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팡이교회

오전예배강설

조회 수 31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엡1:20:23
강설날짜 2022-04-03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YWB-L92pN04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건물이 교회가 아니다.(엡1:20-23)

 

성경은 우리에게 ‘기억’하라고 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과 취미, 친구 등을 기억하기 좋아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것보다 누구를 기억하라고 하십니까? 당연히 삼위 하나님이다. 신6:4-5절을 보시면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게 당신님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을 기억할 수 있도록 7절과 8절에서는 “마음에 새기고”, “부지런히 가르치며”, “말씀을 강론”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인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의 영광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영광은 다릅니다. 우리의 영광은 하나님의 영광 부속물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해 우리는 몸과 영혼이 부활함으로 영광의 면류관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 영광도 우리의 지혜와 행함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자랑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삼위 하나님께만 감사의 영광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기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는 성도를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시고,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시며 교회가 든든히 세워져 갈 수 있도록 동행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늘 삼위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도 지난주 강설을 간략하게 기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바르게 늘 기억하며 신분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신령한 복을 받은 성도의 본분이기 때문입니다. 삼위 하나님께서 주신 신령한 복을 받은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사도 바울의 신앙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를 알 수 있도록 사도 바울을 통해 에베소서를 기록하도록 하셨습니다. 죄인 중의 죄인인 사울을 구원하심으로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셨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하나님께서 사울의 이름을 바울로 개명하여 주지 않으셨습니다. 이방인의 전도 여행을 위해 사울과 비슷한 로마식 이름인 바울을 사용했습니다. 그래야 전도의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를 위해 “주 예수 안에서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믿음과 사랑이 없이 교회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기에 우리는 “주 안에서” 믿음 생활하며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에베소 교회가 하나님을 알도록 기도하며 그들이 마음의 눈을 밝혀 영적 사실을 알도록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는 흔들리지 아니하며 든든히 세워져 갈 수 있습니다. 이 또한, 나의 능력과 지혜로 불가능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베푸신 능력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과 사랑을 받은 존재가 교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음부의 권세도 교회를 영원한 사망으로 끌고 갈 수 없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생각할 수 있는 본문입니다. 교회의 머리가 주님이신데 왜 사림이 교회의 머리가 되고자 합니까? 주님의 자리에 우리가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성도는 주님으로 인해 구원받았기 때문에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해야 합니다. 머리에 순종하지 아니하면 살아 있으나 죽은 것과 같습니다. 성도는 교회이기에 주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머리의 지시에 따라 순종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머리의 지시에 우리의 몸이 움직이는 것처럼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생활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주님께 순종하는 성도는 참된 교회입니다. 그렇지 않고 반대로 하는 자들은 주님을 믿지 않고 자신의 행복과 위안을 위해 믿습니다. 이런 분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입니다. 이런 사람이 많으면 교회는 더 타락합니다. 교회만 힘든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도 예수님을 믿지 않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교회는 힘들지만 예수님께 순종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 순종하기 위해 우리는 교회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20절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 하신 능력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힘의 위력과 역사하심 그리고 베푸신 능력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왕권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오른편에 앉히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우리를 “이처럼 사랑”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극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극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증명하여 주셨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구원도 없습니다. 십자가는 부활이 있을 수 있도록 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십자가의 사건을 중요하게 기록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예수님께서 대속의 죽음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십자가의 죽음을 택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와 부활로 드러내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와 부활을 알 수 있도록 롬4:25절에서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부활을 믿으며 굳건한 반석과 같이 믿음의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있기 때문에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죽을 몸도 구원하여 주실 것을 믿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알기에 20절에서 예수님께 있었던 일을 우리가 알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장차 있을 우리의 모형이요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누릴 수 있도록 보증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담보하여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값없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님의 우편에 앉히셨습니다. 