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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롬3:1-8
강설날짜 2017-05-28

제22항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한 우리의 칭의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 위대한 신비에 대한 참된 지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우리 마음속에 참된 믿음을 일으켜 주셨음을 믿습니다. 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의 모든 공로와 함께 받아들이고, 그리스도를 우리 자신의 소유로 만들고, 그리스도 외에 다른 어떤 것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없거나 아니면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어서, 믿음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사람은 완전한 구원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이 반드시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그분 외에 다른 무엇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엄청난 불경죄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결론을 내리면 그리스도께서는 단지 반쪽짜리 구주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과 함께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되느리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동시에 엄격히 말하자면 우리는 믿음 그 자체가 우리를 의롭게 해 주는 것과 같은 그런 뜻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의로 받아들이는데 사용된 방편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당신님의 모든 공로와 당신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를 대신하여 행하신 모든 거룩한 사역들을 우리에게 전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의이고, 믿음은 그리스도의 모든 은덕들이 나눔에 있어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이 모든 은덕들이 우리의 것이 될 때, 이 모든 것들은 우리의 죄를 사해주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지팡이교회는 제20항부터 21항까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님의 백성을 위해 십자가에서 제사장적 봉사와 희생으로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진정시키어 주었습니다. 우리 죄를 씻기 위해 예수님은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드린 대속의 사역에 관한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것이 구원의 기초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부터는 제22항부터 26항까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 사역의 열매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취득하여 누리게 되는지 다루게 됩니다. 좀더 말씀 드리면 예수님의 구원 사역으로 얻은 열매는 크게는 칭의와 성화 두 가지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이중 은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타락되어진 중세교회의 시대 즉 종교개혁의 시대에서 특히 칭의의 교리는 교회의 핵심이고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죄에 대한 대가는 분명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정죄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닙니까?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면 서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 이유를 제21항에서 잘 알았을 것입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속제”입니다. 인간의 죄 즉 나를 위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하여 주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하게 하심으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고후5:21절에서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셨고, 마태는 마1:21절에서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즉 예수님 이름의 뜻이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님의 뜻을 잘 알 수 있도록 특별계시인 성경을 주셨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삼위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 귀도 드 브레는 제22항 “우리로 하여금 이 위대한 신비에 대한 참된 지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우리 마음속에 참된 믿음을 일으켜 주셨음을 믿습니다.” 과연 지팡이교회도 같은 마음이십니까? 종교개혁자인 마틴 루터를 잠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는 딱딱한 마루에서 잠자는 것과 금식 그리고 손과 발로 빌라도의 계단을 오르기까지 모든 것을 해 보았습니다. 루터에게는 아무런 소용도 없었습니다. 그가 왜 그런 마음과 행동을 한 것입니까? 루터의 주석에서 “영혼의 평안을 소유하기 위해 모든 것을 했었다”고 말합니다. 아무런 소용이 없었기에 루터는 평안이 없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자신의 ‘죄의식’이었습니다. 루터도 우리도 스스로의 열심적인 행동과 믿음의 높이에 따라서 구원을 좌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구원은 삼위 하나님의 사역에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역을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알고 있는 귀도 드 브레는 제22항에서 “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의 모든 공로와 함께 받아들이고, 그리스도를 우리 자신의 소유로 만들고, 그리스도 외에 다른 어떤 것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없거나 아니면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어서, 믿음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사람은 완전한 구원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이 반드시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라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지팡이교회 성도님,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를 위해서 죽으셨습니까? 루터는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단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믿음과 행동으로 그리고 고해성사로 죄의식을 없애고 구원을 얻고자 한 것입니다. 아주 간단한 것은 오직 믿음으로 예수님께 자신이 죄인이라는 참된 고백을 하면 되는 것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루터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까?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에 대한 이해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신학교에서 조직신학 중에서 인간론이 한 학기를 다룰 정도를 많은 분량이지만 아주 간략하게 생각하고자 합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탁월함이 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모르고 죄의식이 존재합니다. 죄의식이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의 처음 방향과 기능과 내용이 망가지고 왜곡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피조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성적 능력과 탁월한 재능이 인간에게 있는 것으로 죄의식을 통한 하나님을 알도록 한 것입니다. 이 세상이 문명적으로 발달되어져도 하나님은 당신님을 찾을 수 있도록 자연계시와 특별한 계시인 성경의 말씀과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죄의식을 통하여 나는 누구인가를 알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질인 것입니다.

