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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계2:1-7
강설날짜 2020-08-02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wQPY-dll8gc

사랑을 잃어버린 정통주의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말씀2(계2:1-7)

 

사도행전 강설을 2년 동안 강설한 것을 알 것입니다. 저번 주부터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를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소아시아의 교회는 오늘날 우리에게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입니다. 귀가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하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교회가 해야 할 임무는 막중합니다. 주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계시록을 기록하라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를 위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왜 하나님 말씀을 듣기 싫어할까?라는 질문에 교회는 고민해야 합니다. 그 고민의 해답은 성경에 있습니다.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있습니다. 목회자는 알곡과 가라지를 잘 양육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목회자는 오직 말씀으로 강설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를 위한 것입니다. 성경을 가지고 강설함으로 알곡은 더 든든하게 성장할 것이고, 가라지는 자신이 누구인가를 고민할 것이라 믿습니다. 강설이 아닌 것으로 예배당 안에서 쇼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교회는 신자요 성도라는 것을 안다면 교회가 해야 할 일을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지팡이 교회도 주님의 교회로서 성장하기를 소망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누리도록 하겠습니다.

 

지난주 강설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지난주 강설이 3절에서 마무리되었기 때문입니다. 1절부터 7절까지 한 번에 보는 것이 좋지만 시간상 3절에서 멈추었습니다. 1-3절까지는 에베소 교회가 잘하는 것을 칭찬과 권면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내용은 에베소 교회가 잘하지 못하는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제목에서 잘 나타나 있는 것처럼 사랑을 잃어버린 정통주의 에베소 교회였습니다. 우리는 에베소 교회를 통해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돌보는 감독이었습니다. 그러면 일곱 교회에만 주어진 편지가 아니라 더 많은 지역 교회에 주어진 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오늘날 우리에게도 주어진 말씀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는 일곱 교회를 기록하게 함으로 오늘날 우리에게도 권면과 경고를 하십니다. 그러면서 성도를 든든하게 하시고, 인도와 보호하시며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구원하십니다. 소아시아 교회는 오늘날 터키 지역입니다. 마음이 아픈 것은 오늘날 이슬람 종교를 믿고 있다는 현실입니다. 교회가 바르게 가지 못하면 이처럼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왜 예수님을 믿는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소아시아 일곱 교회인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를 잘 알아야 합니다. 일곱 교회는 서로 다른 교회가 아닙니다. 서로 같은 주님의 교회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자신이 세운 교회 즉 기업처럼 생각하는 것을 어리석은 것입니다. 교회는 목사의 것도, 장로의 것도 아닌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는 교회를 오른손 붙드시고 계십니다. 에베소 교회는 사도 요한이 개척한 교회가 아니라 사도 바울이 2차 전도 여행할 때 세운 교회였습니다. 이 부분은 지난주 강설과 사도행전을 보시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2절과 3절에서 에베소 교회가 잘하는 것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실 것입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입니다. 에베소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믿고 행위와 수고와 인내가 있었습니다. 에베소는 황제와 우상숭배 등이 많았던 도시였습니다. 그들로부터 교회는 순결성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행위와 수고 그리고 인내를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거짓 교사의 출현으로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거짓 교사들과 대적하며 신자들을 보호했습니다.

 