마치 왕의 즉위식과 같습니다. 그런데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우편을 특정한 장소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한 것입니다. 오른편에 앉히셨다는 것은 통치의 개념입니다. 예수님께서 만물의 주인이심을 알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무한한 능력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씨앗은 서로 달라도 자신의 형체를 따라 흙에서 나옵니다. 그런 것처럼 예수님의 부활도 같습니다. 땅에서 부활하심으로 우리도 이와 같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능력이 또 있습니다. 그것을 21절에서 알려 주고 있습니다.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입니다. 하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의 위치와 주권을 높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을 예수님께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드러내었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심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기록했을까?라고 했을 때 에베소 교회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 의해 교회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는 영지주의자들로 인해 힘들었습니다. 그 외 잘못된 가르침에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도가 흔들리지 않도록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분명히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위해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에서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도록 하고 있습니다. 왕의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누구도 앉을 수 없는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심으로 모든 이름보다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2절을 보시면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사람이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는 아멘으로 “그렇습니다”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믿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하나님께서 알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알도록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예수 그리스도의 발 아래에 복종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만물 위에서 교회의 머리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교회의 머리가 되신 것입니다. 그 어떤 만물에게 교회의 머리가 되어 주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예수님께서는 교회의 머리가 되어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만 증거한 것이 아니라 사도 베드로도 증거 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 강설에서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행2:33) 그냥 죽은 가운데에서 일어난 것뿐 아니라 하나님의 높이심으로 얻은 것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비참한 현실에 오셔서 낮아지셨고 결국 죽음이 최후의 비참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높아지심은 부활로 시작하여 승천하시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더욱 높아짐은 장차 최후의 심판자로 오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교회는 복음을 전해야 하는 청지기요 사명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에게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기 위해 교회의 머리가 되어 주셨습니다. 마귀가 아무리 강력해도 주님의 권세와 능력에 미치지 못합니다. 말씀만 해도 마귀는 힘을 쓸 수 없습니다. 모든 만물은 주님의 발 아래 복종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주님을 믿는 지팡이 교회는 행복한 성도입니다. 행복의 극치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종말의 시대를 생활하는 우리는 마지막 심판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맞이해야 합니다. 그날은 몸과 영혼이 부활하기 때문입니다. 그날을 소망하며 믿음의 길을 주님과 동행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우리는 주님의 몸에 접붙여 있도록 하심으로 마귀의 유혹에서 벗어나게 하십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구원하여 주십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만물 안에서 충만하도록 하십니다. 23절을 보시면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사도 바울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주님의 교회의 머리요 몸이라고 하심으로 우리는 주님의 몸에 접붙여졌습니다. 그리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분리될 수 없는 생명의 관계로 있다는 의미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양식을 먹음으로 생활하는 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주님의 몸에서 나뉠 수 없는 교회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만들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있다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는 행복이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주님의 통치는 모든 만물에 미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몸의 생명으로 몸 된 교회의 생명과 만물을 충만하게 하십니다. 충만할 수 있도록 생명의 은혜를 늘 주십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우리 안에 함께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한다고 했습니다. 골2:9절을 보시면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음으로 우리는 생명이 있으며 충만이 있습니다. 늘 우리가 함께 하시며 교회를 충만케 하십니다. 주님께서 천지에 임재하시면서 만물을 주권적으로 통치하시며 당신님의 능력으로 돌보십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만물은 주 안에서 운행됩니다. 그러니 우리는 주님의 다스림에 순종하며 주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충만할 수 있습니다.

