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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강설날짜 2018-04-15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6-17문

 

두 주전에 지팡이교회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을 통해서 죄에 대한 정의와 죄의 정의에 따라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의 내용을 알았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법을 순종함에 있어 부족하거나,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류의 시조가 지은 죄가 무엇이었습니까? 금지된 실과를 먹어버린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워낙 유명한 이야기라서 잘 아실 것을 믿습니다. 오늘은 먼저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가 범죄와 함께 타락했다는 사실을 다루겠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6문을 보십시오. “모든 인류는 아담의 첫 범죄에서 타락했습니까?” 그에 따른 고백은 “아담과 맺어진 그 언약은 아담 자신만이 아니라 그의 후손들과도 맺어진 것이므로, 보통의 출생에 의하여 그로부터 내려오는 인류는 그의 첫 범죄에 있어서 그 안에서 죄를 지었고, 그와 함께 타락했습니다”라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타락한 것입니까? 모든 인류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입니까?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인류에 대해서 아담의 첫 범죄와 그의 후손들도 같이 타락되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것을 알도록 하는 것입니까? 아담과 맺어진 그 언약은 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자손까지도 공동체로 보고 있습니다. 인류의 시조의 범죄 행위에 대해서, 왜 그의 후손들까지 관련이 되는지를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맺으셨던 그 생명의 언약이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범죄는 개인의 죄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될 수 있습니다. 세상 적으로 보면 황당하기도 합니다. 사실 가장 먼저 죄를 지은 것은 하와입니다. 뱀의 유혹에 넘어간 자가 누구입니까? 그렇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은 하와보다 인류의 대표로 삼은 아담의 죄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류의 대표인 아담이 지은 죄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만 죄의 형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도 그 대가로 같은 형벌을 당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죄와 분명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 안에서 죄를 지었고, 그와 함께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타락된 본성이 어디서 왔는가를 알도록 하는 것입니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가 행위언약에 불순종함으로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에 의해 사람의 삶은 너무나도 오염되어 사람 모두가 다 죄의 상태에서 잉태되고 출생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단의 꾀임에 빠져 고의적으로 불순종하였습니다. 자기 자신을 속이면서 죄를 범하였고, 그의 모든 후손들도 함께 타락한 것입니다. ‘함께 타락을 했습니다.’라고 하면 억울하고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 주위를 보아도 죄를 지은 사람만 처벌을 받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모두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었다고 해서 그의 후손은 모두 죄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은 참으로 비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개인적으로 언약을 맺은 것이 아닙니다. 아담만이 아니라 그의 후손 모두에게 같은 언약을 맺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당신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후 완전한 수종을 조건으로 생명언약 즉 행위언약을 맺습니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것이고, 그것을 지키는 동안은 하나님과 행복하게 교제하면서 모든 피조물을 보존하고 통치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아담은 인류의 대표로서 언약을 맺은 것입니다. 각 나라 정상이 만나서 개인적으로 선언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대표로서 싸인을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한 사람 즉 대통령의 싸인으로 모든 국민이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아담이 맺은 행위언약은 인류의 대표로서 맺은 최초의 언약이기도 합니다. 아담은 최초의 사람이고 그의 후손들은 같은 모습으로 태어나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를 보면 그의 부모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생물학적으로 외형과 마음 그리고 먹는 식습관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불공평하다고 문제를 삼지 않습니다.

 

