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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행25:13-27
강설날짜 2020-05-10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E7T3pXgvWRU&t=98s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 그리고 베스도 청문회에 선 바울(행25:13-27)

 

여러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문화를 알기 위해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영어를 유창하게 잘 말한다고 해서 우리나라의 문화를 잘 아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언어와 책 그리고 학문 등을 잘 이해할 때 문화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처럼 사도행전도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자들이 신학교에서 배우기를 소망하기도 합니다. 신학교에서는 체계적으로 잘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대형교단의 a교회에서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성도의 교통을 한다는 교회가 어떻게 입으로 표현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어이없는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참으로 개탄스럽고 부끄러운 사건입니다. 그 교회는 이단과 군인이 하는 훈련을 합쳐 놓은 것과 같습니다. 언론 기사를 보면 비이성적인 교회였습니다. “인분 먹기, 음식물 쓰레기통에 들어가 버티기, 공동묘지에서 서로 채찍질하기, 구더기 먹기, 폐가에서 하룻밤 체험하기 등”을 했습니다. 과연 이런 훈련을 할 수 있습니까?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까? 성경을 잘 알고 싶다면 신학 공부를 하십시오. 신학 공부하기가 어려운 분들을 위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저희 합신 교단에 속한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사이버 강좌를 들으십시오. 좋은 강의가 무료로 올려져 있습니다.

 

교회의 신자는 하나님의 제자입니다. 목사의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도 똑같은 하나님의 제자요, 신자이며 거룩한 공회를 믿으며 성도의 교제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a교회는 대형화되고, 조직화한 교회로 성장하며 권력으로 집중되며 이상한 방향으로 성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훈련 프로그램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도 하지 않았던 훈련을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비이성적인 방법으로 제자 교육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사를 볼 때 사도들, 교부들 그리고 종교개혁가들도 비이성적인 교육을 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잘 알지 못하는 신자들은 맹목적으로 따른 것 같습니다. 교회의 리더는 소수만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선망의 대상이 리더였기 때문에 비이성적인 훈련을 비판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 교회는 대형화됨에 따라 소수에 의한 지배구조를 만들고자 한 것 같습니다. 소수의 사람 리더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교회는 누구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서로 섬김이 있어야 합니다. 지팡이 교회는 느리더라도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로 성장할 수 있도록 우리는 사도행전을 강설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에서 기록되었습니다. 한국에서 기록된 것이 아니므로 어려울 수 있습니다. 남의 언어와 남의 책 그리고 유대인의 생각을 알아야 합니다. 그 나라의 문화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기록된 시기의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내 생각으로만 성경을 해석하면 a 교회처럼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의 진리라는 것 자체가 우리의 생각으로 정리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지혜가 아닙니다. 진리를 대할 때는 기본적으로 ‘겸손’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넓히시도록 간절히 구하며 성경을 읽는 것이 좋습니다. 신학교에 가서 배우는 것도 좋습니다. 건전한 교회가 아니면 건전한 교회로 가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좋은 책을 선별하여 읽는 것도 중요합니다.

 

지팡이 교회는 강설을 통해 성경을 이해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신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기 위해 사도행전을 잘 배움으로 성경을 알기 원합니다. 지난주 말씀은 “베스도 총독 앞에서 재판받는 바울”이었습니다. 밸릭스가 해임된 후 베스도가 총독으로 왔습니다. 베스도가 부임하자마자 3일 후 어디로 방문했습니까? 이스라엘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간 것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을 만난 것입니다. 그들은 바울을 죽일 기회라고 생각하며 재판을 예루살렘에서 하자고 요청했습니다. 이렇게 요청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죽이기로 작정한 방법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길에 매복하였다가 죽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이성적인 행동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비이성적이지 않습니다. 베스도는 그들의 요구에 답을 합니다. 가이사랴에 나와 함께 가서 고발하라는 것입니다. 베스도의 말을 들은 자들은 가이사랴에 가서 바울을 고소했습니다.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고발했지만, 그들은 증거를 대지 못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바울은 스스로 변론했습니다.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베스도는 유대인의 유명한 자들과 바울의 변론을 들었습니다. 그러면 베스도는 선택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베스도는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요구했습니다.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바울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가이사 앞에서 재판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에게 불의한 일을 한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죽을 죄라면 사양하지 않고 감당하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의 말을 들은 베스도는 배석자들과 상의한 후 가이사에게 상소하라고 했습니다. 이제 바울은 로마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습니다.

