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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엡2:11-13
강설날짜 2022-04-24

예수님의 십자가 화목을 아십니까?(엡2:11-13)

 

성경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도록 합니다. 신학은 학문을 넘어선 것으로 사람의 내면과 자연환경 그리고 우주 전체 등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알도록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을 알도록 하심으로 사람은 누구인가를 알도록 하십니다. 성경은 미래를 막연하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분명하게 “새 하늘과 새 땅”이 무엇인지 알도록 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가 영원토록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며 생활하는 장소입니다. 그 어떤 종교에도 없는 장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원죄에서 벗어나므로 구원받은 성도로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생활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은 미래만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성도로서 생활해야 할 것인가를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성도는 현실에서 이웃을 사랑하며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전합니다. 현실 안에서 성도는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그러니 지팡이 교회는 성경을 통해 현실에서 성경을 가지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 아니라 성경으로 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성경을 아는 지식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만큼으로도 충분히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사모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누리도록 하겠습니다.

 

지난주 말씀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심으로 어떻게 구원하셨는가를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만물을 충만하게 하심으로 교회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예수님께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부활할 수 있도록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 살리셨고, 함께 일으키셨으며 함께 하늘에 앉도록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 되시고 구심점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모든 만물이 충만한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구원을 위해 한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자비하심과 은혜의 풍성함으로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여러 세대에 삼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알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구원받은 성도는 자기 유익을 위해 생활하면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청지기의 삶을 생활해야 합니다. 육체를 따라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영광의 예배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 이렇게 해야 합니까? 교회는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이 있기에 부활에 동참합니다. 부활에 동참하는 성도는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과 함께하기 때문에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 없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성도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왕 같은 신분으로 만물을 통일되게 하는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았습니다. 이 구원은 사람의 행위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은 보상이 아니라 값없이 주신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단지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해 지음을 받은 성도로서 사명을 감당하면 됩니다.

 

오늘은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화목하게 하신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사람이 타락하기 전 하나님과 사람 사이는 교제와 신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죄로 교제와 신뢰는 단절되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불편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오늘날 현실은 어떠합니까? 각자 생각해 보십시오. 이 모든 것이 사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과거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역사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라는 말처럼 사람은 성경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사람은 구원 이전과 이후를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구원을 알 때 사람은 주의 길을 따르고자 하며 일꾼으로 사명을 감당합니다. 고전3:16장의 말씀을 아십니까?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입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몸은 성전으로 성령이 거하시기 때문에 일꾼으로 생활합니다. 일꾼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화평을 주셨습니다. 과거에 우리는 이방인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교제와 신뢰가 단절됨으로 하늘에 소망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관심을 두며 어떻게 하면 자신을 위한 삶을 생활하고자 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 중심으로 생활했습니다. 오늘날은 어떠합니까? 이웃과 가족보다 나 자신이 중요합니다. 가족의 관계도 교제가 단절된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시기 위해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자부심을 느끼며 이웃 나라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선민의식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것을 잘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11절에서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건널 수 없는 사이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합니다. 그러면 사람과 사람 사이가 무엇입니까? 11절을 읽어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입니다. 유대인은 선민사상으로 인해 이방인을 죄인처럼 생각했습니다. 이방인과 상종하면 자신들이 죄에 물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방인도 세월이 지나면서 유대인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이야기가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입니다. 그러면서 여인은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 한다고 했습니다. 유대인이 이방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보다 더한 말씀도 있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께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딸이 죽게 되었으니 살려달라고 외칩니다. 저라도 가나안 여인처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고쳐주시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마음에 상처가 되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가나안 여인은 상상할 수 없는 말을 했습니다. 마15:26절에서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입니다. 여인은 이방인이라 칭하지 않고 유대인이 생각하는 개를 생각하며 자신을 개로 비유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가 어떤 관계인지 잘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유대인은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할례입니다. 할례를 통해 자신들만 선택받은 선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만 구원받은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왜 할례를 중요시 했습니까? 할례는 자신들의 신분이 누구인가를 알도록 했습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시였습니다. 이런 생각으로 인해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개처럼 취급했습니다. 정작 할례를 통해 자신들의 신분을 알며 세상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통해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가 구원 이전과 이후를 알도록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향해 할례를 받지 않는 자 즉 무할례 당이라고 칭했습니다. 성경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성경을 바르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이방인 산모가 진통하고 있을 때 도와주면 율법을 어기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방인이 세상에 나오도록 도와주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공평하게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하늘에 소망이 없는 존재입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12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예수님 밖에 있는 자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구원받았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을 수 있습니다. 메시야가 누구인지 몰랐으나 예수님께서 하신 사역을 통해 복음을 들음으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비참한 현실에서 이제는 하늘에 소망을 품고 생활하는 성도가 되었습니다. 약속이 없던 존재에서 이제는 약속이 있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기에 삶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보혈을 통해 성도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언약의 백성이 아니었지만, 십자가의 사랑으로 인해 언약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런 사랑을 받은 존재가 교회입니다. 그러면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렘31:31-33절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입니다.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새 언약을 맺은 이유는 언약을 맺은 자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입니다. 새 언약을 맺으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만 새 언약의 백성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 이후와 이전이 분명하게 달라졌습니다.

