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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강설날짜 2018-08-26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37문

 

오늘은 사람이 사망하는 질문을 하는 자체가 주는 유익을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질문 자체가 그리 좋은 질문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만약에 장례식을 치루고 있는 분들에게 죽음이 주는 유익을 말하면 문화적인 충격으로 어려움을 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질문은 더 유익하리라 믿습니다.

 

먼저 질문을 보시면 “신자들은 죽음에서 그리스도로부터 어떤 유익을 받습니까?”입니다. 이 질문은 우리에게 정말 유익한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죽음이라고 하면 누구나 생각하기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부활을 소망하는 사람들이기에 죽음조차도 유익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위로를 얻으시기 소망합니다. 그러면 믿음의 선배님들은 어떻게 정리를 했는지 생각했으면 합니다. “신자들의 영혼은 그들의 죽음에서 완전히 거룩하게 되어, 즉시 영광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들의 육신은 여전히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부활 때까지 그들의 무덤에서 쉽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유익입니다. 예수님의 은혜가 없다면 이런 유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죽음은 유익이라고 하는데 다른 말로 표현하면 “무슨 복을 받습니까?”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도 이 세상에서 복이지만 죽음조차도 복이라는 것입니다. 소요리문답은 죽음에 대해서 두 가지로 말하는데 영혼과 육신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나면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죽음 앞에 살고자 노력을 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장수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연구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어떤 노력에도 죽음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긴 대가입니다.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심으로 모든 형벌을 감당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죄인이었던 우리를 구원하여 주심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가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지팡이교회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예수님과 분리되지 않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양자됨을 얻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최후 심판은 더욱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힘든 신앙생활을 해도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알기 때문에 죽음에서 더욱 소망을 품을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고난과 박해를 당해도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는 것은 예수님의 한없는 은혜로 믿음을 소망한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행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택함을 받은 우리는 최후의 심판에서 영원한 형벌이 아닌 기쁨과 영광 가운데로 데리고 가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형벌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셨고 모든 저주를 나에게서 없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기쁨과 영광 가운데 하나님 나라로 데리고 가실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복음을 전할 때 ‘당신은 무조건적으로 죄인’이라고 하면 기분이 좋지 아니할 것입니다.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으라고 하면 약간의 거부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면 좀 더 이해할 수 있고 다가가기 쉬울 것입니다.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참으로 정확한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포괄적인 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생에서 세상 마지막 날에도, 그 이후에도 구원은 동일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누릴 수 없는 유익입니다. 신자들은 사도신경을 사용하여 믿음의 고백을 할 때 “몸의 부활을 믿사오며”라고 하지만 영혼만 생각을 합니다. 몸과 영혼 모두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을 또한 소요리문답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영혼만 구원을 받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영혼만 창조하셨습니까? 반대로 몸만 구원 받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은 몸과 영혼이 있어야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창조 하실 때도 몸과 영혼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성화의 과정은 거룩한 죽음을 통해 완성되는 종착점이 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성화의 과정이 없는 영원한 안식처에서 행복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요3:16절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생이나 죽음이후에도 동일한 영원한 생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주 구원이나 영생에 관심을 두지만 육신에 대해서는 평가절하 하는 것 같습니다. 육신이든 영혼이든 사람에게 모두 중요한 것입니다. 영혼만 구원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육신을 구원에서 제외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한국적인 의식이라고 생각됩니다. 믿음의 선배인 욥은 욥19:26-27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조하구나” 이 말씀에 대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요5:28-29절은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죽음 뒤에 이 땅에서 잠자는 것은 육신이지만 최후의 심판이후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카톨릭은 연옥교리로 만들어 보통 신자들이 사망을 하면 중간적 처소에 들어가야 한다고 합니다. 여죄를 정화하기 위해 그들의 죄에 대하여 일시적인 고난을 받는 장소로 생각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곳에 있을 동안 타인을 위한 기도, 타인을 위한 공로적 선행, 여전히 지상에 있는 사람들이 드리는 큰 헌물과 헌금 그리고 공로를 쌓으면 그 고통을 단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만이 당신님의 백성을 구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 것이지, 성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믿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 공로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이 오실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나름대로 이 세상에서 성화의 과정을 하지만 성도의 남은 죄 문제를 죽은 후에도 해결하려는 노력이 연옥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교리는 나중에 카톨릭이 타락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잘 아는 “면죄부” 또는 “면별부”라고 하기도 합니다. 면죄부를 판매함으로 돈과 행위로 부모와 친척 등의 죄 값을 감면해 주라는 것은 성경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종교개혁가인 루터는 다음과 같이 반박을 했습니다. “그리므로 교황은 면죄로써 인간은 모든 형벌로부터 해방되며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선전하는 면죄 증 설교자들은 모두 오류에 빠져 있는 것이다. 사실상 교황은 연옥에 있는 영혼에 대해서 어떤 형벌도 사할 수 없다.… 연보궤 안에 던진 돈이 딸랑 소리를 내자마자 영혼은 연옥에서 벗어나 나온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의 학설을 설교하는 것이다. 돈이 연보궤 안에서 딸랑 소리를 낼 때 이득과 탐욕이 증가한다는 것은 틀림없다. 동시에 성직자의 대도(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하는 기도)의 응답 여부는 하나님의 선한 뜻에 달려 있다. … 연옥으로부터 영혼을 속량한다거나 고백장을 사는 사람은 참회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는 자는 비기독교적 교리를 전하는 사람이다.” 루터의 95개도 반박문 중.........

