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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11:16-24
강설날짜 2022-02-06

이 세대를 무엇에 비유할꼬(마11:16-24)

 

산상수훈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성도가 복이라고 하십니다. 성도는 하나님 나라를 소유했기 때문에 세상에서 복된 삶을 생활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삶을 생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5:13절에서 성도는 세상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생활할 것인가를 알려 주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입니다. 우리를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소금은 소금의 고유한 맛이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고유한 성품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인 우리는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풍파를 만난 제자들처럼 시험에 들어 쓰러지기도 합니다. 예수님만 믿는다고 하면서도 풍파를 만나면 자신의 힘으로 풍파를 이기어 보고자 합니다. 그러다 보면 힘들고 지쳐 스러져 스스로 시험에 들어 타락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오뚜기와 같이 다시 일어나도록 하십니다. 우리의 모습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은혜를 주시면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우리와 함께하시며 동행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임마누엘”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는 복 있는 성도이니 소금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소금이 제 기능을 하는 것처럼 성도는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백성다운 삶의 기능을 하라입니다. 소금이 소금으로서 지녀야 할 기능을 하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소금의 가치를 잃고 발에 밟힐 뿐입니다. 그러지 않도록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다운 삶을 생활해야 합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신앙을 지키어야 합니다. 참된 신앙인으로 주의 길을 가기를 소망하는 성도에게 하나님께서 늘 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한 달 전에 우리는 “천국에서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는 말씀을 강설로 들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누구신 줄 알기에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로부터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시험에 들었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있었지만, 제자들에게서 들은 소식에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질문하도록 했습니다. 질문의 내용은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입니다. 세례 요한만이 아니라 누구라도 같은 질문을 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생각한 예수님이 아니므로 질문했습니다. 믿음이 흔들리는 세례 요한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지팡이 교회는 늘 기억하며 주의 길을 가기를 소망합니다.

 

