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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28:16-20
강설날짜 2020-09-13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WlYrp30PQqI

교회의 표지-강설, 성례, 기도(권징)

 

첫째는 강설(설교, 강론)

 

교회는 성도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면서도 중요한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가 되느냐 반대로 아니냐를 결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실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소요리문답 그리고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배웠기 때문에 아실 것이라 믿습니다. 다시 한번 기억해 보십시오. 그것은 강설과 성례(세례와 성찬) 그리고 기도 즉 권징입니다. 이 세 가지가 있을 때 교회라고 합니다. 그러면 몇 명이 모여서 예배하면 교회라고 부를 수 없는 것입니까?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몇 명이 모여도 하나님께서는 임마누엘로 함께 하십니다. 하지만 교회라고 할 때 중요한 표지가 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에게 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정하여 주셨기 때문에 중요한 것입니다. 강설과 성례 그리고 기도를 알기 위해 배워가도록 하겠습니다.

 

카톨릭은 말씀의 강설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카톨릭도 성경을 강설하기 시작했습니다. 신자는 성경을 알고 싶어도 알 수 없었지만, 출판물이 발전하면서 그리고 종교개혁으로 인해 성경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전했습니다. 이처럼 종교개혁은 신자들에게 성경에서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를 알도록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각국 언어로 성경이 번역되면서 모국어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전에는 대체로 라틴어로 되어 있어서 특정한 사람만 읽을 수 있는 특권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종교개혁은 성경을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은 섭리에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배워야 할 교회의 표지 중 첫째는 강설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1:9절에서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하는 이유는 바울이 어느 정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바른 복음으로 강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바르게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성도가 좋은 영의 양식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세상 사람도 자녀에게 좋은 양식을 주고자 합니다. 하물며,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일꾼 즉 목사는 교사로서 영의 양식을 먹여야 하는 사명자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말씀이 아닌 다른 가르침을 전한다면 교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바울은 그것을 알기에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하면서 강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교회가 사느냐 죽느냐는 바로 강설에 있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나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성경을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 에디오피아 내시를 생각해 보십시오. 열심히 말씀을 보았지만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빌립을 통해 말씀을 알도록 하셨습니다. 그런 후 세례를 받고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성도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말씀의 강설은 중요한 것입니다.

 

말씀의 강설을 통해 죄악 된 사람이 회심함으로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스스로 구원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께 시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면서 애통해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애통해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감사하며 은혜로운 삶을 생활하며 지상명령을 감당해야 합니다. 지상명령을 감당하기 위해 말씀 사역자 즉 목회자는 성경을 사랑하며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말씀 강설자는 본문 안에 말씀을 잘 전해야 합니다. 자신의 견해를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안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참된 복음의 선포는 교회를 살리는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를 믿는다면 강설자이든 말씀을 듣는 신자는 서로 한마음으로 주님께 감사하며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참된 성도에게 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격이 주 안에서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왜 순종이 중요한지 아십니까? 왜냐하면, 강설은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의 영혼의 울부짖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은혜로 인하여 성도는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고자 하는가를 알고자 하는 울부짖음이 있는 것입니다. 울부짖음이 있을 수 있도록 강설자와 듣는 성도는 성령께 의존하며 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좋은 강설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본문의 정확한 의미를 신자들에게 클로즈업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도는 성경 말씀에 따라 생활하고자 노력합니다. 생활하고자 노력하는 이유는 말씀이 삶 속에서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힘대로 생활하지 않기 위해 성도는 성령을 의존하며 기도하는 생활을 합니다. 복음을 들은 성도는 늘 어떻게 신앙생활 해야 하는가를 늘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을 의지하고 있다는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 참된 신앙인의 생활이 될 수 있도록 말씀의 강설이 올바르게 선포될 수 있도록 강설자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의 표지 둘째 성례 즉 세례와 성찬

 

