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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9:32-38
강설날짜 2021-10-31

목자 없는 양을 위해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마9:32-38)

 

오늘은 종교개혁이 일어난 후 504주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종교개혁은 성경의 말씀대로 회복되는 개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믿음의 선배님들을 통해 종교개혁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종교개혁으로 인해 오늘날 교회는 바른 말씀의 강설과 성례가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의 정체성이 타락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교회는 물질 만능과 세상의 기업처럼 되어 버렸다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신자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는 현실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교회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오직 성경, 오직 말씀, 오직 믿음”입니다. 믿음의 선배님들은 교회의 회복을 위해 3대 구호로 개혁했습니다.

 

믿음의 선배님들이 개혁한 것을 기억하며 지팡이 교회는 올바른 말씀이 강설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말씀이 올바르게 강설된다는 것은 거룩한 공교회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또한, 구원받은 백성을 안전하게 푸른초장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결국, 몸과 영혼이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설이 중요한 것입니다. 종교개혁으로 인해 회복된 순수한 복음이 상실되지 않도록 교회는 늘 성경을 사모해야 합니다. 목자 없는 양 같은 신자들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양을 위해 “추수할 일꾼을 보내어 주소서”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거룩한 공교회를 사랑해야 하는 것은 마땅합니다. 교회가 늘 주님 안에서 지상명령을 감당하기 위해 믿음의 선배님들처럼 성경을 사모해야 합니다.

 

성경을 사모하는 지팡이 교회는 지난주 강설을 기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시각장애인에게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아실 것입니다. 두 시각장애인은 간절한 소망으로 예수님께 긍휼을 구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향해 “다윗의 자손”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것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메시야라는 고백입니다. 두 시각장애인의 간절함을 예수님께서 아셨다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고쳐주시면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 질문은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입니다. 두 시각장애인의 간절한 마음을 다시 확인하신 질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두 시각장애인처럼 간절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 안에서 은혜가 베풀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처럼 우리도 믿음을 소유해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을 받은 두 시각장애인은 간절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주여 그러하오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을 통해 그들은 더 믿음이 강건해졌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눈을 밝히 보여 줄 수 있는 메시야를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눈이 회복될 수 있도록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 났습니다. 예수님의 능력과 권세를 믿은 대가는 앞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말씀을 오해하여 육신의 눈만 뜬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아야 합니다. 두 시각장애인이 알고 있는 예수님을 우리도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몸과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은 늘 영적 은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사건에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도록 하시는 것이며 부활을 믿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부활을 믿는 우리는 이제 오늘 말씀을 강설로 들으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소문을 내지 말라고 하셨지만, 사람들은 소문을 통해 알았습니다. 그래서 두 시각장애인이 떠난 다음에 사람들이 누구를 데리고 왔습니까? 32절을 보시면 “그들이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오니”입니다. 귀신이 들리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심각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사람을 데리고 오심으로 예수님께서는 또다시 영적 세계의 악한 세례들과 마주치셨습니다. 고침을 받고자 하는 자는 선천성 청각장애인이 아니었습니다. 귀신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자였습니다.

 

