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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강설날짜 2020-09-06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t5e1ui84F9Q

헌상(봉헌, 헌금)의 사용 기준은 무엇인가?

 

신약 시대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더 귀하게 생각했습니다. 구약의 헌상은 정해진 것을 내도록 하셨습니다. 그와 반대로 신약의 백성은 자기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도록 한 이유는 구제의 헌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칼빈은 헌금이라고 하지 않고 “구제의 헌금”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선배님들이 어떻게 헌상 즉 헌금을 사용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 제목처럼 헌상의 사용 기준입니다. 구제 헌금의 사용 기준이기도 합니다. 헌상을 바르게 사용할 때 교회가 타락하지 않고 세상에서 지상명령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교회 안에서의 구제와 교회 밖에서의 구제가 있습니다. 왜 이렇게 하는 것입니까? 하나의 헌상을 통해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을 알 수 있도록 교육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바로 이것을 위해 초대교회는 즉 사도들은 집사 즉 오늘날의 안수집사를 세웠습니다. 집사를 세움으로 교회 안에서의 구제와 교회 밖에서의 구제를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성도가 궁핍한 생활을 하지 않도록 구제했습니다. 헌상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는 신자가 받을수 있도록 했습니다. 구약의 십일조에서도 매 3년 즉 그해에는 고아와 과부 등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을 위해 돕도록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공평하신 하나님입니다.

 

둘째는 헌상의 기준은 교회 안의 사역자들의 삶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알기 위해 우리는 고후11:5-9절을 보아야 합니다. “나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로 생각하노라 6.내가 비록 말에는 부족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7.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8.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비용을 받은 것은 탈취한 것이라 9.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비용이 부족하였으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였음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고 또 조심하리라” 고린도후서는 사도 바울이 기록했습니다. 바울의 사역은 자비량 사역과 몇몇 교회로부터 선교 사역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신자들이 헌상한 것을 가지고 사역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신자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자신도 자비량으로 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삶을 교회가 도와줄 수 있도록 지지했습니다. 바울이 지상명령을 감당할 수 있었고, 성경을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몇몇 교회로부터 도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사역자들이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담임 목사만 아니라 교역자도 생활비를 온전하게 지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말씀대로 따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지팡이 교회는 사도행전을 2년 동안 강설로 들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으로 말미암아 성령이 오셨습니다. 성령으로 인해 신약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를 성령께서 이루어가신 것입니다. 특히 사도행전은 주님께서 재림의 주로 오시기까지 무엇이 교회인지 모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초대교회는 말씀과 기도 그리고 전도 등에 힘을 쏟았습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성도가 되었습니다. 많은 신자가 믿는 가운데 생활고를 당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초대교회는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행2:44절과 45절이 말씀하여 주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입니다. 서로 믿음 안에서 신자들은 자신의 소유를 서로 통용했습니다. 초대교회는 교회의 본질을 위해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가 되고자 했습니다. 행4:32-35절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3.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34.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성령 임재로 교회는 기쁨으로 구제를 감당했습니다. 한 번만 아니라 은혜 안에서 자주 했었습니다. 이러한 결과로 교회 안에서 가난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면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 부분은 차후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교회가 가장 참된 교회의 모습을 지녔을 때 교회는 참된 교회는 참된 교회로 세상에서 지상명령을 감당하며 빛과 소금이 되었습니다. 성장하면 할수록 교회는 사도들만의 힘으로는 힘들었습니다. 그로 인해 집사를 세워 구제하도록 했습니다. 이분들은 구제 사역을 위해서 세운 직분자였습니다. 초대교회는 구제가 중요했었습니다. 당연히 오늘날도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연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연보라는 뜻은 “자선금”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을 위한 헌상 즉 헌금이었습니다. 이것을 개혁교회 선배님은 “사랑의 봉사”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통해 사도 바울은 어떻게 하려고 했습니까? 고후8:14절을 보시면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즉 서로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왔기 때문에 사랑의 봉사 즉 자비의 봉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양식을 서로 나누는 것은 교회의 본질을 유지하는 힘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함께 누려야 합니다. 복음은 빈부의 격차가 없는 것처럼 양식도 그러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주님의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헌상의 의미를 알고 자신의 생활에 따라 최선을 다해 할 것을 믿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제대로 신뢰하게 되면 참된 마음으로 헌상할 것을 믿습니다. 헌상을 누가 적게 많이 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오해하지 말 것은 헌상은 예배 때 마다 해야 하는가입니다. 엄밀한 의도에서는 여러 가지 헌금 즉 헌상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일 오전에 정한 대로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 이유는 헌상은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주님께서 주신 주일 예배 시간에 하면 됩니다. 그러면 절기는 무엇입니까? 모든 것이 주님의 날이기 때문에 절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절기는 주님이 오실 것을 예표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심으로 교회를 주셨습니다. 더이상 구약의 절기가 필요 없는 것입니다. 절기가 있다면 우리는 구약의 방법으로 제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절기에 헌금하는 것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할 때 헌상 즉 헌금이 있었습니까? 그때는 만나를 먹던 시절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바라보면 서로 필요한 대로 먹으면 되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십분의 일를 따로 떼어 하나님께 드리지 않았습니다. 만나를 더 많이 가지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필요한 대로 주셨습니다.

