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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갈4:1-7
강설날짜 2017-07-09

제26항 그리스도의 중보

 

우리는 유일하신 중보자이시며 대언자이신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하나님께도 나아갈 수 없음을 믿습니다. 이런 목적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되셨고, 신성과 인성을 함께 가지셨으므로, 우리 사람들이 하나님의 위엄으로 나아가는 데 방해를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부께서 당신님 자신과 우리 사이에 세워 놓으신 이 중보자께서는 당신님의 위대하심으로 우리를 위협하지 않으시는데 우리가 우리의 선택에 따라 또 다른 중보자를 찾을 수야 있겠습니까? 하늘과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우리를 사랑하는 어떤 피조물도 없습니다. 비록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본체이셨을지라도, 자기를 비워 우리를 위하여 사람의 형체와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모든 면에서 형제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중보자를 찾는다면, 우리는 심지어 우리가 당신님의 원수였을 동안도 우리를 위하여 당신님의 생명을 내어주신 그분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는 분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권세와 능력을 가진 분을 찾는다면, 성부의 오른 편에 앉아 계시고, 하늘과 땅에서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분 외에 누가 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성인들을 영예롭게 하기보다는 차라리 불명예스럽게 하는 모든 습관들을 소개하여 그들이 결코 행하지도 않았고 요구하지도 않은 것을 하는 것은 순전히 신뢰의 결핍입니다. 이와 반대로 성인들은 그들의 저서들에 나타나는 것처럼 그들의 직무에 따른 영예를 끊임없이 거부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무가치함을 의지하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가치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당신님의 의가 믿음으로 우리의 것이 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하심과 가치에 근거하여 우리의 기도를 드리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한 이유로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가 이런 어리석은 두려움, 더 정확히 말하면 불신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18.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2:17-18)고 말합니다. 또한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더욱 더 격려하시기 위해서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4:14-15)고 말합니다. 동일한 서신에서 “19.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2.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10:19,22)고 말합니다. 또한,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25.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7:25-25)고 말합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합니까? 그리스도께서도 친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히14:6)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왜 다른 대언자를 찾아야 합니까? 하나님이 당신님의 아들을 우리의 대언자로 주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 한 분만 구하지 않고 다른 대언자 때문에 그분을 떠나거나 다른 대언자를 찾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을 주셨을 때, 그분께서 우리가 죄인임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의 아버지를 불러야 하는데, 이것은 우리가 주기도문에서 배운 바와 같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간구하는 모든 것을 얻는다고 확신합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을 만들었던 시대는 카톨릭교회로부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고난을 넘어선 죽음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신앙고백의 저자인 귀도 드 브레도 순교를 당한 것을 생각하면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는 죄인이 기도할 때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구원자이시지만 그 분은 무서운 사람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러다보니 기도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분이 예수님의 육신적인 어머니인 마리아를 중보자로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들은 마리아에게 기도를 하는 것은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중보자가 되어주심으로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도록 자유와 특권을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도 카톨릭은 예수님을 무서운 분이라고 생각하면서 다른 방법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참고로 마리아를 통해서 기도의 응답을 받겠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결국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을 위해서 종의 형상을 입고 오셨고, 대속의 사역을 고난과 죽음을 감당하여 주심으로 당신님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21항에서 배운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님의 사역을 다 이루시고 승천하여 하나님의 우편에서 당신님의 교회를 위한 중보자로 계속 감당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멜기세댁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으로서 단 한번의 제사를 드림으로 당신님의 백성을 위해서 중보자로서 지금도 계속 하시고 있습니다. 그 은혜로 말미암아 히4:16절의 말씀처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무엇입니까? 은혜의 보좌로 담대하게 나갈 수 있는 교회요 성도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벨기에 신앙고백은 “우리는 유일하신 중보자이시며 대언자이신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하나님께도 나아갈 수 없음을 믿습니다. 이런 목적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되셨고, 신성과 인성을 함께 가지셨으므로, 우리 사람들이 하나님의 위엄으로 나아가는 데 방해를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라고 요약하여 주는 것입니다.

