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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교회론-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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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빌1:1
강설날짜 2020-05-31

교회론- 예배

 

오늘날 예배가 무엇인가를 잘 모르는 시대에 있습니다. 예배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배란 무엇인가?를 배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배하는 모습을 보며 어깨너머로 배우는 것이 현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하여 참된 신자는 예배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와 반대로 교회에서 상처를 입은 분들은 온라인 예배를 선호합니다. 임시로는 가능해도 온라인으로 계속해서 예배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예배당에 가지 않고 온라인으로 예배하는 분들이 있다고 합니다. 저는 그것을 예배당에 ‘안 나가는 교회’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교회가 바르게 예배하지 않으면 이와 같은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교회는 주님만 의지하며 참된 예배를 해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91편 2-3절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코로나는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신자는 하나님께서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여 주실 것을 믿습니다. 코로나를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것을 불쌍하게 생각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코로나 19는 우리에게 질병과 공포심만 가져다준 것이 아니라, 이전에 생각지 못했던 신앙적 문제에 직면하게 합니다. 신앙의 선배님들이 외세의 핍박과 동족 상존의 전쟁 때문에 주일을 지키지 못하고 예배를 드리지 못한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어봤지만 어떤 질병 때문에 한국 교회 전체가 예배를 드리느냐, 마느냐 하는 일로 고민한 것은 한국교회 역사상 처음 있는 대사건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럴 때 교회가 해야 할 일 즉 예배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지팡이 교회는 힘들어도 주일이 지닌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이유로 예배합니다. 주일은 신자만의 날이 아닙니다. 모든 날이 주의 날이지만, 주일은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구별한 날입니다. 구별하여 주일에 예배하는 공예배는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에 따라 마땅히 드려져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모든 성도가 주일에 예배당으로 모입니다. 신자들은 주님의 몸 된 공동체이기 때문에 모이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의 말씀처럼 지팡이 교회는 환난의 때에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 주의 장막으로 나아와 하나님을 높이고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온라인으로 예배하는 것은 좋은 모습이 아닙니다. 가족이 공동체인 것처럼 교회도 갖습니다. 가족 공동체가 한 집에서 생활하지 않고 각자 다른 곳에서 생활하며 온라인으로 이야기만 한다면 과연 좋은 모습입니까? 코로나 19로 인하여 어려운 이때 교회는 교회다움을 드러내도록 해야 합니다. 아무리 큰 역경과 환난이라 해도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택한 교회와 성도를 지켜주실 것을 믿습니다. 또한, 신자는 능히 감당케 하실 것을 믿으며 예배해야 합니다. 힘들 때일수록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며 믿는 자로서 마땅히 행할 바를 힘써 행해야 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교회와 성도에게 주어진 가장 큰 특권이요 영광이라는 것을 절대로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환난 중에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예배하고자 하는 자들에게 하늘의 은혜와 위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자! 그러면 예배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구속받은 백성들이 상징적으로 삶에서 예배시간에 영혼이 엎드려 절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구현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잘 구현할 수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높이며, 하나님의 뜻을 잘 드러내며 생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신자들이 한마음으로 합하여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하나님을 높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이 교회와 교회의 지체된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과 진리”로 예배할 날을 말씀 하셨습니다. 예배는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지식으로 만든 것으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가르친 대로 예배하도록 해야 합니다.

 

구약에서 제사를 통해 예배를 어떻게 했습니까? 구약은 어린 교회로 여겨 실제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 절하게 하셨습니다. 신약에서는 좀 더 영혼에 집중했습니다. 그래서 무릎 꿇고 예배하록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그런 후 승천하신 다음부터는 함께 모여 얘배의 순서를 가지고 경배했습니다. 예배 순서를 통해 하나님 앞에서 상징적으로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신자들이 함께 모여 공동체로서 예배했습니다. 혼자만 예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공예배라고 합니다. 교회라고 할 때는 세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말씀과 성례 그리고 기도(권징)입니다. 이것이 있어야 교회입니다. 개인이 하나님께 기도하거나 큐티 등을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거룩한 공교회로서 성도의 교제를 누리면 모이는 것입니다. 개교회 속해 있는 모든 신자가 함께 모여 경배해야 합니다. 이것이 좋은 교회입니다. 참된 신자는 예배당에 모며 예배할 때 지루해하면 안 됩니다. 예배할 때 요식 행위로 생각하지 아니하며 참된 신앙으로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구속함을 받은 백성은 예배할 때 구경꾼이 아닙니다. 이렇게 되지 않도록 예배가 무엇인가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선배님들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 잘 정리해 주셨습니다. 21장 “종교적 예배와 안식실에 다하여”입니다. 그중에서 2항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예배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오직 하나님에게만 드려야지, 천사, 성자 혹은 어떤 다른 피조물들에게 드려서는 안 된다. 그리고 타락 이후로는 중보자 없이는 드려질 수 없고 또한 오직 그리스도 이외의 다른 중보로는 드려질 수 없다.”라고 고백합니다. 구속받은 참된 신자는 주위의 시선에 흔들리지 아니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하고 싶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경배를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공로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사실 부정확합니다. 좋은 표현은 아니지만, 한국적인 이미지에서는 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와 반대로 예배를 본다는 것은 틀렸습니다. 예배를 보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우리가 예배하려 모인 것이지 구경꾼으로 보기 위해 가는 것은 아닙니다. 지팡이 교회는 예배당에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예배는 하나님 중심이지 사람 중심이 아닙니다. 마치 쇼 오락 프로그램처럼 하는 것은 성경을 모르는 것입니다. 지극정성이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들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나의 출세와 부귀영화를 위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빈부의 격차는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집사를 세워 구제했습니다. 누구나 교회 안에서는 하나 된 신자이며 주님의 몸 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저번 주에 배운 집사의 해야 할 일을 참고해 주십시오. 자! 그러면 예배가 왜 소중한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가르쳐 주신 말씀을 통해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요4:1-29절입니다.

