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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를 위한 나의 바람과 기도 
 


제가 그저 평소에 생각하는 것들을 좀 정리해서 한국교회에 대한 저의 입장을 또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우리 모두가 한국교회를 생각할 때 양지가 커 보입니까? 음지가 커 보입니까? 이것이 어떤 방향으로 한국교회를 진단하고 이야기할 것인가를 결정한다고 봅니다. 제가 잘못돼서 그런지 모르지만 저는 한국교회의 입장을 생각할 때마다 양지보다는 음지가 더 커 보이고 그 음지가 더 어두워 보이는 것이 저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이것이 제가 뭐 부정적인 사람이 되어서 그런가 하고 어떤 때는 반성도 해봅니다. 그런데 저는 부정적인 사람은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너무 양지쪽의 이야기만을 자꾸 들고 나와서 사람들에게 좋은 이야기만 해주려고 하는 일에 중독이 되신 분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아요. 

그것도 잘못됐고 음지쪽의 이야기만 가지고 자꾸 사람들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것도 잘못됐고 그저 우리가 균형을 잡아야 되겠는데, 한국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저는 세 가지 기본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일종의 그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근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성경 말씀 앞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우리의 양심이 무슨 소리에, 어떤 음성에 예민하냐 하는 점을 우리가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앞에 놓고 우리가 기도하고 묵상할 때 우리의 양심을 통해서 성령이 주시는 것이 뭐냐? 뭐라고 하십니까?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 다음에 또 하나는 우리 목회 현장으로부터 우리가 보고 듣는 모든 자료들입니다. 정보들입니다. 목회 현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교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느냐를 우리가 살펴보면 한국교회를 진단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또 하나는 사회가 교회를 보는 반응이 어떠하냐, 사회가 교회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 하는 것을 우리가 살펴보면 대충 우리는 정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 앞에서 양심의 소리, 목회 현장에서 우리가 듣는 많은 자료들, 또 사회적인 반응, 이런 것들을 놓고 이것을 기초 자료로 해서 제가 오늘 아침에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가슴만 뜨겁다고 바르게 살 수 있나?


우선 부정적인 면부터 이야기합시다. 

한국교회의 부정적인 면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세속화입니다. 세속화란 말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우리 다 알아요. 그러나 성경에서 세속화를 가장 잘 정리한 내용이 요한계시록 3장에 나오는 사데 교회 이야기입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다.” 

그러니까 살아있는 물고기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지만 죽은 물고기는 물 따라서 떠내려가잖아요. 세속화가 뭐냐? 입으로는 살아 있어요. 신앙고백도 바르고 모든 면에서 갖추어져 있어요. 그러나 실제 세상 강물로 들어가면 거슬러 올라가지를 못하고 물 따라서 떠내려가요. 그게 죽은 모습이거든요. 

그래서 보기에는 살아 있지만 그 행위를 보면 실상은 죽은 자다라는 주님의 진단이 오늘의 한국교회에 그대로 적용이 되어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참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이것은 사실입니다. 목회자들이 자기 교회 성장하고 잘 된다고 전체를 보는 눈이 감기면 지도자의 자격이 없습니다. 자기 설교에 많은 사람들이 은혜받는다고 해서 그것으로 만족하고 자족하면 너무나 좁은 소견을 가진 지도자입니다. 

전체를 보면 한국교회는 점점 세상을 닮아갑니다. 심지어 메시지까지 많이 오염되었습니다. 요즘에 강단 메시지는 오픈되어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또는 방송으로 웬만한 설교자의 설교는 다 들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한번 자세히 들어보세요. 우리 한국교회가 처한 상황에 비춰봐서는 저 정도의 메시지로는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을 저 자신이 설교할 때 성령이 저에게 주십니다. 왜 우리의 마음에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은 가급적이면 피하려고 하잖아요. 저나 여러분들. 성경이 말하는 액면 그대로를 성도들에게 전하지를 못하잖아요. 용기가 없어요. 용기가 없어요. 이것이 세속화의 현장입니다. 

제가 이 사데 교회를 조금 검토하면서 참 놀라운 사실들을 봤는데요. 주님께서 사데 교회만이 아니라 책망을 하신 다섯 교회를 놓고 이야기하실 때에 교회의 양적인 문제를 놓고 책망을 하시든지 칭찬을 하신 일이 한번도 없다는 것입니다. 

