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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엡1:7-14
강설날짜 2022-03-20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YwHkqRN4-lw

죄 사함 받은 성도의 영광과 찬송(엡1:7-14)

 

하나님 나라를 모르면 엉터리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최초로 선포하신 것이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막1:14-15절을 보시면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 나라는 손에 잡힐 듯이 왔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도 곧바로 반문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 나라가 온다는 것을 말씀과 선지자들을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알 수 있도록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믿는 백성이기 때문에 성경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신 당신님의 특별한 계시입니다. 참된 하나님 나라를 알 수 있도록 주신 생명의 말씀 즉 계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이 잡힌 후 갈릴리에서 주로 사역을 하셨습니다. 늘 한결같이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셨던 이유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없다면 이렇게 전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있기 때문에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모든 것을 교회를 위해 주셨습니다. 복음의 기원은 하나님이시며,또 이 복음은 하나님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이것을 전해야 하는 신자들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좋은 소식으로 예수님께서 구원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으로 인하여 죄 사함을 받았으므로 감출 수 없습니다. 빛이 어둠에 숨을 수 없는 것처럼 지팡이 교회는 빛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과거나 오늘이나 미래에도 실재하면서 지금도 당신님의 주권으로 통치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고, 언제나 통치하십니다. 통치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믿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한 번도 통치하지 않으셨던 때가 없었습니다. 이런 하나님을 오늘 우리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고 있습니다.

 

지난주 말씀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었습니다. 세상이 생각하는 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은혜와 평강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우리를 선택하시고 예정하신 것이 복임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심으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기 위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께 찬송하는 것이 본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신령한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양자로 삼아주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신실한 신자가 되도록 하시며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셨습니다. 이런 은혜를 받은 성도는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서 연결되는 본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역하신 일을 알고 있는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사역을 하셨는지 그리고 성도의 구원에 관한 성령의 사역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없다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는 값없이 구원함을 받은 성도가 되었습니다. 구원은 사람을 향한 하나님께서 주신 최대의 선물이며 복입니다. 질문 해 보겠습니다. 죄 용서는 가능합니까? 나 스스로 죄 용서함을 받을 수 있습니까? 그러면 사람이 범한 죄는 어떻게 용서함을 받을 수 있습니까? 그리고 죄 용서함을 받을 수 있는 근본적인 것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세상 사람들은 돈으로 해결해 보고자 합니다. 인맥을 통해 죄에서 해방되고 싶어 합니다. 사회봉사를 통해 죄 형량을 낮추고자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법정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입니다. 불가능한 이유는 사람은 스스로 의인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에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 죄의 대가는 무엇인지 아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것은 죽음입니다.

 

