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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강설날짜 2019-12-01

교회론- 하나님 나라와 교회2

 

지난주에 이어서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교회는 신앙고백 위에 세운 것입니다. 건물에 교회를 세운 것이 아닙니다. 건물이 신앙고백 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가 신앙 고백한 것처럼 오늘날 신자도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딤후4:18절을 보시면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신앙고백을 하는 성도에게 주님께서는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십니다. 그런 후 성도인 교회를 천국 즉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십니다. 건물이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가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나의 공로가 아닌 조건 없는 전적인 은혜입니다.

 

구원함을 받은 신자들은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연결된 신자들은 하나 된 신앙고백 하며 주님께서 명령하신 지상명령을 감당합니다. 그러면서 성경이 가르치는 모든 것을 따르고자 상한 심령으로 애쓰는 존재입니다. 성경의 말씀을 믿는다는 것은 행복한 신자입니다. 행복한 신자 마음 안에는 이미 하나님 나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알 수 있도록 산상수훈을 통해서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지난주에 마태복음 5장을 통해 들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이미와 아직” 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 올라야 합니까?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나라가 이미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알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특히 마5:3절과 10절은 신학적인 용어로 인크로즈 구조라고 부릅니다. 3절과 10절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4절부터 9절에서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회개한 교회는 아직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믿을 수 있도록 외적인 준비를 합니다. ‘당신을 보니 나도 예수님을 믿겠습니다’라고 듣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신자입니다. 그것을 잘 알 수 있도록 산상수훈을 주신 것이기도 합니다.

 

산상수훈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어떤 신자인가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고 지난주에 말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왜 복이 있다고 했습니까? 세상의 복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신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복을 지금 누리고 있습니다. 또한, 사후세계 즉 “새 하늘과 새 땅”에서도 같은 복을 누립니다. 바로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복 즉 구원입니다. 사람은 죽지 않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도는 죽지 않고 영생 즉 예수님처럼 부활합니다. 이런 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런 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심령이 가난한 신자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고 있어서 고통과 고난 등이 없는 생활을 한다는 것입니까? 10절을 보시면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예수님을 믿으면 인생에서 고난이 없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그리고 초대교회는 목숨으로 하나님 나라를 증거 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신앙고백 하며 영과 진리로 예배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믿음의 선배님들처럼 의를 위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백성은 6절을 보십시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의가 이 세상에 가득할 수 있도록 갈망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것을 알고 있는 신자들은 불신자들이 하나님의 의를 향하여 나아가지 않는 것을 애통해하는 것입니다. 애통하는 신자들은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에 가득할 수 있도록 지상명령을 감당해야 합니다. 교회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마음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해도 어느 때는 상상도 못 할 욕설을 당할 데도 있습니다. 그보다 더 위험한 현실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보며 애통해하는 교회는 복이 있다고 합니다. 4절을 보시면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애통해하는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는 교회는 행복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사후세계가 두렵지 않습니다. 사후세계는 예수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고통이 없는 나라에서 행복한 신앙생활 하기 때문입니다.

 

애통하며 신앙생활 하는 교회는 마음이 온유합니다. 온유란 받아들이고 흡수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온유는 천성적으로 부드러운 마음, 인격 등이 아닙니다. 산상수훈은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고 있는 백성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온유는 구원 얻은 신자가 아니고서는 결코 소유할 수 없는 하나님 백성만의 성품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과거 우리의 모습은 마치 야생마와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길들어진 야생마는 주인의 뜻에 온유한 마음으로 복종하는 것과 같습니다. 온유해질 수 있도록 성령은 우리를 회개시킴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온유한 백성은 세상의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애통합니다. 그들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멍에를 매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합니다. 말씀으로 전도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사모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내 안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백성은 7절을 보십시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세상 사람들이 잘못해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그들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불쌍히 여겨야 한다고 하면 이런 오해를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을 동정하거나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을 측은지심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측은지심을 넘어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통해 이웃에 대한 사랑의 긍휼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긍휼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을 긍휼이 여기면 우리도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신자는 8절을 보십시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여기서 청결이라는 것을 불교적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생각하는 해탈의 경지 그리고 마음을 비우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청결한 신자는 두 마음을 품을 수 없습니다.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만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방식이 하나님께 집중되어 하나의 마음으로 신앙생활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신자는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하나님과 사귐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귐이 있는 공동체는 하나님의 백성이기 떄문입니다. 사귐의 공동체로 예수님께서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교회는 성도의 교제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사도신경을 사용하여 고백하고 있습니다. 신앙고백 하며 신앙생활 하는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하나님의 영광과 통치를 받습니다. 마음이 청결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귐의 공동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누리며 통치를 받고 있다는 것을 행복으로 생각합니다. 마음이 청결하기 위해 행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노력이 아닌 예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있다는 것은 행복한 백성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의 방식이 하나님께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백성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화평케 하는 자가 됩니다. 9절을 보시면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사람들과 관계 속에서 화평케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주신 화평을 이 세상 가운데 나누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어주신 근거로 무엇을 하려고 해야 합니까? 화평입니다. 십자가의 사건은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를 화목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에 근거하여 이 세상에서 화평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보지 못하는 분이시므로 죄 없으신 예수님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도록 함으로 화평을 주셨습니다.

