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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빌1:3-11
강설날짜 2022-09-11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는가? (빌1:3-11)

 

지난주 강설은 “빌립보서를 시작하며”였습니다. 잠시 지난 주일 강설을 기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빌립보서를 학자들은 “기쁨의 편지”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기쁨의 편지인 빌립보서를 통해 “영적 생활”을 하며 기쁨의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사도 바울은 기쁨의 서신처럼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삶이 기쁨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기쁨이 무엇인지 알기에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도 기쁨이라는 단어를 많이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기쁨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었기 때문에 기쁨입니다. 빌립보 지역은 유럽으로 연결되는 첫 성으로 원래 이름은 “크레니데스”였습니다. 이 지역을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빌립2세가 점령한 후 자신의 이름을 따서 빌립보라고 했습니다. 빌립보는 다른 지역보다 특별한 지역이라서 로마는 식민지라도 아무런 조건 없이 로마 시민권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 사람들은 “이탈리아의 벗”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아무런 조건 없이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가 되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친구라고 하셨으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셨습니다.

 

빌립보 사람들이 로마의 벗이라고 자랑하는 것보다 교회는 그 이상의 기쁨입니다. 기쁨의 극치는 주님의 재림 날입니다. 주님께서 재림하는 날에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 세상에서 상상할 수 없는 기쁨의 생활을 합니다. 그날을 소망하며 주님의 길을 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빌립보서를 차분하게 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게 편지를 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편지했습니다. 로마 사람에게 종은 노예의 이미지만, 유대인에게 종은 하나님의 종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우리도 하나님의 종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기쁨으로 빌립보 교회에게 편지를 하며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평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교회는 당연히 하나님에게서 오는 평강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쁨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신 백성이기에 화목한 교회로서 살롬이 있습니다. 그러니 참된 주의 길을 가기를 소망합니다.

 

