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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11:25-30
강설날짜 2022-02-13

예수님의 감사와 초청(마11:25-30)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셨습니다. 교회를 세우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은 성도를 세상으로부터 구원하여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교회를 세우심으로 영의 양식을 먹으며 생명을 얻도록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요10:10절에서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영의 양식을 먹도록 하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선한 목자”라 합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성도를 교회로 부르시며 “가서 제자”를 삼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가지고 있는 성도를 통해 세상 사람들을 제자로 삼도록 하셨습니다. 성도는 생명이 있는 사람이기에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전하도록 하십니다. 그렇게 함으로 성령께서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믿을 수 있도록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회심할 수 있도록 함께 하십니다. 회심한 성도를 통해 삶이 예배하는 생활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신앙 생활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생명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세상 사람들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을 수 있도록 제자 삼고자 합니다. 지팡이 교회는 제자로 삼는 교회로 죄의 어두움과 옛사람의 습성을 버린 성도입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는 새사람이 된 백성입니다. 새사람이 된 지팡이 교회는 장성한 성도로 성장하며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새사람으로 하나님 나라를 형상으로 드러내는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이 낳은 자녀 중에 가장 큰 자가 누구라고 하셨습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세례 요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언약의 시대를 예언하는 옛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희미하게 예언하는 선지자였기 때문에 자신의 제자를 예수님께 보내어 질문했습니다. 그 질문은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입니다. 세례 요한은 옛사람이기에 한계가 그 원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메시야를 이스라엘 역사 속에 직접 맞아 들이도록 준비하는 역사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종교지도자들은 세례 요한을 배척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도 배척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를 무엇에 비유할꼬”라고 하셨습니다. 말씀과 이적으로 증거 하여도 믿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불신앙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귀신이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어이없지 않습니까? 불신앙은 무섭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하나님 나라보다 이 세상이 더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신앙을 알기에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를 무엇에 비유할꼬”라고 하시면서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고 하셨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세례 요한이 죽어도 그가 전한 메시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가슴 치며 슬퍼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처럼 말씀을 모르는 사람의 행동은 무섭습니다.

 

예수님을 배척하는 자들은 철없는 아이와 같았습니다. 배척하는 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바른 생각입니까? 인생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종처럼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 시대에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화 있을진저”라고 하심으로 회개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자들은 영원한 심판과 멸망의 책임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오늘날 시대도 불신앙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불신앙은 나만 사망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가족도 사망의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는 믿음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감사와 초청”의 강설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행복을 누리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불신앙으로 받아들이는 시대를 이야기 하시기 위해 25절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여 주셨습니까?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26절에서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옛 시대에 속한 세례 요한보다 예수님의 오심으로 새로운 새 시대의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어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숨기어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자들은 이야기하십니다.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숨기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은 자신이 더 지혜롭고 슬기롭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종교지도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나라를 알지 못하는 자였습니다. 반대로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믿음을 가지 자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알 수 없는 자들은 지혜와 총명으로 알 수 없습니다. 산상수훈의 말씀처럼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맞이하는 자들만 구원의 비밀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라고 하심으로 피조물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권자이시기 때문에 원하시는 대로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뜻을 나타내십니다. 그와 반대로 뜻을 감추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감사한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자신의 무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들을 스스로 잘 깨닫고 있다고 여기는 교만한 자들은 하나님이 심팜을 받습니다. 자신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인정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뜻을 알도록 하십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구해야 하는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뜻을 감추시거나 나타내시는 것을 한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옳소이다”라고 하십니다. 확실합니다. 그렇습니다. 예라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아버지의 뜻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어린아이와 같은 겸손하고 순수해야 합니다. 구원은 사람의 행동과 능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다 보면 곤혹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복음을 듣는 분들이 자신의 머리로만 이해하고자 할 때입니다. 죄로 타락한 사람이기에 당연하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복음은 사람의 추리와 지혜로 알 수 없습니다. 우리도 그분들과 같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심으로 복음의 비밀을 알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신비 중의 신비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 주셔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늘 무릎을 꿇고 늘 엎드려야 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무지와 악함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지혜와 총명으로 알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며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자신의 머리로만 이해하고 깨달으려는 자는 영원한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에서 힘 있게 전진하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복된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복음을 불신하고 배척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받습니다. 영생을 원하십니까? 진시 황제도 알지 못한 비밀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요17:3절은 분명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주님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있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이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려 주셨습니다. 27절을 보시면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입니다. 천지 만물을 유업으로 받으시고 다스리실 상속자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리고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을 온전하게 알 수 있는 분은 예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서로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을 듣고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수행하시는 분으로서 우리에게 구원을 받으라고 초청하십니다. 28절을 보시면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움 짐진 자”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죄의 짐을 지고 사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종교지도자들이 지워준 종교적인 기대와 의무라는 막중한 짐을 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믿음으로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하라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이 참된 안식이심을 분명하게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게로 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 오는 자들은 쉼을 얻습니다. 그 쉼은 회심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성도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의 지워준 짐은 무거운 것이지만, 주님으로부터 받은 짐은 가볍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임마누엘로 함께 하시면서 휴식하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성도는 참된 안식을 누립니다. 세상 사람과 다른 삶의 안식입니다.