 

루터도 자신의 죄의식에 대한 것을 빌라도의 계단을 손과 무릎으로 오르면서 기도도 해 보았고 자신보다 위에 있는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이 빠진 ‘어려움’과 ‘곤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죄로 말미암은 영적인 죽음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영적인 절망속에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회개함으로 하나님을 찾고 구원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 요청에는 나를 위해 즉 죄인을 위해 오신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벨기에 신앙고백서에서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 위대한 신비에 대한 참된 지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우리 마음속에 참된 믿음을 일으켜 주셨음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처럼 성경을 통하여 신비에 대한 참된 지식을 알게 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알게 하심으로 우리 마음속에 참된 믿음을 일으켜 주심으로 바른 믿음의 생활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성경을 통하여 루터의 마음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사랑을 주셨습니다. 루터는 자신의 죄의식에 대한 고민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그는 시편 공부를 통해서 특히 “하나님의 의”가 자주 언급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형벌적인 의로 죄인들을 벌하시는 뜻으로 생각을 하면서 루터는 더욱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루터는 성경에서 “의로움”이라는 단어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날 로마서를 보게 됩니다. 바로 그곳 롬1:16절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라는 말씀은 좋은 소식으로 들렸습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 구절인 17절에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여기서 루터는 ’하나님의 의‘라는 말씀에 낙담을 하기 시작을 합니다. 그 다음 18-19절을 보아도 낙담을 더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그러면 그럴수록 루터는 낙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말씀을 계속 묵상한 것 같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놀라운 종교개혁의 초석이 되는 말씀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의‘는 죄인을 형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살리기 위한 것으로 죄인들을 위한 하나님의 공의를 주심으로 우리는 믿음으로 받기만 하면 되는 것을 알게 됩니다.

 

루터는 17절 말씀을 다시 생각하면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는 말씀을 제대로 안 것입니다. 그가 지금까지 선행을 통하여 그리고 고해성사를 통하여 구원을 이루고자 했던 것이 무너진 것입니다. 오히려 17절의 말씀은 구원의 문이 되었고 성경을 여는 열쇠가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런데도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에 대해서 복음을 들어도 알고자 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죄에 대해서 법이 정한 것을 어길 경우만 죄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당신님에 대한 영광에 대한 무지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반역의 상태자체를 죄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의식도 없고 돌릴 마음도 없으며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것을 알지도 못하는 상태가 죄인의 상태인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 있는 루터는 은혜의 방도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알게 되었습니다. 칼빈도 타락한 인간이 죄의식에서 “종교의 중요한 전환점”을 하나님의 공의로 알고 영광을 다시 올려드리고자 한 것 같습니다. 이것은 하이델베르크 65문에서 오직 믿음으로만 그리스도와 그의 모든 은덕에 참여할 수 있다면 이 믿음은 어디에서 옵니까? 그 해답은 “성령이십니다. 그는 복음 강설(설교)로 우리 마음에 믿음을 일으키시며, 성례의 시행으로 믿음을 강화시키십니다.” 이것을 오늘 제22항에서 잘 정리하여 주십니다. “믿음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의로 받아들이는데 사용된 방편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당신님의 모든 공로와 당신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를 대신하여 행하신 모든 거룩한 사역들을 우리에게 전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의이고, 믿음은 그리스도의 모든 은덕들이 나눔에 있어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이 모든 은덕들이 우리의 것이 될 때, 이 모든 것들은 우리의 죄를 사해주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삼위 하나님이 하신 은혜입니다.

 

타락한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공의의 은혜는 값없이 주는 선물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에 의해 인간의 자유의지에 단순히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인간에게 베풀어지고, 우리의 마음속으로 스며들고, 불어넣어 지기 때문입니다. 엡2:8절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분명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성도에게 있어서 믿음은 분명한 선물이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인간의 공로로 알 수 없는 선물입니다. 그러면 단지 믿을 수 있도록 만 한 것입니까? 아니라고 분명히 답해야 합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로부터 믿는다는 동의나 믿음의 행위를 기다리면서 선물만 달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받은 성도에게 일어나는 구원의 순서를 믿음의 선배님들은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영적으로 죽어 있는 죄인들이 스스로 구원을 요청하고 이루어갈 수 없다는 것이 개혁주의 구원론의 대 전제라면 오직 하나님이 그의 긍휼과 은혜로 죄인들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푸실 때만 우리가 살아나고 그의 영광과 생명과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당연한 결론을 내리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전통적으로 개혁주의 구원론에서는 이렇게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그리스도가 이루신 구원의 사역이 죄인의 삶과 마음속에 어떻게 성령으로 말미암아 적용되며 실현되는가를 논리적으로 유추하여 삼위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그 과정을 구원의 서정이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구원과정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성령의 활동들 사이의 상호연관적인 논리적인 순서이지 기계적이고 시간적인 순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꼭 정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의 선배님들 중에서는 구원의 순서를 비판하는 학자도 있다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성도에게 발생한 구원사건의 다양한 측면을 설명하는 기능으로서 구원의 서정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특별히 죄인들에게 적용되는 구원에 얼마나 세심한 하나님의 배려와 사랑이 깃들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아무런 계획과 질서 없이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것이 아니라 질서의 하나님의 속성에 맞게 계획대로 적용하신다는 면에서 구원의 서정을 다루는 유익 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믿음이 있고나서 한참 후에 의롭다 함을 주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동시에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중생과 믿음의 관계도 그렇고 칭의와 성화의 관계도 그러합니다. 전등의 스위치를 켜는 동시에 방에 불이 들어오는 것과 같이 구원의 다양한 국면들도 논리적이고 원인적인 우선순위로 정할 수 있으나 동시적인 사건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헤르만 바빙크는 구원에 수반되는 모든 축복들은 구별될 수는 있으나 분리될 수 없으며 동시에 부여된다고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원사역이 우리에게 적용될 때 인간의 책임성이 무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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