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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강설날짜 2017-03-26

제18항 하나님 아들의 성육신 3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조상들에게 하신 그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당신님께서 정하신 때에, 당신님의 독생자이시고 영원하신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는데, 그 아들은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사람의 모양으로 태어 나셨다고 고백합니다. 그 분은 진실로 모든 연약함을 가진 참된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고, 죄가 없으십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사람의 행동으로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복된 동정녀 마리아의 모태에 잉태되셨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참된 인간이 되시기 위해서 인간의 몸에 관해서만 인성을 취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영혼을 잃었을 뿐 아니라 몸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 분께서는 몸과 영혼 둘 다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둘 다를 취하셔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당신님의 어머니로부터 인간의 육체를 취하셨다는 것을 부인하는 재세례파 이단에 반대하여,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자녀들의 혈육에 함께 속하였음을 고백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아들이시고, 육신을 따라서는 다윗의 후손으로 나셨고, 동정녀 마리아의 아들이시고, 여인에게서 나셨고, 다윗의 가지이시고, 이새의 그루터기에서나신 가지이시고, 유다 지파에서 나셨고, 육신에 따르면 유대인의 자손이시고, 성자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들과 연관되므로 아브라함의 씨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예수님은 진실로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십니다.

 

 

오늘의 성육신의 방식으로 눅2:8-20절을 보기로 하겠습니다. 성탄절에 잘 강설하는 본문으로 “목자들의 경배”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으로 호적 신고를 하러 가면서 아기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태어나신 것을 경배하기 위해서 목자들이 온 것입니다. 경배할 수 있도록 9절을 보시면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마리아에게는 가브리엘 천사가 소식을 전해 주었지만, 여기서는 ‘사자’로 단수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10절에서는 사자를 누구하고 합니까? 천사라고 하면서 무엇을 전하는 내용입니까?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천사가 전하여 준 소식은 11절에서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여기서 ‘그리스도 주’라고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쓰인 것인데 지금 너희들이 보고 있는 아기 예수라는 것입니다.

 