 

베스도는 바울이 상소한 재판에 대해 안심을 했을 것 같습니다. 벨릭스가 해결하지 못한 사건을 개혁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유대인과 관계도 중요했습니다.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하기로 했기 때문에 더는 자신과 관련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막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것을 유대인들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로 가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베스도에게 방문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보시면 누구입니까? “수일 후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서”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였습니다. 버니게는 배가 다른 여동생으로 벗이었습니다. 또한, 근친상간을 범하는 자였다고 합니다. 당시 로마 전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하여튼, 이들은 남매로 신임 총독 베스도에게 인사차 방문한 것입니다. 아그립바 왕은 헤롯 대왕의 증손자였습니다. 그의 아버지의 아그립바 1세가 죽자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는 곧바도 다스리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그립바 2세가 33살이 되자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을 포함해 갈릴리 호수 주변 지역들을 다스릴 권한을 받았습니다. (학자들마다 권한을 받은 나이가 틀립니다. 21살로 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때의 황제는 네로였습니다. 네로로부터 다스릴 권한을 받은 것입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그립바는 매우 친 로마적이어서 유대인들이 반로마 감정을 가지지 않도록 공작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66-70년에 있었던 전쟁 기간에는 더욱 철저히 로마에 충성했던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그립바 2세는 아버지처럼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갈릴리 지역 모두를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로마 황제는 그에게 막강한 힘을 준 것이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을 임명할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은 아니지만 막강한 힘을 가진 통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힘을 가지고 있는 아그립바 2세와 여동생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찾아온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신임 총독 베스도를 아그립바 2세와 버니게가 찾아온 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은 아그립바 2세와 베스도와의 담화로 구성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가이사랴에 머물던 중에 베스도는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14절을 보시면 “여러 날을 있더니 베스도가 바울의 일로 왕에게 고하여 이르되 벨릭스가 한 사람을 구류하여 두었는데”입니다. 베스도는 바울을 로마로 보내기 전에 바울이 당한 고소에 관련하여 상세하게 작성해야 했습니다. 가이사에게 가서 재판을 받기 위해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했습니다. 마침 아그립바 왕이 왔기 때문에 바울에 관한 소고 내용을 보고한 것입니다. 아그립바 2세 왕이 직접 유대를 통치하지는 않았지만, 대제사장을 임명할 막강한 권력이 있었습니다. 그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베스도는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베스도가 처음으로 말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15절을 보시면 “내가 예루살렘에 있을 때에 유대인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를 고소하여 정죄하기를 청하기에”입니다. 예루살렘에 방문했을 때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하며 판결을 내려 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베스도는 자신이 겪은 사건의 줄거리를 설명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재판도 하기 전에 그들은 유죄 판결을 내리도록 유도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말은 들은 베스도는 그들에게 무엇이라 하며 대답했다고 했습니까? 16절을 보십시오. “내가 대답하되 무릇 피고가 원고들 앞에서 고소 사건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가 있기 전에 내주는 것은 로마 사람의 법이 아니라 하였노라”입니다. 로마법대로 법정에서 재판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변론을 듣기도 전에 당신들에게 넘겨주는 것은 로마법에 어긋난다고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그립바 2세 왕에게 말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맞는 말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습니까?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자가 베스도 아니었습니까? 베스도는 법대로 직무를 수행한 것처럼 말하지만, 아니었습니다. 