인류의 조상으로부터 온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습니다.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되었지만 당신님께서는 창3:15절을 통하여 원시복음을 주시었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미래에 올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뱀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뱀의 머리가 상하게 된다는 표현을 통해서, 뱀이 궁극적으로 패배하게 된다는 선언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복 즉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고, 에덴의 회복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참한 현실에 오심으로 결국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부활과 승천을 통해 사단을 물리쳤다는 것입니다. 히2:14절을 분명하게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라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담과 예수님이 온 인류를 대표하기 때문에 아담과 예수님의 행위는 단순히 개인 차원에 머물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말합니다. 롬5:18-19절을 보시면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이것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 선물이 무엇입니까? “구원”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우리를 값없이 은혜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원수였지만, 원시 복음의 성취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신뢰의 교제를 회복한 것입니다. 롬5:9-10절은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고난과 죽음을 당하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었습니다. 죄인인 우리가 표현하기 어려운 큰 은혜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로부터 모든 사람이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오직 한 사람 즉 예수님께서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출생하셨습니다. 처녀인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낳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하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신 것은 죄로부터 자유롭기 위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결국 전인류의 대표자이신 예수님께서는 홀로 고난을 받으심으로 ‘단번에 당신님의 몸’을 드리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다음으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7문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타락의 결과가 무엇인가를 알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 타락은 인류를 어떤 상태로 몰아갔습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십니까? 죄로부터 타락한 사람은 이것이 무엇이 중요한가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믿음의 선배님들은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 보십시오. “그 타락은 인류를 죄와 비참의 상태로 몰아갔습니다.” 롬6:23a절은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말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즉 죄의 대가는 사망이라는 것입니다. 범죄로 인하여 사람은 타락했고, 모든 인류는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죄의 상태와 비참함의 상태가 형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먹고, 마시며, 생활하고 있지만, 죄와 비참함의 상태라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것 같지만 허상일 뿐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인생은 헛된 것이고 허무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롬6:23b절은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하심으로 헛되지 아니하고 허무하지 않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롬3:11절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부자이든 가난한 자이든, 권력을 가진 자이든 아니든, 누구나 죄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과거 사람들은 교도소에 들어간다는 것을 두려움과 수치로 생각을 했습니다. 이 시대를 생각하면 어떻습니까? 학생들은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면 10년 정도는 교도소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하기도 합니다. 물질 만능이 된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생만 그런 생각을 합니까? 정치인과 지도층인도 사회의 통념과 일반 도덕에 어긋나는 일을 하여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죄를 지으면 죗값을 치르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행위언약을 생각해 보십시오. 언약을 어기고 죄를 범한 인간은 부끄러워하고 회개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자신을 더 이롭게 하고자 합니다.

 

죄를 지으면 원래의 의로움이 사라지고 불안해하면서 더 타락을 하고자 하는 것이 사람의 습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정이 사라지고, 공동체 생활보다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사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 사람이 부패했다는 말은 사람이 지니는 모든 속성이 부패하여 죄를 안 짓는 것이 불가능하고 온전한 거룩함이 어디에도 없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지정의”가 오염되었다는 것입니다. 허무주의 자 즉 무신론자는 죽음을 선택할 때가 있습니다. 살아있어도, 살아가는 매순간이 지옥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비참한 처지에 떨어지게 되었기 때문에 이런 생각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해도 어떠합니까? 회개치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더 원망하고 불평하기도 합니다. 다른 우상을 만들어 섬기면서 복을 달라고 하는 것은 더욱 죄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9:19-20절을 보시면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고 사도 요한은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악한 시대에 사도 요한은 계22:20-21절 즉 요한계시록의 가장 마지막을 마무리하면서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기록하는 것은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동양 철학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유교에서 쌍벽을 이루는 두 인물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맹자와 순자입니다. 아마도 맹자를 더 잘 아실 것입니다. 맹자는 기원전372?-289?년의 사람으로 어릴 때부터 공자를 숭상하고, 공자의 사상을 발전시켜 유학을 후세에 전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는 사람의 본성이 근본적으로 선하다고 주장하여 우리는 “성선설”이라고 합니다. 맹자는 도덕성을 사람의 본성으로 본 것입니다. 그러면 순자는 어떻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298?-238?년의 사람으로 정감과 욕구와 같은 자연성을 본성으로 보았습니다. 사람의 타고난 본성이 악하다는 주장으로 우리는 “성악설”이라고 합니다. 맹자의 성선설에 반대하여, 악한 본성을 예(禮)를 통해 변화시켜 선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성악설을 주장하였습니다. 사람의 본성은 후천적으로 교육과 경험을 통해 교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둘 중에 기독교의 입장에 가까운 것이 무엇입니까? 아시겠습니까? 둘 중에 선택을 하라고 하면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의 입장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의 속성은 죄로 말미암아 죄의 상태와 비참함의 상태에 이르렀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모두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는 것은 죄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은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롬3:9-17절을 읽어 보았으면 합니다.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의 생각은 후천적으로 교육과 경험을 통해 교화될 수 있다고 했지만, 성경의 가르침은 부패한 사람의 속성을 교육이나 설득, 감시나 억압을 통해서도 통제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사람은 선을 행할 수 있다고 인정을 합니다. 그렇지만 완전한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공동체는 언제나 질투와 갈등과 전쟁이 있습니다. 죄와 비참한 상태에서 죄를 더해서 더욱 비참한 자리에 떨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구하고 의롭다 하심을 받고 성령을 의지함으로 자꾸 하나님께 나아가서 변화를 받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의 죄와 그 비참한 처지에 이르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엎드리면서 살아가는 것이 지혜있는 자입니다. 지팡이교회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거듭나지 않고는 선한 일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주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이 행복 그 자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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