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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히8:7-13
강설날짜 2017-05-21

제21항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속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리라고 맹세로 확정 받으셨음을 믿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위치에서 당신님 자신을 당신님의 아버지 앞에 내어주시고, 당신님의 완전한 만족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만족시키시고, 십자가 나무 위에서 당신님 자신을 바치셨고, 그곳에서 그분은 우리의 죄를 제거하시기 위해서 보배로운 피를 흘리셨습니다. 이는 선지자들이 예언한 바와 같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그는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도다. 그는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리고 비록 본디오 빌라도가 처음에는 그분을 무죄하다고 선언했을지라도,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서 범죄자로 정죄 받으셨습니다. 그분은 빼앗지 아니한 것도 물어주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불의한 자를 대신하여 의인으로서 죽으셨습니다. 그분은 몸과 영혼이 고난 당하셨고,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무서운 심판을 느끼셔야 했고, 그분의 땀은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 같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분은 외치시기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견디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과 함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하여 모든 것을 해로 여깁니다. 우리는 그분의 상함으로 위로를 발견하고, 한번 드려진 속죄제사 외에 하나님과 어떤 다른 화해의 방편을 찾거나 만들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자들은 이 한 번의 속죄제사로 말미암아 언제나 완전하게 됩니다. 이는 또한 하나님의 천사가 그분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시기 때문에 그분을 예수라고 부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속죄”를 생각하면서 그 중에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서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를 풀기 위해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대제사장이 되심으로 당신님이 직접 제물로 십자가에서 드리심으로 죄를 감당하여 주셨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는 위로와 평강을 얻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함으로 생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을 보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위치에서 당신님 자신을 당신님의 아버지 앞에 내어주시고, 당신님의 완전한 만족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만족시키시고, 십자가 나무 위에서 당신님 자신을 바치셨고, 그곳에서 그분은 우리의 죄를 제거하시기 위해서 보배로운 피를 흘리셨습니다. 이는 선지자들이 예언한 바와 같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그는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도다. 그는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약속의 성취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의인으로 죄를 지을 수 없는 독생자로서 당신님의 백성을 위해 감당하여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은혜를 입은 성도입니다. 벧전3:18절은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라고 하심이 증거입니다.

 

이런 예수님을 오늘날에도 믿을 수 있는 것이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살아 있는 기회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히3:12-13절에서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13.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고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오늘’이라는 단어는 그 당시에는 지금이나 그리고 마지막 날 재림의 날까지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믿는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는 늘 ‘죄의 유혹’에 있습니다. 그럴수록 자신을 부인하면서 14절의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말씀과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팡이교회는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 즉 처음으로 믿고 세례를 받으면서 고백했던 것을 끝까지 잘 지켜가면서 승리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로서 그리스도와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사람으로서 영광스러운 이름을 복음으로 나누는 귀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주님은 “그는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도다. 그는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리고 비록 본디오 빌라도가 처음에는 그분을 무죄하다고 선언했을지라도,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서 범죄자로 정죄 받으셨습니다. 그분은 빼앗지 아니한 것도 물어주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불의한 자를 대신하여 의인으로서 죽으셨습니다. 그분은 몸과 영혼이 고난 당하셨고,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무서운 심판을 느끼셔야 했고, 그분의 땀은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 같이 되었습니다.”라고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고백함으로 그리스도의 속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범죄자로 정죄를 받고 불의한 자를 대신하여 의인으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성육신으로 오심으로(낮아지심의 극치) 모든 날들이 고난이었던 것입니다. 그 중에서 십자가의 고난이 그 중에 극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십자가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삶 전체가 고난이었습니다. 죄가 없으시면서도 특히 눅23:4절에서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고 했습니다. 그런 후 14-15절은 “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이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고 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심문하였으되 너희가 고발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15.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그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그가 행한 일에는 죽일 일이 없느니라”고 하심으로 더욱 죄가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본디오 빌라도를 생각할 때 이런 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사”라고 함으로 대표하는 것이고 예수님의 죽음과 관련한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빌라도가 역사적인 인물처럼 예수님도 역사적으로 존재 했다는 사실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롬6:23절의 말씀처럼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것처럼 나와 우리의 죄를 감당하시기 위해서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을 받으면서 “영원히 완전케 하시는 단번에 드려진 유일한 제사”를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불의한 자를 대신하여 의인으로서 죽으셨습니다. 그분은 몸과 영혼이 고난 당하셨고,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무서운 심판을 느끼셔야 했고, 그분의 땀은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 같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분은 외치시기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견디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다시 벧전3:18a절을 보시면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나의 죄를 대신하여 죽기 위해 당신님의 몸과 영혼이 형벌을 받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참된 구원자이신 예수님은 모든 고통과 말할 수 없는 괴로움과 아픔과 고뇌를 특별히 십자가 위에서 철저히 감당하여 주심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감당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27:46절에서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고 하시는 것을 생각하면 할 말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참된 믿음을 고백하는 고후5:19-21절에서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1.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의 거룩한 속죄는 우리를 위한 대신하는 것이고 우리를 위한 유익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당신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구약에서 요구하는 속죄를 모두 성취하신 것입니다.

