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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엡2:1-5
강설날짜 2022-04-10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 즉 우리를 살리셨도다(엡2:1-5)

 

한국 교회는 성경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개신교인가?라는 의문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저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한국 교회는 개혁된 교회라고 하지만 일부 교회는 카톨릭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교회는 사실 절기가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현실은 절기에 따라 행사를 준비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사순절입니다. 합동 교단에서도 사순절을 분명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1999년 제84회 총회에서 사순절 금지를 결의했습니다. 그러나 총회는 총회이고 교회는 교회라는 식으로 사순절을 지킵니다. 총회의 결의문을 잠시 읽어드리겠습니다. “1. 사순절은 부활절 전날 밤까지 40일간 이어지는 로마 교회가 정한 수난주간 기념행사이다. 이 40일간에 로마교회는 금식을 하고 금식을 권장하고 또 음식을 제한해서 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사육제를 하고 고기를 많이 먹은 후 고기양을 점차 줄여가다가 고난 주간과 특히 금요일에는 완전히 고기를 금지하였다. 2. 사순절을 종교개혁은 완전히 폐지하였다. 특히 칼빈은 종교개혁은 사순절이 미신적으로 시행되고 공로를 세우며 금식이 하나님께 예배가 된다고 주장하고 실행하였기 때문에 완전히 폐지하였다.(칼빈, 기독교강요 IV. 12) 3. 칼빈은 사순절 기간에 금식은 안 하는 것이 오히려 좋다고 하였다. 금식을 열심히 준수하면서 거짓되고 유독한 의견으로 부패시키는 것보다는 오히려 금식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만족스럽다고 제시하였다(강요IV, 12, 19). 하나님도 마음의 변화 없이 금식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성경대로 제시하였다. 그러므로 외식적인 금식은 가장 큰 혐오라고 제시하였다. 또 금식을 의무인 것처럼 엄격하게 지킴도 잘못이라고 지적하였다.”입니다. 그 외 많은 글이 있지만, 앞부분만 읽어 드렸습니다.

 

이제는 고난 주간에 미디어 금식을 하기도 합니다. 금식하기 위해 미디어 금식 서약서를 쓰기도 합니다. 한국 교회는 카톨릭과 다릅니다. 그런데도 이제는 카톨릭을 따라가고 있으니 종교개혁의 정신과 초대교회의 정신 그리고 성경의 가르침을 바르게 생각하고 있는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사람만 모이게 할 수 있으면 모방하든 이상한 것을 도입해서라도 성공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카톨릭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일 년 내내 예배당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분위기로 조성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성화입니다. 절기만 되면 예배당 입구에 조형물과 현수막을 이용하여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목회자의 가운은 어떠합니까? 신부가 입는 옷인지 분별이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간단한 복장을 넘어 화려한 옷을 입고 강도상에 서기도 합니다. 그리고 박사 가운을 입고 강도상에 서기도 합니다. 박사 가운은 학교에서 입는 것이지 예배당에서 입는 옷이 아닙니다. 종교개혁가들은 가운을 입지 않았습니다. 거룩해 보일 수 있다면 입고 보자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개신교입니까? 성경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생각이 있습니까? 예수님을 잘 믿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잘 믿고 싶어도 온전하지 않은 나를 보면 주님께 기도하고 싶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님, 주일날만 거룩한 날이 아닙니다. 모든 날이 거룩하고 귀한 날입니다. 모든 날이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특별한 날만 주님의 것이 아닙니다. 모든 날은 주님의 영광을 위해 예배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정신 차려야 합니다. 성경을 사모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자신의 신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일용할 양식과 은혜와 평강을 받을 때 우리는 힘을 내어 주님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엡1:15절부터 23절까지 에베소 교회를 위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교회를 사랑했습니다. 주님을 의지하며 에베소 성도를 사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성령을 주셔서 성도가 하나님을 알도록 기도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교회로 부르셨는가를 알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이처럼 기도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합니다. 하나님의 지극히 크심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이유는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상속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사도 바울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를 위해 에베소서를 기록하였습니다.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지 사도 바울은 1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 안에서 열다섯 번 정도 언급했습니다. 그만큼 예수님 없이 구원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교회를 주셨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님의 몸에 우리를 접붙여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도록 하심으로 사망의 권세가 이길 수 없도록 하시며 양분을 공급하여 주십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만물을 예수님의 발아래 복종하도록 하시며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통해 만물을 충만하도록 하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우리는 충만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분리될 수 없는 주님의 몸에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관계로 있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합니다. 주님의 몸에 있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특권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만물을 통치하시고 계십니다.