법대로 했다면 바울은 무죄로 풀어주어야 했습니다. 바울을 재판할 때 베스도는 유대인을 의식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받을 것을 바울에게 제안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베스도는 바울에 관한 재판을 진행해 본 결과 유대인들의 고소와 전혀 달랐다고 17절부터 21절까지 말했습니다. 베스도는 바울의 재판을 신속하게 다루었습니다. 이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17절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나와 함께 여기 오매 내가 지체하지 아니하고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아 명하여 그 사람을 데려왔으나” 자신은 직무를 유기하지 않고 신속하게 처리하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18절에서는 바울이 악행을 범했으니 그들이 바울을 고소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재판을 해보니 로마법으로 죄를 찾을 수 없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그들이 나와 함께 여기 오매 내가 지체하지 아니하고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아 명하여 그 사람을 데려왔으나”입니다. 베스도는 더 구체적으로 19절에서 무엇이라고 합니까?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가 죽은 것을 살아 있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고발하는 것뿐이라” 대제사장과 유대인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하지만, 악행은 하나도 제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종교문제에 대한 이견만 고소했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것은 부활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울의 무죄 아니겠습니까? 베스도의 말을 잘 생각해 보면 바울은 무죄라는 것입니다. 로마법을 위반한 사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종교적인 문제였습니다. 산헤드린 공회도 부활 논쟁으로 인하여 힘들었습니다. 사두개인은 부활을 믿지 않았고, 바리새인은 믿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에 대한 정황을 이야기한 후 베스도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베스도는 아그립바 2세에게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서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20절에서 말합니다. “내가 이 일에 대하여 어떻게 심리할는지 몰라서 바울에게 묻되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일에 심문을 받으려느냐 한즉” 베스도가 생각할 때 종교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는 곤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확실한 것은 바울을 고소하는 유대인들에게 호의를 베풀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8절) 그래서 바울에게 제안한 것입니다. 베스도는 자신이 제안한 것을 바울이 어떻게 했다고 21절에서 말합니까? “바울은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자기를 지켜 주기를 호소하므로 내가 그를 가이사에게 보내기까지 지켜 두라 명하였노라 하니” 바울이 가이사의 법정에서 상소하겠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을 받으라는 베스도의 제안에 바울은 황제에게 가서 판결을 받겠다고 한 것입니다. 베스도는 바울이 상소한 것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베스도 총독은 바울이 로마로 갈 때까지 가이사랴에서 안전하게 있을 수 있도록 지켜 두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고자 했지만, 오히려 더 힘든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베스도로부터 보고를 받은 아그립바 2세 왕은 총독에게 바울의 말을 듣고 싶다고 했습니다. 22절을 보시면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 베스도가 이르되 내일 들으시리이다 하더라” 아그립바는 바울에 관한 것을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호기심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총독이 보고한 내용으로 생각할 때 아그립바 왕은 바울을 사형시킬 만한 죄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과 종교적인 문제로 인하여 고소를 당한 것으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호기심이 발동한 것 같습니다. 아그립바의 말에 베스도는 내일 들을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했습니다. 하루가 지나자 베스도는 아그립바 왕과 만날 수 있도록 했습니다. 23절을 보시면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엄을 갖추고 와서 천부장들과 시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접견 장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입니다. 아그립바 왕은 일종의 청문회를 한 것과 비슷합니다. 이 자리에는 아그립바, 베스도, 버니게, 천부장들, 가이사랴의 귀빈들이 참석했습니다. 사람들에게 과시하기 위해서 위엄 있고 호화 찬란하게 보이는 것으로 바울을 이용한 것입니다. 사실 바울의 재판은 이미 끝났습니다. 로마로 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의 항소는 받아들여졌으므로 다시 재판하는 것은 안 됩니다. 그래서 청문회와 비슷한 방법을 이용한 것입니다.

