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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10:9-15
강설날짜 2021-11-14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jA6XxksujSc

복음을 전하는 자의 마음 자세(마10:9-15)

 

신자들이 좋아하는 고전13장은 “사랑장”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복음송으로 불리는 사랑장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 하는 존재입니다.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누구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사랑받고 싶어 하는 마음도 신자들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계시인 성경으로부터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으로부터 사랑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사랑을 알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자의 마음 자세가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잠시 고전13장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전13장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신령한 은사들이 아무리 탁월하고 뛰어나게 사용한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는 하십니다. 고전13장은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은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신자들은 서로 사랑하며 은사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은사를 중요시하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같은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교회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세상 사람을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오늘날 일부 교회가 사랑을 상실함으로 분열되는 현실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현실입니다. 고린도 전서의 저자도 고린도 교회를 볼 때 슬픈 현실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슬픈 현실 속에서 오래 참을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알기에 고전13장에서 사랑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줄 수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를 향해 분노할 수 있었지만 그런데도 그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도록 했습니다. 자신의 명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바르게 아는 것입니다. 그럴 때 교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교회만이 아니라 이 세상 사람도 사랑의 참뜻을 알 때 사람을 섬길 수 있습니다. 사랑은 이처럼 놀라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때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 서로 사랑할 때 교회도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있는 지팡이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지팡이 교회는 당신님께서 백성에게 주신 성경의 말씀을 사모함으로 거룩한 공교회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그러기 위해 늘 성경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지팡이 교회는 말씀의 강설을 듣고자 합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지난주 강설을 다시 기억해 보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을 위해 일꾼들을 보내어 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복음의 사역자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몸이신 교회를 창립할 수 있도록 열두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그런 후 파송했습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혼인 잔치로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 때처럼 오늘날에도 죄로 인해 몸과 영혼이 병들고, 지치고, 깊은 병 등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가운데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로서 가서 제자로 삼으며 추수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지금도 추수해야 할 상황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재림의 주로 오기까지 추수해야 합니다. 사탄이 우는 사자와 같이 사람을 죽음의 길로 인도하시고자 하는 시대에 교회는 추수하는 일꾼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의 현실을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세우시고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이런 권능을 주신 것은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는 것을 알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권능을 행하도록 주심으로 죄로 인해 타락한 자들이 복음을 듣고 하나님을 믿으며 몸과 영혼의 죽음의 권세로부터 구원받는 자는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죄로부터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정결한 백성이 된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을 성취하시기 위해 열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 나라의 일 자체가 바로 과거에 약속했던 언약의 성취를 드러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언약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해야 할 것은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는 늘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손상되지 않도록 값없이 추수하는 일꾼으로서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지난주 말씀과 연속성 상에 있는 강설입니다. 열두 제자의 마음처럼 우리도 “복음을 전하는 자의 마음 자세”가 중요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이기도 합니다. 먼저 9절과 10절을 보십시오.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15.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입니다. 오늘날에는 어느 곳을 가든지 옷과 음식 등을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을 아는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해야 하는 제자들에게 걱정하지 말고 추수하는 일꾼의 사명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과거보다 오늘날 현대인으로 생활하는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아마도 이해하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데 필요한 것인데 가지지 말라는 것은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태복음 전체의 흐름과 특히 10장의 문맥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추수할 일꾼으로서 그리 긴 기간의 사역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일시적으로 파송을 받은 제자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것을 가지고 사역할 필요가 없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너희들은 나를 믿고 복음만 전하라는 것입니다. 늘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을 믿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믿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제자들은 하나님께서 공급하여 주실 것을 믿고 전진해야 하는 일꾼입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하여 주실 것을 믿어야 하는 사명자입니다. 제자들은 산상수훈을 통해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에 대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 의미가 무엇인가를 확인할 기회이기도 합니다. 금이나 은이나 동 그리고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고 다니다 보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천국이 가까지 왔다”라는 의미를 잘 드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몸과 영혼을 살리는 사역을 잘 감당하지 못하며 등한시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안전을 요구하며 먹을 것이 있어야 합니다. 제자들이 사명을 감당하는 데 필요한 물품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가지고 가지 말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최소한의 물품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위에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제자들은 일시적으로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에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는 의미심장한 예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너희들을 죽지 않도록 당신님께서 돌보시겠다는 것입니다.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겠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이것을 믿고 제자들은 추수해야 하는 일꾼입니다. 너희들은 세상의 것을 의지하지 말고 나를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예수님만 의지해야 하는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동역자로서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과 함께하셨습니다. 지금도 우리와 임마누엘로 함께 하시며 추수하도록 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물질을 의지하지 말라는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절대적이고 풍성한 후원을 약속한 것을 생각하며 하나님 나라의 기관이 교회의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질문도 하실 것 같습니다. 병행 본문인 막6:8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것도 가지지 말며”입니다. 여기서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같은 말씀인데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지팡이”입니다. 마태복음은 지팡이를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시는데 마가복음은 가지고 가라고 하십니다. 서로 충돌되는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마태복음의 지팡이는 신변 보호용으로 사용되는 것이고, 마가복음의 지팡이는 보행에 도움을 주는 지팡이로 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 지팡이를 의지하지 말고 예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의지했던 것처럼 같은 것입니다. 모세보다 전능하신 나를 믿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생활을 채워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추수하는 일꾼은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며 모든 마음과 힘을 쏟으며 추수해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을 전하는 자의 마음 자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고 사신 후 11절에서는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고 하셨습니다. 쉽게 읽기 쉬운 구절입니다. 하지만, 오해하기도 쉬울 수 있습니다. 전대에 필요한 물품을 채우고 다니지 말라고 하시면서 먹을 것을 채워주시겠다고 생각하며 11절을 읽으면 오해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제자들은 새로운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서 먼저 대접받기 위해 즉 먹을 것을 채우기 위해 합당한 자를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14절과 연결하여 읽으면 쉽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입니다. 잘 읽어보시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와 받아들이는 자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복음입니다. 먹을 것을 위해 집을 찾아다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복음입니다. 먹을 것을 위해 집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를 먹여 줄 수 있는 집을 찾아다니다 보면 복음을 전하는데 불화가 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면 일용할 양식은 채워주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제자들은 13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복음을 받아들이는 합당한 자를 찾아야 합니다. 먹을 것을 위해 그리고 안식처를 위해 사람을 먼저 찾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는 복음을 전하며 듣는 합당한 자를 찾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함으로 편안한 보금자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헌신 된 자를 찾아야 합니다. 이곳저곳 다니며 나를 채워줄 수 있는 집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그 집에서 거주하며 성이나 동네에서 복음화시켜야 합니다. 좋은 집을 찾아다니는 것보다 제자들은 추수하는 일꾼으로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온 동네에 전해야 합니다. 동네에 들어가 복음을 전할 때 무조건 믿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죄로 인해 타락한 존재는 복음을 믿지 않고자 하는 마음이 더 많습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실망하지 말고 전해야 합니다. 복음을 듣는 자는 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가 많이 있지 아니하더라도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이 알지 못하는 행복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나의 지식과 지혜를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전합니다. 학문을 동원하며 상대방을 설복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과 지혜가 부족해도 됩니다. 단지 우리는 복음 즉 하나님을 전해야 합니다. 많은 이야기를 못하더라도 복음을 전하는 자의 마음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부르신 후 파송하시면서 그것을 믿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나를 믿음으로 일용할 양식을 채울 수 있으며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를 찾으면 12절에서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집에 들어가 먼저 해야 할 것은 평안하기를 빌어야 합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일상적인 인사였습니다. 일상적인 인사였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이상을 넘어 주님의 이름으로 그 집을 축복해야 합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 것은 집을 축복하라고 해서 물질을 잘 받을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은 가족들의 평안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영육 간의 복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보다 제자들은 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지 아니하면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13절을 보시면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와 받아들이는 자를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지금도 같은 현실입니다. 오히려 과거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자 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 슬픕니다. 메시지를 받아들이면 하나님 나라의 문이 열리는 것이지만 반대의 경우는 심판을 당하는 자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게 힘을 내어 죽기 살기로 전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다른 집을 찾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집에 들어갈 때 그 집의 평안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합당하면 그 집은 영광이요 받아들이지 않으면 오히려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평안함이 돌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는 기쁨입니다. 세상 사람은 누구나 복음을 받아들임으로 평안을 받아야 합니다. 죄로 인해 타락한 자들이 몸과 영혼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추수할 수 있는 교회로 부르심으로 이웃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은 가장 큰 행복입니다.

