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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교회

오후모임강설

2017.04.06 19:44

은혜의 방도인 성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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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막14:22-26, 마26:26-30
강설날짜 2017-04-02

은혜의 방도인 성찬(막14:22-26, 마26:26-30)

 

우리는 언제나 복된 주일에 삼위 하나님에게 예배하러 나오신 사랑하는 성도님 오늘도 각각에게 필요한 은혜를 주시는 주일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기를 감사하면서 ‘은혜의 방도인 성찬’으로 초대합니다.

 

우리는 과거 성찬식을 하면서 고전11장의 말씀을 늘 생각해 보았습니다. 초대교회를 보시면 “말씀과 성찬”을 위한 모였습니다. 그러다보디 어떤 분들은 그리스도인을 오해하여 “새벽같이 모여서 성찬을 은밀히 거행하고 평화의 입맞춤을 한다”고 생각하여 “식인풍습과 혼음”을 행한다고 크게 오해했습니다. 그리고 로마 황제는 그리스도인들은 황제를 “주”라고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주”라고 고백하는 것과 우리가 오늘 강설하는 성찬이 더욱 주의 믿음을 더욱 강화한다고 생각하여 “핍박과 가장 큰 빌미”가 되었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핍박과 빌미가 되면서 성찬을 하는 이유를 모르시면 성찬에 참여하시는 성도는 자신을 살펴보고 돌아보아야 합니다. 성찬은 주님이 당신님의 백성을 위해서 “주의 만찬”으로 제정해 주신 “말씀과 성찬”으로 그 중에 특히 성찬은 잡히시던 밤에 제자들에게 새언약으로 눈으로 보이는 증표와 싸인으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카톨릭은 “칠성례”라고 하여 소위 “혼배성사, 고해성사, 종부성사, 신품성사, 견진성사”에서 개신교에서 하는 세례와 성찬을 더하고 그 밖에는 더 이상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말씀을 찾아보아도 주님이 제정하신 것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왜 두 성례만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제정하여 주시고 제자들에게 거행하도록 명령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언약한 백성을 위해서 당신님은 유익을 위해서 가져다 준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것도 중요하지만 오늘은 성찬을 시행하고자 합니다. 그러다보니 성찬에 대한 의미를 더 강화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분들은 말씀의 강설을 한 후에 하다보디 성찬을 단지 말씀에 붙은 부록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성찬을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믿음으로 단단하고 바로 세우기 온전함을 위해서 강화하고 확증하는 것으로 주님이 연약한 우리를 위해서 친히 제정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중세시대에는 말씀이 없는 성례를 함으로 오히려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말씀을 통하여 믿음을 세워야 하는데 오히려 보이는 성례를 통하여 예수님의 몸과 피는 빵과 포도주에 카톨릭의 사제가 축성(기도)하면 실제적으로 변환다고 13세기 토마스 아퀴나스가 정리를 하게됩니다. 그래서 이것은 결국 성찬에 대한 논쟁은 1215년 라테란 회의에서 화체설을 확정하면서 카톨릭의 공식적인 교리로 인정을 받았다고 배운 것을 기억하십니까?

 

이것은 화체설로 신자들은 성찬을 함으로 예수님의 신제적인 몸과 피를 먹음으로 영생하는 신비를 누린다고 믿은 것입니다. 이것을 더욱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성체(빵)를 들어올리는 사람을 위한 방법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면 빵과 포도주를 들어올리면 이 순간을 바라보면서 감격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 후 빵은 받아먹고, 포도주는 사제들만이 먹는다고 합니다. 이런 예식을 한 후에는 죽은 자와 산 자를 위한 기도를 하고, 사도와 순교자들과 교통하기를 원하는 기도를 포함한다면 과연 이것이 성경적인 것입니까? 바로 이런 것에 대한 종교개혁을 했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개혁의 정신은 서서히 사라지고 보이는 방식을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찾고자 하는 시대에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성경적인 말씀에 충실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성경의 말씀은 무엇이라고 하는가를 보아야 할 것입니다. 먼저 마14:22절은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그리고 마26:26절에서도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라는 말씀에서 두 구절이 첫 시작을 하는 것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이 먹을 때에’라는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본래 제자들이 음식을 마련한 것이 성찬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마지막 송별의 “주의 만찬”의 시간을 통하여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하는 송별의 식사의 자리였음을 먼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예수님이 ‘떡을 가지시고 축복하시고 떼어...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쯔빙글리의 “기념설”이 아닌 칼빈이 가르쳐준 영적 임재설로서 빵과 포도주는 그대로이지만 육체가운데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님의 인성의 몸이 아니라 영으로 실제적으로 빵과 포도주에 영적으로 임재한다는 것을 개혁교회와 장로교회는 같이 고백을 합니다. 그래서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마치 여기에 임재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눈앞에 자신을 나타내 보이는 것과 같으며 우리의 손으로 만지는 것과 같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찬은 내 모든 죄를 깨끗하게 씻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몸이 찢기시고 피를 흘리셨다는 은혜의 복음의 말씀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빵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므로 우리 주님께서 현재적으로 내 영혼의 양식이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상적으로 먹는 것으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와 양식은 성도의 삶에 필요하기에 성찬은 자주 반복하는 것은 믿음을 더욱 견고하고 강화하는 보이는 은혜의 방도인 것입니다.

