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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강설날짜 2018-04-29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9-20문

 

오늘은 먼저 인생의 비참함과 죽음과 지옥의 고통에 대한 것을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롬8:22절은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고 사도 바울은 기록을 합니다. 이런 사실에 대해서 불신자들은 믿기 어렵고 인정하기를 싫어합니다. 우리의 죄 된 본성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인류의 첫 부모인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된 것입니다. 이것과 연결해서 웨스트민스트 소요리문답 19문은 이렇게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타락해 들어간 상태의 비참함은 무엇입니까?” 문제를 잘 보시면 아시겠지만 타락의 결과로 비참함의 내용을 가르쳐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답은 “자신들의 타락으로 하나님과 교제를 잃어버린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아래 있고, 그래서 이생에서 모든 비참함과 죽음 자체와 그리고 영원한 지옥의 고통을 받데 되었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교제를 잃어버린 중요한 근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교제를 잃어버린’것입니다. 교제를 잃어버린 것에 대한 것을 네 가지로 정리해서 알려 주고 있는 것이 비참함의 구체적인 내용입니다.

 

우리는 한 번 창5:1-32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게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게난은 칠십 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사십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마할랄렐은 육십오 세에 야렛을 낳았고 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팔백구십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야렛은 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육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칠백칠십칠 세를 살고 죽었더라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창5장은 아담에서부터 노아까지의 족보를 적어 놓은 것입니다. 족보를 읽다보면 부럽기도 하고 어떻게 가능합니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인생은 육십부터라고 하고, 백세시대라고 합니다. 과거에는 “인생칠십고래희”라고 하여 70세 사는 것이 어렵다고 했습니다. 의학이 발전하면서 인생은 지금부터라고 하지만, 성경에서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900세를 넘는 분들이 있습니다. 900세도 부러운데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당신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실 때 우리를 영원히 살 수 있도록 창조하신 것입니다. 죄를 범하기 전까지는 하나님이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라는 복을 주셨습니다. 죽음과 고통스럽고 병을 걸릴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위에서 아담과 노아까지의 족보에서는 왜 죽었더라고 하는 것입니까? 창2:16-17절은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순종을 하면 영원한 삶이었고, 불순종은 결국 반드시 죽으리라는 것입니다. 결국 인류 최초의 사람은 불순종한 대가로 죽음이 온 것입니다. 창조의 질서 즉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를 잃어버림으로 죄가 들어 온 것입니다.

 