 

그리고 우리가 죽은 사람을 위해 기도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까? 삼하12:21-23절을 보시면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그를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이 일이 어찌 됨이니이까 하니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거니와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오히려 기도가 필요한 사람은 살아있는 우리입니다. 죽은 사람들은 이미 영광 가운데 교제를 누리는 사람과 그 반대로 심판을 당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죽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연옥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것이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올 필요가 없습니다. 그 사람을 통해 잘 되기를 소망을 한다면 믿음은 더욱 미련한 것입니다. 돌아가신 분의 사진을 보면서 복을 비는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마치 미신을 위해 기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만 돌아가신 날에 가족이 모여서 그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격려하면서 교육을 시키고 음식을 나누는 것은 신앙의 유산을 위한 것이지만 복을 빌기 위한 행동은 잘못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육신이 무덤에 있고 영혼만 구원을 얻는다면 영원한 안식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육체는 필요 없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육체의 몸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육체는 한시적으로 무덤에 있지만 최후의 심판 후에는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가 누리는 영광의 안식입니다. 죽으면 몸은 끝이 아니라 잠시 동안 무덤에 머물지만 나중에는 영혼과 영원한 생명을 누립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영광의 광채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완전한 구원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주 간략하게 소요리문답은 신자들의 영혼은 그들의 죽음에서 완전히 거룩하게 되어, 즉시 영광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들의 육신은 여전히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부활 때까지 그들의 무덤에서 쉽니다.”라고 정의한 것입니다.

 

그러면 육신도 중요하니 잘 보관해야 합니까? 이것은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중세시대에는 육신을 훼손하면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을 깰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화형을 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육신을 불로 태워 고통스럽게 죽이는 것은 나중에 그리스도와 연합이 불가능해지도록 하는 위협적인 방식의 사형제도였습니다. 일종의 고문의 극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화형을 시키시지 못했으면 무덤에서 꺼내어 화형을 시키는 것을 보면 잔인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불안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초대교회의 신앙생활을 보면 콜로세움에서 동물들로부터 공격을 당해도 즉 몸이 사라져도 오직 부활이라는 소망을 품었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화장을 한다고 해서 육신이 아주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신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죽음은 누구나 슬프고 괴로운 일입니다. 이것은 그동안 그 분과 함께 한 사랑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소망은 이 땅에서 영원히 편안하게 살고자 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있기 때문에 잠시 슬퍼할 수 있지만 장례식은 위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유익이 무엇인지 가르치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요한계시록를 가장 나중에 기록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님 나라가 얼마나 찬란하고 복된 것인가 하는 것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구원 받은 성도는 성화의 과정에 있고, 주님의 재림 후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의 눈물을 씻겨 주시고 아주 복된 상태로 생활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고전15:52절은 흔히 부활장이라고 말합니다.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썩지 아니할 몸으로 변화한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과 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알아봤듯이 그러할 것입니다. 다음 주에는 믿는 자가 부활 할 때 그리스도에게서 받는 유익을 통해 더 자세히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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