거짓 교사의 출현으로 힘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에베소 교회는 선한 행위와 수고 그리고 인내로 거짓 교사들을 강하게 대적하며 그들의 가르침에 동조하지 않았습니다. 대단한 교회였습니다. 인내한다는 것은 교회를 조롱해도 즉 신자들을 조롱해도 참고 버티며 주님의 교회를 믿고 지상명령을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 시대만 거짓 교사와 잘못된 가르침만 있지 않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거짓 주장을 하는 무리로 인해 교회는 어려움을 당하며 하나님 나라를 증거 하고 있습니다. 거짓된 교사의 가르침으로 참된 신자는 시달림을 받아 왔습니다. 교회는 순결한 신앙을 위해서 나름대로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에베소 교회는 순결한 주님의 교회를 위해 대가를 치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는 바른 교회와 바른 교리, 바른 삶을 사수함으로 주님으로부터 칭찬받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에베소 교회가 책망받는 것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책망이 있다는 것은 주님께서 교회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처방이 있습니다. 행위와 수고 그리고 인내로 거짓 교사와 잘못된 가르침 등에서 에베소 교회는 완벽하게 신자를 보호했습니다. 가짜 사도를 식별할 수 있는 지식과 판단력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하지만, 책망받을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4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강설 제목과 비슷합니다.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입니다. 에베소 교회 신자들은 거짓 교사들에 대한 그들의 건전한 정통 교리에서는 대단했습니다. 이러한 진리에 대한 투쟁은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삶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신자들은 이 투쟁으로 말미암아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무너지도록 했습니다.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거짓 교사들을 구별하다 보니 서로가 의심하게 된 것입니다. 혹시 저 형제가 자매가 잘못된 교리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 즉 신자들에 대한 사랑이 식었습니다. 기독교에서 최고의 덕목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을 상실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가지고 있던 사랑 즉 지체 사랑을 하되 처음처럼 순수하고 뜨겁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신자라면 이 부분은 동의하실 것입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고자 하지만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거짓 교사에 대한 극단적으로 치우치다 보니 사랑의 균형을 잡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교리를 지키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교리를 수호하는 것은 교회의 순결성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비판과 분별을 넘어 정죄만 해서는 안 됩니다. 잘못된 자들이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회개한 신자에 대해서는 처음 사랑과 같이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들은 진리를 한 번 강조할 때 사랑을 두 번 강조하시오”라고 했습니다. 저도 이 부분에서는 잠시 인생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잘못된 거짓 교리를 전하는 자들로 인해 에베소 교회는 서로 간에 신뢰의 교제가 무너졌습니다. 서로가 의심하다 보니 냉랭한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교리적으로는 빡 금이었지만, 사랑에서는 비극이었습니다. 가짜들이 교회 안에서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한 것은 칭찬받을 일입니다. 그와 반대로 사랑을 상실한 것은 세상 사람과 교회 신자들에게 책망받을 일입니다. 당연히 주님으로부터도 책망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에베소 교회를 책망하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회복해야 했습니다. 그헣지 않으면 5절에서 어떻게 하신다고 했습니까?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촛대를 자리에서 옮긴다는 것은 형벌입니다. 하지만, 5절은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신 말씀입니다. 사랑을 회복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교회가 무너지도록 기다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에베소 교회 신자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교회가 완전해지기를 우리보다 더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에베소 교회가 돌이킬 수 있도록 제시하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첫째를 안 후 회개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처음 행위를 가지는 것으로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으로만 가지고 있지 말고 지금 당장 즉시 회복하라는 명령입니다. 주님께서 명령하심으로 우리는 자신을 성찰하여 성경의 말씀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당신님의 모든 것을 십자가에서 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사랑하셨습니다. 이것만 생각해도 에베소 교회와 오늘날 교회는 사랑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죄인 된 신분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키신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해 보십시오.

 

노예 매매업으로 아주 유명했던 존 뉴턴을 아십니까? 노예선 선장에서 성공회 신부(개신교)가 된 목회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 존 뉴턴은 찬송가를 작곡했습니다. 한국 성도가 아마도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 생각됩니다. 그 찬송가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존 뉴턴의 좌우명이 “너는 애굽땅 종 되었던 집에서 너를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입니다. 늘 기억할 수 있도록 써 붙여 놓고 생활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신분이 어떠했는가를 기억하기 위한 길이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홀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즉 은혜로 값없이 구원받았습니다. 주님으로부터 구원받은 성도는 첫사랑을 기억하며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며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다른 길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에베소 교회에 경고하신 것처럼 촛대를 옮기는 것입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면 에베소 교회 모든 신자가 처음 사랑을 상실한 것입니까? 첫사랑이 식었기에 다시 회복해야 한다는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경고의 메시지를 흘려들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촛대로 같은 역할입니다.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춰주는 역할과 기능을 해야 합니다. 등대가 촛대의 역할과 기능을 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촛대를 없애고 새로운 것으로 만들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촛대를 옮긴다는 것은 에베소 교회를 제거해버린다는 의미로 보아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에 임한 경고는 무서운 것입니다. 회개하지 아니하면 현재적 심판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에베소 교회는 터만 남아 있는 현실입니다. 에베소 교회가 교회답지 못할 때 역사적 심판을 경고한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계시로 주신 성경의 말씀을 흘려 들어서는 위험합니다. 하나님께서 경고하시는 것은 돌이킬 기회를 주신 것이라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말로 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교회는 주님의 교회이기 때문에 사랑이 없는 상태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에베소 교회가 잘 보여주었습니다. 우주적인 교회는 결코 지상에서 사라지지 아니합니다. 그 이유는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세우신 그 교회는 세상 끝날까지 없어지지 아니합니다. 모든 나라 위에 굳게 섭니다. 그러나 지역 교회의 생명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눈에 보이는 교회라고 합니다. 유럽의 교회가 이것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신자들이 타락함으로 예배당 문이 닫히고, 교회는 제구실을 감당하지 못함으로 사라지는 것입니다.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에베소 교회처럼 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참되게 믿는 신자들은 주님께서 반석과 같이 보호하여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을 돌보시는 것입니다. 건물을 보호하여 하나님 나라로 옮겨 가시는 분이 아닙니다. 참된 신자요 교회인 성도를 하나님 나라 즉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구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베소 교회에 말씀하시는 주님의 칭찬과 책망은 생사가 걸려 있는 명령입니다. 우리는 에베소 교회에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가 존재하느냐 망해 버리느냐, 이것은 처음 사랑을 회복하느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갖습니다. 금은보화를 얻어도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면 부질 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5절에서 엄숙한 경고의 메시지를 주시었습니다. 그러면 6절에서는 확고부동한 신앙의 자세를 계속 유지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말 성경 번역에는 “그러나”가 없습니다. 6절에서 원문을 살려 읽으면 이렇습니다. (그러나)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입니다. 그러나는 4절에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6절에서 그러나를 사용하는 이유는 니골라 당과 관계있습니다. 학자들은 사도행전에서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이 니골라가 타락하여 만든 이단으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초대 교부인 터툴리안, 이레니우스 등이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니골라 당에 관한 역사적인 문서는 없습니다. 오직 요한계시록에만 나오는 니골라당입니다. 이런 가운에 우리는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6절과 15절을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15절은 14절과 연결하여 “발람의 교훈”과 같은 것으로 설명합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니골라 당은 발람의 교훈처럼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 것, 행음하는 것들과 같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니골라 당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면 에베소에 대한 의문점을 시원하게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정된 자료라 아쉽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여기까지만 주신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믿음 생활하는 데 부족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단과 거짓 교사의 가르침에 넘어가지 않고 참된 주님의 길을 가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에 말씀하시는 마지막 구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7절을 보시면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7절에서 말씀하시는 것은 일곱 교회에 한결같이 들으라는 경고의 메시지로 종결합니다. 이러한 경고의 메시지는 요한이 감독한 교회만 아니라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까지 모든 교회를 향한 종결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를 좋아한다면 경고의 메시지를 들어야 합니다. 그런 분들이 귀 있는 자들입니다. 누구에게나 있는 귀입니다. 하지만, 구원의 귀는 다릅니다. 구원의 귀는 이기는 교회요 신자들입니다. 영적인 대적자들과 승리함으로 약속된 구원을 받는 귀한 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께서는 죽임을 당한 어린양으로서 모든 민족 가운데서 하나님을 위해 신자들을 구속하시며 승리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우리도 승리해야 합니다. 주님과 같은 십자가의 죽음이 아닌 삶에서 지상명령을 감당하는 승리입니다. 그러기 위해 주님께서 말씀하신 메시지를 따라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한 성도에게 주어진 것은 이기는 자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이기는 자가 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그 반대입니까? 오늘 말씀을 들으며 결단해야 합니다. 그 결단이 무엇인지 아시리라 믿습니다. 이기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낙원은 창세기 3장에서 나오는 에덴동산을 연상시키는 것 같습니다. 즉 낙원은 궁극적으로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과 함께 있게 될 나라를 의미합니다. 그 나라는 이 세상과 다른 나라로 죽음과 고난이 없는 새 하늘과 새 땅 즉 하나님과 동행하며 영생하는 나라입니다. 에베소 교회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전투와 같은 삶에서 끝까지 인내로 이기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격려하기 위해 주어진 메시지입니다.

