부터 이기는 길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를 하나님께 해야 합니다. 가라지와 알곡이 함께 있기 때문에 주의 길을 간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가라지가 오히려 주님의 일을 잘하는 것 같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열매를 많이 맺는 것 같습니다. 좋은 열매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너를 알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그들은 좋은 열매 같지만, 나쁜 열매를 맺는 자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넓은 문과 좁은 문 그리고 나쁜 열매와 좋은 열매를 구별해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열매를 맺지 아니하면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습니다. 주여 주여해도 소용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알지 못한다고 하시며 심판하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역한 것 같지만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신들을 위한 일을 했던 자들입니다. 우리는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생활하는 교회로 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로서 참된 열매를 맺는 교회는 마지막 심판의 때에 주님께서는 우리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구원하십니다. 그날을 소중히 여기며 주의 길을 가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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