 

세상에서 비참하게 생활하던 존재에서 하늘에 소망을 품고 복음을 전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만들어진 신을 섬기었지만, 이제는 하나님만 섬기는 성도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살고 있지만, 성도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생활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오는 은혜를 알기 때문에 하나님만 섬깁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가 자신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를 알도록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사도 바울은 13절에서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11절과 12절에서 “그 때에”라는 단어를 사용해 에베소 교회가 구원 이전을 알도록 했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12절에서 “이제는”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원문에는 “그러나 이제는”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말 번역본에는 생략했습니다. 11절과 12절에 대한 대조를 분명하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나 이제는”을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교회는 구원 이전과 다른 생활을 합니다. 세상에서 의미 있는 존재로 복음의 생활을 합니다. 구원의 소망이 있기에 예수님의 영광으로 세상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생활합니다. 어느 누가 구원받을 존재인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단지, 십자가의 사랑을 받은 성도는 복음을 전합니다.

 

이제는 새사람이 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수직적인 사랑으로 인해 예수님께서 누구신가를 전합니다. 사람과 하나님의 교제와 신뢰가 단절되었지만, 예수님의 피 때문에 멀리 있던 자에서 가까워졌습니다. 사도 바울은 “전에 멀리 있던”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를 대칭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이방인과 같은 존재였지만, 이제는 “그리스도의 피”로 화평을 누리는 성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멀어진 관계를 허무셨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담도 허무셨습니다. 그러니 성도는 과거의 신분을 알고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왜 사도 바울은 가까워졌다고 하는 것입니까? 좀 더 좋은 말을 쓰면 알아듣기 쉬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언어는 시대의 상황을 알아야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멀리”와 “가까이”는 유대인들과 이방인의 지위를 나타내 주는 히브리식 표현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과 관계를 의미할 때 사용합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외적이고 지리적인 생각으로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던 관계에서 이제는 하나님과 교제하며 신뢰하는 관계가 되었다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멀리 있던 존재가 가까워졌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진정한 사랑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십자가의 화목은 이처럼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위해 예수님께서 감당하신 사랑입니다. 그러니 사람은 자신을 자랑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알기 때문에 성도는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원 이전과 같은 삶을 생활하는 세상 사람들은 무신론 또는 자신을 믿으며 부귀영화를 위해 사람이 만든 신을 섬기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인정하지 않고 신은 없다고 생각하며 비참한 현실에서 자신만을 위한 삶을 생활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의 공로를 알아야 합니다. 히9:22절은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입니다. 예수님의 피 흘림 없이 ‘구원은 없다’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사역으로 만물을 통일되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인해 성도는 천상의 왕권을 부여 받았습니다. 우리의 공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만물을 당신님께 순종시킴으로 온전한 세상으로 만드십니다. 교회는 만물을 통일되게 하는 일에 참여하는 일꾼입니다. 일꾼이 되도록 하시기 위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심으로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그리함으로 지팡이 교회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성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다윗 왕이 말한 대로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이런 자들이 어리석은 자입니다.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도 미워합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교회는 등불과 같은 존재로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선한 일을 알지 못함으로 비참한 현실에서 자신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 전쟁과 싸움 등이 일어납니다. 구원 이전과 다른 삶을 생활하는 지팡이 교회는 구원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알 수 있습니다. 이방인과 같은 존재에서 새사람이 되므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고 있는 성도는 자신의 몸이 교회요 성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화목은 이처럼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은 세상에서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하실 수 있는 참된 사랑입니다. 참된 사랑을 아는 지팡이 교회는 속에서 주의 길을 가는 행복한 성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주의 길을 가는 교회로 성장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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