 

복음이 선포되는 방법은 들려주는 방법으로 우리는 이것을 강설(설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여주는 방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더 중요한 방법은 들려주는 방법입니다. 롬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기 때문이지요. 믿음이란 “들음”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생겨납니다. ‘들음’이라는 방법은 불신자에게는 믿음을 발생시키고, 성도에게는 믿음을 더욱 세우는 일을 합니다. 이에 반해서 보여주는 방법인 성례는 믿음을 발생시키지는 않기 때문에, 불신자를 대상으로 행하지 않고 이미 믿음을 가진 성도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믿음을 더욱 견고하고 강화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위한 것으로 연약한 당신님의 백성을 위한 사랑의 증표요 보증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칼빈은 성찬을 주신 목적을 친절하게도 정리하여 주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양심에서 복음의 모든 약속들을 주신다는 증표요 보증이며 우리에게 이것은 우리의 영적인 양분임을 확시켜 주기 위함이라고 하면서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이루신 것을 우리는 구원의 모든 은총을 확신하고 예수님 안에서 즐거워하면서 영적인 생활을 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받아 먹으라”고 하심으로 성도라면 누구든지 먹어야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요6:35절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51절에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고 하심으로 영적 배부름과 다시는 목마름이 없는 생명을 약속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성찬을 통하여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먹음으로 영적 양분을 충분히 공급받는 것임을 확신시켜 주는 것입니다.

 

칼빈은 계속하여 성찬을 설명하기를 성찬을 통하여 우리를 향한 주님의 위대하심과 선하심을 인하여 주님을 찬양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죄가 없으신 주님은 당신님의 백성을 위해서 당신님의 몸을 친히 기꺼이 십자가에서 내어주심으로 이루신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야할 자리에 주님이 하나님의 진로의 모든 것을 받아 죽으심을 자처하심으로 우리가 바로 내가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주님께서 당시님의 백서을 위해서 당하신 것을 생각하면서 반대로 우리에게는 감사가 있기 때문에 주님의 위대하심과 선하심을 찬양하는 것이 은혜이기 때문에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영광은 예배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늘 삶에서도 감사한 마음으로 복음의 증인의 삶을 생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예수님의 몸에 대한 것을 생각을 했다면 이제는 막14:2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하시고 그런데 마태복음에는 더 한 문장을 첨가하십니다. 마26:28절에는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내어주신 당시님의 피흘림에 근거한 것임을 아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성도가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어 당신님의 몸의 한 부분임을 확인하는 보증을 받는 것입니다. 교회는 분명히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지팡이교회 성도님 자신이 눈에 보이지 않는 신비한 그리스도의 몸의 한 부분임을 더욱 확신하기를 소망합니다. 성찬은 연약한 우리가 끝까지 믿음을 지켜 나가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말씀을 강설로도 확고히 할 수 있지만 연약한 백성을 위해서 성찬을 하게 하심으로 보이는 것으로 보게 하시고 맛보아 알도록 함으로써 구원의 약속을 더욱 확신하도록 하게 하여 주시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이제 우리는 성찬을 사모하면서 참여해야 합니다. 성찬은 우리가 언약하기 때문에 그것을 아시고 주님은 믿음을 강화하기 위하여 주신 것을 생각하신다면, 성찬을 단지 참여하는 것으로 머무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성찬을 귀히 여기고 진정으로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다시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눅22:19절에서 “이는 너희들을 위해 주는 나의 몸이다 나를 기념하여 이를 행하라“고 하심으로 예수님의 구속의 사건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복음의 증인으로 적극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것을 감사하는 순종적인 의미도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아버지라고 부르며 당신님이 주시는 한없는 은혜를 누리면서 기쁨으로 주님을 찬양하고 기쁨으로 신앙생활하기 때문 아닙니까? 성찬은 우리 안에서 이와 같은 변화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찬을 하기 전 우리의 몸을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공동체를 위한 것으로 몸된 교회의 유익과 나도 한 일부분임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서로 자신만을 위하는 것을 보면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행위는 과연 옳은 것입니까? 마치 형제가 싸움을 좋아하면서 우리의 명절날 모인다면 하나의 공동체인 가족의 의미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래서 늘 우리는 성찬을 하기 전에 자기 스스로 점검을 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성경한 삶 혹은 의로운 행위 자체가 성찬에 참여할 합당한 자격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의 성결된 삶이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대속의 죽음을 당하신 예수님의 공로를 이루신 것입니다. 단지 우리는 주님을 의지함으로 성찬에 참여하는 것으로 죄인을 용서하여 주시고 당신님의 영광을 위해서 인자하심을 찬양하게 하시고 감사한 마음으로 우리의 신앙적 헌신을 다짐하는 은혜의 시간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성찬을 재정하신 후 막14:25절에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는 것을 사도 바울은 더 확증하여 주심으로 고전11:26절에서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지상의 교회가 할 중요한 것은 과거에만 그리고 미래에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계속하여 확증하는 증표인 것입니다. 그 놀라운 일을 이루어 주신 주님을 향한 우리의 신실한 마음으로 충성을 다짐하고 순종하는 고백을 함으로 그리스도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우리는 성찬을 시행하고자 합니다. 성찬식을 통하여 그리스도 당신님이 실제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이 자리에 임재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이 자리에 영적으로 임재하는 것입니다. 단지 기념하는 것으로 머무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은혜의 방도인 말씀의 강설을 통하여 들음으로 믿음이 장성을 했습니다. 그러면 성찬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과 하나가 되는 신비로운 연합의 은혜를 누리는 시간입니다. 이 자리에 깨달음의 이해와 실제적 것은 강설이지만, 믿음을 더욱 견고하고 강화하는 은혜는 성찬을 통해서 받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은혜를 감사하면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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