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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06 13:58

에베소서를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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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엡1:1-2
강설날짜 2022-03-06

에베소서를 알자?(엡1:1-2)

 

에베소서는 교회 공동체와 성도의 삶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책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도는 어떤 사람인가?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교회의 이상적인 모습은 무엇인가? 등을 전하여 주고 있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에베소서를 통해 교회에 대한 이해와 교회를 향한 사랑이 더욱 깊어 가기를 소망합니다. 마틴 로이드 존슨 목사님은 바울 서신 중에서 에베소서는 가장 숭엄하고 엄위롭게 표현한 책이라고 합니다. 찰스 헤럴드 다드는 바울 신학의 최고봉이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증거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특별하게 세우셨기 때문에 우리는 에베소서를 통해 잘 알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기업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삼성, 현대, 기아, 코카콜라, 소니 등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기업이지만 오백 년 또는 천년이 넘는 기업은 없습니다. 사람이 만든 기업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세우신 하나님 나라의 교회는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오순절 성령이 임하여 신약 교회가 세워지고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존재합니다. 기업과 교회는 다릅니다. 그런데도 어떤 분들은 교회를 기업처럼 만들고자 합니다. 작은 시작으로 출발한 교회는 온 누리에 세워져 있습니다. 세상의 기업을 돈으로 유지한다면 교회는 돈으로 유지하지 않습니다. 또한, 기업처럼 강제로 조직된 교회가 아닙니다. 기업은 온 누리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오지라 할지라도 복음을 들고 들어가 교회를 세웁니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교회와 기업은 다릅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공동체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주님의 은혜로 하나의 공동체로서 사명을 감당합니다. 하나의 공동체로서 신앙생활 하는 이유는 주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함을 받는 우리를 주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요 청지기인 성도는 평화의 복음을 온 누리에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있는 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평화의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전해야 합니다. 분열이 있는 곳에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크라이나이든 러시아이든 분열이 있는 지역이라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빛은 어두움 속에서 더 밝은 빛을 내는 것처럼 죄로 어두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밝은 평화의 빛을 전해야 합니다. 갈등이 있는 곳에 사랑을, 불신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사명자 다운 청지기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세상에만 복음을 전해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오늘날 일부 한국 교회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만들어진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거짓 복음을 전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분열과 갈등 그리고 위선을 부리는 자들도 있습니다. 주님을 참되게 믿는 교회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 말씀으로 복음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 안에서 하나 된 신앙고백 하며 신앙 생활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에베소서가 중요합니다. 교회가 무엇인가를 잘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 있을 때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 죄수의 몸으로 있었지만, 로마의 시민권자라 자유로운 형편에 있었습니다. 행28:16절은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입니다. 이 말씀을 증명해주는 빌1:12-14절을 생각하면 됩니다.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이 보낸 편지를 읽으며 교회가 무엇인가를 생각했을 것이라 믿습니다. 오늘날 우리보다 더 잘 이해했을 것은 당연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이 편지를 읽으며 서로 교제했을 것입니다. 과거에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생각하며 교회가 무엇인가를 더 잘 알았을 것이라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해 당신님의 교회를 든든히 하셨습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를 기록하게 된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서신을 써서 특정한 개교회에 보냈지만, 에베소서는 보편교회를 향해 보낸 편지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혼합 주의적인 가르침에 영향을 받고 있었습니다. 유대주의 사상과 희랍 사상을 섞어 놓은 혼합주의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교회가 바른 신앙을 정립할 수 있도록 글을 쓴 것입니다. 우리는 “신학의 결정판”이라고 하는 에베소서를 통해 바른 신앙과 교회관을 세우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날 교회도 이와 같은 현실에 처해있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말씀으로 무장된 전신 갑주를 입고 그리스도의 군사로 승리해야 합니다.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하실 것 같습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데 언제 에베소 교회를 세운 것입니까? 지팡이 교회는 사도행전을 강설로 들었기 때문에 다시 기억해 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제2차 전도 여행 때 에베소에 잠깐 들렸습니다.(행18:19-20) 이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에게 복음을 전해 교회를 세우고 그들을 에베소에 남겨두었습니다. 그리고 제3차 전도 여행 때 사도 바울은 에베소를 목적지로 삼고 머물며 2년 또는 3년 동안 주야로 말씀을 가르치며 교회를 더 든든히 세웠습니다.