양을 가지고 말씀하신 부분이 있나 한번 보세요. 너 왜 교회 사이즈가 그 모양이냐? 왜 그렇게 교회가 성장하지 않았느냐? 뭐 이것 가지고 책망하신 적이 있어요? 너 교회 굉장히 많이 키웠구나. 정말로 슈퍼 교회, 메가 처치가 되었구나 하고 칭찬하는 데가 없어요. 모두가 질을 따져요. “네 행위가 어떻다. 미지근하다. 네 행위가 사랑을 잃었다. 네 행위가 이단을 용납했다.” 

모두 질을 가지고 주님이 책망하시고 또 칭찬할 것이 있으면 질을 가지고 칭찬하시는데, 오늘날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시각은 대부분이 양에 가 있잖아요. 질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만큼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교회를 인도하고 있는지 하나님 앞에 다시 한번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질을 우리가 소홀히 다루고 놓치다 보니까 교회가 세상을 자꾸 닮아가는 거예요. 닮아가지만 그것을 위기로 인식을 못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계시록에 나오는 교회들을 보면 주님께서 믿음을 탓하지 아니하시고 행위를 탓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정말 기가 막힌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는 믿음을 많이 강조하지 않습니까? 믿음을 강조하는 대신에 우리의 삶에 대해 책임을 덜 느끼게 하는 이상한 풍토를 교회 안에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값싼 복음이 교회 안에 만연되면서 나타나는 후유증입니다. 이것은 루터 시대에도 있었어요. 

그러니까 믿으면 구원받는다 그러고 모든 것은 믿음으로 해결된다 하니까 행위를 교회가 강조하지 않았어요. 즉 참 믿음의 열매인 행위를 교회가 바로 가르치지 못한 탓에 삶이 죽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입으로는 살아있지만 행위로는 죽었다, 세상 따라가는 거예요. 

그리고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을 제가 발견했는데 여러분, 열심과 세속화는 관계가 없다는 거예요. 뭐 조금 관계는 있겠죠. 그러나 요한계시록의 교회들을 보면 열심과 세속화는 크게 함수관계가 없어요. 사데 교회를 놓고 열심이 식었다고 책망하지 않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열심이 식어 미지근하다는 책망을 들었지만 사데 교회는 그런 책망 안 들었어요. 그러니까 열심이 있었던 것으로 우리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가슴이 뜨겁다고 해서 삶이 바르다고 판단할 수는 없죠. 우리 한국교회 상황을 보세요. 주여 삼창에다가 새벽기도에다가 철야기도에다가 할렐루야에다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하나님 앞에 야단을 칩니까? 그러나 그 야단치는 뜨거운 가슴하고 실제 삶의 현장에서 성도들이 사는 삶하고 여러분이 한번 비교해 보세요. 조화가 안 돼요. 교회가 뜨거운 거하고 세속화하고는 꼭 일치한다고 볼 수가 없어요.

 

 

 

 

바른 교리와 세속화는 상관관계가 약하다


또 교리하고 세속화하고는 꼭 일치하지 않는 것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 봅니다.


사데 교회를 놓고 주님께서 교리가 잘못되었다고 책망하지 않습니다. 교리는 올바로 갖고 있습니다. 복음주의적이고 보수적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하고 세속화하고는 다릅니다. 뭐 교리 가지고 따진다면 제가 속한 합동 교단만큼 큰 소리 치는 교단을 여러분이 보셨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회를 앞두고 합동 교단이 지금 얼마나 어려운 위기에 처해 있는가 여러분 아시죠. 

정말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있을 수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있을 수가 없어요. 교리하고 세속화하고는 틀려요. 사탄하고 하와하고 섹스해서 가인을 낳았다고 하는 소리를 하는, 그리고 그런 의심을 30년 동안 받아 온 어떤 집단을 덥석 받아들이면서 그 집단을 위해 앞에서 변호인 노릇을 하는 교계 지도자들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나는 그 사람들의 신앙 양심은 그런 교리를 절대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믿어요. 그러나 뭔가 모르게 뒷거래가 있는 거예요. 세속화죠. 교리하고 세속화하고는 꼭 일치하지 않아요. 우리가 이런 것은 깊이 말씀을 통해 배워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점점 세상의 문화를 따라가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그래서 세상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나중에 교회 안에서 서서히 서서히 자리를 잡아서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풍토가 점점 만연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손을 못 씁니다. 솔직히 우리 이야기합시다. 