 

가장 큰 행복을 누리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입니다. 이럴 때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14절을 보시면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행동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는 것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의 지역을 여행한 후 이방 지역의 먼지를 떨어버렸습니다. 이렇게 행동했던 이유는 이방인들에 대한 유대인들의 무시와 반대를 보여주는 가시적인 상징행위입니다. 이렇게 행동하라고 하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복음의 가치를 보존하시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복음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금은보화보다 값진 것입니다. 사람이 죽음으로 구원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거절하는 자는 심판을 당합니다. 그런 자들에게 복음의 선물을 주기 위해 구걸할 필요가 없습니다. 복음의 가치를 떨어뜨리지 말고 복음을 전하는 자의 자세는 늘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에게 임할 심판이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15절을 보시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고 하셨습니다. 회심할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거부하면 소돔과 고모라 땅보다 더한 심판을 받는다는 경고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유황불 비로 심판하셨습니다. 복음의 거부는 결국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말씀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복음을 거부하면 되지 왜 심판을 당해야 하는가?입니다. 복음을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것이며 하나님 나라와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영생과 관련 없는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경고의 심판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해 “내가 진실로”를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말씀이 권위가 있다는 것을 드러내셨습니다. 정확하고 무오 하다는 선언과 같습니다. 말의 권위를 확증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실로”를 알고 복음을 전하는 마음의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전할 때 소돔과 고모라의 죄보다 더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교회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복음의 증인자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의 계시가 밝히 드러났습니다. 그로 인해 성경의 말씀인 계시는 사람의 죄를 자유롭게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구원이지만, 영접하지 아니하면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한 심판을 받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도록 교회는 복음을 전해야 하는 추수하는 일꾼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선배님들은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 제25장 3항에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교회에 대하여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보편적이고 가시적인 교회에서 땅끝까지 성도를 모으고 완전하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사역자와 말씀과 규례를 주셨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자신의 약속을 따라 자신의 임재하심과 또한 성령을 보내심으로써 성도들이 그러한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신다”입니다. 이 글을 읽고 들은 우리는 교회의 사명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파송하시면서 복음을 전하는 자의 마음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말씀의 강설을 들는 우리는 추수하는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은 몸과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받았으니 값없이 전해야 합니다. 값이 없는 복음은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없는 영광의 기쁨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합당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나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믿으며 가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주실 줄 믿습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믿지 않고 거부하는 자들은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는 것”처럼 해야 합니다. 먼지처럼 취급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어느 누가 합당한 자인지 알지 못하는 우리는 실망하지 말고 전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의 마음 자세는 늘 한결같아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이 있는 자요 교회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자의 마음 자세가 있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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