하나님 앞에 사람은 자신이 죄인이 아니며 의인이라고 할 자격이 없습니다. 원죄로 인해 모든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이 될 수 있도록 누구를 보내 주셨습니까? 우리의 죄를 속량할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7절을 보시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입니다. 바울은 구원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임을 상기시키기 위해 은혜의 풍성함이라고 합니다. 은혜의 풍성함이란 무엇입니까? 우리는 늘 성경에서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7절을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당신님의 백성을 택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은 성도를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구원의 은혜를 받은 성도입니다. 우리는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의인도 아니며 공적도 없습니다.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풍성히 받은 것만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롬5:8절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하십니다. 삼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성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덮어주심으로 죄가 덮어졌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법과 하나님의 법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심으로 우리는 구원받았기 때문에 감사만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속량해 주셨기 때문에 성도는 자랑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속량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속량이라는 말은 구속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속량은 “몸값을 치르고 전쟁포로나 노예를 해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 당시 노예는 물건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노예를 물건처럼 사고팔았습니다. 노예가 자유인이 될 수 있는 길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노예를 사서 노예시장 밖에 나와 “너는 자유다”라고 말하며 해방해 주면 자유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구원도 이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값을 치러주심으로 하나님께서 죄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자유로움을 누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죄악이 극치에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없이는 도저히 죄 사함을 받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 사람은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오직 삼위 하나님만 가지고 있는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적인 사랑을 알 수 있도록 어떻게 하셨습니까? 8절을 보시면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적인 사랑을 사람에게 알리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비밀입니다. 그런데 이 비밀은 오직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에게는 알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구원의 비밀을 안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사람의 이성과 지각으로 깨달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이 비밀을 알도록 하셨습니다. 바울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비밀을 알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알 수 있도록 지혜와 총명을 주셨습니다. 지혜와 총명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로 타락한 자들은 스스로 지혜롭고 총명하다고 합니다. 사람은 스스로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피로 인해 우리는 지혜와 총명으로 구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엡3:3-6절에서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라고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당신님을 계시하여 주심으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비밀을 알도록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와 평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찬양해야 합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비밀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단지 감사와 영광만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지혜와 총명은 무엇입니까? 지혜와 총명은 비슷한 의미가 아닙니까? 그러나 차이가 있습니다. 지혜는 여러 가지 대상 중에서 바른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총명은 지능적인 행위와 관련된 것으로 바른 행위를 할 수 있는 분별력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늘 지혜롭고 총명할 수 있도록 늘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죄 사함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지혜롭고 총명하도록 하셨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입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비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9-10절에서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단순히 숨겨져 있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감추어져 있던 비밀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밝혀진 진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비밀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 비밀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비밀을 알도록 하셨습니다. 비밀은 바로 구원입니다. 사람이 구원함을 받았다는 것을 알도록 하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 비밀을 알도록 하심으로 주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성도는 고백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비밀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는 비밀이 아닙니다. 과거에는 비밀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더는 비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이 세상에 대해서 예정하실 때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을 10절에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입니다. 이 세상 전체를 하나로 통일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반역함으로 파괴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통일되게 하십니다. 온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궁극적인 목적이 바로 통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파괴된 세상을 회복시키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성육신과 죽으심, 부활 그리고 승천에 관한 것을 바르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대로 뜻하신 대로 통일되게 하십니다. 지금도 계획을 세우시고 구원을 이루어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당신님께서 뜻하신 바 선한 기쁨을 위탁하심으로 통일을 이루어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전 우주를 통일되게 하심으로 완전하게 하십니다. 그 계획을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도로 부르시며 일꾼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찬송하며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청지기입니다. 지금은 온 세상 안에 불일치와 무질서가 있지만,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통일되게 하실 것을 믿으며 주의 길을 가는 지팡이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이 통일되게 하려고 우리를 기업으로 삼으셨습니다. 11절을 보시면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기업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기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기업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소중한 재산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와 섭리 그리고 선택을 통하여 얻고자 하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영광을 교회를 통해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이 예배의 목적일 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구현해 나가는 성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당신님의 계획에 따라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 세상을 지배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결정하시고 계획하십니다. 단지 우리는 하나님께 정결한 마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하나님의 뜻을 움직이고자 합니다. 이것은 내가 하나님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불변성을 사람은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기도를 통해 나의 기도만 들어주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뜻에 합당한 기도인가를 성경을 통해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사람으로 변화돼가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께 의존해야 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기업으로 창세 전부터 우리가 영광의 찬송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찬송하는 성도는 종말의 시대에 있습니다. 이 또한 마지막 날을 위해 통일돼 가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습니다. 12절을 보시면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시고 있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을 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신 성도는 누구나 영광의 찬송을 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주의 뜻을 알기에 찬송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는 찬송하는 성도입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찬송하는 존재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삶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께 우리의 삶이 있습니다. 12절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백성을 구원하신 방법과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방법은 당신님의 뜻과 예정과 목적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정과 목적에 따라 구원하신 이유는 우리를 통해 영광과 찬송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사43:21절에서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하나인 성도로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올려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올려 드리려면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성령의 역사도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13절에서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을 듣습니다.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이 나오고 그 믿음으로 인해 우리는 구원에 이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씀이 구원의 복음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 성령의 인치심을 받습니다.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확신과 위안을 지속해서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십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사역도 우리를 위한 은혜입니다. 성령은 마치 도장과 같습니다. 도장은 구원의 사역이 사실이고 진짜이며 확실하다는 것을 증거로 내미는 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한 존재라 힘들고 지칠 때 우리를 향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구원의 약속이 사실일까?라는 의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계시는가? 나는 지금 힘들고 지쳐 스러질 것 같은 현실에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구원의 약속과 우리를 향한 사랑이 잠시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성령께서 힘과 용기를 주시며 은혜와 평강으로 인도하십니다. 인도함을 받는 성도는 말씀의 진리를 통해 돌이키며 하나님께 감사의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알기 때문에 영광과 찬송으로 주의 길을 가는 성도입니다.

 

성령의 인치심으로 우리의 소유는 하나님 나라에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왜 인쳐주신 것입니까? 14절을 보시면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즉 우리의 모든 소유권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기업이 되도록 하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도록 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 성령께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임을 보증하여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보증은 해약할 수도 있지만, 성령의 보증은 해약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작정 된 성도는 성령께서 보증하여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상속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보증하여 주셨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주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은 썩지 아니할 영광이 있습니다. 그 나라를 위해 우리는 지금 하나님 나라의 맛보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며 의와 희락과 화평을 누리며 삶으로 예배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보증하여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부활이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믿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롬8:11절에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아멘으로 믿습니다. 성령이 진리의 말씀을 알도록 하심으로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성령께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신실한 성도는 신령한 복을 주신 것을 알며 영광을 올려 드리는 삶을 생활합니다. 성도는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올려드립니다. 지팡이 교회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해야 합니다. 지금도 우리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고 있기 때문에 영광의 찬송을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함께 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기업이며 소유권이 있다는 것을 알도록 하십니다. 성도는 성령을 통해 우리가 누구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찬송가의 가사를 생각해 보십시오.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성령의 역사 때문에 우리는 삼위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 받았기 때문에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의와 희락과 화평의 삶을 생활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늘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청지기의 삶을 생활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구원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감사의 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과 성도의 차이점입니다. 영원한 형벌을 당해야 했던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기업이 될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구속하여 주셨습니다. 이것을 알 수 있도록 성령께서 보증하여 주시고 인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구원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사람의 행위와 지식으로 알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도 행위를 요구하는 설교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설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의 찬송을 하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도록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감사의 영광을 삼위 하나님께 올려 드릴 수 있는 성도입니다. 성도가 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인쳐 주시고 기업의 보증이 되어주심으로 구속의 은혜를 알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구원의 복음을 들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이 또한 내가 스스로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알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랑을 받는 존재가 성도입니다. 그러니 지팡이 교회는 삶 속에서 영광과 존귀와 감사의 찬양을 하며 삶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늘 주님과 동행하며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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