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팡이교회

오전예배강설

조회 수 32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행8:1-13
강설날짜 2018-11-18

복음이 유대에서 사마리아와 온누리로......(행8:1-13)

 

지난주일 지팡이교회는 “스데반의 순교가 주는 의미”로 강설을 들었습니다. 오늘날 일부분의 신자들은 예수님을 믿으면 “행복 시작”이라고 하면서 물질적인 복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스데반의 순교는 물질적인 복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였습니다. 자신의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공회 앞에서 당당하게 예수님을 시인함으로 성도가 가야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도록 하셨습니다. 스데반은 사도들로부터 안수를 받은 집사(일꾼)였습니다. 스데반을 보시면 일꾼은 굴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섬김으로 신자들의 삶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이것이 직분자의 모습입니다.

 

스데반의 섬김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영광스러운 복음의 증거였습니다. 같은 유대인들이 잘못 알고 있는 율법과 성전의 의미를 통해 메시야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증거 하였습니다. 스데반의 강설을 들은 사람들은 어떠한 행동을 했는지 기억을 하십니까?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입니다. 마음을 돌이켜 자신들이 예수님을 죽인 것을 회개해야 하지만 오히려 마음이 찔려서 스데반을 죽이고자 이를 갈면서 달려든 것입니다. 바로 그 때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까? 스데반은 이를 갈며 달려드는 자들을 향해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임마누엘” 성도와 함께 하시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스데반이 순교를 당할 것을 아시고 하나님께서는 이길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스데반의 말을 계속 듣고 있던 자들은 더욱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어떻게 하고 있는 중입니까?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결국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스데반을 친 것입니다. 그러면서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무죄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한 대가는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가운데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고 하면서 순교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남은 자들을 위해 죄를 돌리지 말라고 하는 것을 보면 기독교의 정신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스데반의 순교로 복음의 지각 변동이 생기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와 더불어 일어난 핍박은 예루살렘 교회에 큰 고난이었습니다. 신자들을 잡아다 죽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특히 행8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어떻게 예루살렘을 벗어나 사마리아로 전하여졌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십시오.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박해를 넘어서 죽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님을 믿다가도 자신의 목숨을 유지하고자 배교한 자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신자들은 믿음의 생활을 위해 예루살렘를 떠나 사라미라와 모든 땅 즉 여러 나라로 피신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사도들이 남아서 복음을 증거하고 있었습니다.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증거 했기 때문에 공동체를 계속 보전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교회를 복수로 기록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단수로 기록하는 것은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가 박해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는 회당에서 예배하는 교회(성도, 신자들), 가정에 신자들이 모여서 예배하는 예배당이 많았습니다. 3절을 보시면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핍박을 당하는 신자들을 단수로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믿기로 신앙고백 하는 신자들을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을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지팡이교회도 있고, 남포교회, 남서울교회 등이 많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표현하는 것입니까? 그래서 바른 용어를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간판에 이렇게 표기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하는 장소를 지팡이교회당이라고 표기하는 것입니다. 이 예배당에 모여서 신앙 고백하는 신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 저는 지팡이교회에서 하나 된 공동체로 신앙생활을 하는 증인 자라고 전해야 합니다. 다시 본문 1절을 보았으면 합니다. 스데반의 순교를 잘 알고 있는 사울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사울은 스데반의 죽음처럼 예루살렘 교회 즉 신자들이 죽음을 당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처럼 신앙과 신학에 비추어볼 때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모두 죽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울의 행동은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행1:8절에서 말씀하신 것을 이루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운 것입니다. 