죄의 삯은 죽음이었습니다. 이런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은 인생이 삶에서 죽음은 막연하면서도 가장 두려운 것이 되었습니다. 인생 백세라고 하지만 죽음은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면 죽음이후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관심이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신의 앞에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하지만 큰 병에 걸리면 누구나 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병에 걸리면 사람은 그 병의 원인을 찾고자 합니다. 하물며 왜 인생의 죽음이 왔는가에 대한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요리문답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금지된 열매를 따 먹은 타락이 인간에게 가져온 비참함입니다. 타락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죄를 지었을 때 그가 당하는 것은 비참한 감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참함이란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이고, 모든 사람이 죽음을 당하는 것이고, 죽음 후는 영원한 지옥의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죽음이 끝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영원한 지옥의 고통이 더 두렵지 않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아래 있다는 것만큼 슬프고 비참하고 불쌍한 것이 더 있겠습니까? 이런 비참함이 현재 타락한 사람에게 미치고 있습니다. 이것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회복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욥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마치 법 없이 살 수 있는 것 같았던 같습니다. 그렇지만 욥처럼 경건한 사람도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욥의 친구는 욥5:7절에서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가는 것 같으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로부터 이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상할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비참한 현실에 놓인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된 원인입니다. 원인의 결과는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아래 있는 것이고, 살면서 모든 비참함을 면할 수 없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영원히 지옥의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이런 진실을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을 한다는 것은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창5장을 읽었습니다. 아담부터 노아까지 족보로 그 인물 중에 아주 중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에녹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몇 세에 죽었더라? 입니다. 하지만 에녹은 다른 사람과 같이 죽지 않고 하나님이 데려가서 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주심으로 죽음을 맛보지 아니한 것입니다. 사람이 한 번 났으면 별수 없이 죽는 것입니다. 죽음이란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이것이 적용되지만 에녹은 죽음을 맛보지 아니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은 착하게 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종교도 하나님도 결국은 착하게 살아서 복 받으려고 믿는 것 아니냐?”라고 하기도 합니다. 기독교는 착하게 사는 종교가 아닌데 오해하도록 누가 한 것입니까? 그 반대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더 나쁜 짓 많이 하더라”는 것을 생각하면 종교는 선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교회는 사람이 많고, 예배당도 크고, 인생이 펴네, 건강이 회복되고 마음의 평화가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인생의 행복시작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본질아 아닌 것입니다. 욥을 보아도 노아를 보아도 어떠합니까? 그와 반대로 에녹을 생각하면 어떻습니까?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진 삶은 비참하다는 것입니다. 병의 근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교제의 본질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아야 합니다. 좋은 계절이라고 하여 들과 산 그리고 강으로 나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당신님의 백성을 사랑하십니다. 창세기를 읽어보시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담의 아들인 가인과 아벨이 있었습니다. 형으로부터 죽음을 당한 아벨을 대신 셋을 주셨습니다. 노아 홍수 때는 노아의 식구 여덟 명을 살려두셨으며, 아브라함을 택하시어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을 여셨습니다. 이러한 은혜로 비참함과 죽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지옥의 고통을 당하지 아니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심으로 길과 진리로 안내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제20문으로 죄와 비참함을 해결하는 구속자에 의한 은혜언약입니다. 질문을 보시면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죄와 비참함의 상태에서 멸망하도록 내버려두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죄와 비참함에 그대로 두셨는가를 알 수 있도록 이렇게 답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순전히 선한 기뻐함으로 모든 영원으로부터 어떤 자들을 영생으로 택하신 하나님은 그들을 죄와 비참함의 상태로부터 건져내시고, 그들을 구속자에 의한 구원의 상태로 이끄시기 위하여 은혜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중보자 그리스도를 이야기하기 위한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누구는 구원받고, 누구는 버려졌다고 하는데,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예수님이 고통 받으셨다는데, 그게 다 쇼 아닙니까? 예수님이 신이라면 배고픔도 십자가 형벌도, 하나도 아프지 않았을 테니까요. 예수님이 도대체 무엇을 구원해주셨다는 것입니까? 지금도 인류는 질병과 가난과 재난으로 고통 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20문에서는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를 그러한 상태에 언제까지라도 버려두셨는가를 알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삶을 위해 선택하신 것이고, 둘째는 그들과 은혜 언약을 세우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선택하신 자들을 죄의 상태와 비참함에서 건져내어 구원으로 이끌어 가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을 통해서 당신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한 것이고, 구속 받은 자를 영생 얻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이유는 도덕적인 선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선택의 조건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의 타락함으로 스스로 언약에 의해서 생명을 얻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은혜언약을 맺으심으로 당신님의 백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생명과 구원을 값없이 제공하셔서 그들이 구원 얻기 위해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도록 요구하시고, 생명을 얻기로 정해진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믿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요 값없는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3장은 “순전히 하나님의 자유로운 은혜와 사랑으로 인한”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자유로운 은혜와 사랑 이외에 이무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택함을 받은 자들은 신앙이나 선행이나 오래 견디는 인내와 뚝심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얻게 하시려고 영원부터 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이류를 언제까지 버려두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믿기 어려운 것이고, 싫어하기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구원이라는 것은 사람의 선택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작정된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엡1:4-6절을 보시면 좋겠습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사도 바울은 롬11:5절에서도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고 하시고 있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누가 남은 자인지 모르기 때문에 더욱 복음의 증인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오늘 제20문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누구는 택하고, 누구는 택하지 아니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왜 저 사람이 더 선하고 인간적인데, 이 사람을 택하셨는가?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들었을 때 하나님은 불공평한 신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습니다. 성경을 오해하는 사람들은 “만일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에로 선택하셨다면, 그 때는 내가 무엇을 행하든지 간에 구원에 이를 것이다.”라고 누군가가 말할 수 있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인들 사이의 통상적인 반응입니다. 하지만 잘못된 생각입니다. 성경은 자동으로 구원에 이를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무슨 죄를 짓든지 자동적인 구원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지만 오해 하지 마십시오. 사도 바울은 롬8:30절에서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으로 사람을 택하신 이유는 특정한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어 보시면 하나님의 선택이 어떻게 정해진 목적을 향하여 움직이는지를 하나씩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동적인 구원이 아니라 죄를 회개함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뜻대로 따라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즉 은혜언약을 알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셨습니다. 죄로 인하여 타락한 사람이 어떻게 예수님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지정의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성령을 통해 예수님을 알고 믿게 하셨습니다. 성령을 통해 특별한 선택을 받은 자들에게 은혜언약을 적용하십니다. 이 은혜의 언약을 알 수 있도록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7장 2항은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타락함으로 그 언약에 의해 생명을 얻을 수 없게 되었는데 주님께서는 그 기쁘신 뜻대로 은혜언약이라 칭하는 둘째 언약을 맺으셨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생명과 구원을 값없이 제공하셔서 그들이 구원 얻기 위해 예수님을 믿을 것을 그들에게 요구하시고 생명을 얻기로 정해진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믿기를 원할 뿐만 아니라 믿을 수 있게 하기를 약속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들에게 사랑을 베푸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적 부패와 전적 무능력에 빠져 스스로 생명을 얻지 못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로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오심과 승천으로 우리는 생명과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순종하신 것처럼 우리도 순종의 길을 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은 타락한 인간이 이해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을 아는 자들이 알 수 있는 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우리가 이 안에 담겨 있는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신비로운 것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명심할 것은 이것을 성경이 가르친다는 사실입니다. 딤후1:9절을 보시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여기 부르심을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하나님이 누구를 부르실 때에는 택한 자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함으로 인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사람과 하나님과 단절된 것을 신뢰하고 교제할 수 있도록 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구속자가 인간이 죄를 대신해서 피를 흘리고 죽으심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유지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지팡이교회는 한없는 사랑을 받은 복 있는 성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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