오늘은 세례에 대한 것을 일부 배우고 다음주에 세례와 성찬을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개신교회는 성례만을 인정합니다. 성경에 있는 것만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성례란 예수님께서 제정하시고 시행하라고 명령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제정하여 주셨기 때문에 성례 즉 세례와 성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카톨릭과 개신교에서 같이 인정하는 것은 성례입니다. 하지만 카톨릭은 세례와 성찬 외 다섯 개를 더 인정합니다. 성경에 없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은혜롭게 보인다고 할지라도 성경에 없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면 카톨릭에서 주장하는 성례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세례와 성찬은 대체로 알 것입니다. 그 외 우리가 잘 모르는 것을 배워보겠습니다. 고해성사는 죄로부터 해방을 의미합니다. 크게 뉘우치는 마음으로 주교가 죄의 경중에 따라 죄를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죄를 용서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신자들은 고해성사를 통해 죄를 없애고자 할 것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으로 죄는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습니다. 그다음은 견진성사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소식을 듣고 사도들이 가서 안수하니 성령이 임했다는 데서 가지고 온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기 위해서 오늘날 주교들이 안수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다음은 혼배성사입니다. 혼인성사라기도 합니다. 혼인 생활로 성스러운 가정을 꾸미고 자녀의 교육적 양육의 은총을 주는 성사를 의미합니다. 그다음은 심품성사로 교회의 사제로 성사와 미사집전, 교회에 봉사하는 직능을 수여하는 성사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종부성사 또는 병자성사라기도 합니다. 의미는 중병으로 신음하는 신자와 죽음에 임한 신자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성사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성경에 있는 말씀을 믿는 성도입니다. 주님께서 제정하여 주지 않는 것을 믿지 아니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주님께서는 보이지 아니하는 말씀을 통해 즉 강설를 들음으로 믿음을 주십니다. 그런 후 보이는 말씀을 통해 믿음을 더 굳건하게 하십니다. 복음은 말씀만 복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보이지 아니하는 말로만 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방식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보고 느끼게끔 하기 위해 세례와 성찬을 주신 것입니다. 그 외는 주시지 아니하셨습니다. 성례를 바르게 하고자 하는 교회가 주님의 교회라 믿습니다.

 

우리는 마28:16절부터 20절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오늘 말씀을 강설로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17.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18.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장소는 16절 말씀에 잘 나와 있는 것처럼 갈릴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역을 많이 하신 지역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무엇을 주셨다고 하셨습니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연히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항상 가지고 계셨습니다.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신 주님께서 제자들과 오늘날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명령하시며 위임하신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동사를 보시면 제자를 삼아고, 분사는 가서, 세례를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입니다. 가라는 것은 제자로 삼기 위한 것이고, 세례를 주는 것은 제자가 되고 난 후 세례를 준다는 의미입니다. 가르쳐 지키라는 의미는 교회로서 은혜의 방도를 잘 유지하라는 명령입니다. 주님께서는 동사처럼 분사들도 같은 취급을 하도록 하심으로 사실상은 모두 명령입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우리의 삶의 목표는 주님의 제자로 만드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명령하신 것을 생각하면 교육적인 명령이며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교육하도록 하셨습니다. 주님의 교회 즉 공동체는 제자이면서 제자로 삼는 성도입니다. 교회가 교회의 역할을 잘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그런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서로 협력하기를 주님의 이름을 소망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자훈련입니다. 비성경적인 세상의 방식으로 제자 교육을 하는 것은 그리 좋은 모습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을 믿으며 제자 교육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 특정한 성도만 제자가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제자입니다.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만 선생님의 제자가 아니라 모든 학생이 제자입니다. 성경에서 제자라고 할 때 형제와 자매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참된 신앙생활을 할 때 세상 사람들은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것보다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러주는 것이 참된 의미가 있습니다. 이처럼 초대 교회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잘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제자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뒤를 잘 따르는 성도입니다. 이런 성도가 주님의 구속을 받은 제자입니다.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참된 제자의 길을 잘 가고자 하는 성도요 제자에게 세례를 주는 것은 교회의 할 일입니다. 이런 일을 잘하는 교회가 교회의 표지를 이 세상에 드러내는 참된 교회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무조건 세례를 주면 좋은가?라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임직한 목사가 주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이유는 순수한 복음을 지키려는 방법입니다.

 

자! 그러면 세례의 삼중적 의미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아난 자입니다. 신학적으로 이것을 중생이라고 표현합니다. 롬6:3-5절을 보시면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합하여 성도는 세례를 받습니다. 세례를 받으므로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은 성도는 이전의 삶과 달라야 합니다. 세상 사람으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내가 스스로 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것보다 주위 사람으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고 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가 성장하는 비결이며, 제자된 교회를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해하지 말 것이 있습니다. 세례를 받을 때 죽고 살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신앙으로 거듭난 성도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세례를 받고자 하는 것은 좋은 모습이 아닙니다. 목회자가 주고자 한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모습을 잘 감찰하며 받아야 합니다. 성도 자신이 자신의 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례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아난 성도에게 주는 것입니다. 아무나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를 보면 인원을 늘리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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