세례 요한은 구약의 시대를 마무리하는 선지자였습니다. 옛 시대에 속한 사람이기에 새로운 시대에 대한 것을 온전하게 알지 못합니다. 단지 장차 올 것을 희미하게 예언하는 선지자였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누구신 줄 이제 알고 감옥에서 평온함을 느끼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결국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 그리고 부활을 보지 못했지만 세례 요한은 하나님 나라를 믿으며 삶을 마무리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준비하는 선지자로서 생을 마무리하면서도 기뻐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는 말씀을 들음으로 세례 요한과 같은 믿음을 지키기를 소망합니다. 오직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 귀로 들은 것을 깨닫게 해 주실 것을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시대의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무지와 불신앙을 변명하지 못하도록 비유를 들어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16절과 17절을 보시면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세대를 부정적이고 비관적으로 보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불신앙 시대였기에 십자가에 못을 박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 시대는 예수님의 사역을 배척한 무리와 종교지도자들 등으로 그들은 늘 자기 방식대로 고집하며 이기적인 아이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치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잔칫집과 상가를 흉내를 내며 다니는 아이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장터에서 아이들이 놀 때 함께 하지 않는 친구들의 모습을 소재로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그들은 결혼식장에서 피리를 붙어도 춤을 추지 않으며 않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장례식에서 슬피 울어도 가슴 치지 않습니다. 세례 요한이 죽어도 슬퍼하기보다 종교지도자들은 자신의 신분이 더 중요했습니다. 예수님보다 자신들의 신분이 더 중요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하면서 회개하라고 해도 믿지 않습니다. 이적과 말씀으로 전해도 오히려 핍박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를 무엇에 비유할꼬”라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믿음이 없는 어린아이와 같았습니다. 미성숙하고 철없는 아이와 같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는데도 듣지도 아니하며 기뻐하지 않는 시대를 책망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당시의 영적인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메시야를 원했습니다. 말씀을 알지 못함으로 메시야를 몰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 사역자가 복음을 잘 전해야 합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자신의 신분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복음을 왜곡하여 전했습니다. 자신만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잘 알지 못하게 함으로 타인도 지옥으로 가도록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를 무엇에 비유할꼬”에 대한 비유를 설명하여 주셨습니다. 18절과 19절을 보시면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과 세례 요한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말씀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메시야를 준비하는 사역자였지만 사람들은 귀신들렸다고 했습니다. 금욕적인 삶을 생활하는 세례 요한이 귀신에 들렸다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금욕적인 생활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처한 현실을 지적하며 회개하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세례 요한은 귀신들렸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옛 시대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처한 현실을 알기에 회개하라고 하며 물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비참한 현실을 알기에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며 메시야를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세례 요한의 말을 듣고 과연 그러한가를 연구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귀신들렸다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만 귀신들렸다고 들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귀신의 왕 바알세불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자로 오셔서 먹고 마시며 세리와 죄인들과 친구로 지내셨습니다. 이것을 본 사람들은 예수님을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먹기를 탐하는 자 그리고 포도주를 탐하는 자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조롱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소리를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이제는 금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기뻐하며 예수님을 영접하고 복음의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귀신의 왕이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신성모독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들은 예수님께서 신성모독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회개하도록 하고 죄를 사하여 주시며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하십니다. 세리와 제자들과 함께 식사하시며 기쁨의 생활로 인도하십니다. 금식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알도록 하시며 새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19절 하반절에서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당시의 속담으로 생각됩니다. 이 속담을 사용하여 예수님께서는 “옳은지 그른지는 후에 분명하게 드러난다”입니다. 장차 닥치게 될 일의 결국이 이 세대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드러낼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부활로 증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이것은 무지와 어리석음입니다. 죄로 타락한 결과는 이처럼 무섭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이적을 알면서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 가장 큰 특권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복음을 직접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20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복음을 전했지만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선교 대상으로 고을들을 삼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책망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며 결국 심판받습니다. 예수님의 이적을 눈으로 보아도 믿지 않았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죄로 타락한 결과가 이처럼 무섭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21절 첫 시작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입니다. 첫 시작이 “화 있을진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셨습니다. 화 있을진저는 숙명적인 절망이나 엄숙한 경고 또는 연민의 정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감탄사입니다. 화 있다고 하시면서도 예수님께서는 돌이키도록 하기 위한 연민의 감정이 있습니다. 그러니 복음을 들은 자들은 돌이켜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라신과 벳세다”를 먼저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두로와 시돈을 말씀하셨습니다. 구약 시대 선지자들은 바알 우상 숭배와 부의 상징인 이 도시에 대한 심판을 예언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두 도시를 이야기하시면서 그들에게 너희들에게 행한 말씀과 이적을 보였다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베옷은 맨살에다 이 옷을 입은 것을 말하며, 재에 앉아는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회개를 의미하는 애통함으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개처럼 취급하는 이방인이 오히려 먼저 회개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약의 백성인 유대인에게 먼저 오셨지만 참으로 비참한 현실이었습니다. 22절을 보시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방인이 너희들보다 심판을 견디기 쉽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음으로 어디를 경고하셨습니까? 23절 보시면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입니다. 고라신과 벳새다 다음으로 가버나움의 심판을 경고하셨습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사역 본거지입니다. 이적을 가장 많이 한 곳이기도 합니다. 회개할 기회가 많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교만을 예수님께서는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고 하셨습니다. 최대의 번영과 특권을 누린다는 은유적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가버나움인들은 교만이 가득하여 회개하지 않고 머리를 하늘로 쳐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소돔에서 행했다면 오늘날까지 있다고 하심으로 가버나움의 죄의 심각성을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24절을 보시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입니다. 소돔은 죄악으로 멸망 받은 지역의 전형으로 가버나움은 더 큰 멸망을 한 다입니다. 소돔이 죄악으로 심판받은 것처럼 회개하지 아니하면 더 큰 심판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행하신 뜻을 세례 요한도 완전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시험에 들어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질문함으로 뜻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행하신 뜻과 하나님의 마음으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귀 있는 자들은 들을지어다”라고 하십니다. 귀를 열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럴 때 진정한 회개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누구나 귀가 있지만 들을 수 있는 귀는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힘있게 나아가는 시대라고 해서 누구든지 은혜로 생활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복음을 듣고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야 합니다. 자신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심판받습니다. 무지와 어리석음은 고라신과 벳새다 그리고 가버나움 사람들과 같습니다. 오죽했으면 예수님께서는 두로와 시돈 그리고 소돔이 더 심판을 견디기 쉽다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그 누구도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참되게 믿는 성도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습니다. 그 반대로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영원한 형벌을 받습니다. 이 길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오히려 지혜 있는 자처럼 생각하며 표적만을 구하는 자들은 심판받습니다. 그러니 선택해야 합니다. 스스로 지혜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순수한 마음을 지닌 어린아이와 같아야 하나님 나라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세대를 무엇에 비유할꼬”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주의 길을 가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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