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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강설날짜 2022-04-17

하이벨베르크 요리문답 제6문

 

오늘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6문으로 사람이 왜 비참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최고의 걸작품이었습니다. 만물 중에 사람과 같은 존재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사람에게만 생기를 주심으로 존재하도록 하셨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만물을 돌보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을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찬양하면 됩니다. 그런데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습니다. 그 죄로 말미암아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사람은 사망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죽음이 아니라 영적인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 죽음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으며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은 죄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마음으로 그리고 행동으로 죄를 짓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만물을 다스리는 존재에서 이제는 만물보다 더 죄를 짓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렘17장 9절에서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4월은 만물이 소생하는 달이라 하기도 합니다. 벚꽃이 화려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냅니다. 우리는 벚꽃을 보며 죄로 가득한 존재라고 하지 않습니다. 벚꽃을 보면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그와 반대로 사람을 생각하면 어떠합니까? 벚꽃과 같이 화려하며 아름답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가장 최고로 만들어 주셨지만, 죄로 인해 가장 추한 자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슬프지 않습니까? 죄로 인해 사람은 사람을 아름답게 생각하지 아니하며 경쟁자로 생각합니다. 이웃을 미워합니다. 이웃만 미워하는 것만 아니라 창조주이신 하나님도 미워합니다. 이 또한 죄의 결과입니다. 원죄로 인해 사람은 스스로 죄를 지으며 타락하여 사람과 하나님을 미워하는 죄악의 성향이 있습니다. 참으로 비참하지 않습니까? 죄의 비참으로 인해 사람은 온갖 비참함을 겪게 되는 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인생을 “희노애락”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공수래공수거”로 말하며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죽는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모르면 “인생무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창조주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을 미워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본래 사람을 악한 존재로 창조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만물을 통치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창1:30) 주셨습니다. 그리고 또 있습니다. 창1:28절에서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를 만물을 통치하도록 하시는 청지기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도록 하신 이유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생육하고 번성하며 서로 도우며 사명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주신 이유는 서로 돕는 배필이면서 아이를 낳으며 하나님의 형상답게 주어진 일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만물 안에서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생활하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죄가 사람에게 들어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최고의 걸작품인 사람이 스스로 죄를 지음으로 타락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을 미워해야 할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나의 존재를 아뢰며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사람의 죄는 무섭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람을 가장 무서워합니다. 이 세상의 만물보다 사람이 사람을 무서워합니다. 참으로 비참하지 않습니까? 사람의 죄를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창6:5-7절에서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마음은 모든 것이 항상 악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경청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은 악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을 통해 사람은 행복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교육한다고 해서 사람은 다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지 않습니다. 죄를 알 때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죄의 그늘에서 마귀에게 종노릇 하며 생활합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마귀에 대한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귀보다 세상의 부귀영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처럼 마귀는 우리에게 물질과 마음을 움직여 하나님과 멀어지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비참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하실 것 같습니다. 믿음의 선배님들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6문을 통해 알려 주시고 계십니다. 그 질문은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그렇게 악하고 폐역한 상태로 창조하셨습니까?”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신 선물의 의미를 알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을 선하게 창조하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면 믿음의 선배님들은 어떻게 고백했는지 아십니까? 읽어 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선하게 또한 자신의 형상 곧 참된 의와 거룩함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창조주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마음으로 사랑하며 영원한 복락 가운데서 그와 함께 살고 그리하여 그분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단어에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선하게”와 “형상” 즉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의 형상과 선하게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은 처음부터 타락한 존재로 창조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악하고 패역한 상태로 창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패역한 자로 머물도록 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돌이키는 자들에게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생활하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엡4:24절에서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던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상 사역을 처음으로 하실 때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마귀에게 시험을 이기신 후 마4:17절에서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입니다. 천국을 전하셨습니다. 바울은 천국의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는 천국에 대한 것은 비밀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으로 인해 이제는 비밀이 아니라 공개된 비밀이 되었습니다. 공개된 비밀로 말미암아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새사람이 된 존재는 의가 있고 거룩함이 있습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알기에 엡4:24절에서 기록했습니다. 비참한 사람이 아무런 공로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음으로 인해 의와 거룩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비참한 나를 더는 비참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청지기로 회복하여 주셨습니다.

