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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행10:24-33
강설날짜 2019-02-17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대화를 나누다(행10:24-33)

 

오늘날 어떤 분들은 교리만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교리가 중요한가? 성경이 중요한가? 무엇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히 성경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로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다시 한 번 더 강조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교리는 성경의 말씀 즉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보다 교리를 더 좋아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의 자세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성경보다 교리를 좋아하면서 논쟁 하고 정죄를 하는 것이 자신의 신념과 야망을 위한 것인지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교리를 통해 하나 된 교회를 섬길 수 있도록 믿음, 소망, 사랑을 품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주님의 교회를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칠 수 있도록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혼자는 연약하지만 뭉치면 힘이 되는 것을 알 것입니다. 하나님의 군사다운 모습으로 신앙 생활하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교회는 군인정신으로 사탄과 싸우기도 바쁜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공동체끼리 소모전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군사인가? 아니면 누구의 군사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초대교회는 신앙생활의 공동체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가르침과 기도에 충실 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성령께서 교회가 성장할 수 있도록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일꾼이신 사도 베드로, 스데반, 빌립, 사울(사도 바울) 등을 통해 교회가 성장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초대교회는 서로 협력하는 교회 즉 성도였습니다. 지팡이교회는 계속해서 고넬료와 사울에 대한 강설을 듣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넬료를 당신님의 교회를 위해 준비하신 이유도 아실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방인의 구원도 있다는 것을 사도 베드로에게 확인시켜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결국 베드로는 고넬료와 교제를 하면서 이방인에게도 구원이 있음을 알고 예루살렘 교회에 보고 하기도 했습니다.(행11장)

 