우리는 손을 못 씁니다. 십자가의 길보다도 웰빙 문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 교역자들을 우리는 어떻게 이야기해야 합니까? 어떤 분이 그러대요. 강단에서 날마다 천국을 외치는 목회자들이 모인 자리 가니까 노회, 건강, 골프 이야기 하는 것 보면서 참 질렸다 그러더라구요. 우리가 모르게 그렇게 기울어져 가는 거예요. 지금. 

 

 

자기 부인이 없는 고등종교는 타락한다


여러분! 잘 아시겠지만 종교학에서 이야기하는 참 중요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기 부인이 있는 종교는 고등 종교고 자기 부인이 약하거나 없는 종교는 하등 종교라고 분류를 합니다. 그럼 자기 부인이 뭔지 알잖아요. 

힌두교는 고등 종교에 속하잖아요. 도를 깨치기 위해서 얼마나 무서운 자기 부인의 고행을 합니까? 회교도 그런 요소들이 있잖아요. 불교도 마찬가지 아니예요. 지금도 불교는 들어가 보면 엄청난 고행을 통해서 불타가 되길 원하는 몸부림이 있잖아요. 

기독교도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의 십자가를 따르는 자기 부인이 있잖아요. 그래서 다 고등 종교입니다. 그런데요. 그 종교학의 학자들이 그래요. 이 고등 종교가 타락하기 시작하는 징후가 나타날 때에는 자기 부인이 점점 약해지는데 그 결과 세 가지 징조가 뚜렷하게 드러난다고 합니다. 

첫째로는 성직자 수가 많아진다고 합니다. 우리는 성직자 수가 많아지고 신학교가 번창하는 걸 가지고 대단한 부흥이 오는 걸로 착각을 할 때도 있는데, 사실은 성직자 수가 많아지고 신학교를 지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이유가 뭐냐 하면 교회에 자기 부인이 그만큼 약화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목사 되는 것이 정말 광이 나는 직업처럼 느껴져서 지원하는 사람들이 많고 아들에게 세습시키고 모든 것을 그런 식으로 끌고 나가니까 성직자가 많아질 수밖에 없잖아요. 

 

티벳을 보세요. 티벳에 불교가 타락할 때에 전국 남자들의 70퍼센트가 전부 승려들이었어요. 로마제국의 한참 암흑기를 보십시오. 기독교가 그렇게 전 세계를 뒤엎고 있던 시대에 제일 많은 것이 승려들이었다는 거, 몽크였다는 거 아시잖아요. 

그리고 고등 종교가 자꾸 타락해서 기울어지면 또 하나, 종교 기관이 늘어난다는 거예요. 교역자가 많으니까 먹여살려야 되잖아요. 그 사람들 다 일자리 주어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자꾸 조직 만들고 자꾸 뭐 만들고 하다 보니까 기관들이 자꾸 늘어난다는 겁니다. 

그 다음에 또 세 번째로는 기복신앙이 대세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듣기 좋은 이야기 하는 거예요. 

 

자, 여러분, 이것은 종교학에서 역사적인 검토를 통해서 하는 이야기입니다만 오늘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그냥 뜨끔해집니다. 

마치 우리 한국교회를 들여다보고 질책하는 것 같아서 가슴이 뜁니다. 여러분, 오늘 한국교회에 자기 부인이 없잖아요. 자기 부인이 약하잖아요. 자기 부인이 약하니까 세속화의 길을 막을 길이 없는 거예요. 목회자부터 자기 부인을 못해요. 

 

얼마 전에 이메일에 떴던 로렌 커닝햄, 예수전도단의 총재 되시던 분이 했던 이야기, 여러분이 아마 이메일로 다 읽었을 거예요. “한국교회 너무 돈을 사랑한다. 한국교회 너무 음란하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요. 이게 다 세속화의 상황입니다. 