지팡이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기관으로서 “은혜”와 “평강”으로 인해 기쁨의 생활을 하는 성도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의 현실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 때도 있습니다. 말씀을 듣기는 좋아하는 것 같지만, 봉사는 하기 싫어하는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교회는 “거룩한 공교회”로서 “성도의 교통”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유익한 것만 좋아하는 시대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나는 섬기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직분은 세상이 생각하는 지위가 아니라 섬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종이기 때문에 교회를 사랑했습니다. 바울은 우리와 같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였기 때문에 성도와 교제하며 기쁨의 길을 가는 섬김의 사도였습니다. 지난주 강설은 여기까지 생각하며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으로 든든히 세워져가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하고 있는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할 수밖에 없는 마음을 3절에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거의 모든 서신서에서 이런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 감옥에 있는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생각하면 늘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라고 기록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향한 생각을 계속과 반복을 나타내는 현재형으로 표현했습니다. 당연히 빌립보 교회는 온전한 교회는 아니었지만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사랑했습니다. 이 세상에 온전한 교회가 있다면 저도 소개해 주십시오. 그런 교회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온전한 빌립보 교회였다면 사도 바울이 편지를 해야 할 이유도 없을 것 같습니다. 빌립보 교회도 문제가 있는 교회였지만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유럽의 첫 성인 빌립보에 교회가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을 위한 구제를 했습니다. 그러니 서로 주님 안에서 더 친밀했을 것이라 믿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무엇이 있었습니까? 기쁨의 편지라고 불리는 단어를 처음으로 쓰고 있습니다. 4절을 보시면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입니다. 기쁨이라는 단어를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아홉 번 사용함으로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기쁨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빌립보 교회를 위해 간구할 때마다 기쁨이 있었습니다. 감옥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빌립보 교회를 위해 간구한 이유는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교회는 불완전합니다. 사도 바울과 교제하는 교회라 할지라도 이처럼 불완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빌립보 교회 즉 성도를 사랑하십니다. 빌립보 교회는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분쟁이 있었습니다. 내부로는 거짓 교사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 분쟁이 일어나도록 했습니다. 외부로는 핍박이 있었습니다.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세상의 가치관과 기독교 세계관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전투하는 성도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5절에서 빌립보 교회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과 교제하는 사이였습니다. 사도 바울만 도와준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도 도운 교회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어려울 때도 구제를 했습니다. 교회가 어려울 때 구제하는 교회는 거룩한 공교회로 하나라는 것임을 잘 드러내는 교제입니다. 늘 사도 바울과 함께 하는 교회를 위해 간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빌립보 교회는 복음을 위한 합당한 일에 늘 참여했습니다. 내적으로 외적으로 어려움이 있어도 교회를 위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알기에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세워진 그날부터 지금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기쁨 아니겠습니까? 복음을 위해 참여하는 일은 사도 바울과 같은 사역을 감당하는 것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자체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빌립보 교회는 복음을 위해 교제하는 서도이며 구제를 통해 복음 전도에 효과를 드러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위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6절을 보시면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입니다. 무슨 확신이 있었습니까? 사도 바울을 위한 교제와 구제 그리고 거룩한 공교회를 위한 도움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확신하고 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빌립보 교회와 함께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백성과 교제하는 것은 이처럼 행복한 것입니다. 복음에 참여하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와 함께하는 영적 생활은 기쁨이 있습니다.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도록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은 사람과 다릅니다. 사람은 중도에 포기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중도에 포기하는 법이 없습니다. 온전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온전하기에 사도 바울은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복음에 참여하는 성도는 열매를 맺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지팡이 교회도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의해 세워진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사역을 시작하셨으며 끝까지 이루어가심을 믿고 성도는 “영적 생활”을 해야 합니다. 영적 생활은 자연스럽게 삶으로 영광을 올려드리는 생활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라고 합니다. 이 말은 다시 오실 예수님의 재림의 날입니다. 마지막 심판의 때입니다. 그날까지 복음에 참여하며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날”에는 구속 사역을 완성하는 때입니다. 그날에 예수님께서는 신랑으로 오실 것이며 교회는 거룩한 신부로서 극치에 이르는 혼인 잔치에 참여합니다. 혼인 잔치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복음에 참여하는 성도를 인도하시며 보호하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은혜와 평강이며 행복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는 것을 알기에 7절에서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과 늘 교제하는 성도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감에에 매임이 되어 있어도 늘 함께 하는 빌립보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마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 정신과 의지를 표현함으로 솔직한 본성을 의미입니다. 헬라인이나 히브인이나 마음이라는 단어는 정신과 의지를 의미하기 때문에 사도 바울과 빌립보 교회의 교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합당한 열매를 맺는 신뢰의 마음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에 참여하는 교회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투옥되어 있어도 모른체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서로 친밀한 교제를 했습니다. 바울이 당하는 고난은 교회를 위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난은 오히려 사도 바울의 영향력이 크다는 증거입니다. 로마 황제에게도 복음을 전할 기회입니다. 로마에 복음이 심어짐으로 결국 주후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를 공인하며 박해를 끝냈습니다. 이처럼 작은 열매로 시작한 일은 결국 놀라운 일을 만듭니다.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는 빌립보 교회를 바울은 주의 심장으로 사랑했습니다. 얼마나 행복한 교제이며 신뢰 아니겠습니까? 8절을 보시면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고 편지를 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빌립보 교회는 감격했을 것이라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라는 말에 감회가 새로웠을 것이며 울컥했을 것이라 믿습니다. 서신서에서 볼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심장이라고 하면 마음이나 감정의 자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심장을 가지고 마음으로 빌립보 교회를 사모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위해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마음으로 빌립보 교회를 사랑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이 내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복음에 참여하고 있는 빌립보 교회를 사랑하기에 하나님께서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당신님의 몸을 내어주셨듯이 사도 바울도 교회를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며 내어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있는 은혜와 평강 아니겠습니까?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의 마음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9절에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빌립보 교회를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있었지만, 빌립보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하기에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리라”처럼 감옥이라도 빌립보 교회를 위한 마음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더욱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충만할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하나님을 위한 사랑과 성도 간의 사랑이 넘칠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위한 풍성한 선물을 감옥에서 편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빌립보 교회를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풍성하게”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계속해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10절을 보시면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입니다. 복음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사도 바울은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할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세상의 삶에서 도덕적으로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미묘한 것을 분별해 낼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미묘한 것으로 인해 사람은 시험에 들 수 있습니다. 미묘한 것으로 인해 교제가 끊어질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시대를 생각해 보십시오. 선과 악 그리고 어떤 것이 도덕적인 삶인지 혼돈된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위해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지식과 총명으로 분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께 교제하는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분별력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다시 재림의 주로 오시는 날까지 승리하기를 소망합니다. 진실한 분별력을 위해 교회는 허물이 없어야 합니다. 교회는 순결성과 순수성을 유지할 때 참된 것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세상 속에서 청결하고 깨끗해야 하는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신부로 표현했습니다. 순결한 신부는 신랑 맞을 준비를 잘하는 열 처녀의 비유를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는 “허물” 없이 주의 길을 가야합니다. 그러기 위해 해바라기처럼 오직 주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의 의지로 허물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화의 과정이 있습니다. 연단을 통해 성도는 순결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율법을 온전히 지킴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내주하심으로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하십니다. 11절을 보시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나님 나라의 열매는 나의 능력과 의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빌4:13절의 말씀처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 우리의 외모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는 풍성한 것이기에 나의 의지가 아닌 마음에서 나오는 기쁨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사이의 올바른 신뢰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라 할지라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전진했습니다.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신 것을 믿으며 죽음의 길이라도 순종했습니다. 순종의 길은 나의 능력과 의지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따가가는 삶은 결국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의 삶입니다. 그것을 알기에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하며 간구로 마무리합니다. 빌립보 교회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는 사도 바울의 심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실 때 의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 1문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라고 했습니다. 이것에 대한 믿음의 선배님들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은 고백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의의 열매를 빌립보 교회에 돌리지 않고 하나님께 돌리는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의의 열매를 돌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오늘 지팡이 교회는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는가?”를 강설로 들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내적으로 외적으로 어려운 현실에서도 복음을 위해 힘썼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은 마음으로 “은혜에 참여한” 성도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 있다 할지라도 교제하며 구제했습니다. 복음을 알았기 때문에 서로 교제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은혜에 참여하고 있는 빌립보 교회를 향해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위해 간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과 지식과 총명을 더 풍성하게 하시며 선한 것을 분별하도록 할 것을 위해 간구했습니다. 그리함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라고 간구하며 마무리하셨습니다. 우리도 빌립보 교회처럼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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