 

오늘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 즉 우리를 살리셨도다”라는 말씀을 통해 일용할 양식을 먹음으로 힘이 솟는 신앙생활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각자 필요한 양식을 주실 줄 믿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보도록 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비참함을 알 때 구원이 왜 필요한지 알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신을 생각하면 비참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질과 정욕에 물들어 있음에도 비참한 자신을 발견하지 않고 나는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사람은 본래 선하다는 생각에서 기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평가할 때 부정적이고 비참하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선하지 않고 죄로 말미암아 죄인이라고 합니다. 비참하게 말하자면 걸어 다니는 시체입니다. 이것을 아는 사도 바울은 1절에서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합니다. 우리를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허물과 죄는 원죄로 인한 결과입니다. 그런데도 사람은 자신의 허물과 죄를 인정하지 않고 선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처해있었던 상태를 적나라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살아있지만 영적으로 죽은 우리를 표현했습니다. 흔히 “허물과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살려주셨다”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여 주십니까? 우리를 향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무엇이라고 합니까? “죽었던” 존재라고 합니다. 물고기가 물 밖에 있으면 살아있으나 죽은 것처럼 우리도 죄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이 타락됨으로 이미 죽어 있는 상태입니다. 살아있으나 영적으로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우리는 죽었던 자에서 이제는 주 안에서 교회로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영적으로 하나님과 분리된 존재입니다. 쉽게 말하면 죽어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바로 우리가 그런 존재였습니다. 듣기 싫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영적으로 죽은 존재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허물과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고자 하지 않습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믿지 않으며 자신을 믿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길과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며 영생할 수 있습니다. 요17:3절을 보시면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생명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유일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사람은 하나님과 다시 신뢰의 교제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허물과 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죽음의 상태가 얼마나 비참한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람은 비참함을 알고 하나님의 위로를 받습니다. 회심함으로 자신이 누구인가를 비로소 알게 됩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모르며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즉 마귀를 따라갑니다.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가는 아이와 같습니다. 그리함으로 바른길을 알지 못하며 허물과 죄로 죽어 있는 사람들은 마귀가 좋아하는 일을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보아도 알지 못합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성령께서 알도록 하십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을 어떻게 복음을 믿을 수 있도록 하십니까?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벗어나며 올바른 길에서 떨어져 생활하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허물과 죄에서 살리셨습니다. 사람의 의지로 하나님을 안 것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구원 은총 즉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 속죄 물로 희생하도록 하심으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결과로 우리는 허물과 죄에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보도록 함으로 자신의 비참함과 극악함을 알도록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무지를 알아야 합니다. 엡4:18절을 보시면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고 했습니다. 죄로 단절된 상태 즉 하나님과 멀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 상태는 영적으로 사망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23:27절에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죄를 모르면서 선한 모습으로 포장하며 다른 사람과 다른 척하는 자들을 예수님께서는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셨습니다. 살아있으나 걸어 다니는 시체와 같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내면을 살피면 부패한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회칠한 무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허물과 죄를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은혜로 돌이킬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회칠한 무덤에서 영생을 얻고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도록 우리의 상태를 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죽은 상태애서 마귀에게 종노릇 했습니다. 종노릇 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입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위해 우리는 이 세상의 풍조를 따랐습니다. 이 세상의 세대를 따라 자신의 풍족함을 채우고자 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없는 삶을 생활하며 즐거워합니다. 그런데도 실상은 세상의 노예로 생활합니다. 더 많이 가지고자 하는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자들은 즐거움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롬12:2절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을 따라가지 말라입니다. 유행을 따라가지 말라입니다. 세상이 좋아하는 것을 위해 사람은 카멜레온과 같은 모습을 하지 말라입니다. 이런 자들은 회칠한 무덤과 같습니다. 허물과 죄 때문에 자신이 누구인가를 모릅니다. 그래서 세상의 것을 좋아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고자 노력합니다. 그 길은 사망의 길임에도 불구하고 좋아합니다. 마귀는 예수님의 인성을 이용하고자 했습니다. 40일 동안 금식한 것을 알기에 이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시험을 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말씀으로 승리하셨습니다. 우리도 마귀로부터 승리할 수 있는 길은 예수님 안에서 말씀을 알 때입니다. 그런데도 마귀는 성도를 공격합니다. 시험에 들도록 합니다. 자신에게 굴복시키고자 합니다. 마귀는 최후의 패배 날이 오기까지 하나님을 대적하며 교회가 무너지도록 합니다. 마귀는 지금도 불순종의 아들들이 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과거에 세상 사람들과 같이 불순종하는 자였습니다. 세상의 것을 좋아하며 허물과 죄로 존재했던 자라고 3절에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입니다. 허물과 죄로 사람은 자신의 욕구와 욕심대로 생활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과거의 우리가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냈다고 합니다. 여기서 육체란 우리의 몸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육체란 우리 안에 있는 부패한 성품과 본성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 뒤에 나오는 “욕심”이 구체적으로 가리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자신의 더러운 성품과 본성을 따라 자신의 욕구를 채우고자 합니다. 자신 중심적 사고를 합니다. 죄로 타락한 자들은 마음이 원하는 대로 생활하고자 합니다. 이것이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며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율법이 무엇을 요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자들을 향해 사도 바울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고 합니다.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는 존재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진노에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하실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진노하신다는 것은 믿기 어렵습니다. 사랑은 많이 들어 보았지만, 하나님께서 진노하신다는 자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한없는 사랑을 말씀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믿지 않고 공격하는 자들에게는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했습니다. 그들을 정죄했습니다. 이처럼 죄에 대한 것은 분명하게 진노하십니다. 죄로부터 돌이키는 자들은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실 때 충동적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돌이키도록 진노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대항하는 자들에게 진노하십니다. 그러니 사람은 스스로 지혜 있다고 하면 안 됩니다. 자신이 최고라고 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알아야 합니다.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은 사망입니다. 불순종은 죄입니다. 사람도 불순종을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어떠하시겠습니까?

