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팡이교회

오전예배강설

조회 수 61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8:5-13
강설날짜 2021-08-22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q7UBZsegeZQ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심(마8:5-13)

 

하늘에서 건물을 보면 십자가가 많이 보입니다. 그만큼 예배당이 많다는 증거입니다. 예배당마다 교회라는 이름을 붙이며 지상명령을 감당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주의가 필요합니다. 종교적 형태를 띠고 열심히 하는 것 같지만 자신의 유익을 위해 하는 분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만 전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교회라는 이름을 사용하여 권력과 부를 누리고자 합니다. 진짜 복음 같지만, 실상은 가짜 복음입니다. 참된 하나님를 섬기는 것 같지만 자신들이 만들어낸 하나님을 믿도록 합니다. 시대가 혼탁하고 진리가 어두워진 시대일수록 유사복음으로 성공하고자 하는 가짜 교회가 있습니다. 유사복음으로 성공하고자 하는 교회들을 분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을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만 아는 지식으로 멈춰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구하고 찾고 두드림으로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만 영적 분별력이 있을 수 있습니다.

 

믿음의 선배님들은 참 교회를 분별할 수 있도록 벨기에 신앙고백서에서 “복음에 입각한 순수한” 강설을 선포한다고 했습니다. 복음에 입각한 순수한 강설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여 주신 “성례”를 바르게 시행하는 교회입니다. 코로나 시대에 어려움으로 성찬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회복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만이 아니라 교회가 바른길로 가기 위해서는 “귄징”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알기에 믿음의 선배님들은 신앙고백서에서 위의 세 가지를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을 믿음의 선배님들이 고안해 낸 것이 아니라 성경에 있는 것을 정리한 것입니다. 위의 세 가지가 있어야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르게 알 때 유사복음으로 전하는 가짜 교회를 조금이나마 분별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펜데믹 시대에 지상명령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지상명령을 감당하기 위해 강설과 성례와 권징이 바르게 시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예배당에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오늘 강설을 위해 지난주 말씀을 다시 기억해 보겠습니다. 한 나병환자가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나병환자가 예수님으로부터 자신의 병을 고침받은 사건이었습니다. 나병환자는 산상수훈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지역을 떠나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그는 너무나 간절했기에 절하며 고쳐 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 무릎을 꿇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였습니다. 나병환자는 공손한 마음으로 우회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나병환자의 믿음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답하여 주셨습니까? “손을 내밀어”주셨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나병환자의 몸은 깨끗하여졌습니다. 이 기적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이 메시야라는 것을 알리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메시야만이 사람이 고칠 수 없는 병을 고쳐주실 것을 믿어 왔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신적인 권위가 인정받은 것입니다.

 

오늘은 지난주처럼 예수님께서는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주셨습니다. 백부장은 자신이 사랑하고 좋아하는 하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께 찾아 왔습니다. 지난주 사건에서는 나병환자가 직접 찾아와 고침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백부장이 하인을 위해 은혜를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치료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인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백부장이 자신의 종에게 행한 것을 생각하면 그는 인색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백부장은 로마 군인이요 부자였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버나움에서 생활하는 유대인을 위한 회당을 지어 준 것을 생각하면 원래부터 재산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로마 군인인데도 백부장은 관대한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을 지배하는 로마 군인이 예수님께 나아와 간곡하게 부탁하는 모습은 겸손함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간구도 중요하지만, 이웃을 위해 즉 공동체를 위해 간구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의 공동체입니다. 신자 한 분이 교회이면서 신자들이 신앙생활 하는 공동체도 교회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결된 한 몸의 교회라는 것입니다.

 