교회에 임한 핍박이 오히려 교회로(신자들) 하여금 주님의 지상명령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절을 보시면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입니다. 경건한 사람들이 애곡하는 것은 스데반의 순교가 부당한지를 보여 주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장사한 아리마대 요셉처럼 자진하여 경건한 사람들이 장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냥 장사만 한 것이 아니라 ‘크게 울더라’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회개와 스데반의 죽음을 애통해 하면서 믿음의 길을 가고자 한 것입니다. 이런 믿음은 어느 시대이든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서정을 위해 준비하시고 있습니다. 스데반의 죽음을 통해 일회적이고 단시간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라는 것을 3절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억지로 끌고 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나이가 24세에서 40세 정도로 신학자들은 생각을 합니다. 하여튼 사울의 잔인한 행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울이 회심한 후 행22:4, 고전15:9절 등을 보시면 자신의 입으로 시인하는 것을 보면 믿음은 내가 어떠한 행동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나의 마음에 회개를 주심으로 믿음을 소유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신앙생활하던 교회 즉 성도는 흩어짐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4절을 보시면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아니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은 숨길 수 없는 빛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은 핍박을 하는 사울과 산헤드린 공회 등도 상상할 수 없었던 놀라운 증거입니다. 핍박을 당해 방방곡곡으로 피신을 했지만,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온누리로 전하여질 수 있도록 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이처럼 스데반의 순교는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스데반은 복음이 확장되도록 한 최초의 순교자였습니다. 행1-3절에서 언급된 교회에 대한 박해와는 대조적인 새로운 사건의 전개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새로운 전환점은 사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누구인지 아시겠습니까? 빌립니다. 4절을 보시면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빌립은 스데반처럼 초대교회가 일꾼으로 세운 집사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행6:5) 사마리아에 정착한 빌립은 그곳에서 일꾼으로 하나님 나라의 증인으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사마리아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결혼을 하면서 생활한 곳이라 유대인들이 이방인보다 더 증오한 도시였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주전722년 앗수르왕 사르곤이 사마리아 성을 파괴하고 그곳 주민에 대해 추방 과 혼합 정책을 폈기 때문입니다. 같은 유대인이라고 하지만 유대인으로 간주하지 않아서 사마리아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할 수 없어서 “그리심 산”에서 예배를 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주전 25년 헤롯 왕이 그리심 산에 성전을 다시 세우자고 사마리아인에게 제의했을 때 그들이 거절한 것을 보면 예루살렘에 대한 감정이 얼마나 경직 되어 있었던가를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복음이 사마리아 지역에서 증거 됨으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서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빌립을 통해 사마리아 지역에 전하여 지고 있는 가운데 6절을 보시면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고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빌립이 최초의 선교사가 된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하자 많은 사람들이 빌립의 말을 듣고 표적도 보며 믿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사역과 사도들이 초대교회에 한 사역과 동일한 표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포된 말씀을 확증하기 위해 표적을 행하심으로 믿도록 한 것입니다. 빌립의 복음 증거는 권위가 있었기 때문에 사마리아인들은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는 것입니다. 빌립의 사역을 구체적으로 기록하는 것이 7-8절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사마리아인들이 빌립의 사역에 전심으로 집중한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귀신을 축출하고 병 고침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초기에 복음이 전하여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성령의 사역입니다. 빌립이 복음전파를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사마리아인들로 하여금 그를 신뢰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한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가 ‘한마음’으로집중하여 하나가 된 상태였습니다. 그러면서 ‘그 성에 큰 기쁨’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이 전파되었을 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로 그리고 온누리로 증거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역입니다.