(행19:1-8) 에베소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두란노서원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 말씀을 강론하며 전했습니다. 두란노서원에서 토론하며 아시아에 복음이 심어지도록 했습니다. 에베소는 아시아에서 중요한 항구로 동아시아 무역의 요충지였습니다. 당시에 인구 50만 명이나 살았다고 하니 큰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아시아 지방의 수도였습니다. 에베소에 복음이 전해지면 여러 지역으로 복음이 전해질 수 있는 좋은 장소입니다. 그렇지만 복음을 전하기 위한 좋은 환경은 아니었습니다. 로마 황제를 숭배하는 도시이기 때문에 황제를 숭배하기 위한 신전이 세 개나 되었습니다. 그래서 황제숭배 도시로 유명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아데미 여신을 숭배하는 본거지로 엄청난 규모의 신전이 있었습니다. 아데미 신전으로 인해 신도들이 줄을 이었으며 숙박업과 기념품 사업도 잘되는 지역이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귀신을 쫓는 마술과 부적 판매도 번창했습니다. 이런 곳에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사악한 지역이라도 사도 바울을 통해 복음을 뿌리시고 세우셨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에베소서를 통해 교회란 무엇인가?를 바르게 이해함으로 사도 바울의 마음을 알며 우리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주의 길을 가기를 소망합니다. 에베소서를 읽으며 교회에 대한 주님의 사랑을 알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몸 된 교회를 창립하여 주심으로 하나님과 교회의 신비로운 관계로 연결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신비로운 연합에서 벗어날 수 없는 성도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빛과 소금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위해 열심히 일한 하나님의 일꾼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이런 일꾼이 많아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아시겠습니까? 에베소 교회를 섬겼던 일꾼들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아볼로, 디모데, 두기고 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는 바울이 사망한 이후에 사도 요한이 마리아와 함께 말년을 보낸 지역입니다. 이런 사명자가 있을 때 교회는 부패하지 아니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에베소 교회와 시대와 정황이 떨어져 있더라도 편지의 내용을 알아야 합니다. 에베소서를 우리 시대의 마음으로 이해하고자 하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서신서를 읽는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서신서를 배운다는 중요한 의미도 있지만, 그것에 근거하여 우리 시대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처음으로 보냈던 에베소서의 글을 생각해야 합니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그렇지 않고 자의적인 해석을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나님께 은혜를 간구하며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복음을 전하신 것처럼 오늘날 우리도 같은 복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어떤 자들은 에베소서를 바울의 글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바울의 제자들이 쓴 것으로 생각하며 바울의 이름을 도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바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도 바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본문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을 다시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기록합니다. 누가 누구에게 보내는 편지입니까? 바로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입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를 위해 보낸 편지입니다. 목회자와 신학자를 위해 보낸 글이 아니라 교회를 사랑하는 공동체 즉 성도를 위해 보낸 글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누구라고 표현했습니까? 사도 바울은 자신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뜻으로” 된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 바울은 사도가 되기 위해 자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사도로 세우기 위해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만 있어야 합니다. 교회를 세우기 위해 초대 교회에만 주어진 사도입니다. 그 이후에는 사도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어떤 자들은 사도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모독하며 망령되이 일컫는 자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에베소 교회를 위해 자신을 하나님의 주권에 있다고 소개합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편지의 발신자임을 분명히 합니다. 독자들이 발신자의 권위를 의식하게 하면서 에베소서의 글을 가볍게 취급하지 말라는 의도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다른 편지에서도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롬1:1절을 보시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고전1:1절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갈1:1절은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즉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도가 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신분을 높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종”이라고 표현합니다. 바울이 사역하던 당시에 사도는 “왕이나 권세 자의 권한을 위임받아 특정한 공무를 수행하기 위해 파견을 받은 사람”을 지칭합니다. 왕과 권세 자의 사도는 무시할 수 없는 힘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도라 할지라도 자신을 예수님의 종이라고 서신서에서 자주 표현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권한을 위임받아 하나님 나라를 전하기 위한 종임을 분명히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정체성을 알기에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이라고 에베소 교회에 소개했습니다. 목회자들도 이러한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오늘날 우리도 이런 마음으로 목회를 해야 합니다. 목회자만 아니라 교회는 누구나 이런 마음을 품으며 삶으로 생활해야 합니다.