 

죄의 타락으로 상실된 만물을 평화와 아름다움으로 회복하여 가십니다. 만물을 통일되게 하시기 위해 만물을 충만하도록 하십니다. 주님께서 만물 안에 임재하여 주권적으로 통치하시면서 만물을 하나님의 목표로 이끌어 가십니다. 특히 교회는 새 성전으로서 종말의 시대에 생활하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눈에 보이는 성전 즉 건물을 통해 당신님을 드러내셨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함으로 충만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가 새 성전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성전으로서 거룩해야 합니다. 이 거룩함도 주님께서 주시는 양식으로 인해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교회는 무엇보다 교회의 머리요 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믿음이 있어야 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을 생각해 보십시오. 특히 머리가 없으면 생존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교회는 전적으로 주님의 머리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럴 때 존재할 수 있으며 성전으로 영광된 삶을 생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로서 부르심을 받은 성도입니다. 이 성전도 예수님이 성전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어떤 자들은 교회당을 구약 시대처럼 눈에 보이는 성전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교회당을 구약의 성전처럼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진정한 성전의 실체이신 예수님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실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을 위해 행위로 구원받고자 애쓸 수 있습니다. 왜곡하며 전하는 현실이 부끄러운 시대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로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생명의 양식을 나누는 것입니다. 교회다운 모습일 때 교회는 굳건한 반석과 같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가장 교회다울 때가 재정이 빵빵하고 조직이 든든할 때 그리고 신자가 많을 때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를 기업처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세상의 상표처럼 메이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잘못입니다. 주님이 함께 해야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왜 망했습니까? 눈에 보이는 성전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작 하나님이 떠나시니 결국 심판을 받았습니다. 무너진 성전에서 애곡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참된 성전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참된 교회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결국, 예수님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알 수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성경을 바르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팡이 교회는 교회 안에 충만히 임하여 교회를 통치하시는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주권에 순종하며 삼위 하나님께 경배해야 합니다. 마지막 심판의 날에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과 왕권으로 깨어지고 분열되고 일그러진 온 세상을 통일하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마지막 때는 모순과 갈등, 전쟁과 혼란 등이 종식되는 날입니다. 오로지 평화가 넘칩니다. 너무나 행복하기에 삼위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 위에 머리이시며 통치자이십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를 통해 우리는 주님의 통치를 알 수 있습니다. 마귀의 유혹에서 구원하시며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의 머리와 몸이 되어 주셨습니다. 지금도 주님께서는 만물을 통일되게 하십니다. 그 사역에 우리도 함께 있습니다.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자체만으로도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부활하심으로 사망에서 아무런 조건 없이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왜 이렇게 하셨던 것입니까? 교회를 위한 사랑입니다. 그러니 교회는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지배와 통치를 받아야 생명의 양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늘 생명의 양식을 먹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설교자 성경본문 강설날짜 조회 수
283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교회의 삶 전은덕 빌2:12-18 2022-11-20 22
282 교회가 품어야 할 마음 전은덕 빌2:5-11 2022-11-13 6
281 복음에 합당한 성도의 생활 전은덕 빌2:1-4 2022-10-09 97
280 사도 바울이 택한 길과 우리의 길 전은덕 빌1:22-30 2022-10-02 80
279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주는 위로와 확신 전은덕 빌1:12-21 2022-09-25 115
278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는가? 전은덕 빌1:3-11 2022-09-11 70
277 빌립보서를 시작하며..... 전은덕 빌1:1-2 2022-09-04 69
276 바울은 자신의 이야기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전은덕 엡3:1-13 2022-08-21 88
275 교회는 에베소서를 통해 교회를 알아야 한다. 전은덕 엡2:21-22 2022-08-14 111
274 에베소서를 마무리하는 바울... 전은덕 엡6:18-24 2022-08-07 102
273 예수님은 우리의 화평이시다. 전은덕 엡2:14-18 2022-05-01 305
272 예수님의 십자가 화목을 아십니까? 전은덕 엡2:11-13 2022-04-24 291
271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전은덕 엡2:6-10 2022-04-17 316
270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 즉 우리를 살리셨도다 전은덕 엡2:1-5 2022-04-10 329
»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건물이 교회가 아니다. 전은덕 엡1:20:23 2022-04-03 317
268 죄 사함 받은 성도의 영광과 찬송 전은덕 엡1:7-14 2022-03-20 265
267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 전은덕 엡1:3-6 2022-03-13 267
266 에베소서를 알자? 전은덕 엡1:1-2 2022-03-06 272
265 안식일의 주인이 병자를 고치시다 전은덕 마12:9-14 2022-02-27 235
264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전은덕 마12:1-8 2022-02-20 283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5 Next
/ 15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