여러분 이런 상황에서 한국교회가 이 세대를 감당할 수 있을까요? 다가오는 세대를 감당할 수 있을까요? 제가 볼 때는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봅니다. 그래도 우리는 복이 있는 셈이예요. 그래도 우리는 그런대로 이만큼 교회가 제 구실을 한다고 볼 수 있는 상황에서 아직도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이 있어요. 

 

그러나 앞으로 10년, 20년을 내다볼 때 한국교회가 이래가지고 이 세대를 감당할 수 있을까요? 디지털 세대가 밀고 올라오는 이 세대를 감당할 수 있을까요? 오늘날 이렇게 파괴된 도덕성 가운데서 한국교회가 집요하게 끝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요? 이게 제가 생각하는 부정적인 면입니다. 한국교회의 음지, 세속화입니다.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7천 명이 희망이다

그러면 긍정적인 면이 있느냐? 제가 볼 때 긍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첫째는 성령의 능력을 우리는 믿을 수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있습니다. 아직도 하나님이 은혜의 문을 닫지 않으셨습니다. 1907년에 한국에 부어주셨던 성령의 능력, 오늘도 임하실 수 있고 내일도 임하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 

솔직히 우리는 우리 힘으로 회개할 힘도 없어요. 우리 힘으로 회개할 수도 없습니다. 교회 안에 보세요. 진정한 회개가 있는가? 진정한 회개가 없어요. 목사들이 진정한 회개 합니까? 안 합니다. 마치 만삭된 여인이 아기를 못 낳는 것처럼 지금 우리는 회개할 힘도 없어요. 

솔직히 저 자신도 그렇습니다. 회개할 힘도 없어요. 성령이 역사하시고 성령이 임하셔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비로우셔서 이 한국교회를 버리지 않으셨기 때문에 성령으로 이 한국교회를 새롭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긍정적인 면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이 남겨 놓으신 7천 명이 있다고 저는 봅니다.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 명을 하나님이 남겨 놓으신 것처럼 오늘날 세속화에 무릎 꿇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몸부림치는 주의 종들 7천 명이 있고 평신도들 7천 명이 있다고 봅니다. 

사데 교회가 그렇게 행위가 죽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몇 사람이 남아 있었습니다.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은 몇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몇 사람을 하나님이 큰 꿈을 가지고 기대를 가지고 바라보신 것처럼 한국교회에도 7천 명이 있다고 저는 분명히 믿습니다. 몇 사람이 있다고 저는 봅니다. 

저는 대체로 교역자들을 많이 접촉하는 사람 중에 하납니다만, 교파를 초월해서 여기저기 다 만나보면 훌륭한 교역자들 많아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정말로 탄식하며 자기를 헌신하는 종들이 많아요. 평신도들 가운데서도 정말 우리가 칭찬을 아끼지 않아야 할 평신도들이 너무나 많아요. 

저는 이런 사람들이 한국교회의 내일을 살릴 수 있는 7천 명이라고 믿습니다. 이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로 다 우뚝우뚝 서게 되면 이 나라는 달라지고 이 한국교회가 이 나라에 소망을 줄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들이 이 7천 명에 해당한다고 믿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북한교회입니다. 북한의 지하교회는 지금 오순절 시대의 역사와 같은 엄청난 역사들이 일어납니다. 그렇지 않으면 수십 년 동안 그 핍박을 견딜 수가 없죠. 그렇지 아니하면 성도들이 생명을 걸고 예수를 믿을 수가 없죠. 

하나님이 특별히 역사하시는 현장이 바로 북한교회입니다. 그들의 피눈물을 보시고 하나님이 북한교회를 자유케 하시고 남북한 교회가 하나 되게 하셔서 정말로 입으로만 살았다 하고 실상은 죽어 있는 이 한국교회를 다시 일으키는 부흥이 오리라고 저는 분명히 믿습니다. 북한교회를 하나님이 사용하시리라고 봅니다. 

이런 긍정적인 면을 저는 주님께서 앞으로 귀하게 사용하셔서 우리 모두가 다시 한번 할렐루야 찬송하는 내일이 있을 줄로 믿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기도하면서 그 날을 기다리고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옥한흠 목사, 2005년 9월 9일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월례발표회에서 전한 '한국교회를 위한 나의 바람과 기도'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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