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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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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구교수의 칼럼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에 우리 자신과 우리교회를 돌아보며 종교개혁을 이루었던 믿음의 선배들의 그 신앙을 본받기를 원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살고,

예배하는 삶이 진정 종교개혁의 충실한 삶

이승구 교수(합신 조직신학)

 

 

들어가면서

 

 

종교개혁 기념일이 다가 왔습니다. 이럴 때에 종교개혁과 그 의미를 돌아보고, 우리가 과연 종교개혁에 충실한 교회인지를 점검해 보는 일은 필수적인 일입니다. 이 글에서는 그렇게 하는 교회를 종교개혁적인 교회라고 상정하고 우리교회를 점검하는 일을 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개혁교회란 교단명으로서의 개혁교회(Reformed church)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개혁과 그 정신에 충실한 교회를 뜻하는 말로 사용하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는 이 땅의 모든 교회가 개혁교회가 되기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성경적 교회인가?

 

 

첫째 질문해야 할 것은 당연히 “우리는 과연 성경적 교회인가?”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개혁자들(reformers)은 당대의 교회를 성경에 비추어 점검하고, 당대의 교회 안에 있는 비성경적 요소들을 개혁해 나갔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자신들이 믿는 바가 성경에 비추어 제대로 된 것을 믿는지가 핵심적인 문제였습니다. 종교개혁의 핵심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날도 천주교회(the Roman catholic church)는 그렇게 믿지만, 당대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이 그 자체로 구원을 위해 충분한 것이 못되는 것처럼, 그 십자가의 공로에 더하여 은혜에 근거하여 인간이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노력한 것이 공로가 되어서 구원 받는다는 ‘일종의 이중 공로’적 가르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믿는 자들이 열심히 살도록 하려는 의지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나 결과적으로 십자가의 구속만이 유일한 공로라는 것을 손상시키는 가르침이 교회 안에 있었던 것이지요.

 

 

그에 따라서 교회의 성례에 대한 이해에도 비 성경적인 이해가 붙어 있어서 신부님이 기도하면 그 축성의 순간에 성찬의 떡과 포도주의 본질이 그리스도의 몸의 본질과 그리스도의 피의 본질로 변화한다는 본질(substance)의 변화(trans)를 가르치는 소위 화체설(化體說, transubstantiation theory)도 나타났고, 그에 따라 성찬의 한 요소인 떡은 성도들에게 주지만 또 한 요소인 포도주는 주지 않는 일과 영성체를 할 때에 무릎을 꿇고 받도록 하는 등 비성경적인 것들을 믿는 것과 그에 따른 실천들이 천주교회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자들은 이를 성경이 비추어 먼저 우리의 믿는 바의 내용부터 바꾸어 가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일부 사람들이 성경적인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되고, 성경적 예배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종교개혁이 있습니다.

 

 

이런 종교개혁을 감사하게 여기며 그 유산을 받아 더 성경적으로 만들어가는 우리들은 개혁자들이 강조한 성경적인 교리에 굳건히 서서 우리의 믿는 바가 과연 성경에 충실한 것인지를 꼼꼼히 따져야 합니다. 성경에 충실할 때 우리는 개혁자들이 강조한 대로 “오직 은혜”(sola gratia)만이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를 구원받은 사람들답게 살게 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하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 앞에 공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바울서신이 강조하고 있는 바와 같이, “오직 믿음”(sola fiade)으로 구원 받는 것입니다. 이 둘을 강조하는 것은 결국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께서 행하신 것만이 우리의 구원의 유일한 방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공로에만 의존해 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오직 성경”(sola scriptura)에 근거해서 가르침 받았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에 대한 판단은 다 오직 성경에 근거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종교개혁의 “형식적 원리”를 “오직 성경”이라고 말합니다. 이 성경에서 배운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를 합하여 이신칭의 교리라고 할 수 있다면 이 이신칭의가 종교개혁의 “내용적 원리”라고 자주 언급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성경적인 가르침을 전인격으로 온전히 믿고 그에 근거해서 활동하고 생활해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것이 개혁자들이 강조한 “구원에 이르는 신앙”(saving faith)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더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해서 믿는 바를 성경적으로 만들어 가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위해 있는 교회요 그 구성원인가?

 

 

그리고 우리들은 개혁자들이 강조한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soli deo gloria)을 위해 존재하며 움직이고 있는지를 심각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개혁자들을 움직여 나간 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요,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려고 하는 그 정신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운 사람들도 오직 그것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충실한 루터파 신자로 살았던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그가 작곡한 곡들의 말미에 S.D.G.라고 쓰기를 반복했다는 것은 이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자신들의 집을 지어 놓고 그 앞부분에 Soli Deo Gloria라고 장식한 것들을 많이 본 일이 있습니다. 소박한 사람들까지도 저들의 삶 전체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라는 그 정신에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고 그것을 잘 전달하며 몇 세대 후의 사람들도 그렇게 집까지 건축해 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것은 그저 구호가 아니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개혁자들과 그들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는 그 후예들에게는 저 시골 마을에 사는 사람들까지도 자신들의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있다는 의식으로 가득했던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예배하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사는 그들의 삶이 진정 종교개혁의 충실한 삶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루터가 말하는 진정한 십자가의 신학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종교적인 일을 해도 결국 자신들의 공로를 강조하여 나가는 사람들을 루터는 그의 유명한 하이델베르그 논박(the Heidelberg Disputation, 1518)에서, 영광의 신학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천주교 신학과 그들을 추종해 가는 사람들이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잘 지적한 것이지요.

 

 

이에 비해서 진정한 교회의 구성원들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살기에 이 세상에서나 죽은 후에나 하나님 나라가 극치에 이를 때에나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추구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땅에서 그들은 버림받고, 내쳐지고, 멸시함을 받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 가게 되어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꺼이 그리로 가려고 하는 것이 루터가 말하는 “십자가의 신학”(theologia crucis)의 길입니다.

 

 

나가면서

 

 

우리는 과연 어떤 교회인가를 다시 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적이 아님을 발견하고, 우리가 정녕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살지 아니하였음을 발견하는 이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을 성경과 성경에 따르는 기독교에서는 회개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교회는 회개하는 교회입니다. 죄를 고백하는 교회입니다. 그것이 출발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참으로 죄를 고백하는 교회는 또한 성경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라 고백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진정한 고백교회(confessing church)일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이 시점에서 우리가 이런 진정한 개혁교회로 나타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는 교회이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라는 말이 우리에게도 잘 구현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 말을 사용하는 것만이 능사(能事)는 아닙니다. 우리들 주변에 이 어귀를 오용하는 세력들이 만만치 않게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직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해서 날마다 스스로를 개혁해 나가는 교회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성경이라는 기준이 상실되면 이 땅에 교회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져서 정확무오한 성경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성경에 근거해서 날마다 우리를 개혁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진정 그런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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