 

말씀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순결과 영적 분별력이 있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왜곡된 교리와 가르침을 분별하며 교회를 지키고자 했습니다. 행위와 인내와 수고를 통해 왜곡된 진리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진리를 수호한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이런 가운데 에베소 교회는 니골라 당으로부터 많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성경과 다른 복음이었습니다. 같은 복음 같지만 거짓된 교훈과 가르침이었습니다. 니골라 당은 발람의 교훈처럼 우상을 좋아하고, 행음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이런 것은 세상의 이단들이 좋아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로부터 교회가 무엇인가를 알기 때문에 에베소 교회는 진리를 지키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 안에서 서로를 의심하게 되습니다. 그로 인해 교회는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짜들로 인해 교회는 사랑을 상실했습니다. 오늘날에도 현대판 니골라 당과 같은 존재들로 인하여 교회는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단을 이단이라 하지 못하는 시대에 있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각자 교회만 지키고자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라고 하는데 서로 각개 전투 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이런 현실 가운데 우리는 에베소 교회에 하신 말씀처럼 처음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서로 연합하여 한 몸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 안에서 신뢰의 교제를 해야 합니다. 신뢰의 교제를 하지 못할 때 주님께서는 촛대를 옮길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교회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첫사랑을 회복할 수 있도록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교회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라는 것이고, 그것을 생각하면 회개하라입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렵기도 합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자는 처음 사랑을 회복하고자 상하고 크게 통화하는 마음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이기는 자로서 참된 교회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늘 명심해야 합니다. 말씀의 진리를 믿으며 주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서로 신뢰하며 교제해야 합니다.

 

그럴 때 이기는 자에게 약속된 상급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아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7절을 다시 보십시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귀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순종하고자 하는 길을 가는 신자들에게 성령께서는 귀 있는 자가 되도록 하십니다. 오늘날 교회는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교회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론을 배울 때 전투하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전투하는 교회는 이기는 자입니다. 이기는 자에게 약속하신 것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서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며 죽음이 없고 고난이 없는 행복의 나라에서 생활합니다. 그날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교회는 서로 신뢰하며 처음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주님의 재림 이후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교회인 성도가 누려야 할 나라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에베소 교회가 칭찬받았던 것과 책망받았던 메시지를 기억하며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로서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로서 사명을 다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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