 

예수께서는 당신님에게 마음을 두고 그 어떤 사람도 모두 받을 만한 넓은 사랑과 모든 인간을 친히 부르실 만큼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시고 구원과 안식으로 초대를 지금도 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음으로 안식을 누리는 생활을 합니다. 마지막 날의 영원한 안식만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의 모든 갈등을 해소한 후의 평화와 안식까지 의미합니다. 성도가 주님께로 가면 성도는 죄와 율법의 속박, 불안과 염려, 고통에서의 해방을 맛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종교지도자들과 다른 복음입니다. 그들은 무거운 짐을 계속 지도록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짐을 내려놓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동행하시며 함께 짐을 지시며 안식하도록 하십니다. 그러면서 영원하며 온전한 안식은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그날을 소망하며 믿음생활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쉼을 얻도록 하십니다. 복음을 들음으로 우리는 은혜를 누리며 세상의 짐을 내려놓으며 가서 제자 삼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진실한 위로는 주님이라는 것을 늘 알아야 합니다. 우리만 아는 것이 아니라 이웃도 알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알도록 하심으로 진정한 안식으로 초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앎으로써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안식을 주시기 위해 오실 메시야에 대하여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사53:2-6절을 보시면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입니다. 참된 안식을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해 예수님이 무거운 짐을 지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에 죽음으로써 죄인의 죄를 대신 감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라고 하시면서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29절에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하셨습니다. 멍에를 멘다는 것은 보통 어떤 권세나 통치자에게 자신을 예속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의 멍에를 메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으라’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으라 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성품을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셨습니다. 절대적인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짐을 내려놓도록 할 수 있는 메시야이십니다. 메시야이기에 우리는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지팡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으며 쉼을 얻어야 합니다. 진정한 쉼을 받음으로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한 안식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그날을 소망하며 신앙생활 하는 때입니다. 하늘에 소망을 품으며 주님께 나의 짐을 내려 놓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성도에게 예수님께서는 은혜를 주시며 짐을 함께 지워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동해하는 성도는 온유하며 겸손한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있기 때문에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그 누구도 참된 안식이 없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선한 길을 가는 교회입니다. 선한 길을 가려면 예수님께서 주시는 멍에를 메어야 합니다. 그 멍에는 메기에 쉽고 예수님께서 지워주는 짐은 가볍습니다. 30절을 보시면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짐은 확실한 구원을 가져옵니다. 선하고, 바르고, 좋은 것이기 때문에 항상 예수님의 능력에 의존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나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만 자랑해야 합니다. 인생은 나 혼자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동행하여 주시며 영생을 동반한 쉼을 얻을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세상의 멍에를 버리고 주님의 멍에를 메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백성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도록 했습니다. 마23:4절을 보시면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입니다. 자신들은 손가락도 움직이려고 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에게 짐을 지도록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전통과 의무를 강요하며 사람들을 옭아맸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전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신들의 권세를 위해 말씀을 사용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예수님께서는 역설적인 표현을 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예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 나라로 부르시는 초청에 응답해야 합니다. 그럴 때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며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도는 예수님을 믿는 데서 끝나지 않고 자신의 성숙을 위해 힘써야 합니다. 장성한 신앙인이 될 수 있도록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안주하면 안 됩니다. 나는 이미 구원받았으니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더 힘을 내어 하나님을 사모하며 가서 제자로 삼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초정을 전달해야 합니다. 지팡이 교회는 주를 구원자로 고백하며 신앙 생활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안식을 누리는 날까지 지팡이 교회는 사명을 감당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주님만을 믿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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