 

이런데도 카톨릭은 마리아에 대해서 “마리아 무염시태”라는 교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자를 설명하기 위해서 사용된 교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원죄없이 태어나시기 위한 과정을 설명하는 교리입니다. 마리아 무염시태를 다른 말로 “성모 무염시태”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원죄 없이 태어나기 위해서 그의 어머니도 원죄가 없어야 한다는 이해를 돕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나중에 이 교리를 지지하는 ‘둔스 스코투스’와 반대를 하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있었습니다. 카톨릭은 두 부류로 나뉘어 질 수 있는 가운데 1854년 교황 피우스 9세는 최종적으로 카톨릭의 교리로 “마리아 무염시태”를 확정을 합니다.

 

사실 그 이전의 트리엔트 공의회에서도 마리아 무염시태에 대해서 “우리는 영광이 가득한 동정녀이며 예수님을 낳으신 분인 마리아는 하나님의 뜻의 그 유일한 은혜가 사전에 오심과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원죄에 빠지지 않으셨고, 언제나 그 원초적인 허물과 실제적인 허물과 관련이 없으시고, 거룩하며 무흠하시다는 가르침은, 경건하다고 모든 공교회인들로부터 인정받고 교회의 관습과 공교회의 신앙과 바른 이성과 성경으로 일치해서 비준되어야 한다는 것과..... 이와 반대로 강설(설교)하거나 가르치는 것은 허락되지 않음을 결정합니다.” 이 교리의 문제점은 예수님과 마리아를 같은 동일한 신격의 자리에 둘 뿐 아니라 같은 중보자로 보는 것은 특별한 계시인 성경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벨기에 신앙고백은 “성부께서 당신님 자신과 우리 사이에 세워 놓으신 이 중보자께서는 당신님의 위대하심으로 우리를 위협하지 않으시는데 우리가 우리의 선택에 따라 또 다른 중보자를 찾을 수야 있겠습니까? 하늘과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우리를 사랑하는 어떤 피조물도 없습니다. 비록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본체이셨을지라도, 자기를 비워 우리를 위하여 사람의 형체와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모든 면에서 형제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중보자를 찾는다면, 우리는 심지어 우리가 당신님의 원수였을 동안도 우리를 위하여 당신님의 생명을 내어주신 그분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는 분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권세와 능력을 가진 분을 찾는다면, 성부의 오른 편에 앉아 계시고, 하늘과 땅에서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분 외에 누가 더 있겠습니까?”고 확인하는 것입니다.

 

구약은 죄인이 하나님 앞에 오기 위해서는 어떤 중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김으로 하나님 앞에 죄를 범했을 때,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중재했습니다. 그리고 구약시대에는 제사장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제물을 드리고 기도함으로 하나님과 그들 사이를 중재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중재라는 말을 생각하면 협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는 중재는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님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갈4:4-6절은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유일한 길은 마리아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칼빈은 “그러므로 중보를 떠나서 하나님이 옛날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신 일이 없고 은혜를 받으리라는 소망을 주신 일도 없다”고 한 것입니다.

 

유일하신 예수님만이 중보자가 되어 주심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 되었던 것을 다시 회복시킨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벨기에 신앙고백은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가 이런 어리석은 두려움, 더 정확히 말하면 불신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18.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2:17-18)고 말합니다. 또한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더욱 더 격려하시기 위해서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4:14-15)고 말합니다. 동일한 서신에서 “19.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2.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10:19,22)고 말합니다. 또한,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25.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7:25-25)고 말합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합니까? 그리스도께서도 친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히14:6)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왜 다른 대언자를 찾아야 합니까? 하나님이 당신님의 아들을 우리의 대언자로 주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 한 분만 구하지 않고 다른 대언자 때문에 그분을 떠나거나 다른 대언자를 찾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을 주셨을 때, 그분께서 우리가 죄인임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제49문답에서도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올라가심은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당신님의 아버지 앞에 계신 우리의 대언자이시다“는 점에서 나에게 유익이 됩니다.

 

타락한 카톨릭은 종교개혁이 일어났어도 그리스도를 자비로운 대제사장으로 생각을 하면서도 가까이 할 수 없는 중보자로 가르쳤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생각을 하면서 심판자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분은 마리아로 생각하여 “마리아 무염시태”를 만든 것은 성경을 무시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다음 주에 더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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