 

히8:7-8절을 보시면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8.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고 하심으로 옛 언약은 사라지고 새 언약을 맺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13절에서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고 하심으로 첫 언약의 부족과 한계가 드러난 만큼 그것은 없어져 가는 즉 소멸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처음에 주셨던 언약은 불완전한 것입니까?라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의 한계가 부가되는 것은 보다 나은 것과의 비교 때문입니다. 보다 나은 것이 왔기 때문에 이전의 것은 상대적으로 불완전해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전의 것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최종목적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그것은 히8:5절의 말씀처럼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형과 그림자를 통해서 6절을 보시면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이전 것은 소멸되어지는 것이지만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은 영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반대로 벧후2:4절은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무엇입니까? 타락한 천사는 용서하지 않고 지옥에 던져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은혜를 입은 백성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반역한 자 즉 우리를 위해 죽으셨을 뿐 아니라 또한 우리를 위해 사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이신 속죄입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그러므로 바울과 함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하여 모든 것을 해로 여깁니다. 우리는 그분의 상함으로 위로를 발견하고, 한번 드려진 속죄제사 외에 하나님과 어떤 다른 화해의 방편을 찾거나 만들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자들은 이 한 번의 속죄제사로 말미암아 언제나 완전하게 됩니다. 이는 또한 하나님의 천사가 그분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시기 때문에 그분을 예수라고 부른 이유이기도 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마음입니다. 믿음의 선배님과 우리의 같은 고백은 예수님이 주신 은혜로 가능한 것입니다.

 

롬5:11절은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이와 같은 복음이 우리를 감동시키지 않은 채로 남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더 이상 나는 진노의 자녀가 아니라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귀도 드 브레는 박해자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몸이고 언제 죽을지 모르면서도 참된 신앙의 고백을 남기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서 속죄하여 주신 것을 깨달음으로 빌3:8절의 고백처럼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안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10:12절에서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여기서 두 가지로 이해하여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죄를 위하여 한 제사를 영원히 드린 후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라고 읽을 수 있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가 죄를 위하여 한 제사를 드린 후 하나님 우편에 영원히 앉으셨다”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처음의 것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서의 강조점은 그리스도께서 드리신 단 한 번의 제사가 영원히 그 효력을 발취한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것은 14절에서 뒷받침합니다.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예수님의 제사가 이런 효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근본적 변화를 간직한 성도가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 때문에 우리는 이미 그리고 영원히 거룩한 성도로서 신앙 생활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성도는 한 번의 제사로 말미암아 언제나 완전하게 된 것입니다. 귀도 드 브레는 모든 것은 그리스도와 죄인들을 구속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십자가라고 하는 것은 참된 고백이고, 우리와 같은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루어진 거룩한 신분으로 실제적인 삶 속에서 구현하기 위해 전투하는 군인과 같은 신분으로 부름을 받은 것을 감사하면서 신앙 생활하는 지팡이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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