귀신이 들려 청각장애인이 된 자를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33절을 보시면 “귀신이 쫓겨나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거늘 무리가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하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이 메시야로 오신 것을 알 수 있도록 엄청난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약속하신 대로 도래했다는 것을 알도록 하셨습니다. 귀신이 쫓겨난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고 하며 놀랐습니다. 전대미문의 사건을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예수님께서 하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해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이적은 사람과 달랐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권능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선지자들이 말한 메시야를 알아야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건을 통해 예수님께서 메시야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보지도 않고 믿을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귀신으로 인해 청각장애인이 된 사람은 들을 수 있는 귀만 고쳐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영적인 장애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청각장애인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으면 누구나 영적인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런데도 종교지도자들은 영적인 벙어리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이었습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결국 예수님을 죽이는 길로 갔습니다.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것을 모르는 바리새인들은 누구를 의지하여 이적을 행한다고 생각했습니까? 34절을 보시면 “바리새인들은 이르되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입니다. 사람들은 전대미문이라고 하며 놀라고 있는 가운데 바리새인들은 전혀 다른 반응이었습니다. 사람이 고침을 받았는데 황당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했습니까? “귀신의 왕을 의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적이 아니라 사탄의 역사로 몰았습니다. 한 번만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냈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들이 누려야 할 권세를 뺏기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들의 위치가 위협당할 것을 더 염려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적을 훼방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어리석은 것을 택했습니다.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보았으면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며 어떻게 해야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해야 합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성경을 잘 알면서도 자신의 부귀영화가 더 중요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지식일 뿐입니다. 지식으로 하나님을 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는 성경을 통해 무엇을 알고 있습니까? 믿음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하나님에게서 오는 선물입니다. 그 선물을 부정하는 자는 종교지도자들과 같은 마음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도 그들을 믿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애처로운 일입니다. 시기와 질투심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도록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시기와 질투가 가득하기에 메시야의 사역과 광채를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청각장애인을 고치신 사건 후 마태는 8장과 9장의 마무리를 35절부터 38절에서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10장을 준비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는 예수님의 사역의 포괄성을 담아 35절에서 어떻게 요약하고 있습니까? 35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마태는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 주변에서 사역한 것을 간략하게 요약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쉽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간략하게 요약했어도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단지 병든 자를 고친 것으로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마태는 더 중요하게 기록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산상수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역하시면서 병든 자를 고쳐주신 이유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시기 위한 목적으로 행하신 이적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가를 알도록 하시려는 방법이었습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하여 주심으로 당신님의 정체가 메시야라는 것을 알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가르치심과 전파 그리고 치료였습니다. 마태복음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인크루즈의 구조로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마4:23절과 마9:35절의 말씀은 똑같습니다. 마4:23절은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이고, 마9:35절은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마치 편지봉투의 앞과 뒤라고 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인크루즈의 구조로 예수님의 사역을 요약한 것입니다. 그 안에 담긴 내용은 5장부터 7장까지의 산상수훈으로 예수님의 말씀 즉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하신 것입니다. 8장과 9장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예수님께서 하신 행적을 기록했습니다. 마태는 이렇게 기록함으로 예수님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도록 하셨습니다. 마태복음을 읽고 있는 유대인이든 오늘날의 독자는 예수님의 사역을 이해하고 믿어야 합니다. 병만 고치기 위해 믿는 것이 아니라 메시야로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당시 사람들을 고쳐주시고 여러 가지 이적을 하셨지만, 예수님의 원래 목적은 이적을 행하는 초능력자로서의 명성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인류를 구원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속마음이 애절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보시며 동정과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36절을 보시면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입니다. 이러한 마음은 마태복음에서 자주 언급되었습니다.(마14:14, 15:32, 20:34)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하시면서 사람의 삶을 행동으로 몸소 체험하셨습니다. 영적으로 어두운 우리의 생활을 잘 알기에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목자가 없는 우리의 삶을 알기에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유대인들의 종교지도자들이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했지만, 그들은 양을 이용해 권세를 누렸습니다. 이것을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무리를 보시면서 불쌍히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목자 없는 양은 구약 말씀에서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를 이야기할 때 자주 표현된 말씀입니다. 예를 들자면 신30:3절을 보시면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입니다. 이스라엘이 타락했을 때 그리고 신실한 목자가 없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목자 없는 양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직접 그들의 목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목자 없는 양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당신님께서 목자가 되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종교지도자들의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진정한 목자가 아니기에 예수님께서는 무리를 불쌍히 여기면서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면서 구원하여 주십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육체적으나 정신적으로 공감대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며 그들이 돌이킬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혜 주실 것을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해 주실 것을 믿으며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나의 힘대로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의지하며 하나님께서 돌이킬 수 있게 해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절망에 사로잡혀 사탄이 좋아하는 것에 빠지지 않도록 교회는 세상 사람들을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우리도 모세처럼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모세는 민27:16-1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하건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17.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난 후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기도한 것처럼 지팡이 교회도 이웃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무리를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37절과 38절을 보시면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38.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당신님의 사역을 통해 제자를 훈련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치기 시작하기 위한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제자들로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과 동행하는 제자들을 왜 불쌍히 여기신 것입니까? 하나님 나라를 전해야 하는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면서 인내해야 하는 삶을 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추수해야 할 일꾼이었습니다.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양을 돌보며 추수해야 할 사명자로 여기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오히려 이리와 같은 자였습니다.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도록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백성을 보호해야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는 사악한 자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종교지도자들을 제자로 부르지 않고 열두 사도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할 수 있도록 제자들과 동행하여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추수할 때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후로 지금도 그리고 마지막 때까지 교회는 추수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추수를 한다는 것은 마지막 때가 시작되었으며 심판의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추수할 때 추수하지 아니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농부는 때를 알기에 추수를 하는 것처럼 교회도 갖습니다. 그와 반대로 삯꾼은 추수하지 않고 종교지도자들처럼 삶을 생활하고자 하는 사악한 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추수할 일꾼이 많이 필요하니 추수하는 주인이신 하나님께 일꾼을 많이 보내어달라고 간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10장에서 열두 사도를 부르신 것입니다. 매우 급한 현실이니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시대일수록 더할 것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어드 시대든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일꾼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것을 알기에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예수님처럼 무리를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로 인해 오늘날 우리가 신앙생활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행복입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행복을 세상 사람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세상 사람들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을 믿음으로 부활을 소망하며 마지막 때를 기다리며 신앙생활 할 수 있습니다. 추수할 때 추수할 일꾼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많다고 하지만 더 많아야 합니다. 신자들이 많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을 위해 추수할 일꾼을 보내 주소서 하라”고 하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분들은 영적으로 청각장애인과 같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고백하지 않는 자들을 위해 지팡이 교회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신분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을 위해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사역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자신에게 맡겨진 사역을 청지기와 같은 마음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님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신 것처럼 우리도 같은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하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추수할 일꾼이 적으니 하나님께 기도해 보내 달라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추수할 것이 많습니다. 이런 이때 우리는 추수하는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를 아는 성도의 본분입니다. “목자 없는 양을 위해 추수할 일꾼을 보내어 달라고 하라”는 것을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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