목자들에게 전하여 준 천사의 소식은 더욱 확실하게 12절에서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라고 하시면서 싸인을 주십니다. 그런 후 13절에서는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9절과 10절은 사자 즉 천사라고 하면서 단수(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수많은 천군과 천사들’이 함께 하나님께 찬송을 올려 드립니다. 경배와 찬양을 한 천사들은 하늘로 떠나 간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일을 목격한 목자들은 “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라고 한 것입니다. 목자들은 베들레헴에 와서 천사가 전하여 준 소식을 찾고자 노력을 했을 것입니다. 드디어 찾은 후에는 17-19절에서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18.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19.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목자들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린 후 자신들이 있던 장소로 돌아간 것입니다. 목자들로부터 그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들은 마리아는 마음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목자들로부터 경배를 받은 아기 예수님은 8일이 지난 후 할례를 하게 됩니다. 유대인은 대체적으로 할례를 할 때 이름을 지어줍니다. 21절을 보시면 “할례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잉태하기 전에 천사가 일컬은 바러라” 이름을 지어 준 후 22절을 잘 보십시오.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성도님, 이 시기가 어느 때로 생각하십니까? 정결예식이 이루어지는 때입니다. 여기가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레12:2-3절의 말씀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여인이 임신하여 남자를 낳으면 그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곧 월경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 여덟째 날에는 그 아이의 포피를 벨 것이요” 여인이 임신하여 출생하면 며칠 동안 부정합니까? 7일 동안입니다. 4절을 보시면 “그 여인은 아직도 삼십삼 일을 지내야 산혈이 깨끗하리니 정결하게 되는 기한이 차기 전에는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 것이며” 출산을 한 여인은 그 후로도 33일 동안 정결하기 못합니다. 40일이 지나야 정결함으로 성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에서 말한 22절의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라는 것은 정결하여 성전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레위기로 돌아와서 5절을 보시면 “여자를 낳으면 그는 두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월경할 때와 같을 것이며 산혈이 깨끗하게 됨은 육십육 일을 지내야 하리라” 여기서 두 이레는 며칠입니까? 14일이라고 합니다. 왜 그럴까? 성경에 기록이 없기 때문에 난해로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들이나 여자나 정결할 수 있는 기한이 될 때 6절을 보면 “아들이나 딸이나 정결하게 되는 기한이 차면 그 여인은 번제를 위하여 일 년 된 어린 양을 가져가고 속죄제를 위하여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회막 문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자녀를 위해서 번제를 하라는 것입니다. 번제는 양을 잡아 모두 태워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용어가 어디에서 사용됩니까? 이스라엘에게는 가슴이 아픈 역사로 집단 수용소에서 독일군들이 태워죽이는 것으로 이것을 “홀로코스트”라고 합니다. 이 용어는 구약에서 태워 죽이는 것에서 온 것입니다. 그런 후에는 속죄제를 위해서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제사장에게 가져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40일이 지난 후 정결 예식을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간 것입니다. 번제를 드리면서 24절을 보시면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율법에 말씀을 따르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율법을 온전히 이루시기 위해서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모두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정은 가난함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때에 두 사람의 증인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25절에서 시므온이 기다리고 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한 자였습니다. 그가 기다리던 이스라엘의 위로라는 것은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라고 하면서 오순절 성령님이 오시기 전에는 사람들 위에 있다가 오신 후에는 사람 안에 있다고 주장을 합니다. 이런 것은 말장난입니다. 그러면 무슨 뜻입니까? 시므온은 늘 성령님의 인도하심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시므온은 성령님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시므온에게는 사명이 있었습니다. 26절에서는 죽기 전에 그리스도를 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에 늘 있었던 것입니다. 27절을 보시면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그 지시를 받은 대로 자신의 눈에 어린 예수님을 본 것입니다. 27-28절에서는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29.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이제 자신이 죽어도 행복하다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라고 합니다. 만약 나라면 더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시므온은 역시 성령님의 인도함대로 생활함으로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33절을 보시면 예수님의 부모님은 놀랍게 여기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시므온이 한 말로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그런 후 시므온은 예언적인 말을 부모님에게 축복합니다. 34-35절로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35.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예수님의 생애를 보심으로 마리아가 나중에 어떤 마음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시므온 말고 이제는 여자가 증인입니다. 그 여인은 누구입니까? 36-37절 보시면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37.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누구입니까?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입니다. 성전을 떠나지 않고 섬기고 있던 중에 예수님을 본 것입니다. 안나의 나이가 84인지 아니면 과부가 된 후 84세인지 어려운 해석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과부가 된 후 나이로 기록을 했습니다. 38절에서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율법대로 다 한 후 예수님은 갈릴리로 이동했습니다.

 