 

화평을 알고 있는 신자들은 복음을 통해 전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화평을 전하는 우리는 이 세상으로부터 어려움을 당합니다. 화평한 삶을 살면 핍박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은 화평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사귐의 공동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신앙생활 하는 것이지,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생활하는 위선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신앙 고백할 수 있도록 외적인 준비를 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내적인 변화는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있는 지팡이 교회는 기도해야 합니다.

 

산상수훈을 통해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안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관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천국 열쇠를 가지고 있는 관리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오해하는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천국의 열쇠는 베드로가 가지고 있던 것 아닙니까? 베드로가 사망한 후에는 로마 교황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자! 그러면 마16장을 통해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하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마16:16절을 보십시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우리말 번역으로는 ‘주’라고 했지만, 원어로는 당신입니다. 한국적인 입장에서 번역된 것입니다. 하여튼,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기전 제자들로부터 신앙고백을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간단한 질문처럼 보이지만 의미심장한 질문입니다. 또한, 우리에게도 중요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늘 의미가 있는 질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베드로로부터 신앙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다음 예수님께서는 17절에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하시면서 베드로의 고백을 받아들였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을 알고 있는 예수님께서는 18절에서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베드로를 향해서 예수님은 ‘너는 베드로’라고 하신 후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시기 위해서 원어로는 ‘그리고’를 사용 하십니다. 왜 ‘그리고’를 사용하신 것을 혹시 이해 하셨습니까? 베드로와 반석을 동일시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여기서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아람어를 사용하여 베드로와 반석을 이야기 하시기 위해 ‘게바’를 사용했다고 추측합니다. 이것을 마태는 아람어를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헬라어로 베드로(페트로스), 반석(페트라)을 적용하여 번역한 것으로 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18절을 읽어 볼 수 있습니다. “너는 반석이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할 수도 있고, “너는 베드로라, 너는 돌이 아니냐? 이 반석 위에 장차 내가 내 교회를 세울 테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다”로 읽으면 주님의 교회를 당신님께서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오해한 카톨릭은 베드로 개인을 통하여 교회를 세운다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주님께서 세우셨습니다.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신앙고백 하는 신자들에게 교회를 세우십니다.

 

이제 19절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열쇠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한 것입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예수님께서는 천국 열쇠를 베드로에게 주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베드로 혼자가 아니라 고백자들 곧 교회에 주셨으므로 천국의 관리자 역할을 해야 합니다. 바로 우리가 관리자입니다. 우리를 통해 하늘을 여닫는(열고 닫는) 권한을 주신 것입니다. 바로 교회가 우리입니다. 교회가 하나님께서 의도하는 대로 기능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좋은 교회입니다. 교회가 바른 기능을 해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누룩처럼 성장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할 때 세상 사람이 듣고 영접하면 하늘 문 즉 천국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 역할을 잘못하면 너 때문에 하나님을 못 믿겠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전도가 안 되는 것이며, 천국 문을 닫도록 하는 힘이 됩니다. 마16장의 맥락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 선포가 천국 열쇠의 역할입니다.

 

이번에는 마18:17-18절을 보십시오.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교회 공동체로부터 ‘권징’ 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었지만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회개하고 다시 돌아오면 교회를 받아주어야 합니다. 교회는 자신들만을 위한 이익 집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열고, 닫는 관리자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 때문에 이 땅에 세워진 신자들입니다. 신자들은 신앙고백 하며 주님의 교회를 증언하며 선포하는 관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참된 신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야 교회입니다. 지금 예배하는 것처럼 일상적인 삶도 같은 마음이어야 합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반드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바로 좋은 교회요, 좋은 신자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관리자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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