 

출애굽을 한 후 가나안 땅에 정착할 때는 더 이상 만나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이때부터는 경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출애굽 할 때 주신 이유는 경작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양식을 만나로 주신 것입니다. 경작 후 첫 열매를 가져오면 제사장은 흔들어서 제사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요제”라고 합니다. 첫 열매는 밭에 있는 열매 전체가 하나님의 것임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첫 열매는 십일조였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첫 열매를 통해 아는 것입니다. 첫 열매가 중요한 이유는 예를 들어 송아지가 앞으로 몇 마리를 낳을 수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첫 송아지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헌상도 같습니다. 주님의 것을 인정하며 매 주일 하나님께 상징적으로 최선을 다해 헌상하는 것입니다. 헌상을 통해 교회가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헌상은 나의 것이 아님을 하나님 앞에 교회가 드리는 것입니다. 헌상만 하나님 앞에 하는 것입니까? 모든 예배를 통해 나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배를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일상적인 일보다 더 귀하게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합니다. 사1:10-17절을 보시면 좋겠습니다.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11.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16.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17.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사를 열심히 했으나 악을 했습니다. 오늘날 예배를 했는데 악 즉 삶이 세상 사람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는자가 해야 할 본분이 아닙니다. 주님의 위한 교회라고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그리스도인으로 생활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며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될 수 있도록 간구하는 것입니다. 삶과 예배는 하나입니다. 서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15절을 생각하면 많이 기도해도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길게 기도한다고 하나님께서 소원성취하도록 도와주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삶과 예배는 하나이며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간구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보여 주신 삶처럼 교회도 같아야 합니다.

 

신약시대 바리새인들은 십일조의 정신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십일조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마23“23절에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하셨슴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십일조는 했습니다. 하지만, 율법에서 말씀하고 있는 정의와 긍츌과 믿음을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종교지도자들의 외식하는 행위를 비난 한 것입니다. 헌상하는 사람의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자신들의 권력이 중요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외식하는 행위로 십일조를 했습니다. 십일조의 정신 즉 헌상은 정의와 긍휼과 믿음입니다. 헌상은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많이 하거나 적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것임을 인정하며 참된 마음으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이 헌상에 있습니다. 바리새인처럼 외식하며 십일조 또는 헌상을 하면서 의의 기준을 삼는 것은 어러석은 것입니다. 지팡이 교회 성도는 스스로 의를 얻을 수 없습니다. 참된 마음으로 헌신할 때 주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얻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스스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헌상을 해야 합니다. 교회의 표지를 바르게 세우며 성장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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