나병환자는 유대인으로 육체적으로 부정한 자였습니다. 백부장은 이방인 이었습니다. 즉 이방인은 부정한 자였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예수님께서는 온 백성을 구원하시기 오신 메시야라는 것입니다. 부정한 자라도 누구나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민족이 있습니다. 피부색도 다르지만, 같은 신앙고백 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것을 알기 위해 우리는 먼저 5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에 들어가셨을 때 로마 군인인 한 백부장이 찾아 왔습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께서 사역한 중심지이기도 합니다. 백부장은 100명정도의 부하를 지휘하는 장군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 실제로는 60-80명 정도 통솔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것 같습니다. 똑같은 이야기가 눅7:1-1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인을 위해 백부장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찾아 왔습니다. 왜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이 다른 것입니까? 먼저 이야기하면 두 기록은 모순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태는 대리인이라도 백부장이 한 말과 같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실 한 사람이 대리인을 통해서 하는 일은 그 사람이 자신이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백부장이 보낸 자들을 통해 말한 내용을 전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간결하게 요약하여 기록한 것입니다. 대리인이 왔더라도 백부장이 보낸 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특사와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사는 대통령의 말과 같은 위치에 있습니다. 어쨌든 백부장은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믿음이 깊었다는 사실을 마태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백부장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한 말은 무엇이었습니까? 6절을 보시면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였습니다. 백부장이 처음부터 이야기 한 말은 “주여”였습니다. 이것을 볼 때 백부장은 예수님께 돈독한 믿음과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여라고 하며 백부장은 자신의 하인을 고쳐달라고 간절히 간구했습니다. 백부장은 나병환자처럼 우회적인 말을 하며 간청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하인”이라는 단어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인으로 생각하면 노예와 같은 종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마태복음에 기록된 하인의 원어는 “파이스”입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아들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누가복음에는 “파이스가” 아닌 “둘로스” 즉 하인으로 기록했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백부장은 하인을 아들처럼 생각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아들처럼 생각하는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있었습니다. 중풍병은 당시에 고칠 수 없는 병으로 인식했습니다. 그런 하인을 위해 백부장은 예수님께 찾아왔던 것입니다. 당시에 중풍병을 위해 종교지도자들에게 기도를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백부장은 예수님께 기도를 요청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고쳐달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백부장이 지닌 믿음이었습니다.

 

백부장의 말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7절에서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백부장이 아뢴 말속에 진실이 아니라면 예수님께서는 “고쳐 주리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백부장의 마음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흔쾌히 백부장의 집에 들어가서 고쳐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을 고쳐주시기 위해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일부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백부장에게 한 말은 의문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문을 통해 백부장의 마음을 보시고자 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느 것이 되었든 예수님께서는 백부장의 믿음을 아시고 계셨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누구나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려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민족과 피부색이 달라도 편견과 증오의 벽을 넘어선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백부장은 우리도 상상못할 이야기를 했습니다. 8절을 보시면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였습니다. 왜 이런 말을 한 것입니까? 유대인이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면 부정한 자로 생각하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알기에 유대 문화를 존중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저라면 당장 ‘그렇게 해 주십시오’라고 했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백부장의 믿음은 놀라웠습니다.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말씀만 하셔도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백부장은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백부장이 생각할 때 예수님께서 집에 들어오시는 것을 맞이할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백부장은 겸손한 이방인이었습니다. 우리도 백부장과 같은 겸손으로 신앙생활 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산상수훈 중 첫 번째를 지니고 있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심령이 가난하기에 복 있는 백부장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복 있는 백부장이었습니다.

 

백부장은 믿음이 있었기에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말씀만 해도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단한 믿음 아니겠습니까? 성경에서 말씀으로만 치유하신 사건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처럼 백부장의 믿음은 예수님의 절대적인 능력을 믿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백부장은 9절에서 자신의 부하들이 순종하는 예를 들어 예수님의 말씀에 권위가 있다는 것을 적용했습니다. 9절을 보시면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비록 몸이 불편한 중풍병자라도 예수님께서 말씀만 하시면 낫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이 백부장에게 있었습니다.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권세와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알기에 자신의 부하들이 순종하는 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상관의 명령에 생사를 내어 맡기는 군인으로서 계급이 갖는 힘과 신분의 권위가 갖는 힘과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백부장은 자신의 체험을 통해 예수님의 능력과 신분의 권위가 있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권세가 있습니다.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권세가 부여되어 있으니 말씀만 하시면 하인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상상이상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의 현상을 비유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영적 현상의 원리를 본 것입니다. 백부장은 이처럼 지혜로운 이방인이었습니다.

 