 

베스도는 청문회에 모인 사람들에게 바울의 신상에 대해 기초연설을 합니다. 24절을 보시면 “베스도가 말하되 아그립바 왕과 여기 같이 있는 여러분이여 당신들이 보는 이 사람은 유대의 모든 무리가 크게 외치되 살려 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하여 예루살렘에서와 여기서도 내게 청원하였으나” 바울을 어떻게 소개했습니까? 유대의 모든 사람이 바울을 살려 두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과장법을 사용하여 말한 것입니다. 베스도는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유대인 모두의 의견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바울을 고소한 자들은 유대인 중 신분이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베스도는 자신을 높이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러면서 총독은 25절에서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내가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그러나 그가 황제에게 상소한 고로 보내기로 결정하였나이다” 베스도는 자신이 지금까지 조사한 결과 바울은 죽을 죄를 범한 일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하니 어쩔 수 없이 보내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베스도가 생각할 때 죽을 죄를 짓지 아니하면 무죄라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했습니까? 예루살렘에 가서 심문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베스도는 자신을 위한 자였습니다. 베스도는 청문회 기초연설을 통해 바울이 무죄라는 것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재판이 지연되는 것은 로마로 가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로마를 통해 온 누리에 복음의 문이 열리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베스도 총독은 이제 바울을 아그립바 왕 앞에 세운 목적을 말합니다. 26절을 보시면 “그에 대하여 황제께 확실한 사실을 아뢸 것이 없으므로 심문한 후 상소할 자료가 있을까 하여 당신들 앞 특히 아그립바 왕 당신 앞에 그를 내세웠나이다”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 것입니다. 황제에게 보고할 내용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명확한 죄목도 없이 황제에게 바울을 세운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청문회를 통해 황제에게 보고할 자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황제에게 상소했는데 죄목이 확실하지 아니하면 입장은 어려울 것입니다. 가이사의 재판받은 바울이 무죄라고 하면 베스도는 로마인들은 무능력한 할 것입니다. 그래서 베스도는 자료를 얻어야 하는 청문회였습니다. 아그립바 2세 왕이 호기심으로 요구한 것에 베스도는 기대를 걸고 있었을 것입니다.

 

베스도는 자신이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아그립바 왕에게 말합니다. 27절을 보시면 “그 죄목도 밝히지 아니하고 죄수를 보내는 것이 무리한 일인 줄 아나이다 하였더라” 죄목도 없이 죄수를 보내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베스도는 기초연설을 통해 이 청문회는 아그립바 왕을 위한 것임을 밝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자신보다 아그립바 왕이 유대 실정을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또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베스도가 명백한 죄상을 밝히지도 못한 채 로마 황제에게 바울을 보내는 것이 타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베스도가 정당한 사유를 밝히지 않고 바울을 로마로 보냈다고 판단될까 하여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잘 드러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방문할 때 사건입니다. 베스도는 자기 생각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전임 총독 벨릭스가 바울을 구금하여 두었다는 것, 예루살렘에서 대제사장들과 유대 높은 자들이 바울을 고소했다는 것입니다. 베스도는 그들의 요청을 거절하고 가이사랴에서 재판하였으나 로마법으로 죄를 찾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문제는 종교적인 문제이기에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받을 것을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제안했지만, 거절하고 황제에게 재판을 받고자 호소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구체적으로 베스도는 아그립바 왕에게 보고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베스도는 자신의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것입니다. 베스도의 말을 들은 아그립바는 바울의 말을 듣겠다고 자청했습니다. 베스도는 즉각적으로 허락하여 다음 날 청문회가 열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베스도의 입장에서는 황제에게 보낼 죄목을 찾을 기회로 생각한 것입니다.

 

청문회에 온 사람은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 천부장들, 가이사랴의 높은 사람들과 베스도였습니다. 당연히 로마 황제에게 상소하는 바울도 있었습니다. 베스도는 여러 사람이 알 수 있도록 바울에 대해 기초연설을 했습니다. 이 부분은 잘 기억하리라 믿습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하는 누가는 유대인들을 진리를 외면한 자들로 묘사하고 있으며, 베스도와 아그립바를 바울의 무죄 확인을 위한 중인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복음의 진리가 무엇인가를 역사적인 사실로 증거 하는 것입니다. 베스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입니다. 이 말을 잘 생각해 보십시오. 유대인들 앞에서 베스도는 자신의 통치 행위를 원만히 하기 위해 바울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본심은 감추고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바울이 황제에게 상소했기 때문에 자신은 그를 로마로 보낼 수밖에 없다는 변명을 늘어놓은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현실에서도 주님만 바라보는 해바라기와 같았습니다. 세상의 환경이 어떠하든 중요한 것은 사도로 부르심에 충실히 하고자 했습니다. 바울은 로마가 무너지도록 전염병과 폭동의 우두머리처럼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섬기는 사도였습니다. 사람이 죄의 자녀에서 참된 양심으로 회복하도록 도와준 일꾼이었습니다. 지팡이 교회도 바울과 같은 마음으로 주의 길을 가는 신자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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