1.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2.(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베푼 것이라)

3.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4.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5.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6.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7.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8.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9.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10.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12.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5.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16.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17.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19.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25.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26.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27.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

28.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사마리아 여인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질문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가장 좋은 방식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우리가 생각할 때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장 더운 시간에 그리고 사람들이 우물에 오지 않는 시간에 찾아 왔습니다. 그런 여인에게 예수님께서는 친히 찾아 왔습니다. 물을 길으러 왔던 여인에게 예수님께서는 물을 달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이중적 의미가 있습니다. 목이 말라서 그리고 대화를 하기 위한 예수님의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을 직접 하지 않으시고 물을 달라고 하시며 대화를 유도하는 것입니다. 특히 사마리아 사람들을 유대인들은 이방인보다 더 개처럼 생각했습니다. 같은 민족이지만, 이방인과 결혼을 한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혼혈인들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민족은 유일한 혈통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이 개처럼 취급하는 자신에게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여인의 대답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누군지 알았다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황당했을 것입니다. 이상하게 생각하는 여인은 11절에 ‘주여’라고 합니다. 이 말은 당시에 높은 신분을 가진 사람에게 부르던 칭호입니다. 마치 오늘날 한국적인 이미지에서 선생님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여인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퀴리오스 즉 주님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물리적인 말이 아니라 영적인 말씀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을 오해하면 물리적인 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께 질문 했습니다.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그러면 이 여인은 어떻게 물을 길으러 온 것입니까? 이 여인이 말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의 일상적인 생활을 이해해야 합니다. 물 길을 그릇은 주둥이를 세 개의 막대기로 벌려 놓은 가죽 두레박으로 생가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것을 염소 가죽으로 만든 밧줄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항상 우물 곁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물에서 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사용하여 예수님께서 마시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그것을 이용하여 사용하면 정결법에 걸리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사용하는 그릇을 유대인은 결코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 여인은 이러한 유대인의 관습에 대해 알고 있었기에 물 길을 만한 그릇이 없다고 한 것입니다. 이 여인인 지금 예수님께서 하시는 영적인 의미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이었습니다.

 

여인이 생각할 때 물을 달라고 하시는 분이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사람은 그 속에서 물이 솟아나리라”는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여인은 자신이 생각할 때 물리적인 물만 생각한 것입니다. 이 여인은 여러 번 재혼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여인에게 남편을 데리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하며 여인은 남편이 없다고 했습니다. 여인의 이야기를 들은 예수님께서는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여인의 모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셨습니다. 다섯 번의 결혼은 남편이 죽음으로 여섯 번째 사람과 결혼하여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음행한 연고 없이 헤어졌으면 재혼은 불가능입니다. 추측하면 남편과 사별 또는 남편의 음행으로 재혼한 여인이었습니다. 하여튼 사마리아 여인은 상상도 하지 못할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예수님께 선지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이 말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당신님께서 그 여인에게 찾아 왔던 이유 즉 메시지를 전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예배하도록 하기 위한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이 여인이 이 산이라고 한 것은 축복의 산으로 그리심 산을 의미합니다. 이방인들보다 개처럼 취급을 당하니 그리심 산에서 제사를 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해 왔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어느 장소에서 하는 것이 진짜 예배인지 질문했습니다. 왜나하면 예배의 행위가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고 하셨습니다. 계속해서 예수님께서는 “영과 진리”로 즉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이 각기 주장하는 예배 처소와 관계없이 전적으로 새로운 방법으로 예배해야 할 ‘때’ 가 도래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의 최선을 다해서 예배해도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에 의해 우리는 성령의 인도로 예배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사역과 우리를 연결해 주심으로 성도는 예배합니다. 예배하는 우리의 마음 속에는 감사함만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공로와 우리가 예배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연결하여 주십니다. 예배자는 하나님과 말씀에 대한 참된 지식을 갖고서 예배에 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겸손히 자복하는 심령으로 또한 참되고 진실 된 심령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오늘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주에 계속이어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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