 

지팡이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성도가 되었습니다. 전에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였지만, 이제는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교회의 머리와 몸이 되어 주심으로 우리는 성령의 전이 되었습니다. 고전6:19절을 보시면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힘들더라도 주님께 간구하며 주의 길을 가야 합니다. 마귀가 좋아하는 종노릇을 하면 안 됩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리에서 떠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가능합니다. 내 힘으로는 마귀에게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런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당신님의 백성으로 택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주님의 교회인 우리는 긍휼을 받았습니다. 4절을 보시면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라고 하십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첫 시작에 “그러나”가 없지만, 원문에는 있습니다. 그러나를 통해 이제는 반전의 의미를 알려주십니다. 허물과 죄에서 즉 절망 가운데 있었던 우리에게 “그러나”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우시고 주권적인 사역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함이 풍성하십니다. 허물과 죄로 우리는 자신의 욕구로 생활했지만 참된 삶의 희망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욕구를 채우고자 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긍휼로 인해 희망이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심으로 진노의 자녀에서 이제는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성품이 회복되도록 하셨습니다. 사람의 행위로 인한 결과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카톨릭은 신부가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해 고해성사를 통해 죄를 용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그렇게 증언하지 않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의 글을 읽으며 자신의 모습을 봐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도 같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는 구원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인해 우리는 유익을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비참한 세상으로부터 성도로 부르셨습니다. 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초월적인 사랑을 받은 존재가 교회입니다. 5절을 보시면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애3:22절을 보시면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다”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예레미야 선지자와 같은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 은혜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주신 구원의 선물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나를 하나님께서 풍성한 은혜로 거듭난 성도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지금 힘든 가운데 계십니까? “이 또한 지나가도록”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동행하시기 때문에 이 또한 지나가도록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과거에 불행하게도 마귀의 종노릇 하며 생활했었습니다. 허물과 죄로 인해 종노릇 하는 자였습니다. 세상의 풍조를 따라 그리고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하고자 했습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라가기가 더 쉬웠기 때문입니다. 죄는 이처럼 자신의 죄를 알지 못하도록 합니다. 마귀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도록 마음의 죄를 짓도록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구원받기 전 자신의 상태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긍휼을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죽었던 진노의 자녀에서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는 진노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자녀가 되었습니다. 구원의 감격을 알고 있는 우리는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며 찬양의 삶을 생활합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나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기 때문에 찬양의 삶을 생활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비참한 상태를 적나라하게 기록한 바울은 에베소 교회가 바른길을 갈 수 있도록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팡이 교회도 과거로 돌아가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품 안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먹음으로 장성한 신앙인으로 성숙해 가야 합니다. 그런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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