지팡이교회는 지난 주 말씀을 차분하게 되돌아보면서 오늘의 말씀을 통해 더욱 든든한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보다 먼저 고넬료에게 천사를 보내어 베드로를 만날 것을 말씀하셨고, 그 이후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환상을 본 베드로는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아해“하고 있던 중에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도착을 한 것입니다. 환상에 대한 의미가 무엇인지 해결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는 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두장이의 집 앞에서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있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때에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라고 하시면서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의심하지 않도록 하시면서 환상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말씀대로 베드로는 내려가서 너희가 찾는 사람이 자신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무슨 일로 왔느냐고 합니다. 완전한 의미를 모르지만 성령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온 사람들은 담대함으로 자신들을 보낸 고넬료를 소개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고넬료처럼 이방인입니다. 나와 한번 어떤 점이 같고 다른지 생각해 보십시오.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은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고넬료에게 나타난 천사가 당신(베드로)을 집으로 초대하라는 것입니다. 당신을(베드로) 초대하여 당신의 말을 들으려고 고넬료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행1:8절에서 이방인보다 더 미워하는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당신님의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그 말씀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고넬료의 만남을 준비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사역을 시킬 때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 이해하도록 하십니다. 우리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베드로, 고넬료와 같은 양심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방인인 고넬료가 선민의식으로 사로잡혀 있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로부터 어떤 말을 들었습니까? 22절을 보시면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는 칭찬이었습니다.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의 말을 들은 베드로는 같이 유숙을 하면서 환상의 의미를 점점 더 알아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베드로는 밤에 기도하면서 주님께서 자신의 길을 인도해 달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는 베드로는 고넬료의 초청을 받아들이고 고넬료가 있는 가이사랴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지난 주 말씀에 이어서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대화를 나누다”라는 강설을 들음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의 예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욥바를 떠난 베드로는 24절을 보시면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50킬로미터 거리에 위치한 고넬료의 집에 도착해보니 자신이 올 것을 기다리고 있던 것입니다. 도착하면 모여도 될 것을 고넬료는 믿음의 확신으로 친척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베드로를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확신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의 말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있는 고넬료는 자신만 베드로가 전하는 말씀을 통해 구원의 복을 누리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친척과 친구들도 복음으로 더 굳건해 질 수 있도록 초청을 한 것입니다. 아니면 아직 믿음이 온전하기 못하거나 믿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그들을 초청하여 복음의 증인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교회 안에서 믿음이 굳건한 성도도 있지만 믿음이 마치 바닷가에 지은 모래성과 같은 성도도 있고, 어쩔 수 없이 와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럴 때 고넬료와 같은 성도는 오늘 말씀처럼 섬김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올 것을 잘 알고 있는 고넬료는 25절에 무엇을 합니까?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베드로를 영접하면서 그의 발 앞에 엎드려 절을 하는 것입니다.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라는 장교가 어부인 베드로에게 절을 하는 것은 상상도 못하던 시대였습니다. 또한 점령자가(고넬료) 종(유대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에게 엎드려 절을 하는 모습을 상상 해 보십시오. 간단한 인사로 집안으로 초청을 해도 좋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왜 고넬료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원문을 좀 더 생각하면 마치 황제가 집으로 들어올 때 엎드려 절하는 것처럼 베드로에게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초정을 해 준 것에 대하여 정중한 인사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넬료가 절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의 말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넬료는 베드로를 하나님께서 보내어주신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도 삶의 예배를 할 때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보내어주신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면 더 유익하고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넬료가 엎드려 절할 때 26절을 보시면 “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자신도 고넬료처럼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상시시키고 있습니다. 나도 당신과 같은 사람이기에 아무 능력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생각하면서 잠시 교황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베드로를 최초의 교황으로 생각하고, 신약시대 때 황제를 신처럼 섬기는 것처럼 교황을 ‘신적인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베드로를 보아도 자신을 누구라고 표현했습니까? 교황이 오면 황제를 섬기듯이 엎드려 경배하는 것은 참으로 마음이 즐겁지는 않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보여준 겸손을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교황처럼 섬김을 받고자 하는 목사교가 있다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종교(?)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누구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하나의 교회요 신자들입니다. 베드로는 신적인 숭배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고넬료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섬김의 모습입니다. 누구나 교회 안에서 그리고 세상에서 군림이 아니라 섬김으로 주님의 가르침을 드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자신에게 올 것을 믿고 있던 고벨료는 친척과 친구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옆드려 절하는 모습을 보면서 베드로 자신도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준 후 27절을 보시면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이 모인 것을 보고” 점점 더 베드로는 자신에게 보여준 환상의 의미를 이해하는 중 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누가는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상당히 호의적인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도록 한 것 같습니다. 이방인에 대한 배타적인 마음 그것도 점령자인 로만군인에 대해 용납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과거에 일본으로부터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지금도 일본인하면 어떠한 생각이 드십니까? 아마도 유대인에게는 더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누구나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마음을 품으면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저도 이렇게 말하지만 ‘원수를 사랑하라“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심으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을 믿으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의 안내를 받으면서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베드로는 직설적으로 이방인도 알고 있는 것을 질문을 합니다. 28절을 보시면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당시에 이방인과의 교제에 대하여 법으로 정해진 것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이 이방인의 집을 방문해 교제를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시대였습니다. 베드로는 환상의 의미를 점점 더 알아가고 있던 중에 고넬료가 자신을 초청한 의도를 분명히 알고자 직설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고넬료 집 안 에 모여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관습을 상기하도록 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관습은 온누리에 복음이 증거 되도록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민주의에 머물도록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방인을 완전히 분리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여 주신 것을 의미를 모르면서 배타적인 민족주의를 형성한 것입니다. 유대인이 이방인과 교제하고 서로 연합하여 한 공동체를 이루는 것은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이것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와의 만남을 통해 예루살렘 교회에(행11:1절)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고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지상명령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직설적으로 말한 후 29절을 보시면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오게 된 이유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고넬료의 초청에 사양하지 않고 왔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28절에서 말한대로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는 말씀대로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로마 군인에 대한 두려움과 유대교가 생각하는 관습을 넘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처럼 신자들은 베드로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한다는 것은 성경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하는 베드로가 아니라 거절할 수 없는 것이 믿음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더 좋은 것입니다. 예배를 수 없이 해도 순종이 없다면 하나님을 참되게 아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말을 듣고 있던 고넬료는 30-32절에서 무엇이라고 합니까? “고넬료가 이르되 내가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바닷가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말한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에 대한 답을 한 것입니다. 고넬료는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보여주신 것을 사실 그대로 말한 것입니다. 우리도 사도행전을 통해 알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고넬료가 핵심적인 내용을 다 이야기함으로 베드로는 환상의 의미를 더 자세히 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환상에 대한 것을 이야기한 고넬료는 33절에서 새로운 내용을 전개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베드로의 말씀을 위한 분위기를 준비하는 것 같습니다. 33절을 보시면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 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고넬료는 베드로가 초청에 응한 것에 대해 ‘오셨으니 잘 하였나이다’라고 말한 후 무엇이라고 합니까? 베드로가 하는 말은 당신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기에 듣겠다고 밝힌 것입니다. 고넬료만 듣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우리’라는 표현을 함으로 집 안에 모인 사람들을 청종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의 정신상태 그리고 자세를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인간이 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자랑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고넬료와 사도 베드로의 하나님을 향한 순종과 경건의 모습을 보면 지팡이교회가 어떠한 길을 가야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주 안에서 하나의 교회로 본향을 향해 생활하는 성도님, 고넬료의 청함을 받아들인 베드로 는 가이사랴로 향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고넬료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베드로가 도착하자마자 엎드려 절을 한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경건한 성도의 자세입니다. 교넬료는 자신만 말씀을 듣고 행복하면 된다고 생각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고넬료는 친척과 친구들이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을 수 있도록 함께 듣고자 한 것입니다. 교회는 이처럼 나만 믿으면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지상명령을 감당하는 것이 좋은 교회입니다. 복음이 증거 될 수 있도록 장애물이 되는 것이 있다면 무너뜨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가 유대교의 선민의식 그리고 관습 등의 장애물을 없애도록 하심으로 이방인에게도 구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매 주일 예배당에 모여 하나님께 영광의 예배를 올려드립니다. 고넬료를 본받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실천해 보십시오. 고넬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예배당에 왔다는 것은 들을 귀 있다는 것입니다. 들을 귀 있는 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들을 마음이 있는 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는 충실하게 말씀을 준비하고자 애쓸 것입니다. 목회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으로 향하면서 환상의 의미를 생각했을 것이고 이방인 집에 가서 무엇을 전해야 할지 생각했을 것입니다.

 

다음 주 강설의 내용을 잠시 말하면 고넬료의 청함을 받은 베드로는 입을 열어 강설을 합니다. 베드로가 전한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핵심 사역이 무엇인가?를 알도록 한 것입니다. 인종에 차별 없이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 수 있도록 베드로를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떠나 이방인 지역에서 중풍병자인 애니야를 고치게 하고, 구제 사역을 많이 했던 도르가를 죽었지만 다시 살림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많은 사람들이 믿도록 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고넬료를 통해 베드로에게 보여주신 환상의 의미를 알게 됨으로 이방인에게 구원이 있다는 것을 증거를 한 것입니다. 결국 예루살렘 교회가 이방인 선교를 인정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에 지팡이교회는 주일 날 모여서 예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의 영광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기도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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