백부장의 이야기를 들은 예수님께서는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사역을 통해 참된 믿음을 찾고 계셨습니다. 마침내 찾았습니다. 유대인도 아닌 이방인에게서 참된 믿음을 발견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10절에서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였습니다. 이방인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백부장은 달랐습니다. 유대인보다 더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단어를 생각해 보십시오. “놀랍게 여겨” 그리고 “진실로” 마지막으로 “아무에게도”라는 단어를 사용하심으로 백부장이 지닌 믿음을 강조하셨습니다. 매우 강조하심으로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백부장의 믿음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면 백부장의 믿음은 무엇이었습니까? 어떤 믿음이기에 예수님께 칭찬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까? 그것을 알기 위해 병행본문인 눅7:1-10절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백부장의 말을 더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에는 백부장이 직접 예수님께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백부장은 유대인 장로들을 대신 보냈습니다. 이렇게 한 것은 백부장이 최선의 예우를 하기 위한 것입니다. 오해하지 말 것은 유대인들에게 영향력이 있는 장로들을 보낸 것이 아닙니다. 백부장은 처음에 예수님께서 자신의 집에 와서 하인을 치료해 줄 것을 간청했습니다. 장로들은 백부장이 한 일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어주었다고 장로들은 예수님께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백주장의 집으로 이동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가까이 오고 있는 것을 아는 백부장은 친구들을 보내어 만류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집에 오시는 것을 감당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인이라도 생명의 존중함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백부장은 하인이 이방인이라도 인격적으로 존경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을 위해 회당을 지어준 것을 볼 때 신앙과 연결된 믿음으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백부장의 믿음을 온전하게 다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믿음이었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이방인과 유대인들의 엇갈린 운명을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11절과 12절을 보시면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혈통이나 민족으로 구원하지 아니한다고 하셨습니다.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라고 하심으로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누가복음에는 “남북”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이방인도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서 생활한다는 것입니다. 이방인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구원받는다는 예언의 성취입니다.(사45:6, 렘3:18, 말1:11절 등)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약속하신 언약 즉 계약을 성취하신 것입니다.(창12:3)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지옥의 장면을 예수님께서는 생생하게 묘사하셨습니다. 어쩔 수 없는 고통을 당하기에 이를 간다는 것입니다.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한 자들은 그 누구도 위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눈물과 고통으로 지옥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백성은 백부장처럼 천국에서 믿음의 조상들과 함께 앉을 수 있는 영광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비방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구원의 대상으로 생각하며 백부장과 같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지상명령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백부장이 원하는 믿음대로 어떻게 하셨습니까? 13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백부장의 믿음 대로 된다고 하셨습니다. 백부장의 요청이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인은 그 즉시 치료가 되었습니다. 백부장의 하인도 나병환자처럼 그 즉시 치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곧 능력이며 실행이 즉시 이루어졌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백부장과 같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믿음으로 문제를 대처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은 소중한 것입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단순히 기도해서 풀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앞에 엎드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긍휼을 바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긍휼을 바라보며 엎드린다는 것은 간절한 표현입니다. 바로 그것을 백부장이 보여준 것입니다. 마태는 이 기록을 통해 백부장의 믿음과 예수님의 신적 권위를 드러내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에게도 구원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예수님의 말씀처럼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중풍병으로 무기력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신 예수님의 능력과 권세를 증거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닙니다. 육신의 병 자체는 어디까지나 백부장으로 하여금 예수님께 나아와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병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면 주님께 구하고 찾고 두드리며 믿음이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 자신의 마음을 내려놓고 긍휼을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이적과 기적에 관심이 많습니다. 예수님을 이용하여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석합니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예수님께 기도합니다.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마치 세상의 우상을 섬기며 “비나이다”와 같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백부장의 마음처럼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대로 예수님을 이용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백부장은 자신의 처지를 알고 “주여”라고 고백했습니다. 그것을 아시기에 예수님께서는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주셨습니다. 지팡이 교회도 백부장과 같은 믿음을 소유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설교자 성경본문 강설날짜 조회 수
245 중풍병자를 고치신 예수님 전은덕 마9:1-8 2021-09-26 1104
244 귀신들이 예수님의 정체를 알다 전은덕 마8:28-34 2021-09-19 355
243 예수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다 전은덕 마8:23-27 2021-09-12 356
242 너는 나를 따르라 전은덕 마8:18-22 2021-09-05 299
241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심 전은덕 마8:13-17 2021-08-29 433
»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심 전은덕 마8:5-13 2021-08-22 614
239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전은덕 마8:1-4 2021-08-15 304
238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 전은덕 마7:24-29 2021-08-08 430
237 좁은 문과 열매 전은덕 마7:13-23 2021-08-01 276
236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의 의미 전은덕 마7:7-12 2021-07-25 346
235 왜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는가? 전은덕 마7:1-6 2021-07-18 349
234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라의 명령의 말 전은덕 마6:30-34 2021-07-11 321
233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라는 의미를 위해 이야기하신 것들.... 전은덕 마6:24-29 2021-07-04 279
232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전은덕 마6:19-23 2021-06-27 371
231 외식으로 금식하지 말라 전은덕 마6:16-18 2021-06-20 348
230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그리고... 전은덕 마6:13-15 2021-06-13 317
229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전은덕 마6:12 2021-06-06 307
228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전은덕 2021-05-30 298
227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주기도문) 전은덕 마6:9-10절 2021-05-23 372
226 왜 은밀하게 기도하라고 하는가? 전은덕 마6:5-8 2021-05-16 271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7 Next
/ 17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