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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빌2:12-18
강설날짜 2022-11-20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교회의 삶(빌2:12-18)

 

지팡이 교회는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로마에 투옥된 상황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도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위해 편지를 보냈습니다. 바울은 투옥된 가운데 자신이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사는 쪽을 선택하며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생명을 위한 이익이 아니라 연약한 교회를 위한 갈망이었습니다. 교회를 든든히 세워가는 것이 유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처럼 뼛속까지 교회를 사랑하는 일꾼이요 사도였습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게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라고 하셨습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구원을 받은 교회는 당연히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생활해야 합니다. 합당한 생활을 할 때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으로 교회는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포도는 포도 열매를 맺듯이 교회는 구원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다운 모습입니다. 교회가 교회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면 세상은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우리의 현실을 들여다보십시오.

 

교회가 열매를 맺을 때 세상 사람들도 성경의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교회가 무엇을 하는지 세상 사람도 알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하는 일은 성경의 말씀대로 하나님 나라를 증거 하는 삶입니다. 그럴 때 교회는 세상 사람을 구원하는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아는 사도 바울은 오직 복음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몸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복음만을 전하는 사도요 일꾼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나 죽으나 교회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교회가 바르게 성장할 때 예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해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이기 때문에 시민으로서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그런데 로마 황제가 통치하는 시대에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황제에게 충성하는 빌립보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로마 시민으로 생활하면 특권이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모신다는 것은 세상의 영광과 특권 등을 버려야 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로 생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고난도 받아야 하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모신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사도 바울처럼 감옥에 구금되어야 하기도 하고 순교도 각오해야 합니다. 그 당시 주는 오직 황제에게만 사용되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라고 하는 것은 죽음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이런데도 초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로 성장하는 성도였습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함으로 참된 구원의 의미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과 긍휼 그리고 섬김의 가치가 무엇인지 알게 합니다. 이런 삶을 보여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로마 황제처럼 전쟁과 힘 그리고 압제로 통치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을 사랑하는 메시야였습니다. 그러니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삶을 따라가며 교회다운 모습을 세상 속에서 드러내야 합니다.

 

지난주 강설은 “교회가 품어야 할 마음” 이였습니다. 사람은 온전한 것이 없지만 예수님께서는 온전하므로 겸손한 삶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 하셨습니다. 이런 사랑이 이 세상에 있습니까? 부모님의 사랑은 아가페라고 하지만 진정한 아가페의 사랑은 오직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성육신과 삶 그리고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모양으로 오셔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사람이 타락했음에도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된 시민권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함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왜 주라고 시인하도록 하셨는지 아실 것입니다. 그것은 만물을 통치하는 신분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이기 때문에 교회는 주로부터 통치를 받습니다. 그러니 교회는 아직 복음의 비밀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를 전해야 합니다.

 

빌립보 교회는 어려움이 있는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든든히 세워져 갈 수 있도록 권면했습니다. 책망하지 아니하며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다운 신앙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섬기었습니다.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교회의 삶”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게 너희들은 과거에도 예수님께 순종한 것처럼 현재나 미래에도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것을 알기 위해 우리는 12절과 13절을 같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입니다. 12절과 13절은 한 문장으로 연결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와 친밀한 교제를 하므로 이런 권면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빌립보 교회여, 너희들은 항상 나에게 순종했습니다. 너희들은 나 있을 때만 아니라 내가 없을 때도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십시오. 하나님께서 빌립보 교회와 함께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들 가운데 역사하시며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시며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야 교회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교회는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는 교회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주의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자신의 의지대로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성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생활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통해 고백하지 않습니까? 단지 입으로만 시인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고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빌립보 교회를 사랑하는 사도 바울은 공동체의 기쁨을 위해서 이제는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14절을 보시면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입니다. 출애굽 할 때 이스라엘은 어떠했습니까?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애굽을 그리워하며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이것은 모세를 원망한 것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을 원망한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도 같을 수 있으므로 원망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원망만 아니라 시비도 없아야 합니다. 원망과 시비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원망은 결국 출애굽 했던 백성과 같은 마음입니다. 원망과 시비를 하는 자들은 가나안에 못 들어갔습니다. 그런 것처럼 교회도 갖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생활하는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입니다. 그렇지 않고 다른 길을 선택하며 교회 생활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가 아닙니다. 자기 뜻대로 신앙생활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니 교회는 투덜과 불평이 아니라 “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어야 합니다. “다툼이나 허영”은 마귀가 좋아합니다. 그와 반대로 하나님께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 교회는 하나님의 뜻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원망과 시비의 반대는 화평임을 기억하기를 소망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원망과 시비가 아니라 화평한 교회로서 흠이 없고 순전한 성도로 성장하기를 이야기합니다. 15절을 보시면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라고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을 이루라”는 것을 15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서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시대에 성도는 빛처럼 나타내야 합니다. 어두속에서 빛이 빛나는 것처럼 교회도 같아야 합니다. 세상은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생활하지 않습니다. 자기 뜻대로 생활하기를 좋아합니다. 이런 삶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교회는 기독교 세계관으로 문화혁명을 이루어야 가며 교회가 무엇을 하는지 분명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로마 시대에라도 교회는 교회다운 모습을 드러내야 합니다. 오직 주는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로마 황제에게 무릎을 꿇지만, 교회는 삼위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며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는 흠이 없는 자로 성숙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성숙하는 가운데 교회는 빛으로 나타낼 힘이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서 영적으로 어두운 자들에게 구원과 전도의 영광스러운 과업을 이루는 장소입니다. 나의 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모실 때 영적으로 어두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16절에서 순종에 대한 것을 말하기 위해 생명의 말씀을 이야기합니다.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게 “생명의 말씀”을 따르는 것은 순종이라고 합니다. 순종은 나의 마음이 드러나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께 순종할 때 “생명의 말씀”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나의 의지로 드러내고자 하는 자들은 어리석은 자들이요 썩을 영광을 위해 생활하는 가라지입니다. 생명의 말씀을 지키며 순종하고자 하는 교회는 오직 예수님께만 순종합니다. 예수님께 순종할 때만 세상 속에서 복음으로 밝히 드러낼 수 있는 썩지 아니할 영광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순종하는 길은 헛되지 않습니다. 오직 기쁨의 영광이 있습니다. 해산과 같은 고통의 삶이라도 교회는 순종의 열매를 맺으며 주님의 재림 때를 기다리며 생활합니다. 주님의 재림 때에는 나의 눈물을 닦아주며 영광의 나라에서 영원토록 생활하도록 하십니다. 교회는 운동선수와 같은 경기에 임하는 경주자와 같습니다. 경주할 때 얼마나 힘이 들어갑니까?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니 교회는 선수와 같은 마음으로 경주하며 오직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해 생명의 말씀을 따라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마지막 때는 가라지와 알곡이 분명하게 나뉩니다. 가라지는 지옥으로 알곡은 하나님 나라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그러니 주의 길을 가기를 소망합니다.