 

사도만이 아니라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도 내가 스스로 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내가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성도가 아닙니다. 그런 분들을 저는 교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성도와 교인은 다릅니다. 교회 안에는 성도와 가라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알곡과 가라지 비유로 말씀하여 주시기도 하였습니다. 알곡은 성도로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입니다. 내가 성도가 되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럴 때 성도는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과 교회를 사랑하는 열정과 눈물이 있습니다. 직분이 높아야만 하나님 우편에 있지 않습니다. 누구나 성도이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여기서 성도들과 성도에 대한 것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영어로 성도는 세인트입니다. 세인트라는 단어 속에 이미 복수가 있습니다. 교회는 공동체이며 성도입니다. 이 안에 복수의 의미가 있습니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번역에 아쉬운 점은 성도들이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인의 언어를 생각하며 번역한 것이기에 아쉽지만 편지의 내용은 변하지 않습니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자로서 우리는 은혜로 교회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교회에 출석한다고 해서 누구나 성도는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교회 안에서 누구나 성도라고 하지만 알곡과 가라지가 있습니다. 저는 목회자로 서약했을 때 “성도요 겸하여 목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누구나 성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교회를 위해 직분을 주셨습니다. 더 많은 일을 감당하도록 하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직분은 목회자의 일을 할 때 주어지는 일입니다. 사역을 그만두면 그 ㅈ직분은 사라집니다. 한국 교회가 잘못 생각하는 것은 항존직입니다. 영원한 항존직은 없습니다. 하지만 성도는 은혜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는 귀한 것입니다. 그러니 지팡이 교회는 거룩한 자들이 돼 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완전하지 않습니다. 죽을 때 우리는 완성돼 갑니다. 몸과 영혼이 부활함으로 우리는 삼위 하나님 안에서 온전한 상태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날을 소망하며 주의 길을 간다는 것은 희망이요 참된 생명의 길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벧전2:9절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좋아합니다. 이 말씀을 알았을 때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 때문에 벧전후서를 강해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교회를 “하나님의 소유”라고 했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목사와 장로에게 있지 않습니다. 교회는 성도로서 구별된 사람이 있습니다. 죄의 형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정결함을 받은 성도입니다. 세상에서 끌어내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썩지 아니하는 영광으로 주의 길을 가는 성도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성도의 이미지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정신을 빠짝 차리고 성도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배당에 나와서 헌금하고 출석만 하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이런 분들은 예수님을 믿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로를 받기 위해 믿는다면 아무런 소용없습니다. 이런 분들이 최후의 심판대에서 주여 해도 주님은 응답하지 않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순결해서 성도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셨으니 오직 감사만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잘못 알고 있는 유대인들 특히 종교지도자들과 같은 생각은 어리석은 마음입니다. 선민사상으로 가득했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였습니다. 이처럼 성경을 잘못 알면 그들과 같이 될 수 있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구별된 사람이기에 성경을 사모하며 주의 길을 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1절에서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해야 합니다. 이웃으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교회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새로운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기에 끝까지 책임져 주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라고 표현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늘 이 말씀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그러면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기관으로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몸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가 되므로 부활에 참여하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나의 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으로 신앙생활 하는 교회를 말합니다. 세상에서 힘들게 생활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생활 하며 애쓰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성도는 없습니다. 당연히 교회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주님의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 다음으로 생각해 볼 말씀은 2절입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 받는 복을 의미합니다. 2절을 보시면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입니다. 은혜와 평강은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하나님 우리 아버지입니다. 은혜와 평강은 조화로운 의미로 교회는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와 평강의 선물을 주심으로 교회는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믿음과 구원의 시작이며 평강은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새 사람으로서 새로운 삶을 생활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이 세상 속에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입니다. 그러니 지팡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누리며 주의 길을 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15:10절에서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가 될 수 있는 것은 내가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의 은혜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신실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이 처한 상황은 좋지 않았습니다. 엡3:1절에서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즉 갇힌 자 되었다고 합니다. 로마 감옥에 구금된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에베소 교회를 사랑했습니다. 쉼이 필요한 가운데서도 사도 바울은 엡6:19-20절에서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자신이라고 하면서 복음을 위해 그리됐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 무조건 잘 돼야 하는 것이 복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은혜요 평강이며 복입니다. 세상 사람의 시각으로 보면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관점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기 때문에 감옥도 부끄러운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복음을 기록할 수 있는 인생 역작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바로 바울 신학의 정수라 하는 에베소서가 기록되었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혜와 평강으로 세우신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삶과 가정에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와 평강을 누리며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런 분들이 신실한 성도입니다. 이런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팬대믹 시대에 있습니다. 하지만, “내 주는 강한 성”이라는 것을 믿으며 주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삼위 하나님께 신앙고백 해야 합니다. 또한 세상 사람들에게도 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렸습니다.

 

바울에게는 외적인 것과 내적인 평화가 있습니다. 외적으로는 힘이 들어도 내적으로는 평화롭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물질, 권력 등이 있어야 행복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힘이 들고, 불행하다 할 지라고 기독교의 관점에서는 모든 것이 행복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재림하시면 이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입니다. 우리가 만들어 낸 영광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광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하나 된 공동체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로 수평적인 관계로서 은혜와 평강을 누리는 교회임을 생각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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