 

사람은 죄악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죄악을 넘어 하나님의 교제와 멀어진 것이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다르게 생활하는 자체가 죄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죄의 존재로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죄는 모든 비참함의 원인입니다. 죄가 없다면 사람은 비참한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죄는 이 세상을 나 중심으로 생각하게 합니다. 죄에서 떠나야 합니다. 죄에서 떠날 수 있는 길은 진리요 생명이요 말씀이신 예수님을 알 때입니다. 예수님을 알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합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존재에서 새사람이 돼야 합니다.

 

사람은 본래 선하게 지음 받았지만 사람은 스스로 악한 것을 택했습니다. 그러면 왜 악한 것을 택한 것입니까?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습니다. 뱀의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으면 죄악은 사람에게 들어올 수 없습니다. 뱀은 유혹합니다, 지금도 마귀는 우리에게 죄를 짓도록 유혹합니다. 사람은 언제나 선택해야 합니다. 유혹과 바른길 중 선택해야 합니다. 사실 유혹에 넘어가기가 더 쉽습니다. 더 편안합니다. 자신에게 더 유익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쉽게 넘어갑니다. 뱀은 속삭였습니다. “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거의 유사합니다. 뱀이 말한 것이 사실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마치 짝퉁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뱀은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입니다. 서도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지 않도록 하심으로 당신님께 순종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뱀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도록 유혹했습니다. 뱀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며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했습니다. 결국 사람은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무 열매를 보아하니 먹음직하기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탑스럽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경쟁자 또는 적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뱀은 유혹함으로 하나님께 불순종 하도록 했습니다. 오늘날 원죄로 타락한 사람들도 계속해서 마귀는 하나님께 불순종 하도록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죄는 이처럼 무섭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처럼 사람은 허물과 죄로 죽었습니다. 죄는 하나님께 대항하도록 합니다. 그러니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 죄를 인정해야 합니다. 죄를 인정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죗값을 완전히 치르도록 하셨습니다. 파괴된 형상이 회복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독생자를 대속물로 주시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왜 우리를 사랑하셨는가에 대한 것을 요리문답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새사람이 되도록 하심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마음으로 사랑하며, 영원한 복락 가운데서 그와 함께 살고, 그분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야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며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습니다. 영원한 복락 가운데서 하나님과 함께 생활하도록 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통해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문장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킴으로 온전한 마음으로 존귀와 영광을 올려 드릴 수 있도록 하십니다. 이렇게 될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머리와 몸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행복입니다.

 

그런데 이런 의문도 들 수 있습니다. 사람이 왜 죄를 짓도록 두셨는가? 차라리 로봇처럼 만드시면 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중에 제4장 “창조에 관하여”에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모든 피조물들을 지으신 후에 사람을 남녀로 창조하시되, 이성 있는 죽지 않을 영혼들을 가지게 하셨고, 그 자신의 형상대로 지식과 의와 참된 거룩을 부여하셨고,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율법을 기록하셨으며, 또 그것을 수행할 능력도 주셨다. 그러나 변화에 굴복할 수 있는 그들 자신의 의지의 자유에 맡겨져서 위법할 가능성 아래 있었다. 그들의 마음에 기록된 이 율법 외에 그들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그들이 그것을 지키는 동안에는 하나님과 교제함에서 행복을 누렸고, 피조물을 다스렸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의지와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의지와 자유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다 알 수 없지만, 우리를 독생자 예수님처럼 사랑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주님과 동행하며 참된 길을 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교회이기 때문에 마귀의 유혹에 빠져 종노릇 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마귀는 유혹하고 있지만 우리는 연단의 과정에 있습니다. 마지막 날에 우리는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날까지 하나님만 바라보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고전1:2-3절을 보시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입니다. 고린도 성도를 향해 “하나님의 교회”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이단이 하나님의 교회라고 합니다. 바른 용어인데도 이단들이 사용함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교회는 정신 차리고 교회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이단들이 바른 용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교회는 바른길을 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제6문을 읽으며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질문은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그렇게 악하고 폐역한 상태로 창조하셨습니까?” 답변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선하게 또한 자신의 형상 곧 참된 의와 거룩함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창조주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마음으로 사랑하며 영원한 복락 가운데서 그와 함께 살고 그리하여 그분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를 기억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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