 

16절에 이어서 17절은 제물과 의식의 용어를 사용합니다. 사도 바울은 아무런 의미 없이 제물과 의식의 용어를 쓰지 않았습니다. 제물과 의식은 구약에서 제사할 때 쓰이는 것으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의미를 가지고 와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도 하나님을 섬기는 제물과 같다는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12:1절에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하셨습니다. 구약에서는 짐승을 이용해 제사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은혜로 인해 이제는 사람의 몸과 마음으로 즉 제물이 되어 거룩한 제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함으로 우리는 “영적 예배” 영적으로 섬기는 예배의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영적 예배의 생활을 함으로써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성경의 말씀대로 전도하는 기쁨의 삶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의 몸과 영혼으로 영광을 올려드리는 삶을 생활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게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님만 바라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전제를 드리는 삶으로 비유함으로 자신은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희생적 봉사의 섬김의 생활을 하는 삶은 당연하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늘 행복하고 물질적인 것도 부족함 없이 채워 주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세상의 제물과 명예 그리고 권력 등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전제로 드리는 삶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바울의 삶은 당면한 수고와 고통 가운데서도 “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 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가는 삶이었기 때문에 빌립보 교회에도 승리하는 삶을 생활함으로 기쁨을 누리라고 합니다. 빌립보 교회도 전제로 드리는 제물의 삶으로 영광을 올려드려야 하는 것처럼 오늘날 교회도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초대 교회가 연약하지만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자기의 희생을 늘 감당하겠다고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교회의 삶입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자신있게 18절에서 무엇이라고 합니까?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입니다. 너희도 나를 본받아 기뻐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에서 나오는 영광의 기쁨입니다. 이 세상의 생활을 하다 보면 슬픔과 좌절이 있습니다. 슬픔과 좌절보다 기쁨과 소망의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교회가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는 구원이라는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만 주어진 면류관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에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그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교회의 삶을 생활함으로 기쁨의 면류관을 받기를 소망합니다.

 

사도 바울은 진정한 삶의 모델을 보여준 사도요 일꾼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를 알았기 때문에 전제로 드리는 삶의 제물이 되어 영적 예배의 삶을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와 오늘날 우리에게도 격려하며 성숙한 믿음의 단계에 이르기를 소망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다면 사도 바울은 두려움도 없었습니다. 오직 기쁨의 영광을 바라보는 일꾼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우리의 연약함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팡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교회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교회는 “원망과 시비”가 없어야 합니다. 개인만이 아니라 거룩한 공동체인 하나의 교회도 같아야 합니다. “생명의 말씀”을 따라 섬김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온전한 삶이 될 수 있도록 주의 길을 가야 합니다. 우리의 달음질하는 영광의 경주가 헛되지 않은 기쁨의 거룩한 산 예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교회가 될 때 영광으로 하나님께 올려드릴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우리도 기뻐해야 합니다. 그런 교회로 성장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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