 

빌립을 통해 복음이 잘 증거되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전환점이 발생합니다. 9절을 보시면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시몬이라는 마술사입니다. 빌립이 사마리아에 오기 전에는 시몬은 그 지역에서 신적인 존재와 같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자신을 자칭 ‘큰 자’라고 한 것입니다. 시몬은 오늘 본문에서 언급되고 초대교회의 몇몇 자료에만 그의 신분과 활동이 알려져 있습니다. 시몬은 ‘영지주의’의 교사이며, 베드로의 복음을 로마에까지 따라가서 반대하였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시몬이 초대 교회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친 인물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시몬이 자신을 큰 자라고 하는 이유를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10절입니다.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시몬의 마술을 본 사람들이 그에게 붙여 준 별명이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시몬의 마술을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마술사인 시몬이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높임을 받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기한 이적들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시몬은 자신의 마술을 통해 사람들을 많이 속인 것 같습니다. 11절을 보시면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르더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시몬을 따르게 된 큰 동기가 시몬이 행한 마술 때문이라는 것을 확인하여 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마술은 악영향을 주면서 오랫동안 지속되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시몬을 하나님과 같이 숭배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이 마술의 근원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빌립을 통해 알게 될 것입니다.

 

12절을 보시면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사마리아인들은 그들에게 큰 영향력 주고 있던 마술사로부터 벗어나 이제는 헛된 행실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입니다. 빌립의 이런 놀라운 사역은 행4:12절의 말씀을 떠오르는 게 합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빌립이 전한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나도 빌립처럼 세례를 받고 믿겠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증거 된 것이 이제는 사마리아에도 전파됨으로 많은 사람들이 믿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의 근원 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입니다. 빌립도 사도들이 가르친 것처럼 하나님 나라를 전한 것입니다. 그럴 때 놀라운 사역의 결과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빌립의 놀라운 능력은 사람들로 하여금 시몬의 악영향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몬이 하나님을 믿겠다고 한 것입니다. 13절을 보시면 시몬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사마리아인들은 복음에 관심이 있었지만, 시몬은 빌립이 행한 표적과 큰 능력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시몬은 진정한 회개를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몬이 빌립을 추종하며 따라다닌 주된 목적은,자신보다 더 큰 능력의 소유자임을 인정하여 그 능력을 마술처럼 배워보려는 의도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빌립은 하나님 나라를 전하기 위한 능력과 표적이었지만, 시몬은 하나님 나라가 아닌 표적에만 관심이 많았던 것입니다.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목적으로 예수님을 이용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입니다. 스데반은 예수님이 변호하여 주시고 시인하여 주셨지만, 시몬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시몬을 통해 알면서도 오늘날의 교회를 보면 어떠합니까? 진정한 믿음은 시몬과 다른 것입니다.

 

사마리아의 복음에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도 있었지만, 시몬처럼 자신을 위해 이용하고자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시몬이후 오늘날을 보시면 많은 사람들이 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회개와 믿음입니다. 상상으로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 믿음의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진정한 회개를 함으로 은혜와 평강을 누리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스데반을 죽이는 일로 시작된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핍박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교회의 부흥을 가져오도록 하였습니다. 스데반만 죽이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생각을 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예루살렘에서 흩어져 사마리아에서 빌립이 복음을 전함으로 교회가 소멸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산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교회는 노아의 방주와 같이 썩어지는 세상에서 죽어 가는 영혼들을 살리는 생명의 구조선과 같습니다. 교회는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로 기능과 역할은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빌립이 전한 복음과 같은 것입니다. 교회는 지상명령을 감당하는 공동체의 신자들로 구성된 주님의 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세움 받은 교회에서 공적 예배와 신앙고백을 통해 장성한 분량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도 같은 사역을 감당하는 여러 교회 중 하나의 공동체입니다. 지팡이교회도 복음이 우리 안에만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증거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처럼 흩어져도 복음이 증거 될 수 있도록 하시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설교자 성경본문 강설날짜 조회 수
124 베드로의 강설 중에 성령을 부어 주심 전은덕 행10;44-48 2019-02-24 465
123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대화를 나누다 전은덕 행10:24-33 2019-02-17 435
122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강설(설교)하다 전은덕 행10:34-43 2019-02-17 493
121 이방인 고넬료가 사도 베드로를 청하다 전은덕 행10:17-23 2019-02-03 421
120 이방인 선교의 문이 열리도록 고넬료를 준비하신 하나님 전은덕 행10:1-16 2019-01-27 481
119 룻다와 욥바에서 기적을 행한 베드로 전은덕 행9:32-42 2019-01-20 1644
118 회심한 바울이 다메섹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전은덕 행9:20-25 2019-01-06 695
117 아나니아를 만난 사울의 이야기 전은덕 행9:10-19 2018-12-30 465
116 성찬에 참여하는 지팡이교회를 위해.... 전은덕 고전11:17-34 2018-12-23 326
115 성경이 가르치는 성찬의 의미 전은덕 행2:42 2018-12-16 395
114 다메섹 도상에서의 사울 전은덕 행9:1-9 2018-12-09 765
113 내시에게 복음을 전한 빌립-전은덕 목사 전은덕 행8:26-40 2018-12-02 559
112 사마리아인들이 성령을 받음? 전은덕 행8:14-25 2018-11-25 307
» 복음이 유대에서 사마리아와 온누리로...... 전은덕 행8:1-13 2018-11-18 322
110 스데반의 순교가 주는 의미 전은덕 행7:54-60 2018-11-11 1033
109 스데반이 공회에서 강설을 마무리하다 전은덕 행7:44-53 2018-11-04 281
108 스데반이 공회에서 강설하다4 전은덕 행7:35-43 2018-10-28 317
107 스데반이 공회에서 강설하다3 전은덕 행7:17-34 2018-10-21 258
106 스데반이 공회에서 강설하다2 전은덕 행7:11-16 2018-10-14 379
105 스데반이 공회에서 강설하다1 전은덕 행7:1-10 2018-10-07 371
Board Pagination Prev 1 ... 6 7 8 9 10 11 12 13 14 15 ... 17 Next
/ 17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