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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강설날짜 2019-10-27

종교개혁은 분열인가? 리폼 즉 개혁인가? 그리고 교회가 나가야 할 방향.....

 

지금으로부터 502년 전 하나님께서는 루터를 통해 종교개혁이 일어나도록 하셨습니다. 그 날은 1517년 10월 31일이었습니다. 세계의 역사를 바꾸도록 하는 시대였습니다. 기독교 역사로 보면 교회가 다시 바른 방향으로 다시 회복하도록 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왜 그런지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 즉 신자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타락했습니다. 1500년 동안 유럽의 정신을 이끌어 온 카톨릭 교회가 최고로 타락한 시기였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종교개혁을 하셨습니다.

 

교회는 구원받은 백성입니다. 신자들은 순수한 믿음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중세시대의 교회는 세상보다 더 타락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참된 복음을 전하지 않고 오히려 거대한 조직을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면죄부를 통해 구원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돈만 있으면 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명령하신 지상명령을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신자들로부터 돈벌이가 중요했습니다. 오늘날 일부 교회이지만 과거 시대와 같기도 합니다. 헌상(헌금)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기복주의에 물든 시대입니다. 또한, 교회도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하고자 합니다.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상실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세시대처럼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를 믿는 나라 중에 가장 타락한 국가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혹시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유럽의 국가 중에 아니면 미국으로 생각하십니까? 502년 전에는 독일이 가장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독일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독일 사람 중 하나님께서는 신부인 루터를 택한 것입니다. 루터는 비텐베르크 대학교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세상 적으로 부러울 것이 없는 그에게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을 통해 회개했습니다. 회개했으니 무조건 종교개혁을 해야겠다는 계획은 아니었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루터를 통해 하나님께서 사역하신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성경을 통해 유일하신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루터가 한 것으로 생각을 하지만 하나님께서 하신 결과물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믿음이 선배님들이 참된 성경의 의미를 알고 유산을 물려준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요리문답, 소요리문답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벨직(벨기에) 신앙고백서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통해 교회가 타락하지 않도록 공부해야 합니다. 왜 그 시대에 믿음의 선배님들이 유산을 남기어야 했는가? 우리는 유산을 통해 나를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지팡이 교회는 오늘 “종교개혁은 분열인가 그리고 교회가 나가야 할 방향”을 통해 신앙의 한 길을 가기를 소망합니다. 위에서 짧은 글로 언급을 했습니다. 회개한 루터는 1517년 어느 날 “돈 상자에 돈이 떨어지는 순간에 불타는 연옥으로부터 영혼이 곧장 날아온다”고 외치는 면죄부 판매하는 테첼과 토론하기로 합니다. 테첼의 주장이 그릇되었음을 증명하는 95개 조의 반박문을 작성하여 10월 31일 비텐베르크교회 정문에 내걸었습니다. 그 당시 카톨릭 교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 자신에게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종교개혁은 왜 일어났는가? 머리로만 생각하지 마시고 미세한 음성으로 읊조리어 보십시오.

 

오늘 우리는 다시 한번 “종교개혁”은 왜 일어났는가?를 질문해야 합니다. 이 질문은 해마다 생각해야 합니다. 그럴 때 신앙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사실 종교개혁은 왜 일어났는가에 대한 질문은 매우 크고 폭넓은 이야기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떻게 해서 종교개혁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당대의 부패한 교회와 사회를 개혁하고 성경적으로 바른 교회와 사회와 그런 신학을 형성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이라면 종국적으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라고 대답하면서 그 가까운 원인을 다 찾아 대답해야 할 어렵고도 폭넓은 질문입니다.

 