누가복음을 읽어본 믿지 아니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탄생은 가짜라고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동방박사의 기록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기록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음으로 믿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누가복음과 좀 다르게 기록을 합니다. 마태복음은 누가복음에서 알려 주지 아니하는 내용을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마1:24-25절을 보시면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25.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예수라 하는 것은 8일째 할례 할 때 지어준 것입니다. 누가복음의 이야기를 마태는 축약해서 1장에서 기록한 것입니다. 새로운 주제로 마태는 2장에서 베들레헴에서 나은 것으로 기록을 합니다. 1-2절을 보시면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라고 함으로 새로운 시작을 알려 줍니다. 페르시야로부터 온 박사들로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동방이라는 것을 오해하여 우리나라에서 간 것이라고 하는데 잘못된 것입니다. 왜 페르시야로부터 온 것입니다. 이 지역에는 유대인들이 흩어져 살았던 지역입니다. 유대인들로부터 메시야기 올 것을 들었을 것입니다. 이것을 일반은총이라고 하고 그 다음으로는 특별한 은총으로 별을 보고 자신들이 들었던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따라왔을 것입니다. 동방 박사들은 유대 땅에 와서는 2절에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헤롯은 놀라는 것입니다.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헤롯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왕이 어디서 태어났는지 질문을 합니다. 그 질문을 받은 그들은 6절에서 “유대 베들레헴”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 말씀의 근거는 미가 선지자가 한 말로 미5:2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미가 선지자의 말을 메시야의 탄생의 근거로 기억을 하면서 생활해 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2:6절에서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헤롯은 이 이야기를 들은 후 동방 박사들에게 아기 예수를 찾으면 말해 달라고 합니다. 나도 가서 경배 하도록 도와 달라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 계속하여 별을 보고 따라 갑니다. 별을 보고 따라가던 중 별이 계속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기뻐하면서 11절을 보시면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집에 들어가 경배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정확하게 예수님이 때어나신 곳을 모릅니다. 하지만 마태복음은 정확하게 베들레헴에 있는 집이라고 표현합니다. 예수님은 정결 예식을 한 후 갈릴리로 곧바로 간 것이 아니라 베들레헴에 약간 머물러 있었을 때 박사들이 찾아 온 것입니다. 즉 목자들과 박사들이 찾아 온 것은 시간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갈리릴로 가시기 전을 기록하는 것이 마태복음입니다. (참고로 향금, 유황 그리고 몰약을 가지고 알레고리적인 해석을 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동방 박사는 자신들이 생각할 때는 최선을 다해서 선물을 한 것입니다. 나중에는 선물을 통해서 도피하는데 유용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을 읽어 보시면 정결 예식을 한 후 헤롯을 피하여 애굽으로 피신을 합니다. 그런 후 다시 나사렛으로 이동을 합니다. (그런데 문제점은 정결예식 후 갈릴리로 간 것으로 기록을 합니다.) 마태는 15절에서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는 말씀을 함으로 구약에서 예언하신 것을 이루시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호11:1-2절로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선지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내신 사건을 말합니다. 호세아는 예수님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왜 마태는 이 말씀을 예수님에게 적용하는 것입니까? 마태는 호세아의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많이들 생각합니다. 아마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마태는 사도이기 때문에 호세야 선지자가 한 말을 인용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해석입니다. 그리고 다른 해석은 하나님은 전체적인 의도로 새로운 해석을 하는 것으로 봅니다. 호세아의 말씀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당신님을 동일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어려운 해석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성경을 해석할 때 자의적으로 해야 합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도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지 성경에 있는 그대로를 믿는 것이 구원 받은 성도의 믿음입니다.

 

계속해서 마2:16-18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을 찾아보십시오. 헤롯은 박사들에게 속은 것으로 생각하여 예수님이 태어난 것을 계산하여 두 살 아이까지는 모두 죽이라는 것입니다. 오직 마태복음에만 기록한 것입니다. 헤롯의 성격을 잘 아는 황제인 시저는 헤롯에 대해서 기록합니다. “헤롯의 아들이 되기보다는 헤롯의 돼지가 되는 것이 좋다”라고 합니다. 하지만 역사학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헤롯이 아들을 죽인 기록이 없다고 하여 조작된 성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는 사람으로서 참된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동정녀의 탄생의 의미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삼위일체 사건으로 관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선은 성자되신 예수님이 순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빌2:6-8절을 보시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나님의 파송이 필요하고 예수님의 순종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예수님이 성육신 하실 때 말씀이 육신이 되게 하실 때 물질이 의미 있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비하하여 성육신 하여 오신 것입니다. 고후8:9절을 보시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구원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 은혜는 롬8:3절에서 잘 표현합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인간의 죄 때문에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신 것입니다. 이 말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최초의 인간은 죽을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하지만 타락한 후에는 죽을 수 있고, 병들 수도 있고 연약해질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타락해진 인간의 모습처럼, 연약해진 인간의 모양을 취하여 오신 것입니다. 당신님은 죄가 없으시면서 인간의 가장 가까운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원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죄를 지울 수 없는 신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 분이 우리에게 성육신으로 오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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