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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교회론 교회란 무엇을 말하는가? 즉 교회의 표상적 표현들3

 

지난 주일 지팡이 교회는 교회의 표상적 표현 중 “성전”이 무엇인가를 알았습니다. 교회는 성전인 교회 공동체라고 했습니다. 사실 교회라는 말이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라는 것을 알면 바른 생각과 바른 마음으로 성경을 믿어야 합니다. 잘못된 가르침이 있었더라면 그것을 사과하고 바른 것을 가르치도록 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예배당이 성전이 될 수 없습니다. 가톨릭도 이것에 대해 동의합니다. 그들이 카톨릭이라고 사용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교회가 하나라는 것입니다. 즉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모여서 예배하는 장소를 성당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당을 거룩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성당이라고 하지 않고 예배당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서로 차이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육신으로 오시고 부활하여 주심으로 특정한 장소만 거룩한 지역이 아닙니다. 모든 지역이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여튼, 바울은 성전의 개념을 알 수 있도록 고전3:17절에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명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 분명하게 기록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귀 있는 분들은 이 말씀을 묵상해 보십시오.

 

벨기에 신앙고백서를 배워서 아실 것입니다. “이 거룩한 모임과 회중은 구속받은 자들의 모임이며 그 모임 밖에는 구원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신분이나 지위를 막론하고 누구도 그 모임에서 물러나 혼자 있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은 각각 그 교회에 가입하고 그 교회와 연합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교회의 일치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들은 자신을 교회의 교훈과 권징에 복종시켜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 아래 자신의 목을 구부려야 하며 하나님께서 동일한 몸의 지체로서 그들에게 주신 재능에 따라 형제자매들을 세우기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끝까지 신자들을 교회로 부르시고 완전하게 하심으로 성도의 교제를 하도록 하십니다. 의와 평강과 희락을 위해 참된 길을 가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영광중에 주님과 연합과 교통을 누리는 백성입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서 교회의 표상적 표현들 중에서 “위에 있는 예루살렘” 즉 교회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정통신학적인 견해는 신부는 성도(교회)가 맞지만, 새예루살렘은 천상적인 교회, 즉 “성도들이 구원을 받는 처소”를 의미합니다. 이것을 알기 위해 먼저 갈4:21-26절을 읽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육체를 따라’와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수태의 방법이 정상적인 어머니의 육체를 따라 출생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를 따라 초자연적이고 신비적으로 메시야가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육체를 따라 오셔야 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옛 언약과 율법 그리고 종노릇하는 우리를 구원하도록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육체를 따라 반대로 ‘약속으로 말미암아’는 성령을 따라 출생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새 언약이며 우리의 어머니요 약속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글을 읽는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 생활을 통해 하나님께서 과거에 자기를 사랑하고 보호해주시고 인도해주셨던 경험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들이 간절히 사모하는 것은 옛날에 누렸던 영광, 예루살렘의 영광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우고 훼파된 기구들을 다시 찾고 거기서 하나님께 산제사를 드리고 예배하며 하나님과 영광스런 교제를 했던 축복을 마음에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그 실체이신 메이야 즉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오신 것입니다. 옛날 예루살렘의 영광을 기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옛날의 예루살렘의 영광이 아니라 그들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예루살렘에 대한 비전과 환상을 주신 것입니다. 옛 예루살렘, 새 예루살렘 하나님께서는 땅의 예루살렘이 아니라 하늘의 예루살렘으로 인도하십니다.

 

하늘의 예루살렘 즉 새 예루살렘을 알 수 있도록 바울은 히브리서에서 기록했습니다. 히12:18-29절입니다. 긴 글이기 때문에 쓰지 않지만, 꼭 일어 보셔야 합니다. 히브리서 본문은 출애굽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산에 이른 상황과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을 이용하여 새 예루살렘이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출애굽하여 도착하여 도착한 장소를 두렵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과 만나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죽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죄인이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마치 백성이 왕의 얼굴을 면전에서 볼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인으로부터 구원하시고 새 예루살렘으로 인도하십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주신 것을 시내산에서 다시 확인하여 주신 것처럼, 오늘날 우리도 알게 하십니다. 참된 새 예루살렘으로 도달할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당신님의 피 값으로 구속하여 주셨습니다. 그것을 안다면 신자들은 그리스도 중심으로 삶을 생활하며 복음의 증인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삶의 방향성이 내 중심이 아니라 그리스도 중시이어야 합니다. 히12:28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번에는 계21:1-2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9절을 보시면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그리고 12절 16절 18절 21절을 보겠습니다.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입니다.

 

계시록 21장에서 우리가 주목해 볼 것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과 ‘신부 교회’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게 될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어떠한 위치에 있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기도 합니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과 신부 교회가 있다면 열두 지파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구약은 12지파이고 신약에서는 12사도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12는 구약과 신약의 교회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교회가 성전인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은 교회의 표상적 표현들 중에 우리가 하늘의 새 예루살렘이요 교회입니다. 이 지상에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이 있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여 주신 성전이 아닙니다. 그것을 알 수 있도록 바울과 사도 요한은 실체인 하늘의 예루살렘을 이야기함으로 그 하늘과 예루살렘에 너희가 이르렀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힘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계21장에서 ‘일만이천’은 예루살렘이 완전함을 의미하는 표상으로 구원받은 백성의 완전함을 말합니다. 성전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라고 하는 것은 하느르이 성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재림하여 오셔서 새 하늘과 새 땅에 꽂힌 새 예루살렘입니다. 그 새 예루살렘이 교회 즉 신자들이며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입니다. 정금으로 표현한 것은 상징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보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 새 하늘과 새 땅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정금이 바로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 즉 교회입니다. 이 땅에 있는 신자들이 정금이며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신자들입니다. 이 땅에서 생활하는 교회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봅니다. 세상의 것을 사모하면 욕심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정신 중 하나는 구제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신자들에게 있어서 마지막 날은 온전하여진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누립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의 이런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만일에 나의 죄인 된 모습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누구였습니까? 죄인이었습니다. 죄인은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이 산 제물이 되어 주심으로 우리의 죗값을 치러 주시고 구원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신자들은 늘 죄인된 마음으로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잘난 척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누가 잘난 척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사람 앞에서 잘난 척할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섬기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공로가 아니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구원받은 새 예루살렘 즉 교회느 주님 앞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성경을 통해 배워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 나의 갈 길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사람의 본분이라고 믿습니다. 교회에서 직분 자만 열심히 하라고 해서도 안 됩니다. 누구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교회이니다. 성도의 교통이 있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늘의 예루살렘이라는 생각을 할 때 지팡이 교회는 도전이 되어야 합니다. 구약의 백성은 오신 메시야를 기대했던 것처럼 우리는 다시 오실 재림의 주를 소망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타락함으로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을 때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바벨론 여러 강변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입니다. 시온이 있는 예루살렘을 향해 울었습니다. 포로가 된 현실에서 자신들의 잘못을 바라본 것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이런 일이 없도록 오직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합니다. 하늘의 예루살렘을 사모해야 합니다. 지금의 현실이 마치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가는 모습은 아니지만, 하나님만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교회로서 우리 마음 가운데 하늘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새 예루살렘의 일원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며 지팡이 교회가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다음 주 시간에는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의 표상적 표현들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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