오늘은 폭넓은 것 중에서 개혁인가? 분열인가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후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054년 기독교회는 동방의 정통교회와 서방의 가톨릭교회로 나뉘었고, 16세기에 와서 가톨릭 교회는 가톨릭교회와 프로테스탄트 교회로 나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용어를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어디서 많이 들었지만, 잘 모를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개신교라고 하면 알 것입니다. 프로테스탄트를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 개신교입니다. 그러면 기독교는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간략하게 기록을 하면 카톨릭, 동방정교회, 장로교, 침례교, 성결교, 오순절 등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런 것을 엄밀하게 구분하기 위해 개신교라고 사용하는 것이 좀 더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러면 왜 믿음의 선배님들은 프로테스탄트라고 한 것입니까? 1517년 어느 날 루터는 95개의 조항을 만들어 비텐베르크 성당 정문에 내걸었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루터는 1521년 보름스 국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를 받습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독일지역에서 루터를 보호하기 시작합니다. 가장 타락한 나라에서 루터를 보호함으로 종교개혁이 일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후 여러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항의서를 제출했고, 라틴어로 된 항의서, 즉 “프로테스타치오”를 제출한 사람들을 일컬어 “프로테스탄트”(개신교)라고 불렀습니다. 이로써 프로테스탄트는 로마 가톨릭과 맞선 종교개혁 진영의 이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카롤릭의 부패는 결국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분열이 아닌 개혁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위의 글을 보면 분열과 개혁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개신교로서는 참된 교회의 회복을 위한 개혁입니다. 하지만 카톨릭 측면에서 볼 때 분열로 생각할 것 같습니다. 서로의 입장에 따라 다르지만, 교회는 늘 성경의 말씀대로 가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장로교는 하나였지만, 오늘의 현실을 보면 아주 많은 교단이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반대하며 세운 교단이 고신입니다. 분열 같지만, 순수한 교회를 유지하기 위한 개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처럼 루터의 종교개혁이 없었다면 교회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성경을 믿지 않고 면죄부를 통해 구원을 이루고자 할 것입니다. 과연 이것이 성경적입니까? 종교개혁은 원인과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루터를 통해 교회가 회복되도록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계속해서 교회가 신앙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사람에 의한 분열이 아닌 교회를 위한 개혁이 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속한 장로교를 생각해 보십시오. 교단의 분열은 종교개혁인가?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 나라도 우리나라처럼 교단이 수없이 분열되었습니까? 유독 우리나라만 100개 이상의 교단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믿음의 선배님들이 이루신 개혁을 오늘날 우리는 유산으로 받고 있습니까? 그런데 신자들은 교리의 중요성을 모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노회가 하는 일 중에 교리의 순수성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합니까? 그러다 보니 세상으로부터 교회는 타락했다는 소리를 들으며 그들이 교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시대에 직면해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의 거룩한 공동체라고 하지만 현실은 어떠합니까? 세상이 개인주의로 흐르는 것처럼 교회도 같은 현상처럼 보입니다. 종교개혁가들처럼 참된 교회의 회복을 위해 바로 세우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역사적인 의미를 생각하지 못하면 언제가 결국 종교개혁은 왜 일어났는가를 상실할 것입니다. 제2의 종교개혁이 필요하다고 하는 시대에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도 생각해 보십시오.

 

믿음의 선배님들은 참된 교회의 회복을 위해 개혁에 힘을 쏟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자신의 목숨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오늘날 우리는 교회가 무엇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로마 카톨릭의 세력과의 의견 충돌은 결국 핍박과 희생이었습니다. 참된 교회의 회복을 알리기 위해 성경을 자국의 언어로 번역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습니까? 죽음이었습니다. 핍박과 자신을 희생함으로 오늘날 우리는 특별한 계시인 성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개혁이 없었다면, 우리는 라틴어로 읽어야 할 것입니다. 라틴어를 구매하고자 해도 엄청난 금액을 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라틴어를 모르면 교회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신앙생활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선배님들은 하나님의 섭리로 교회를 회복하도록 했습니다. 분열이 아닌 개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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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 교회가 속한 합신은 종교개혁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합동으로부터 나온 교단입니다. 정상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박윤선 목사님과 신복윤, 김명혁, 윤영탁, 박형용 교수님께서 새로운 신학교를 설립하기로 결단했습니다. 가칭 “개혁신학교”라는 이름을 사용하여 남서울교회당(홍정길 목사)에서 개교했습니다. 이때 최낙재, 손봉호 교수님이 함께했습니다. “뜻이 있고, 결단의 용기를 가진 많은 학우들”의 참여를 바라는 글을 사용했습니다. 신학교를 개교한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문교부로부터 정식 학위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역지를 잃어야 합니다. 그것은 결국 생활의 어려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감당하며 1980년 10월 28일 오후 4시에 456명의 학생들이 남서울교회당에 모여 눈물겨운 수업을 시작하였습니다. 교회의 순수성을 회복하고자 했던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개혁신학교)는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이라는 이념이었습니다. 개혁주의적 신앙 운동과 생활운동을 펴나갈 것을 염원했습니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을 하고자 한 것입니다.

 

믿음의 선배님들은 교회가 해야 할 일을 어디서 알았습니까?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백성을 위해 주신 책입니다. 그 책에는 특별한 계시인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책 중의 책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고 박윤선 목사님께서는 성경을 “책들 위의 책”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모든 책들을 심판하는 책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팡이 교회는 ‘성경만이 진리’라고 해야 합니다. 자신의 신념과 철학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신념과 신앙을 다른 것입니다. 이단들이 주장하는 것은 신념입니다. 성경과 다른 것을 주장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입니다. 역사적인 개신교를 이어받은 교회는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의 원리를 계승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선배님들이 이루신 개혁교회를 그대로 잘 지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처럼 하는 것은 종교개혁의 정신, 유산 등을 잘 지켜나가는 것이 교회의 책임입니다. 언제나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가장 힘들기도 합니다.

 

지팡이 교회는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하며 교회가 타락되지 않도록 믿음의 선배님들이 남기어주신 것으로 교육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벨기에 신앙고백서를 배웠습니다. 지금은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을 배우고 있습니다. 성경은 구원으로 인도하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딤후3:14-16절을 보시면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아멘.......

 

고 박윤선 목사님께서는 “성경과 나의 생애”에서 성경을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성경은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 이유를 아시리라 믿습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았고,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건조하지 않으며, 성경을 깊이 알면 알수록 그 심령에서 찬송과 기도가 나옵니다. 지팡이 교회는 성경을 깊이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바로 알 때 그 말씀은 꿀보다 단 하늘에서 내려주는 ‘생명의 양식’이 됩니다. 오늘 특강을 기억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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